1. 문화
[2466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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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을 찾아 떠나는 고전 여행]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

왜 한국 정치는 발전하지 못했을까?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pcsun21@daum.net 

▲ (좌) 그레고리 핸더슨. (우)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 초판 표지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가들은 단일한 언어와 문화, 통일국가, 중앙집권적 관료지배 체제 등을 확립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투쟁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그러한 것들을 거의 완전하게 갖추어왔다. 외견상 정치적 선진화에 한층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현실은 전혀 달랐다. 한국 정치는 광복 이후 (적어도 이 책의 출간 시점까지) 발전은커녕 순간순간 퇴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순적 현실을 주목하며, 한국 정치의 구조적 취약성을 날카롭게 꿰뚫어본 고전적 저작이 있다. 바로 그레고리 핸더슨(1922~1988)의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1968)이다. 그는 한국 정치의 특성을 한마디로 ‘중앙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소용돌이’로 포착했다.
   
   핸더슨은 두 차례(1948~1950, 1958~1963)에 걸쳐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며, 현대사의 격동기를 직접 경험한 외교관 출신의 학자이다. 그는 ‘한대선’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가질 정도로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1963년 귀국 후 공직에서 물러나, 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각종 매체에 종종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자신은 물론, 그의 책도 한국에서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는 한국 정치를 예리하게 분석한 학문적 성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핸더슨은 전통왕조부터 현대까지 한국 사회를 꼼꼼하게 분석한 다음, 한국처럼 안정된 지리적 판도를 가지고, 획일화한 민족·문화·언어를 유지한 중앙집권적 과두정치 체제는 ‘세계 역사상 희귀한 사례’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이만큼 강력하고 안정적인 중앙관료통치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촌락과 왕권’ 사이에 제도적 기구나 자발적 결사체 등 중간매개집단이 일절 형성되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사회적·계급적 응집력을 상실한 채 단순히 ‘원자화된’ 개인으로 해체되었다. 이러한 개인이나 가족이나 집단은 관료제와 그 접근 통로인 과거제(科擧制)라는 흡입구를 통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중앙권력을 향해 질주하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한국은 곧 한양이요, 서울이었다.
   
   서원(書院)을 중심으로 지방에도 강력한 사림(士林) 집단이 존재했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지방의 사림들도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중앙의 이슈를 둘러싸고 갑론을박했다. 그들은 이러한 논쟁을 통해 중앙에 진출하여 권력을 장악할 기회를 엿보았다. 설사 권력을 외면한 일부 사림들도 중앙의 이슈에 매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에도 전국 어디서나 자기 지역보다 중앙에 대한 담론이 우세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에서 근본적인 정책이나 이념의 차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찌감치 다방면에서 동질성이 유지된 가운데, 유교나 반공(反共) 등에 기반한 보편적 가치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집단의 형성은 인위적이고 분파적일 수밖에 없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 정치는 당파성·개인중심·기회주의와 같은 특성을 띠며, 합리적 타협의 기초를 결여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오로지 중앙권력을 향한 맹렬한 소용돌이만 존재했다.
   
   이런 소용돌이는 지방권력, 중간매개집단 등 수평적 구조를 억압하고 중앙을 향한 수직적 구조를 더욱 강화했다. 그것은 자칫 최소한의 사회적 응집력마저 파탄시킬 우려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소용돌이의 정점에서 고안한 장치가 바로 평의회(council)이다. 이 제도는 신라의 화백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이후 왕조들도 어김없이 조정에 최상위 자문기구를 설치하였다. 그것은 권력자들이 둘러앉는 원형 테이블인 것이다.
   
   이러한 기구는 기본적으로 기능이 아니라 권력을 고려한 산물이다. 그것은 상승하는 소용돌이를 억제함과 동시에, 그 통로가 되기도 하는 권력분점장치로 작동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명칭이나 형태는 변했지만, 가치체계와 동원을 관장하는 검열기관의 유례없는 과대발전을 가져왔다. 정치가 극도로 위축되던 시대에 정보기구가 위세를 떨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아직도 각종 위원회, 자문회의 등 동원기구가 다수 남아 있다.
   
   그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지위쟁탈전은 가치나 이념과 관계없이 오로지 자파 구성원에게 권력을 나눠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 정치는 이슈나 가치가 아니라 권력과 인맥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고, 타협과 양보보다는 투쟁과 갈등을 야기했다. 나아가 음해, 뒤통수치기, 음모 등을 통해 반대파에 대한 적대감을 무분별하게 표출하는 저급한 정치문화가 횡행하게 되었다.
   
   정당은 아예 통치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통치권력에 대한 접근수단을 목적으로 기능할 따름이었다. 이리하여 기회주의적인 인물들의 유동적이고 뿌리 없는 모임이 되어, 권력을 좇아 수시로 부침(浮沈)을 반복했다. 결국 정당은 정상적 정치과정을 통해 관료를 복종시키지도 못하고, 사회로부터 호응과 충성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핸더슨은 바로 이러한 실패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표류하는 핵심적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그는 한국 정치의 문제가 오히려 사회의 동질성·중앙집권·통일성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거기에는 오로지 ‘촌락과 왕권’만 있을 뿐, 그 사이에 중간매개기구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그 대안은 당연히 다원성을 강화하고 분권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한 관심이 크고, 교육과 유동성에 대한 기대가 다양성을 자극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는 1980년대에 대기업과 노동세력의 등장을 바라보며, 그것들이 한국 사회의 다양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환영한다. 하지만 대기업과 노동세력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다양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의문스럽다. 물론 대기업의 발전은 관료 이외의 커리어(career)를 대량적으로 제공하여, 또 다른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높여준 것은 분명하다. 반면 한때 사회세력으로 기능하던 학생, 교회 등은 오늘날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는 우리에게 참담함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다양한 정치적 통찰력을 선사한다. 이 책이 나온 지 반세기가 흘렀어도 한국 정치는 여전히 ‘중앙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중간집단이 들어서야 하고, 극우나 극좌가 아닌 중도노선이 필요하다는 그의 권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한국 정치의 실패가 온건중도파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소용돌이는 이 순간에도 맹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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