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역대 국내 미술전시회 사상 가장 비싼 보험료를 낸 전시는? 2015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 전시이다. 보험사가 산출한 작품 평가액은 2조5000억원. 보험평가액이 비싸다는 말은 그만큼 작품값이 비싸다는 말이다. 매년 최고가 기록 경신이 이어지는 미술경매 시장에서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작품 ‘넘버 6’는 2100억여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톱 5’에 들어 있다.

두 번째로 보험가액이 비싼 전시는? 오는 12월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현대조각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전시이다. 조각 41점, 회화 12점 등 120여점에 대한 작품 평가액은 2조1000억원이다. 자코메티의 작품 ‘가리키는 남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조각이다. 2015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4130만달러(약 1600억원)에 낙찰됐다. 이번 전시에는 자코메티의 대표작인 ‘워킹맨’(걸어가는 사람·1960년작)’ 석고 원본 조각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 워킹맨은 전 세계에 캐스팅 작품 6점이 있다. 석고 조각이 육필 원고라면 캐스팅 조각은 인쇄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원본의 가치는 캐스팅의 3~4배이다.

두 전시는 영화로 치자면 블록버스터급이다. 굳이 작품 평가액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로스코와 자코메티가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한 두 전시를 유치한 곳은 문화예술 콘텐츠 기업인 코바나컨텐츠이다.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서울특별전(2016~2017)도 코바나컨텐츠의 작품이다. 어떤 곳이기에 대형 전시를 척척 끌어오는지 궁금했다. 전시기획의 큰손으로 떠오른 코바나컨텐츠 김건희(45) 대표를 만났다.

“큰 전시 한다고 큰돈 버는 걸로 오해하는데 천만에요. 돈 벌려면 이 일 안 해야죠. 인건비, 사무실 비용만 나와도 감사하죠. 왜 하냐고요? 돈도 중요하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문화로 정신을 깨운다, 코바나컨텐츠의 정신입니다.”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 ‘워킹맨’ 원본 조각.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 ‘워킹맨’ 원본 조각.

작품 대여 조건은 돈보다 신뢰

김 대표는 앉자마자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에너지가 넘쳤다. 목표가 생기면 좌우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성격으로 보였다. 김 대표의 에너지 레벨을 맞추려면 직원들이 꽤나 힘들겠다 싶었다. 그가 코바나컨텐츠를 만든 것은 2007년이다. ‘까르띠에 소장품전’을 시작으로 앤디 워홀, 샤갈, 마크 리브 사진전을 개최했지만 그를 단숨에 주목받는 전시기획자로 만든 것은 로스코 전시였다. 로스코전은 2015년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3관왕을 차지했다. ‘최다 관람객상’ ‘최우수 작품상’ ‘기자상’(최다 언론 노출)이었다. 문화계 파워 100인이 선정한 최고의 전시로도 꼽혔다. 그만큼 화제를 불러모았지만, 그가 처음 “로스코를 데려오겠다”고 말하자 주변에선 모두 “미쳤다”고 말렸다.

“우리나라에서 전시로 돈 벌려면 흥행이 보증된 인상파 화가를 데려와야 합니다. 대중성 없는 현대작가를 데려온다고 하니 다들 반대했죠. 모험이었습니다. 손해볼 각오로 덤볐습니다. 로스코전으로 돈보다 중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진짜 좋은 것은 인정하는구나’ 하는 자신감이요.”

해외 작품 전시의 경우 제안부터 전시까지 보통 2년은 공을 들여야 한다. 대여료, 보험료, 운송료만 해도 수십억원이 든다. 자코메티 전시는 총 경비 45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작품을 빌려오려면 돈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뢰가 우선이다”라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다. 북핵 리스크가 있는 한국 전시는 작품 대여도 힘들고 보험료도 다른 나라보다 더 비싸다.

“워킹맨 석고 원본은 프랑스 자코메티재단에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가져왔습니다. 북핵 문제가 이슈화되자 재단에서 작품 대여를 꺼렸습니다. 2차대전 전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자코메티의 메시지를 한국에 꼭 전하자고 설득했습니다.”

로스코전은 ‘코바나컨텐츠’의 보증서가 됐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로스코의 작품 50여점을 통째로 내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제는 해외에서 먼저 실력을 인정하고 전시를 의뢰해오기도 한다. 로스코의 성공이 르 코르뷔지에, 자코메티로 이어진 것이다. 국내에서도 ‘코바나컨텐츠’의 매니아들이 생겼다.

“로스코전은 현대미술의 저변을 넓혔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우리에게 건물이 아니라 생각을 남긴 인물입니다. 건축을 넘어 20세기를 바꾼 사람입니다. 자코메티는 뼈대만 앙상한 인간의 형태를 통해 나약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국에서 전시 한 번 안 했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좋은 전시를 했다는 자부심이 저에게는 큰 자산입니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고 경영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학창 시절 그는 부모도 못 말리는 ‘무데뽀’였다고 한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그의 자신감의 원천이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재미있게 사는 방법은 뭘까’ 고민 끝에 잡은 키워드가 ‘문화’였다.

그는 돈을 좇아 치사해지지 않고, 해외에도 폼 나게 자랑할 수 있는 전시를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자코메티와 로댕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대규모 전시를 이미 계획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영국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 전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전시도 머릿속에 담고 있다. “정치로 문화를 만들 순 없지만 문화로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전 서독의 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의 말이다. 그는 이 말을 전하면서 우리 사회가 화합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문화라고 강조했다.

“한 작가의 평생 고민과 철학이 농축된 덩어리를 보는 거잖아요. 저는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문화밖에 없습니다.”

키워드

#컬처人
황은순 차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