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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2503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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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2030 라틴어 수업에 빠진 이유

김민희  기자 

▲ 로마시대의 철학자 세네카
출판계에 작은 이변이 일고 있다. 제목도 난해한 ‘라틴어 수업’이 출간 10개월 만에 무려 16만부 이상 팔렸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말이 라틴어 수업이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쉬운 언어로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주목할 부분은 이 책의 주요 독자가 2030세대라는 점이다. 2030세대가 종이책을 잘 읽지 않는 세대, 깊이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세대라는 통념이 무색해지는 부분이다. 출판계 내부에서도 라틴어 수업 열풍에 대해 ‘기현상’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위기다.
   
   ‘라틴어 수업’의 의외의 돌풍은 한국판 피터슨 현상이라 할 만하다. 조던 피터슨(Jordan Perterson) 토론토대 교수가 쓴 ‘12가지 삶의 법칙:혼돈의 해독제(12 Rules for Life:An Antidote to Chaos)’는 출간 즉시 미국 아마존닷컴,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 등극을 비롯, 영국·캐나다·호주·프랑스·독일 등에서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고 있다. 올해 초 출간된 ‘그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라는 만화책이 200만부 넘게 팔리면서 국민 수신서로 자리 잡았고, 미야자키 하야오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중학생 주인공이 숙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은 이 만화책의 주요 독자층 역시 젊은 세대다.
   
   피터슨 교수의 ‘12가지 삶의 법칙’이나 일본 만화책 ‘그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모두 고전적 잔소리를 담고 있다. 제시하는 내용 역시 새롭지 않다. ‘12가지 삶의 법칙’에서는 ‘어깨 편 채 세상에 맞서라’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 ‘이해득실이 아닌 의미를 주는 일을 택하라’ 등을, ‘그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세상이 박수를 보내는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인간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의 영혼을 통해 발견해내라’라고 가르친다. 젊은 세대가 본질적 질문에 천착하는 흐름이 새롭게 불고 있고, 영미를 중심으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라틴어 수업’도 친절한 훈장님 잔소리 같은 내용이 주다. 저자의 프로필부터 훈장님스럽다.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된 한동일 신부가 이 책의 저자. 그는 ‘최우등/우수/우등/좋음’으로만 구분하는 라틴어의 성적 구분을 소개하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 자신과 비교하라’고 하는가 하면,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라틴어의 유명 구절을 소개하면서 혼돈의 시대일수록 ‘함께’와 ‘더불어’의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전한다.
   
   ‘라틴어 수업’은 서강대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은 동명의 교양강좌를 바탕으로 묶은 책이다. 한동일 변호사가 대학 강단에 처음 선 것은 2010년. 난해하기로 소문난 라틴어에 처음부터 수강생이 구름처럼 몰려든 것은 아니었다. 처음 학기 수강생은 단 24명. 다음 학기에는 67명으로 늘었고, 학기가 거듭될수록 입소문이 나 300명 수용 가능한 대형 강의실이 빼곡해졌다. 모교 학생은 물론 이웃 학교인 연세대와 이화여대, 심지어 입소문을 들은 일반인 청강생까지 몰려들었다.
   
   2030세대가 ‘라틴어 수업’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강의는 라틴어 자체에 대한 언어학 강의라기보다 종합 인문학 수업에 가깝다. 라틴어를 모어(母語)로 가진 나라들의 역사, 문화, 법 등을 기반으로 삶에서 꼭 필요한 화두를 끄집어낸다. 한 변호사가 내내 강조하는 것은 라틴어로 네불라(nebula), 즉 아지랑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이글거리는 투명한 불꽃을 들여다보고 찾아내라는 것. 결국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이라는 품격 있는 은유를 건넨다.
   
   수강생들의 반응은 엇비슷하다. 라틴어라는 ‘언어’에 대한 배움보다 ‘삶’을 배웠다는 후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수업을 통해 삶에 대한 자세를 배웠다” “내 인생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무엇보다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연습했다”는 반응이다.
   
   
▲ 한동일 변호사가 쓴 ‘라틴어 수업’과 세네카의 인생사전. ‘나’에 집중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지혜를 전해주는 책들이다.

   욜로족 대신 세네카!
   
   ‘라틴어 수업’뿐 아니다. 고전적 잔소리를 찾아 읽는 2030세대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특히 로마시대 철학자이자 스토아학파 학자인 세네카의 철학에 매료된 이들이 많다. 30대 중반 직장인 이슬기씨는 ‘세네카의 행복론’을 책꽂이에 두고 수시로 읽고, 20대 후반 취업준비생 한소희씨는 ‘세네카의 인생사전’을 밑줄 쳐가면서 읽고 또 읽는다. 새 시대를 여는 인재양성소 건명원에서는 천병희 번역가가 낸 ‘세네카의 행복론’을 수시로 필사하게끔 한다.
   
   부자학자이면서 금욕주의를 주장한 철학자, 청교도적인 삶을 지향하고 자신 또한 청교도적인 삶을 실천한 철학자 세네카. 스토아학파였던 세네카는 쾌락주의를 내세운 에피쿠로스학파의 대척점에서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강조한다. 쾌락에 빠지지 않고 시간을 아껴 쓰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모호한 개념 대신 일상의 언어로 하나하나 짚어내는 그의 사상은 쉽고 구체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부딪히고 고뇌하는 감정의 실체와 지향점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현자의 시각을 제시한다. 화에 대하여, 행복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마음의 평정·짧은 인생·여가·신의·선행에 대해 본질을 파고든다. 인류 최초의 자기계발서라 할 만하다.
   
   2030세대는 왜 케케묵은 고전서인 세네카에 매료됐을까. 이슬기씨는 “30대 중반의 내가 처한 상황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 한 줄만 읽어도 마음이 편해지면서 불필요한 잡념이 사라지고 진짜 필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한소희씨는 “세네카를 읽으면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는다. ‘힘들어도 괜찮아’라며 위로해주는 섣부른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진다. 불안함이 가시면서 내가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했다. ‘내 자신에 집중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이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라는 고전적 잔소리에 빠진 2030세대의 조류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나’에게로의 집중은 불황기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저성장 기조로 돌아서버린 기회 박탈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한쪽에서는 ‘내일은 몰라요, 오늘을 즐기자’며 욜로족을 자처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며 물질적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정신적 귀족주의로 돌아서는 부류도 꽤 된다. 나답지 않은 일은 과감히 그만두고, 재미보다 의미를 찾는 젊은이들 또한 늘고 있다. 이들이 중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아무리 연봉이 높은 일이라도 나답게 사는 데 방해가 된다면, 가치와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과감히 퇴사하는 경우도 많다.
   
   고전문헌학에 정통한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21세기를 ‘자기 돌봄’의 시대로 정의한다. “과거에는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같은 거대담론에 집착했다면, 지금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사로운 담론에 열광하는 시대다. 세네카는 내면 수양의 훌륭한 안내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세네카 신봉자가 많다. 세네카는 허상을 두고 이야기하는 다른 철학자들과는 달리 친절하고 구체적이다. 심리학이자 ‘이성’이라는 종교에 대한 학문이기도 하다.”
   
   배 교수는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류 최초의 자기계발서를 쓴 사람들”이라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자기계발서 대부분은 스토아 철학의 일부를 가져다 쓴 것으로 봐도 좋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혼란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전학교’를 운영하는 인문학자 전병국씨는 “스토아학파가 낳은 내면의 수양서는 외부의 거대한 변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했다. “스토아학파는 알렉산드로스가 제국을 엄청나게 확장할 때 시작됐다. 당시 여러 민족이 섞이면서 변화가 많았고 혼란의 와중이었다. 지치게 하는 상황이 외부에서 펼쳐지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내적인 평화를 추구하게 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거대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청교도적인 사상이 환영받았다.”
   
   현재 상황 역시 비슷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조류가 밀려오면서 생존권이 달린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고, 인구문제와 환경문제 등 삶의 지축이 흔들리는 혼란의 와중에 있다. 이념·세대·성별 갈등도 첨예하다. 국내외적으로 마찬가지. 이런 불안의 시대에는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돌려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 전병국씨의 얘기다.
   
   
   삶의 지혜를 나눠줄 어른이 없다
   
   한편 ‘삶의 지혜를 나눠줄 어른이 없어서’라는 2030세대의 고백도 꽤 된다. 과거 대가족 시대에는 삶의 통과제의에 대해 보고 배울 만한 어른이 주변에 많았다. 삼촌이 연인과 이별해서 머리 싸매고 드러누워 있으면 ‘이별은 저렇게 힘든 것이구나’를 저절로 알게 되는 식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4인 핵가족도 과거 얘기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부모와 외동아이로 구성된 극핵가족이 점점 느는 현실에서는 보고 배울 만한 삶의 롤모델이 거의 없다.
   
   30대 초반 라일락씨는 “어른의 잔소리가 그리울 때 ‘라틴어 수업’을 펼쳐본다”고 했다. 그가 ‘라틴어 수업’에 매료된 이유를 들어보자. “신영복 선생님 글을 좋아한다. 한 학문의 대가가 자신이 쌓아온 학문 세계와 함께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따스함이 좋았다.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도 그렇다. 라틴어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샀는데,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부모의 훈계는 어떨까. 세대론의 관점에서 보면 현 시대의 부모의 훈계는 ‘약’보다 ‘독’이 될 확률이 높다. 고성장 시대가 낳은 압축사회의 부작용으로 현재 대한민국은 그 어느 시대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대가 한 시대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 부모 시각에서 자녀들을 위한 훈계가 대부분 ‘시대에 맞지 않는’ 잔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시골 외할머니가 대학원 가려는 손녀를 두고 딸을 향해 “계집아이가 무슨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냐”며 잔소리를 하고, 엄마는 딸에게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며 남자 하나만 잘 만나면 된다는 가부장적 시각이 여전한 것이 2018년 대한민국 현주소다.
   
   라씨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막막하고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고 싶은데 힌트를 얻을 곳이 없다. 대학 입시와 취업만 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삶이 궁핍해졌다. 취업 후에는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친구들과 이야기해 봐야 ‘너도 힘드니? 나도 힘들어’라는 반응만 돌아온다. ‘라틴어 수업’은 멘토 같은 어른이 삶의 지혜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식이어서 위안이 된다.”
   
   한국이 처한 교육현실 또한 ‘나’로 수렴하는 세네카 열풍을 부추겼다. 대학 입시와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앞으로 내달려온 아이들은 2030에 들어서 퇴행을 맞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정성 있는 고민을 그제서야 하는 것. 이런 고민은 진로와 학과를 선택하는 시기에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희망진로 역시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야’ ‘유망직종’ 선택을 암암리에 강요받는다. 세상을 알고 싶어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방황하느라 허송세월 보내면 그 화살을 고스란히 입시에서 아프게 되돌려받는 현실에서는 고민다운 고민을 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현실에 떠밀려 한국에서도 서구와 일본에서처럼 ‘I’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내면의 에너지에 집중하기 시작한 2030세대가 이끄는 다음 세상이 어떤 형국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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