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빚어나온 우즈기노의 메인 두부요리.
막 빚어나온 우즈기노의 메인 두부요리.

100세 장수시대다. 당연한 얘기지만 60대 정년 이후 인생이모작은 필수다. 3년 전 기자 출신의 한 일본인이 정년 후인 65세 때 두부 전문집을 열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것도 일본이 아니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두부집을 차려 현지명물이 됐다는 뉴스였다. 퇴직금을 전부 긁어모아 스페인 초유의 두부집을 열었다고 한다. 당시 필자가 관심 있게 읽은 것은 건강 관련 대목이었다. 두부집을 차린 후 스스로도 두부를 식생활의 기본으로 삼으면서 퇴직 때보다 몸무게가 20㎏이 빠지고 혈압과 당 수치, 간 기능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전직 기자는 “장사가 궤도에 오르면 젊은 사람에게 가게를 맡기고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에 나서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두부 전문집은 소바나 우동과 더불어 일본 노인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인생이모작의 터전이다. 직접 만든 두부를 먹고 팔면서 창의적인 요리를 제공하는 두부집이 꽤 있다. 소바나 우동이 그러하듯 두부 역시 순하고도 담백하다. 소화하기에도, 치아건강에도 좋은 건강식이다. 큰돈은 못 벌지만, 일찍 일어나서 반나절 일하다가 문을 닫으면 건강도 유지하고 건강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질 좋은 지하수 확보가 필수지만 그렇게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스스로도 즐기고, 주변 친구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심플 푸드가 두부다.

필자 역시 두부 전문집에 대해 관심이 많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유명한 두부집이 있다고 하면 빠지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중에서도 도쿄(東京) 기타센주(北千住) ‘우즈기노(宇豆基野)’는 필자가 첫손가락으로 꼽는 두부집이다. 도쿄 시민은 물론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국적 지명도를 자랑하는 두부집이다. 대부분의 일본 내 두부집은 두부공방을 겸한다. 공방에서 신선한 두부를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두부공방 바로 옆에 붙은 식당에서 두부요리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우즈기노는 조금 다르다. 싸고 신선한 두부를 만드는 곳이기는 하지만, 매일 두부요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두부요리점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열고 나머지 5일간은 공방으로만 운영된다. 평일 공방에서 생산된 두부는 도쿄 고급 요리점에 제공된다.

토요일과 일요일 두부요리점은 오전 오후 한 차례씩, 즉 일주일에 모두 4번만 문을 연다. 한 번에 받는 손님은 최대 23명까지다. 일본 TV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오이시(美味しい)’란 감탄사를 자주 들었을 듯하다. ‘맛있다’라는 의미다. 일본인에게 미식은 종교에 가깝다. 전국적 명성을 갖고 있는 데다 1주일에 92명만 받는다면 이 집의 예약 경쟁률이 어떤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3개월 전부터 전부 만석이다. 그러나 열심히 찾으면 항상 길은 있다. 당일날 전화를 걸어 ‘도타(ドタキャン)’을 노리는 것이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예약을 취소하는 것이 도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노쇼(No Show)’와 같지만, 일본인의 대부분은 도타에 앞서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한다. 항상 예약 만원인 식당이라고 해도 운이 좋으면 도타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최근 방문한 우즈기노 두부요리점도 그같은 변칙예약을 통해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통하는 두부 이미지 중 하나로 ‘서민적’이란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서도 가게에서 파는 두부 한 모는 아무리 비싸도 2000원 내외다. 싸다는 것이 두부 대중화의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일본인에게도 두부는 서민을 상징하는 음식 그 자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근대화 이전 역사서나 잡지의 캐릭터로 두부가 등장할 정도다. ‘두부소승(豆腐小僧)’으로 불리는 어린이 요괴가 대표적인 두부 캐릭터로, 18세기 중반 이후 등장해 지금까지 인기다.

두부요괴까지 있는 일본의 두부 사랑

에도시대 때부터 나타난 두부요괴.
에도시대 때부터 나타난 두부요괴.

일본 요괴는 사람을 죽이거나 피해를 주는 악(惡)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다. 골탕을 먹이는 정도가 대부분이고, 험악한 얼굴을 한다 해도 대상은 악당에 국한된다. 두부소승도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밀짚모자 차림에, 쟁반 위에 두부를 담은 채 비오는 날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것이 전부다. 두부 사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가끔 외눈박이로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피해를 주는 캐릭터가 아니다. 비교되는 것은 이탈리아의 파스타다. 이탈리아 서민의 대표적 음식이라고 하지만 ‘파스타 고스트’에 관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음식에 요괴나 귀신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나라는 아마 일본이 유일할 듯하다. 두부소승이란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두부가 그만큼 일상적 음식이었다는 방증이다. 불교가 번성했던 에도(江戶)시대 일본인들은 채식을 기본으로 했다. 고기문화에서 멀어지면서 이가 약해졌는데 두부는 약해진 치아에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지금도 채식을 즐기는 일본인이 한국에 들르면 가장 먼저 찾는 음식 중 하나가 순두부다.

흥미로운 것은 두부소승이 등장한 시대가 일본 두부역사의 황금기와 겹친다는 점이다. 무려 100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두부요리법 책자인 ‘두부백진(豆腐百珍)’이 1782년 출간됐기 때문이다. ‘두부백진’은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두부요리의 바이블로 통한다.

우즈기노에 도착한 것은 개장 15분 전인 토요일 아침 8시45분이었다. 도쿄 북동쪽 교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두부요리 하나 먹기 위해 전날부터 난리를 쳤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소울푸드를 즐기려면 정성을 들여야 한다. 두부요리점은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2층 건물로, 뒤에는 두부공방으로 연결돼 있다. 철로 바로 옆에 들어선, 두꺼운 목재간판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도쿄 시내 레스토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차분한 시타마치(下町) 요리점으로 느껴진다. 시타마치란 장식이나 과장이 없는 서민들의 의식주에 충실한 민낯의 동네를 의미한다. 도쿄를 대표하는 두부전문집이라고 하지만, 외관에서도 작은 거품 하나 찾기 어렵다.

너무 일찍 온 탓에 주변을 돌다가 오전 9시5분쯤 안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필자를 제외한 22명의 손님 모두가 이미 자리에 앉아 있다. 자리에 앉는 즉시 곧바로 음식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우즈기노의 주말 메뉴는 두부공방이 결정한다. 이른바 ‘오마카세(オマカセ)’ 코스다. 요리사가 임의로 결정해 자신 있는 요리만을 내놓는다. 우즈기노 오마카세의 가격은 세금 포함 3000엔. 두부를 변용한 8가지 요리가 나오는데 디저트도 따라붙는다. 서민의 음식이라고 하지만 코스요리치고는 가격이 너무 싸다.

도쿄 기타센주에 위치한 민가풍의 우즈기노 본점.
도쿄 기타센주에 위치한 민가풍의 우즈기노 본점.

두부판에 막 만들어진 유바는 원하는 만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두부판에 막 만들어진 유바는 원하는 만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8가지 코스요리의 변주

에피타이저로 두 가지 음식이 나왔다. 샴페인 잔에 담긴 배를 두부즙에 버무린 음료와 아침 일찍 막 만든 두부의 유막인 ‘유바(湯葉)’를 이용한 생선 채소 버무림 요리다. 유바 버무림 요리는 고급요리점에서나 접할 수 있는 깊은 맛이다. 유바 특유의 두꺼우면서도 부드럽고 신선한 식감이 인상 깊다. 두부즙의 경우, 샴페인 잔에 담겨 있어서인지 뭔가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두부즙은 우유 같은 느낌이 들지만, 배 특유의 도톨도톨한 맛을 통해 식욕을 부채질한다. 양념으로는 암반소금과 일본식 단간장, 발사믹 소스를 가미한 올리브오일 3종류가 제공됐다.

두 번째 음식은 생선과 참깨맛 두부가 버무려진 맑은 수프다. 주 요리에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이른바 ‘수이모노(吸い物)’다. 음식점의 수준은 수이모노 수프에서부터 판가름난다. 도쿄 명물 식당에 어울리는 담백한 맛이다.

세 번째 음식은 두 개의 꼬치요리. 농도를 진하게 해서 물기를 뺀 두부꼬치와, 밀가루로 만든 떡꼬치다. 둘 다 불에 살짝 익혀서 나왔다. 양념으로 두부꼬치에는 단맛의 노란 된장, 떡꼬치에는 약간 떫은맛의 검은 된장이 가미돼 있다. 두부를 꼬치로 만들어 불에 구워 먹는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콩을 주 성분으로 한 두부는, 수분의 정도나 요리방법, 첨가되는 다른 재료에 따라 수천의 얼굴을 가진 요리 소재로 변신한다.

“왜 한국에서는 감옥에서 출소한 사람이 두부부터 먹느냐?” 두부와 관련해 필자가 일본인으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일본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때문에 가진 의문인 듯하다. 원래 필자도 잘 몰랐지만, 여러 번 질문을 받다가 답을 찾아내야만 했다. 정답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콩밥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감옥에서 먹다가 질린 콩밥을 생각하면서 다시는 수감자로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에서 콩으로 만든 두부 시식이 일반화됐다는 그럴듯한 가설이다. 그같은 인터넷 답변을 하니까 한층 더 흥미로운 질문이 쇄도한다. “왜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콩밥이 질리느냐?” 같은 두부 문화권이지만, 콩에 대한 한·일 간의 감각은 다른 듯하다.

네 번째 요리는 모두 일어나 두부공방 바로 앞의 초대형 두부 제조기 앞에서 맛봤다. 두부 숙성 중 온도가 내려가면서 생기는 유막, 즉 유바를 그 자리에서 먹는다. 대략 20분 정도 기다리면 두부 겉에 적당한 두께의 유바가 드리워진다. 먹을 만큼 젓가락으로 가볍게 유바를 잘라서 먹는다.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이른바 ‘다베호다이(食べ放題)’다. 고소한 맛과 함께 씹을 때 느껴지는 탄력이 재미있다. 강한 소스보다 암반소금을 가볍게 쳐서 즐기는 것이 유바다.

다섯 번째 요리는 우즈기노의 간판음식이다. 상어지느러미 요리를 만들 때 쓰는 소스에 막 빚어진 두부가 버무려져 나왔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먹어본 부팔로(Buffalo) 모차렐라 치즈에 버금가는 신선함이 인상적이다. 이어 여섯 번째 요리로 샐러드가 등장했다. 식전 에피타이저가 아니라 주 요리다. 전부 8종류의 채소를 두부즙으로 만든 부드러운 소스에 버무렸다. 일곱 번째 요리는 굴과 밥, 그리고 일본식 된장국이다. 두부전문점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처럼 끝은 밥으로 장식된다. 마지막은 디저트로 단맛의 떡과 커피다. 떡 안에서조차 두부맛이 느껴진다.

우즈기노 오마카세를 먹는 데 총 1시간45분이 걸렸다. 8가지 코스라고 하지만 음식 접시가 16개나 된다. 소울푸드, 즉 혼이 담긴 음식은 몸 전체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간다. 그런 느낌이 안 든다면 스스로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실버시대를 염두에 둔 전문음식점 탐사였지만, 다양한 얼굴의 두부요리에 혼이 통째로 빼앗긴 너무도 유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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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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