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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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작가는 지난 15년 동안 전 세계의 천재 49명을 연구해 책을 썼다. 지난해, 30년간의 기자 생활을 은퇴한 그는 이제 ‘천재 연구가’로 불린다. 조 작가는 ‘빈이 사랑한 천재들’을 시작으로 프라하, 런던, 뉴욕 등 지금까지 총 9권의 ‘도시가 사랑한 천재’ 시리즈를 펴냈다. 그가 올해 5월 신작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을 출간했다. 그는 왜 천재에 꽂혔을까. 지난 6월 11일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처음 천재에 꽂히게 된 계기는 2005년 12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취재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면서였다.

“모차르트와의 벼락 같은 교감을 경험했다. 모차르트가 말년에 얼마나 궁핍하게 살았는지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교향곡 38~40번 곡은 모두 그 시절 만들어졌다. 모차르트 전문 가이드와 함께 최후의 교향곡을 쓴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눈발이 사선으로 흩날리고 있었는데, 그때 눈발 속에서 교향곡 40번이 들려왔다. 집 앞에 서니 마치 교향악단이 내 눈앞에서 교향곡 40번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는데, 소름 돋는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 작가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15년간 49명의 천재 연구

취재차 갔던 빈에서 조 작가는 인생을 바꾸는 경험을 한 셈이다. 그가 말한 ‘전율’은 곧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때 중요한 자각을 했다. 공간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스토리를 알고 특정 공간에 가면 그 스토리의 주인공과 교감을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도 시간을 잡아둘 수는 없다. 시간과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그런데 공간에는 그 기억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선진국은, 다른 말로 하면 공간에 저장된 스토리를 중시하는 나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된 집을 어지간해서는 허물지 않고 사용한다. 도시 공간, 즉 골목과 카페에 저장되어 있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신작 ‘도쿄가 사랑한 천재들’에서 조 작가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구로사와 아키라, 미야자키 하야오, 자동차 왕 도요다 기이치로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천재 5명에 대해 썼다. 이들이 태어난 곳부터 젊은 시절을 보낸 대학 동아리방까지 직접 발품을 팔며 취재해 어떤 환경에서 자라 어떻게 천재가 되었는지 연구했다고 한다.

“천재를 배출한 도시들의 공통점은 중앙집권적인 국제도시들이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에 몰려 있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육로 이동을 통해 사람이 교류하고, 그에 따라 종교와 사상과 문화가 뒤섞인다. 그런 공간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은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천재로 꽃을 피웠다. 그런데 섬나라 일본은 근본적으로 육로이동이 불가능했다. 도쿄는 중앙집권적인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랐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 많은 천재를 배출했는가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했다.”

그는 이번 ‘도쿄 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두고 ‘지금껏 만나본 가장 특별한 천재’라고 썼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조 작가는 도쿄에서 하야오 취재를 하며 모차르트와는 또 다른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하야오는 가쿠슈인대학 출신이다. 그는 가쿠슈인대학 시절 애니메이터가 되려고 동아리 아동문화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가쿠슈인대학을 찾아가면서 솔직히 이 동아리방이 그대로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하야오가 다녔던 그 시절과 똑같은 크기 그대로 있었다. 우연히 하야오의 까마득한 후배를 만나 그 방에 들어가 보았다. 그때의 그 떨림은 잊을 수가 없다.”

조 작가는 일본의 천재들을 취재하며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할 점을 봤다. 좋은 것을 그대로 배운 다음 더 좋게 발전시킨다는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 정신이다.

“강자나 승자의 장점은 배워야 한다. 그래야 발전한다. 일본은 이게 철저하다. (싸움에서 상대에게) 지고도 졌다고 인정 안 하고 정신승리 운운하면 퇴보한다.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처음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다섯 명의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1950년에 베네치아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그 아키라 감독이 바로 이이토코토리 정신의 전형이다. 미국 영화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배워 마침내 할리우드를 뛰어넘은 사람, 할리우드를 부끄럽게 만든 사람, 그가 아키라 감독이다.”

“빌 게이츠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컴퓨터 수리공이 됐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듯, 한국은 개인의 천재성을 제대로 발현시켜주지 못하는 사회라는 지적이 많다. 조 작가는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획일주의를 강요하는 나라다. 백남준이 열여덟 살 때 한국을 떠나 일본과 독일을 거쳐 뉴욕에 가서 비디오아트라는 예술 장르를 꽃피웠다. 만일 백남준이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한번 생각해봐라. 천재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와 같다. 평등을 강조하는 나라에서 천재는 질식한다. 공산주의 도시와 이슬람 도시에서 천재가 태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전 세계 천재들을 취재해온 그가 생각하는 ‘천재가 태어나기 좋은 환경’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문명이 서로 부딪치고 충돌해 불꽃을 일으키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은 자극을 받으며 재능이 커져간다. 만일 어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사이판이나 괌에서 태어나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천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범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사람이다. 이것은 내가 강연에서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서울이 외형적으로 이제 조금씩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시리즈 10번째는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

그가 생각하는 천재는 한마디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특별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좋아하는 일에 얼마나 끊임없이 몰두했느냐가 천재와 범인(凡人)의 차이를 만든다고 봤다.

“많은 사람은 지금 자신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잡다한 일에 얽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그러면서 세월을 보낸다.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49명의 천재들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몰입과 집중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조 작가는 ‘천재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으로 ‘서울이 사랑한 천재들’을 계획하고 있다. 2020년 하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조성관의 라이프 워크’ 천재 시리즈는 일단락을 짓게 된다. 아직 인물 선정은 하지 않았다. 자문그룹과 만나 누가 들어가야 할지를 논의해 결정할 것이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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