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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86호]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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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모나리자보다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의 대화

▲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미국과 유럽에 걸쳐 올해 최대 문화 이벤트가 끝나가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후 500주기 기념 특별전시회다. 나라별 도시별로 특별전이 열렸지만, 하이라이트는 역시 파리 루브르박물관이다. 루브르 내 다빈치 작품과, 영국 왕실에서 날아온 24점의 데생, 베네치아의 인체비례도(Vitruvian Man)를 포함해 전부 162점이 전시됐다. 전 세계 다빈치 팬들이 몰려든 것은 물론이다.
   
   루브르 특별전은 까다롭다. 간다고 해서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리 예약한 사람에게만 관람이 허용된다. 하루 입장 가능 정원은 7000명이다. 특별전 티켓 판매가 시작된 순간 완판이다. 루브르의 다빈치 특별전에 갔다온 사람이 있다면 발빠른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다빈치 작품 가운데 최고로 치는 것은 ‘모나리자’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나리자는 이번 특별전에서 빠졌다. 원래 있던 1층 6호룸 갤러리에 그대로 둔 채 다빈치 팬을 맞았다. 6호룸 갤러리는 1시간에 2000명, 1분에 33명이 몰리는 파리의 동대문시장이다. 대략 1인당 17초만 모나리자 관람이 허용된다. 대충 보고, 그림 주변에 서서 인증 사진 찍는 것이 모나리자 관람법이다.
   
   
   세상 최고의 초상화는?
   
   ‘파블로프의 개’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는?’이라고 묻는다면 곧바로 모나리자부터 떠올릴 듯하다. ‘왜 모나리자냐’고 되물으면 ‘신비한 미소’에 관한 얘기부터 꺼낼 것이다. 외면(外面)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세심하게 표현한 최초의 초상화란 설명이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모델이 된 모나리자의 배경에 관한 갖가지 설(?)도 펼쳐놓을 듯하다. 파란만장한 다빈치 인생에 관한 얘기는 기본이다. 모나리자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란 점은 필자도 인정한다. 21세기 가치관이지만, ‘유명세=가치’다. 유명하다는 말은 최고로 해석된다는 의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 모나리자=세계 최고 수준의 초상화’로 평가될 수 있다. 필자는 그 같은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다빈치와 다빈치 팬에게는 실례겠지만, 모나리자에는 부족한 뭔가가 있다.
   
   지금까지 모나리자와 직접 대면한 것은 전부 6번이다. 모나리자를 ‘독점’하기 위해 일부러 루브르가 문을 닫기 직전에 찾아갔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멀어진다. 가슴이 설레고 동경할 만한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의 가치는 화가의 인생이나 역사적 환경을 통해 한층 더 발전된다. 그러나 근본은 그림 그 자체에 있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선한 재료에 있다. 실물 모나리자가 옆에 있다고 해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거나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신비한 미소라고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의 마음을 읽으려는 운명 감정사같이 느껴진다.
   
   내면의 표현도 좋지만, ‘미(美)’야말로 초상화가 갖는 핵심 가치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초상화를 보는 순간 미에 대한 본능이 작동한다. 말이 필요 없다. 젊음·활기·희망·미래가 담긴, 육체적·물리적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초상화가 한층 더 끌린다. 집에 걸어둘 경우 집안 분위기가 밝아지고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다. 미 자체가 주관적이긴 하지만, 인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본능으로서의 심미안이 있다. 모나리자는 그 같은 관점에서 벗어난 초상화다. 모나리자를 보고 아름다운 여성이라 느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진(眞), 나아가 선(善)도 넘치지만 미가 약하다. 사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여성의 내면이나 ‘진선(眞善)’에 흥미를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와 무관한 초상화라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본능적으로 다시 쳐다보게 된다.
   
   그렇다면 미적 차원에서 본 세계 최고의 초상화는 누구의, 어떤 그림일까?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하 진주 소녀)는 답안 리스트 상위에 올라서 있을 듯하다. 최근 글로벌 미술계의 평가나 흐름을 보면, 거의 모나리자에 필적할 만한 초상화로 부상한 그림이다. 계기가 된 것은 2003년 제작된 동명(同名)의 영화다. 구미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곧바로 유럽 미술 애호가 사이에서나 통하던 진주 소녀의 가치가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진주 소녀 전시회가 모나리자 이상의 열기로 채워진다. 2012년 도쿄, 2013 미국 애틀랜타, 2014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열린 진주 소녀 특별전에 대한 열풍은 세계 미술계의 화제가 됐다. 21세기 들어 불과 20년 만에 모나리자의 경쟁 초상화로 뜬 것이다.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상설 전시되는 헤이그 마우리트하위스미술관.

   그녀는 쉽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쉬운 그림’이란 점은 진주 소녀가 한순간 글로벌 미술계의 주인공에 오를 수 있게 된 이유일 듯하다.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첫눈에 반하게 되는 명화다. 앞서 살펴봤듯이, 모나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사람은 드물다. 잔잔한 미소라는 식으로 표현되는 모나리자는 미술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해석에 근거한, 위에서 아래로 전해진 그림이다. 진주 소녀는 다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지만, 관람객 스스로가 보는 즉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쉬운 그림’이다. 첫눈에 반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연미복의 오페라와 청바지의 뮤지컬에 비유된다고나 할까? 아니, 모나리자가 미쉐린 스타급 프랑스 요리라면, 진주 소녀는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이탈리아 요리에 비견될 수 있다. 혀로 느끼는 미각이 그러하듯, 아름다움을 대하는 인간의 감성은 본능에 기초한 것이다. 나라·인종·배경에 관계없이 대하는 즉시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있다. 진주 소녀가 바로 옆에 있다면 말을 걸고 싶고 차도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하는 순간 마우리트하위스(Mauritshuis)미술관에 전화를 걸었다. 진주 소녀를 상설 전시하고 있는, 헤이그 간판 미술관이다. 진주 소녀가 헤이그에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글로벌 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좀 알려진 그림이라 치면 해외여행에 자주 나선다. 덕분에 이탈리아 산골에 파묻힌 라파엘로의 그림도 접할 수 있지만, 막상 상설 미술관까지 가서 보려 해도 해외여행 중인 경우가 허다하다. 글로벌 명화일수록 관람에 앞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헤이그 미술관 여직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알려줬다. “안심하세요. 그녀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날씨니까 기억에 남는 대화가 가능할 겁니다.” 진주 소녀가 마치 살아 있는 소녀인 것처럼 설명하는 여직원의 응답이 너무도 신선하게 와닿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마치 첫사랑 소녀가 그때 그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들렸다.
   
   헤이그는 조용한 도시다. 어디에 있는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한국인 모두의 기억 속에 새겨진 도시다. 따지고 보면 역사 교과서를 통해 지명만 기억할 뿐, 어떤 곳이고 어떤 배경을 가진 도시인지 모르는 곳이 많다. 얄타, 포츠담, 카이로는 대표적인 곳이다. 20세기 한국의 운명과 미래는 한국과 전혀 무관한, 외국 어딘가에서 결정됐다. 헤이그는 두 번째다. 24년 전인 1995년, 난생처음으로 유럽 여행에 나섰을 때 찾은 도시다. 부끄럽지만, 당시 3개월 여행 기간 동안의 최대 관심은 가능하면 많은 도시를 돌자는 데 있었을 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도시와 볼거리를 단기간에 보고 사진을 찍자는 것이 당시의 여행관이었다. 아마도 역사 교과서가 아니었다면 헤이그에 들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무식하고도 무지한 어제의 기억이지만, 진주 소녀에 대한 기억은 있다.
   
   
   상설 전시관 마우리트하위스
   
   그때나 지금이나 미술관 마우리트하위스는 헤이그의 얼굴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미술관에 들러 가장 유명하다는 진주 소녀와 만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어떤 느낌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갔다’ ‘봤다’만 있을 뿐, 머릿속에서 사라진 초상화가 진주 소녀다. 2014년 1월 뉴욕 프릭컬렉션(Frick Collection)에 진주 소녀가 왔다는 소식을 듣는 즉시 달려갔다. 미국에서 접한 특별전 가운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 봤다. 평일날 연거푸 두 번이나 갔지만, 가로 39㎝ 세로 44㎝ 크기의 작은 그림을 멀찌감치 떨어진 채 지켜봐야만 했다.
   
   헤이그 미술관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쯤이다. 조용한 시간에 맞춰 들어갔지만, 이미 복잡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관광 투어팀은 없다. 곧바로 2층 진주 소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필자는 어두운 미술관을 좋아한다. 번쩍거리는 불빛으로 채워진 미술관은 인간 ‘욕(欲)’의 현장처럼 느껴진다. 어떤 작품인가가 아니라 얼마짜리 작품인가에 맞춰진 ‘명품 컬렉션’으로 와닿는다. 마우리트하위스는 어둡다. 마치 겨울 구름에 뒤덮인 북구 날씨 같은 분위기다. 네덜란드 그림은 네덜란드 환경에 맞춰 보는 것이 좋다. 나폴리 그림은 밝은 태양 아래서 보는 것이 제격이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한 여직원의 말처럼, 진주 소녀는 누군가를 기다린 채 벽에 걸려 있었다. 보는 순간 빨려 들어간다. 명화일수록 아주 가까이 밀착해서 보고 듣고 맡으며 읽어나가야 한다. 작은 그림일수록 명화 속에 밴 화가의 숨결을 찾아내려는 듯,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야만 한다. 인류의 역사는 크고 높고 넓고 강한 것에 집착해왔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권력·돈·명예=큰 그림이다. 17세기 한순간 세계 강국으로 뜬 네덜란드는 다르다. 큰 것이 아닌, 작은 그림에 주목했다. 프로테스탄트의 청빈과 시민의식을 배경으로 한, 작지만 모두의 기억에 남을 작은 그림을 즐겼다. 큰 그림은 전쟁터에 나가는 시민군의 마지막 초상화 정도에 그쳤다. 진주 소녀를 비롯해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은 대부분 작다.
   
   
▲ 마우리트하위스에 전시 중인 요하네스 페이메이르의 또 다른 작품들과 미술관에서 파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도록.

   단순 소박한 네덜란드의 비너스
   
   ‘네덜란드의 비너스’. 진주 소녀를 보는 순간 터져나온 첫 느낌이다. 형이상학적 미소가 아닌, 형이하학적·본능적·원초적 직감에 기초한 반응이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만, 얼굴 모습이 아름다움의 전부는 아니다. 표정, 옷, 자세, 분위기를 전부 합친 결과물로서의 아름다움이다. 미의 개념은 각자의 세계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한 진주 소녀의 미의 핵심은 ‘단순함’ ‘소박함’에 있다. 전등, 찻잔, 전축, 레코드가 전부인 방에 앉아 있는 27세 스티브 잡스의 사진과 비슷하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찻잔, 전등, 스테레오 음향기기뿐이다.… 그런 것들이 현재 내가 가진 전부다.”
   
   진주 귀걸이 소녀라고 하지만, 첫눈에 봐도 진주를 가질 만한 나이나 배경이 아니란 느낌이 든다. 2003년 영화에서도 제기된 의문이지만, 당시 진주는 견문과 부의 상징이었다. 해양대국 네덜란드가 멀고 먼 이국땅에 가서 비싼 값에 들여온 ‘첨단문명’의 상징이었다. 평범한 모습의 10대 소녀가 비싼 진주를 갖고 있었다고 믿기는 어렵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단순 소박으로 표현된 ‘네덜란드 비너스’에 바치는 페르메이르의 상상 속 선물이었으리라 믿는다. 금값으로 통하던 아프가니스탄 블루 염료를 머리 위 터번에 칠한 것도 같은 배경에서 풀이할 수 있다.
   
   페르메이르는 결혼 후 잠시 평화로운 시간을 가졌을 뿐, 대부분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부모가 남긴 빚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부잣집 딸과 결혼하지만, 장모의 위세하에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까지 한다. 처갓집에 얹혀살면서 자식도 무려 15명이나 낳지만, 경제적으로는 항상 쪼들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을 통해 생업을 잇기도 어려웠다.
   
   페르메이르는 거북이 화가다. 한 작품을 그리는 데 몇 개월을 소비했다. 43년 평생을 통틀어 36개의 작품만을 남겼다. 진주 소녀 속에 드러난 세속적 차원의 가치는 가난한 화가 페르메이르가 바친 최대한의 찬미 찬사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과장하지 않았다. ‘보호 행운’은 진주가 갖는 영적 의미다. 어둡고 살벌한 세속적 가치로부터, 단순하지만 소박한 삶을 지키겠다는 페르메이르의 강한 염원이 진주를 통해, 아름다운 소녀를 통해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림, 음식, 패션 할 것 없이 인터넷으로만 보고 평가·분석하는 시대다. 오감은커녕 모니터를 통해 곧바로 입으로 발설하는 팝문화가 대세인 듯하다. 세계적 명화에는 갖가지 ‘코드’가 반드시 있다. 그림 자체의 코드만이 아닌, 큐레이터가 숨겨둔 전시관 내의 ‘코드’도 있다. 현장에 들러 명화 주변의 그림 환경을 종합적으로 읽고 보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진주 소녀 방에는 베네치아 무라노의 샹들리에가 걸려 있다. 진주 소녀의 정반대 편에는 ‘델프 풍경화(View of Delft)’가 걸려 있다. 1632년생 페르메이르가 28살 때 그린 그림이다. 페르메이르의 고향인 델프 항구의 모습이다. 페르메이르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흔적도 없는 무명의 화가였다. 32살 때의 작품인 진주 소녀가 알려지기 훨씬 이전에, 세상에 처음으로 페르메이르의 존재를 알린 첫 작품이 델프 풍경화다. 세상에 처음 알려진 계기가 고향 풍경화인 셈이다. 네덜란드 특유의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하늘과 우윳빛 구름이 인상 깊다.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A Things of Beauty is a joy forever.)” 27세로 세상을 뜬 영국 낭만주의 작가 존 키츠가 남긴 말이다. 어둡고 차갑고 살벌해질수록 미의 가치와 의미는 한층 더 깊어진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날씨니까 기억에 남는 대화가 가능할 겁니다.” 미술관 여직원이 남긴 말이 아직도 가슴속에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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