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 ⓒphoto 셔터스톡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 ⓒphoto 셔터스톡

2020년 1월의 로마. 일어나는 즉시 씻고 외출이다. 벌써 아침 7시15분. 거리에서 1.5유로짜리 카푸치노와 이탈리아 크루아상인 코르네토(Cornetto)로 아침식사를 끝낸 뒤 곧장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루가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다. 일출 시간은 7시37분. 아직 도시 전체가 어둠에 싸여 있지만, 숨어 있던 태양빛이 서서히 하늘로 퍼져나간다. 한국인에게 태양은 붉은색이다. 태양 자체, 태양빛 모두 붉은색이다. 창의성이 없다고 핀잔을 들었지만, 어릴 때 그림을 그릴 때 태양은 반드시 붉은색으로 칠했다. 이탈리아는 어떨까. 모두 노란색이라고 말한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반면 터키는 같은 지중해권 나라지만 태양빛이 오렌지색으로 통일돼 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은 태양이 검은색이라 말한다. 태양의 색상은 위도·경도상의 위치만이 아니라 사람의 눈과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가 보다. 로마의 아침에 접한 태양빛은 ‘진짜’ 노란색이다. 거리를 걷는데 로마 전체가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 색상으로 물들어간다.

필자에게 있어서 콜로세움은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서울의 남산타워 같은 존재다. 서울 시민에게 남산타워에 올라간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 막상 올라가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로마에 숱하게 왔지만 콜로세움도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쳤을 뿐 직접 들어가본 적이 없다. 한번도 올라간 적이 없는 파리의 에펠탑과 마찬가지다. 세계적 건축물은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이 좋다는 확신 때문일까. 하여튼 멀리서 보는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은 아예 내부 출입도 허용하지 않는다.

콜로세움에 들른 것은 내부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침 햇살에 번쩍이는 콜로세움과 그 주변을 보고 싶어서였다. 아침 시장, 새벽 항구에 들르듯 콜로세움의 아침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출 후 펼쳐지는 활기와 정기를 콜로세움을 통해 실감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머무는 호스텔에서 도보로 20분 거리라는 점도 가벼운 마음으로 향한 이유다.

시간에 쫓기고 셀카 인증에 바쁜 단기여행과 달리 수주일에 걸치는 장기여행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오전에 여행하는 아침형과 해가 넘어간 뒤를 즐기는 저녁형이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젊을 때는 저녁형, 나이가 들면 아침형으로 변하는 듯하다. 이성에 대한 관심도 높고 ‘몸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에 접하려는 욕구가 강한 2030세대와 달리 장년의 여행은 몸보다 ‘머리’에 있다.

50대인 필자도 아침형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시차로 인해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차를 즐기면서 새벽 5시 기상해 하루를 시작한다. 유럽은 7시 이후면 이미 도심 곳곳에 아침 시장이 펼쳐져 있다. 둘러보고 현지인과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성한 일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 나라, 가난한 도시 차이 없이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덕분에 식욕도 넘친다. 아침식사는 아예 2~3군데 노천식당을 옮겨가며 조금씩 즐긴다. 호텔보다 거리의 아침식사가 한층 더 맛있고 싸다. 인류는 원래 아침형 동물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긴긴 저녁시간 추위와 배고픔에 고생하다 태양의 온기와 함께 활동에 들어가는 것이 본래의 DNA일 듯하다. 아침에 뇌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침시간에는 펼쳐진 세상을 능동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

콜로세움 근처에서 개 9마리를 산책시키고 있는 알바 청년. ⓒphoto 유민호
콜로세움 근처에서 개 9마리를 산책시키고 있는 알바 청년. ⓒphoto 유민호

콜로세움의 개 산보 알바생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은 하루 종일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한번 보려면 엄청난 줄을 감수해야만 한다. 장사진을 피하려는 듯 이른 아침인데도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멀리 콜로세움 윤곽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거리에서 희한한 광경 하나를 포착했다. 전부 9마리나 되는 개(犬)군단이다. 개를 몰고 아침 산보에 나선 20대 청년이다. 희한하게 본 이유는 개 9마리 모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한눈도 팔지 않은 채 청년을 레이저 쏘듯 응시했기 때문이다. 9마리 개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이 주변을 압도한다. 개들 옆으로 다가가 휘파람을 불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무슨 특별한 방법으로 개를 훈련시키는지 청년에게 물어봤다. “보통,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먹이와 적당한 무력(武力)이 답이다. 말을 잘 들으면 먹이를 주고, 짖거나 사납게 달려들 경우 발이나 팔로 치면서 통제한다. 여기 두 마리 큰 개는 늑대 피를 가진 사나운 동물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짖고 서로 물어뜯으면서 엄청 싸웠다. 내가 무력으로 통제했다.”

이 청년은 5년째 개 산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수입은 한 마리에 시간당 10유로. 9마리 개의 주인이 전부 다르다고 한다. “개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다른 개는 관심이 없다. 집에서 내가 기르는 개만 좋아한다. 다른 개들은 내게 일감을 주는 동물일 뿐이다. 힘으로 제압해야 할 때도 많기 때문에 집에서 기르는 개한테까지 나쁜 영향을 줄까 걱정이다. 한 해만 일하고 그만둘 생각이다.”

총총히 사라지는 개와 청년의 그림자가 아침 태양에 길게 늘어진다.

셀카봉 파는 방글라데시인

아침 8시30분. 어둠이 사라지고 노란 태양빛이 로마 전체에 번쩍거린다. 콜로세움이 한눈에 들어오는 북쪽 언덕에 올랐다. 각도를 잘 잡을 경우 콜로세움 전체를 잡아낼 수 있는, 셀카 인증 장소로 유명하다. 30m 정도의 높이에서 콜로세움 주변에 길게 줄을 선 관광객들을 조망할 수 있다. 필자를 보자마자 21세기 ‘검투사’들 2~3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검투사란 셀카봉을 파는 거리의 행상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필자의 눈에는 콜로세움 역사의 주인공인 로마 검투사로 보인다. 칼에 의지해 생존해온 검투사들처럼 이들은 셀카봉에 의존하는 비장한 서바이벌 현장의 주인공들이다. 로마시대 노예 검투사의 배경이 그러했듯이 셀카봉의 주역들은 이탈리아인이 아닌 이민자들이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30대로 보이는 ‘검투사’로부터 셀카봉을 산 뒤 말을 붙였다. “방글라데시에서 13년 전에 이탈리아로 왔다. 10년간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3년 전부터 주로 셀카봉을 팔고 있다. 당신이 도와줘서 오늘은 운이 일찍부터 온 듯하다.”

이탈리아 거리를 떠도는 검은 얼굴의 아시아인 대부분은 방글라데시인이다. 인도인·파키스탄인도 있지만 방글라데시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다. 어떻게 해서 가톨릭 국가에 올 수 있었을까. 16세기 포르투갈 예수회(Jesuit)의 해외 포교가 원인이다. 벵골 지역에서의 포교활동 중 순교자가 이어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11월 방글라데시의 포교사를 되새기며 수도 다카를 전격 방문한다. 이탈리아로 향하는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은 그후 수직으로 상승한다. 2017년 기준으로 10만명 정도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됐는데 불법 이민자를 포함할 경우 2020년 현재 30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얘기도 있다.

생활은 어떻게 할까. “하루 10시간 거리를 오가며 많으면 10개, 적으면 2개 정도 셀카봉을 판다. 동생과 함께 살면서 둘이 합쳐 한 달에 1000유로를 집에 보낸다. 부모를 포함해 가족 8명이 1000유로로 살아간다.”

로마 검투사 개개인이 그러하듯 셀카봉에 모든 것을 건 이민자의 얘기 역시 슬프고 감동적이다. 불안한 내일과 하루살이로 점철된 인생일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누구보다도 천국행이 보장된 아름다운 삶일지 모른다.

방글라데시인과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가죽점퍼를 입은 30대 중반의 흑인이 다가왔다. 서툰 영어로 선물이라면서 뭔가를 던져주는데 작은 코끼리 모양이 새겨진 수제 팔찌다. 세네갈 출신으로 5년 전에 이탈리아에 왔다고 한다. 세네갈은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나라다. 이탈리아어, 영어 모두 서툴다. 그러나 무얼 말하려는지 눈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삶에 대한 절박함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다. 웃고 있지만 마음은 결코 웃을 수가 없는가 보다. 선물이라고 준 팔찌는 사실상 ‘미끼’라 보면 된다. 말을 건 뒤 친교를 쌓으면서 가격을 상대에게 맡기는 식이다. 좋게 말하면 ‘관용’, 나쁘게 말하자면 ‘동정’에 기대는 장사다. 자본주의에 닳고 닳은 한국인이라면 단번에 알아챌 뻔한 수다. 담뱃불을 빌려달라면서 말을 붙인 뒤 카펫 가게로 데려가는 중동식 ‘상술’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비난할 수 없다. 한눈에 알아채더라도, 이해하면서 응해주는 것이 로마에서 쌓은 삶의 지혜다.

콜로세움 인근을 청소 중인 자원봉사자들. ‘로마를 재탈환하라’가 봉사자들의 구호다. ⓒphoto 유민호
콜로세움 인근을 청소 중인 자원봉사자들. ‘로마를 재탈환하라’가 봉사자들의 구호다. ⓒphoto 유민호

‘로마 재탈환’ 청소 봉사자들의 구호

그러나 관용이든 동정이든 세네갈 흑인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생존 유무만이 궁극적인 목적이자 가치다. 각본에 있는 얘기겠지만, 세네갈 부인이 자식을 낳아 산후조리에 들어갔다는 말도 들려준다. 상아 팔찌를 되돌려주면서 5유로 지폐도 함께 전했다. ‘겨우 5유로?’라는 불만이 역력하다.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기대하지도 않고 할 필요도 없다. 또 다른 관광객을 찾아 미끼를 던지기에도 바쁜 인생이다. 100번 던져 서너 번 걸려들면 그걸로 하루가 해결된다. 법이나 예의는 생존 이후의 문제일 뿐이다. 사흘, 아니 하루만 굶어도 장발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인생이다. 예수가 말했던가.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아침 9시30분이다. 콜로세움 그림자가 언덕의 절반을 덮고 있다. 영상 5도의 태양인데도 피부가 따갑게 느껴진다. 태양빛의 위력은 온도와 무관하다. 잠시 잊어버렸지만 겨울 로마라도 모자나 양산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콜로세움 전부를 볼 수 있는 언덕 끝부분은 셀카 인증 군단으로 인산인해다. 아까부터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언덕 곳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교통정리원이나 안내원 정도로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모두 ‘Retake Rome’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 ‘로마를 재탈환하라!’라는 의미다. 명찰만 보면 반정부나 무정부주의자로 보인다. 뭘하는 사람들인지 물어봤다. “우리는 로마 자원봉사 청소꾼이다. 로마를 깨끗이 청소하고 유지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스트리트아트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지저분한 벽화와, 여기저기 붙은 작은 스티커도 제거한다. 벽화의 경우 특수 화학제를 통해 깨끗이 제거할 수 있지만 시 당국의 허락을 얻고 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청소를 막 끝낸 뒤라 비닐봉지가 꽉 차 있다. 안에 보니까 식용 봄나물처럼 보이는 잡초가 가득하다. 아침 8시부터 콜로세움 주변 잡초들을 전부 제거했다고 한다. “전부 94개 단체로 구성된, 글로벌 연합 조직이다.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로마는 후손에게 깨끗이 물려줘야 할 인류의 영원한 유산이다.”

영어가 유창한 한 여성 멤버는 “중국인들의 작업 현장”이라면서 콜로세움 건널목 주변을 가리켰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4명이 예리한 칼을 이용해 스티커를 열심히 제거하고 있다. ‘로마 재탈환’ 단체의 활동내역과 더불어, 중국인이 왜 로마까지 와서 스티커 제거에 나서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이탈리아 거주 중국인 학생을 통해 알았지만 스펙 쌓기가 가장 큰 이유로 추정된다. ‘로마 글로벌 환경운동 참가’라는 스펙이다. 웃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엉터리로 부풀려 조작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상황을 감안해보면 가까운 시일 내 로마 청소에 몰려드는 중국 대학생들과의 스펙 경쟁이 한층 뜨거워질 듯하다.

언덕에서 내려와 다시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도중에 안경 좌판이 펼쳐져 있다. 전부 유명 브랜드 이름을 달고 있지만 평균 5유로 정도의 저가 제품이다. 한눈에 봐도 부실한 물건이지만 당장 필요한 사람에게는 유용할 듯하다. 흑인 판매상에게 말을 걸었다. “안경 장사의 승패는 얼마나 빨리 좌판을 접고 펼지 여부에 달려 있다. 경찰이 올 경우 빨리 접어서 피해야 한다. 사라지면 재빨리 다시 펴고 손님을 상대해야 한다.”

콜로세움 내부 ⓒphoto 셔터스톡
콜로세움 내부 ⓒphoto 셔터스톡

로마에 몰려든 나이지리아 난민들

나이지리아에서 온 로마 8년 차 흑인이다. 영어가 유창하다. 한국 경제 사정이 어떤지, 영어강사로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지 물어온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지만 영어는 자신있다고 말한다. “안경 하나에 1유로 정도 가격으로 들여온다. 5유로에서 10유로 정도 가격으로 팔지만, 하루에 많아야 10개 정도 판다. 방세, 음식비 지출하면 남는 것이 없다. 집에 보내줄 돈도 없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운데 나이지리아는 수위를 차지한다. 2014년 기준으로 합법 이민자만도 7만여명이다. 불법을 포함할 경우 지금은 전보다 5배로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비아 같은 북부 아프리카를 통한 불법입국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된 불법이민 행렬이다. 간간이 전해지는 이탈리아행 불법이민용 선박 침몰 뉴스메이커가 바로 나이지리아인들이다. 2015년 한 해에만 무려 2000명의 불법이민자가 바다에 빠져 숨졌다.

“오카카(Okaka)를 아느냐? 1980년대 말 이탈리아 프로축구의 영웅이다. 이탈리아 프로축구의 흑인 유명 선수 대부분은 나이지리아 출신이다.” 방글라데시인과 달리, 나이지리아인은 이미 이탈리아 이민 2세대 반열에 들어선 상태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다른 이탈리아인과 똑같은 위치에서 일하는 2세대들도 많다. 축구선수 오카카도 이탈리아 출생 나이지리아인이다. 2020년 이탈리아 정국의 주인공인 우익 정당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은 반(反)난민법으로 표를 모은 정당이다. 서부유럽에 밀려든 이민자들의 숫자는 2015년 정점을 찍었는데 그 한 해에 무려 100만명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후 계속 줄면서 지난해에는 12만명 수준에 머물렀다. 물론 대부분 불법이민자들이다. 이민자가 줄면서 오성운동의 반난민법 정서도 약화되는 추세다. 노동인력과 노령층 간호를 위한 외국인 수입이 필요해지면서 거꾸로 이민 장려 분위기도 등장했다.

클레멘티아의 도시가 주는 낙관

콜로세움 언덕에서 본 로마는 카오스 글로벌의 압축판이다. 개 산보 알바생과 함께 스펙을 쌓으려는 중국 학생들의 환경보호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몰려온 21세기 검투사로 유럽 전체가 터져나간다. 개 산보 비용 정도로 생활하는 것이 21세기 검투사들의 현실이다. 이들의 생존 투쟁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다. 콜로세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할 인류의 모순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로마는 모든 것을 품고 함께 나아가는 도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에서 시작된 클레멘티아(Clementia), 즉 관용은 로마의 원칙이자 21세기 이탈리아의 가치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결국은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는 장밋빛 확신을 주는 곳이 콜로세움이다. 모두 조금씩 양보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일 듯한데 결국 남의 품격을 존중하는 것이 나의 품격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오른 태양이 콜로세움 전체를 고흐의 해바라기 색상으로 바꾸고 있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