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월은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육지 속 작은 섬 ‘청령포’, 유배지에서 목숨을 잃은 단종의 무덤인 ‘장릉’이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은 서울·경기 지역에 조성되어 있지만 유배지에서 목숨을 잃은 단종의 무덤만이 강원도에 있다. 역사의 흔적뿐만 아니라 해발 799.8m 봉래산 정상에는 하늘의 별과 영월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별마로천문대’가 있다. 영월은 동강이 흐르는 빼어난 자연환경 덕분에 사계절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겨울 영월은 미식 천국이다. 강원도의 맛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것이 특징. 곤드레나물, 메밀, 다슬기 등 지역 특산물을 가공하는 것도 특징이다. 대표적인 신토불이 음식이 나오는 곳이다. 또 영월의 유명 음식점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곳이 많다. 오랜 기간 맛을 숙성하고 발전시켜야 이곳의 명물 식당이 될 수 있다. 영월로 겨울 미식 기행을 떠나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들을 소개한다.

오징어구이 ‘사랑방식당’

배에서 얼린 신선한 오징어가 식탁에

강원 영월에서 ‘오징어’?

오징어라면 바닷가에서 먹어야 제맛일 것 같다. 3대째 내려오는 맛집이라는 ‘사랑방식당’을 찾아가면서 바닷가도 아닌데 오징어구이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했다.

흔히 오징어 하면 속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내륙지방에서 오징어를 주력으로 판매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특이함을 맛으로 극복한 곳이 ‘사랑방식당’이다. 기대 반 궁금증 반을 품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도착한 ‘사랑방식당’은 전원주택같이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었다. 오후 2시를 넘어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가족 단위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오징어구이를 먹고 있었다.

가게에서 주문을 받고 있던 정경균(38)씨는 창업자 강순옥(88) 대표의 손자였다. 아직도 주방에는 강 할머니와 정씨의 어머니가 함께 일하고 있었다. 1982년 가게 문을 연 후 현재 3대가 함께 가게를 운영 중이다.

처음 가게 문을 연 것은 할머니의 음식 솜씨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오징어구이를 팔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요리를 두루 파는 보통 식당이었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가 오징어 전문점으로 변신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영월군청 직원이 식당을 찾아 ‘오징어 두루치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오징어를 너무나 좋아하는 직원이었는데, 음식을 먹어보고 ‘너무 맛있었다’며 영월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 식당에서 내놓는 오징어 요리의 정식 명칭은 ‘오징어구이’다. 여기에도 역사가 있다. 원래는 ‘오징어 통구이’를 팔았다. 통으로 가져다가 구웠는데 조리할 때 뻥뻥 터지는 등 불편해하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오징어를 썰어서 내오면 식탁에 놓인 불판에 손님들이 직접 볶아서 먹는다. 그래서 ‘구이’가 되었다.

오징어는 신선도가 승부다. 옛날에는 교통이 지금보다 불편했지만 가게 주인은 오징어 요리의 승부가 신선도에서 갈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선한 오징어를 구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오징어는 배에서 직접 얼리는 ‘선동’과 육지에서 얼리는 ‘육동’으로 나뉜다. 배에서 직접 얼리는 선동이 더욱 신선한 것은 당연하다. 가게 주인이 “우리는 선동 오징어만 쓴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신선한 재료와 함께 철판에서 직접 구워 조리하는 방식도 이곳 맛의 비결이다. 보통 오징어볶음은 국물이 배어나오고 이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다. 하지만 이곳의 ‘오징어구이’는 국물이 없다. 지속적인 열이 야채의 단맛을 오징어에 스며들게 할 뿐이다. 식당에서는 천천히 볶아서 먹으라고 권했다.

이 식당에서는 소소한 식재료 역시 직접 만든다. 직접 짠 들기름, 자체 건조기를 통해 말려서 사용하는 고춧가루 등이 그것이다. 이곳에는 특이한 음식이 하나 더 있다. 주력이 아님에도 보리밥정식을 팔고 있다. 굳이 보리밥을 파는 이유가 궁금해 물어보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할머니가 일부러 만들어놓은 메뉴”라는 답변을 받았다. 원래 5000원에 팔았는데 지금은 7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단지 싸기 때문이 아니라 건강 때문에라도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영월군 영월읍 절무리골길 12 (033)374-4655

영월 한우 ‘영월동강한우’

일교차 커서 육질 구수하고 담백

100% 인증된 영월 한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영월동강한우’다. 2009년 5월 영월 청령포 바로 앞에 문을 열었고 2011년 6월 영월읍 세무서 옆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이 식당은 영월에서 10두 이상의 소를 키우는 축산인들이 힘을 합쳐서 영월한우영농조합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 식당 엄복섭(63) 대표이사는 “한우 농가가 출하, 도축, 가공, 판매까지 나서면서 가격은 낮아지고 품질은 좋아졌다”고 자랑한다.

이곳은 싼 가격에 한우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에서까지 원정을 올 정도가 되었다. 200g 기준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1층은 정육점 형식으로 자리비(중학생 이상 4000원)를 내고 원하는 부위를 직접 사다가 구워 먹으면 된다. 2층은 보통 식당처럼 주문을 받는다. 부위별로 가격이 다양한데, 꽃등심은 200g에 3만5000원, 안창살은 200g에 4만원이다.

영월동강한우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단지 가격이 저렴해서가 아니다. 엄 대표이사는 영월 한우 맛의 비결에 대해 “영월은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고기 맛이 구수하고 담백하다”고 자랑했다.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7번지 (033)372-1550

닭강정 ‘일미닭강정’

단맛, 짠맛, 매운맛의 균형

속초 만석닭강정이 인기를 끈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과거 탄광산업이 활황일 때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요리 비법이 혼합되어 지금의 닭강정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현재 영월에도 ‘닭강정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닭강정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 관광객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메뉴이기 때문에 닭강정이 인기라고 한다.

그중 서부시장에 위치한 ‘일미닭강정’은 최고 인기를 누리는 곳이다. 이 집은 생닭 장사를 하던 사장의 어머니가 이른바 시장에서 파는 통닭을 내놓으면서 조금씩 닭강정 맛을 완성해 나갔다고 한다. 심성보(38) 사장은 “닭강정은 맛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며 “단맛, 짠맛, 매운맛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는 소스가 승부처”라고 말한다.

심 사장에 따르면, 소스 맛은 시장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전통시장에는 맛의 고수들이 즐비했다. 고깃집에서는 냄새 잡는 법을 전수받고, 야채집에서는 양파 양념을 쓰는 법을 배우는 등 ‘언니’ ‘동생’ 하던 시장 상인들의 다양한 조언을 한곳에 담아서 지금의 닭강정 맛이 나왔다. 일반적인 치킨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 푸석푸석해져서 맛이 없는데 닭강정은 바삭한 느낌이 오래 유지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포장으로도 많이 사간다. 이것도 닭강정 가게가 늘어나는 이유라고 한다.

영월군 영월읍 서부시장길 15 (033)374-0151

메밀전병 ‘서부시장’

영월 관광의 필수 코스

영월 전통시장의 중심 ‘서부시장’을 찾으면 꼭 먹어봐야 하는 것이 메밀전병이다. 서부시장에는 메밀전병과 메밀부치기를 판매하는 가게가 여럿 모여 있다.

메밀전병은 얇게 부친 메밀피에 송송 썰어 양념을 넣은 김칫소를 넣고 말아 지져낸 음식이다. 메밀부치기는 배춧잎을 넣어 부친 메밀전을 말한다. 작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 봉평은 영월과 멀지 않은데 실제 메밀은 영월과 봉평 지역민들에게는 이전부터 친숙한 식재료였다.

서부시장 한가운데 있는 ‘정선집’에 들러서 메밀전병과 메밀부치기를 시켰다. 전을 부치고 있던 최영자(66)씨는 “강원도 여러 곳에서 메밀전병을 팔지만, 이곳이 가장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며 “전국에서 택배로 메밀전병 주문이 들어온다”고 자랑했다. 관광객들이 영월을 찾을 때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을 하나 고른다면 메밀전병이라는 것이 이 지역민들의 말이기도 하다. 맛도 맛이지만 시장에서 옹기종기 앉아 어머니가 직접 부쳐주는 전을 먹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메밀전병과 함께 서부시장에서는 ‘올챙이국수’도 유명하다. 올챙이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양이 올챙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인 애칭이다. 옥수수전분으로 죽을 쒀 구멍이 숭숭 뚫린 체를 통해 찬물에 뚝뚝 떨어뜨린 것이 ‘올챙이국수’다. 다시마 등을 넣어 우려낸 차가운 육수에 말아 다진 김치와 김가루, 깨를 올려준다. 메밀전병과 궁합이 잘 맞는다.

영월군 영월읍 서부시장길 13-1

다슬기해장국 ‘성호식당’

개운한 육수로 속풀이

영월역 바로 앞 ‘성호식당’은 다슬기해장국으로 지역에서 유명하다. 전날 마신 술로 힘들다면 다음 날 아침에 반드시 찾아가야 하는 곳이다. 아침 6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원래 다슬기는 영월 지역민들에게는 익숙한 음식이었다. 동강 등 강이 많기에 쉽게 구할 수 있어 진작부터 채취해서 먹었다. 원래는 된장국에 넣어 먹는 용도였다. 그러다 된장국이 해장국이 된 것은 “다슬기가 간에 좋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간에 좋으면 눈에도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기에는 맛이 담백하고 쉽게 목으로 넘어갔다. 다슬기는 잘못 조리하면 좋지 않은 맛이 날 수 있는데 개운한 육수 맛이 나도록 손질이 잘 되어 있었다. 이곳은 황성숙(49)씨가 2대에 걸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어머니에게서 요리를 배웠다는데 역시 맛의 비법은 가장 좋은 다슬기를 구해서 손질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슬기를 까는 것도 힘들지만 씻는 것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재료를 조달하는 데 한계가 있어 평일에는 오후 3시30분, 주말에는 오후 1~2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월요일은 휴무다. 다슬기해장국뿐 아니라 다슬기비빔밥, 다슬기무침, 다슬기전 등 다양한 다슬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영월군 영월읍 영월로 2101 (033)374-3215

곤드레밥 ‘박가네’

아삭한 더덕구이와 찰떡궁합

강원도에서 어려웠던 시절 곤드레나물은 한 끼를 때우는 데 요긴한 나물이었다. 강원도 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나물로 보리쌀과 함께 죽으로 끓여서 먹곤 했다.

요즈음은 곤드레나물의 약용 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어 산에서 일하는 심마니들이 넘어지고 다쳐서 상처가 나면 즙을 내 상처 부위에 바르는 것이 곤드레나물이다. 위염, 위궤양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곤드레밥 전문점 ‘박가네’ 박금순(50)씨는 곤드레나물로 위궤양 치료 효과를 체험하고 생나물 전문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능이버섯, 옻 등을 넣은 토종닭백숙과 오리백숙을 비롯한 향토 음식을 곤드레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곤드레밥과 특히 궁합이 맞는 것은 더덕구이다. 아삭한 더덕구이의 맛이 곤드레나물과 잘 맞는다.

곤드레밥정식은 2인 이상 주문을 해야 하는데, 주 요리인 더덕구이와 된장찌개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나물로 구성된 열두 가지 반찬이 한 상으로 나온다. 이 많은 음식을 다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이 들 정도다.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149 (033)375-6900

칡국수 ‘강원토속식당’

쫀득쫀득 국수에 건강이 듬뿍

칡국수는 왠지 낯설다. 영월 명소 중 한곳인 고씨동굴 맞은편에는 칡국수를 파는 곳이 여럿 있다. 밀가루에 칡 전분을 뿌려서 만드는 음식인데, 국수 가락이 쫀득쫀득한 것이 특징이다. 보통 칡으로 만든 면이라면 칡냉면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은 따뜻한 국수 형태다. 이곳에서 칡국수로 유명한 곳이 ‘강원토속식당’이다. 칡국수뿐 아니라 칡비빔국수, 칡콩물국수 등도 먹을 수 있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고경식(47)씨는 1986년 어머니가 첫 개발한 칡국수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동굴이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관광지가 되자 어머니가 처음에는 매운탕집을 근처에 열었다고 한다. 그 후 일반국수를 팔다가 콩가루국수를 시작했고 이후 칡국수로 발전했다.

칡가루는 칡뿌리로 만드는데 칡 자체가 소화가 잘되는 것으로 유명해 칡국수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직접 먹어보니 칡 특유의 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그냥 칼국수와 비슷한 맛이어서 칡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즐길 수 있다. 국물은 약간 걸쭉한 느낌인데, 보통 밀가루국수보다 푹 삶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월군 김삿갓면 영월동로 1121-16 (033)372-9014

키워드

#맛기행
이정현 기자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