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photo 셔터스톡

처음 샀던 레코드나 CD의 가수, 어머니의 중간 이름, 가장 사랑했던 개의 종류…. 미국 은행이나 보험회사의 개인 확인용 질문들이다. 가끔 황당한 질문도 있다. ‘처음 키스한 상대방의 이름, 가장 싫어하는 동물, 처음으로 함께 여행한 이성’.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혹시 주변이 알면 눈치가 보일 질문도 대수롭지 않게 던진다.

어릴 때 즐겨 먹은 초콜릿의 이름은? 최근 자동차 보험 관련 인터넷 계좌를 만들다 접한 질문이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어릴 때 초콜릿이 뭔지 처음으로 알려준 친구 이름은?’이라고 묻는다면 답할 자신이 있다. 친구의 얼굴까지 스케치로 그려낼 수 있다. 50년 전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 소풍길에 친구가 검은 뭔가를 주면서 먹어보라고 했다. 초콜릿이었다. 처음으로 접한 맛이었다.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곱게 포장된 초콜릿은 처음이었다. 그때 맛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초콜릿을 먹었는지, 그때의 강력한 첫인상은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첫사랑이 이뤄지기 어렵듯, 첫인상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후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소풍길의 강렬한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초콜릿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것’을 멀리한다. 필자만이 아닌, 장년의 한국인이라면 아마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짐작된다. 어릴 때 설탕이 귀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단맛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다. 단것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아픈 증세도 따라붙는다. 맛에 대한 감각과 습관은 어릴 때 형성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귀한 설탕’을 못 먹었던 탓에 이후 단맛이 폭증하는 시대가 됐는데도 멀리하게 됐다.

그러나 필자의 전형적인 ‘꼰대 가난론’에 기초한 초콜릿 단상은 젊은 세대에는 전혀 통하지 않을 듯하다. ‘초콜릿과 설탕은 다르다’는 것이 적어도 40대 이하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단맛=초콜릿맛’이라 말한다면 참 ‘무식한 미각’이라 놀림을 받을 수 있다. 맥주조차 제조방법과 출생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구별해 마시는 시대이다. ‘단맛=초콜릿맛’으로 일괄 통일해 해석하는 꼰대들의 단세포 입맛이 한심하게 보일 것이다.

벨기에 초콜릿 회사들이 모여 있는 브뤼셀의 갈르리 생 튀베르. 초콜릿 신자들의 성지로 통한다. ⓒphoto 유민호
벨기에 초콜릿 회사들이 모여 있는 브뤼셀의 갈르리 생 튀베르. 초콜릿 신자들의 성지로 통한다. ⓒphoto 유민호

초콜릿 신자들의 성지, 튀베르

벨기에 초콜릿 여행은 무식한 입맛을 만회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육책이었다. 세계 최고로 불리는 벨기에 제품을 통해 단맛과 초콜릿맛을 구별해내고, 나아가 초콜릿의 세계도 보다 깊게, 구체적으로 탐구하자는 것이 브뤼셀로 향한 이유 중 하나였다. 시내 한복판 호스텔에 여정을 푼 뒤 곧바로 초콜릿 신자들의 성지로 향했다. 브뤼셀 한복판에 있는 갈르리 생 튀베르(Galerie St. Hubert)다. 19세기형 건축으로, 긴 유리 천장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프랑스 파리의 파사주(Passage) 스타일 공간이다. 벨기에를 대표하는 초콜릿 제조사들이 운집한 곳이다. 서울로 치자면 온갖 약재가 모이는 경동시장에 해당하는 곳이 초콜릿의 튀베르다.

튀베르로 향하는 도중 브뤼셀 거리는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맥주판이다. 오전부터 거리에서 초콜릿만 먹는 사람은 없지만, 맥주와 초콜릿을 한꺼번에 즐기는 사람들은 있다. 기상천외 초콜릿 맥주다. 플로리스 초콜릿(Floris Chocolat)이란 이름의 맥주다. 맥주병 빛깔이 아름다워 시식해 봤지만, 복숭아즙 속에 초콜릿을 약간 탄 듯한 맛이다. 카카오를 넣은 것이 아니라 초콜릿향을 넣은 맥주로, 달지도 쓰지도 않은 숙성된 과일맛이다. 알코올 농도도 다른 벨기에 맥주보다 낮은 4.2도로 여성들에게 어울릴 듯하다.

튀베르는 입구에서부터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집단 투어 중국인들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듯하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노이하우스(Neuhaus) 본점이다. 벨기에 초콜릿을 세계적 브랜드로 격상시킨 주인공이다. 벨기에 초콜릿의 명성은 100여년 전부터 시작된다. 1912년 탄생한 혁명적 개념의 초콜릿 덕분이다. 벨기에 특산 초콜릿 ‘프랄린(Praline)’이 주인공이다. 1857년 창업한 노이하우스 작품이다. 초콜릿 안에다 알코올, 우유, 꿀, 열매 등 다른 맛을 첨가해 외관을 마치 보석처럼 만든 고급 제품이다. 카카오맛 하나로만 즐기던 기존의 초콜릿과 전혀 다른 입체적인 맛이다. 초콜릿 디자인도 별, 하트, 삼각형, 원통형, 팔각형 등 다양하다. 속 재료와 다양한 디자인을 조합할 경우 수백~수천여 제품으로 진화할 수 있다.

1915년 프랄린 전용 보관박스 발로틴(Ballotin)이 탄생하면서 ‘노이하우스=프랄린=최고급 초콜릿=벨기에 브랜드’라는 공식이 일반화됐다. 단순한 맛과 평범한 디자인의 포장에 의존하던 종래의 초콜릿을 고급화한 ‘먹는 보석으로서의 프랄린’이 전 세계에 데뷔한 것이다. 초콜릿 비즈니스에 있어서 이동은 최대 약점 중 하나다. 녹기 쉽기 때문에 멀리 가져가기가 어렵다. 그 같은 문제를 풀어준 곳이 1911년 창업한 칼리바우트(Callebaut)다. 1925년, 제조된 초콜릿을 액체 상태로 보관해 수송한 뒤 현지에서 고체화하는 기술을 발명해낸다. 덕분에 명품 벨기에 초콜릿을 다른 나라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됐다.

벨기에 초콜릿을 세계적 브랜드로 만든 ‘노이하우스’ 앞에 전시된 상징물 ‘스머프’(왼쪽)와 창업자인 노이하우스의 흉상. 녹지 않는 초콜릿으로 만들었다. ⓒphoto 유민호
벨기에 초콜릿을 세계적 브랜드로 만든 ‘노이하우스’ 앞에 전시된 상징물 ‘스머프’(왼쪽)와 창업자인 노이하우스의 흉상. 녹지 않는 초콜릿으로 만들었다. ⓒphoto 유민호

녹지 않는 초콜릿

‘N’ 자가 커다랗게 새겨진 노이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두 개의 상징물이 가게 앞에 전시돼 있다.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노이하우스 창업자 흉상과, 벨기에의 상징이자 노이하우스 아이콘으로 활용되고 있는 스머프(Smurfs)다. 초콜릿 흉상이 녹지 않는지 물어보니, 똑같은 질문을 하루에 10번은 듣는다면서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 있어 상온에서 문제없다”고 답한다. 스머프는 숲속에 사는 요정으로 푸른 피부와 둥근 코를 가진, 벨기에 출생의 캐릭터다. 유럽에서 스머프는 기묘한 외모보다 반전(反戰)과 그린운동의 상징으로 더 유명하다. 2005년 유럽에 방영된 광고 덕분이다. 청정 자연 속에 살던 스머프 가족이 군용기의 폭격으로 피해를 입는 광고였다. 스머프가 한국에서처럼 ‘개구쟁이’가 아닌, 반전·환경운동가가 된 이유이다. 좀 과장하자면 노이하우스 초콜릿 하나를 먹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트렌드를 경험하는 것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시식을 했다. 프랄린 원조답게 뭔가 꽉 찬 맛이 느껴진다. 알코올이 든 프랄린은 입에 넣어 체온으로 녹여야 한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초콜릿이지만, 어릴 때 버릇은 감추기 어려운 듯하다. 녹기 전에 깨물어 먹은 탓인지, 초콜릿과 알코올 맛을 구별하기 힘들었다.

노이하우스 초콜릿에서 주목할 부분은 카카오 함량이다. 전부 100%다. 불순물 없이 카카오 하나로 맛을 낼 경우 쓴맛이 나기 쉽다. 그러나 100%를 쓰면서도 쓴맛이 아닌 카카오의 순한 맛만을 보여주는 것이 벨기에만의 노하우다. 현재 전 세계는 두 개의 초콜릿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영국·오스트리아·덴마크권은 카카오 이외 유지방이 들어가도 초콜릿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벨기에·네덜란드권은 오직 100% 카카오를 써야 초콜릿이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쪽 의견을 모두 수용, 5% 이내 대체 유지방을 사용해도 초콜릿이라 부를 수 있다고 통용되고 있지만 노이하우스를 비롯한 벨기에 제조사는 계속해서 100% 카카오 함량을 지키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아무리 명품 초콜릿이라 해도 변하지 않으면 퇴물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노포로 명성을 잇고 있는 노이하우스에 이어 21세기 초콜릿계의 신예로 등장한 피에르 마르코리니(Pierre Marcolini)로 발길을 돌렸다. 당연하지만, 튀베르 안 초콜릿 가게의 대부분은 북쪽으로 향해 있다. 천장 유리를 뚫고 비치는 남쪽 태양 빛을 피한 구도다. 피에르 마르코리니도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운 북쪽 방향에 들어서 있다. 노이하우스와 달리 가게 자체가 단출하고 심플하다. 관록의 노이하우스에 맞서 작고 간소하다. 피에르 마르코리니는 처음에는 과자 장인으로 출발해 초콜릿으로 방향을 틀었다. 초콜릿 자체도 있지만,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결합해 유럽 전체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푸르고 붉고 노란색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검은 초콜릿의 이미지를 바꿔놓으며 런던, 파리, 뉴욕, 도쿄 젊은이들의 기호품으로 자리 잡았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싶었는데 이미 절판이라고 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달콤하고 우아한 벨기에 초콜릿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16세기 유럽 전국시대의 유산이자, 18세기 제국주의의 광기로서의 초콜릿이다. 유럽 전국시대 유산으로서의 초콜릿은 스페인에서 시작한다. 초콜릿의 원재료는 카카오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가져온 전리품 중 하나가 카카오다. 1502년 카카오의 열매를 스페인 국왕 부부에게 전한다.

이후 식용화한 곳은 스페인 수도원이다. 16세기 수도원은 21세기 최고급 호텔이자 병원에 비견될 수 있다. 변변한 숙박시설이 드물던 시대, 수도사와 귀족이 여행 중 머물던 안전하고 깨끗한 숙소다. 가난한 사람은 여행을 꿈꾸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부와 권력이 모이면 예술·의약·음식 문화가 탄생한다. 와인, 맥주를 비롯해 심지어 초콜릿까지 수도원에서 진화하면서 수도사와 귀족 사이에 퍼져나간다. 카카오와 수도원의 음료는 혀를 만족시키는 기호품이 아닌, 병을 막는 약재이자 신에게 바치는 성찬용 재료로 활용됐다. 당시 벨기에는 스페인 식민지였다. 수도사들끼리의 교류를 통해 카카오가 스페인에 이어 벨기에 수도원까지 전달된다. 스페인 덕분에 벨기에 초콜릿이 탄생된 셈이다.

크림과 호두를 버무린 초콜릿으로 유명한 코르네 초콜릿. 1932년 개점, 브뤼셀의 아이콘 오줌싸개 소년을 캐릭터로 내세우고 있다. ⓒphoto 유민호
크림과 호두를 버무린 초콜릿으로 유명한 코르네 초콜릿. 1932년 개점, 브뤼셀의 아이콘 오줌싸개 소년을 캐릭터로 내세우고 있다. ⓒphoto 유민호

달콤함 뒤에는 제국주의의 광기가

18세기 제국주의 광기로서의 초콜릿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시작된다. 수도원 약재 수준의 카카오가 대중 비즈니스 영역에 들어간 것은 1885년 이후다. 벨기에 국왕이 아프리카 식민지 콩고에 초대형 카카오농장을 만들었다. 현지 농장에서의 참혹한 상황은 충분히 상상이 간다. 한순간 벨기에는 카카오 수출국으로 변신한다. 부를 축적하려는 왕의 개인적인 욕심의 결과가 ‘벨기에=카카오 대국’으로 만든 것이다. 이미 19세기 중반에 탄생한 벨기에 초콜릿 제조업체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발전한다. 1840년 창업해 동물 인형 모양의 초콜릿으로 인기를 끈 베르와츠(Berwaerts)를 시작으로, 1883년 코트 도르(Cte d’Or), 1896년 자크(Jacques)가 벨기에 초콜릿 산업을 주도한다. 벨기에 국왕의 제국주의적 광기가 없었다면 벨기에 초콜릿 신화도 없었을 듯하다.

벨기에의 초콜릿 1년 생산량은 60만t에 달한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은 무려 6㎏으로 세계 1위다. 당연하지만 초콜릿 수출량도 엄청나다. 2016년 기준으로 초콜릿 해외수출은 25만t에 달한다.

1위 독일의 54만t, 2위 네덜란드의 27만t에 이어 세계 3위다. 인구 비례 수출량으로 따진다면 단연 세계 정상이다. 치아가 성할지, 당뇨병은 어떨지 궁금하지만, 유럽에서 남다른 장수국가가 벨기에다. “맥주와 초콜릿으로 유명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4년 3월 브뤼셀에 방문했을 때 던진 말이다. 초콜릿은 두 개로 나뉜다. 초콜릿과 벨기에 초콜릿이다. 브뤼셀에서 느꼈지만, 벨기에 초콜릿의 맛은 너무도 다양하다. 단맛이 전부가 아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물론, 어둠조차도 밝은 빛으로 바꾸려는 땀과 노력이 벨기에 초콜릿의 진수일지 모르겠다.

키워드

#문화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