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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595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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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통신]‘기생충’과 경합한 ‘1917’ 감독 샘 멘데스

LA= 글·사진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전쟁서사극 ‘1917’을 연출한 영국의 샘 멘데스(55) 감독과의 인터뷰가 최근 LA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1917’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작품상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인 작품. 1차대전에 나간 두 명의 영국 병사가 지휘관의 공격중지 전통문을 최전선에 있는 우군에 전달하기 위해 적진을 뚫고 달리는 전쟁 드라마다. 아카데미상 수상 경력이 있는 로저 디킨스가 촬영했는데 영화 속 시간을 실시간처럼 느끼도록 하기 위해 컷 없는 단 한 번의 촬영처럼 보이게 편집했다.
   
   샘 멘데스는 영국신사처럼 점잖았는데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질문에 진지하고 깊이 있는 답변을 했다. 2월 19일 한국에서 개봉하는 ‘1917’은 올해 골든글로브 작품상(드라마 부문)과 감독상을 탔고 아카데미 촬영, 시각효과 및 음향 믹스상을 탔다. 샘 멘데스 감독도 1999년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 영화 ‘1917’의 장면.

   - 영화의 내용을 실시간처럼 느끼게 촬영한 이유가 무엇인가. “관객이 두 명의 병사와 함께 호흡을 하면서 걷고 달리는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다. 감정적 결정에 의한 것으로 두 명의 병사와 그들의 경험 사이에 거리감을 가능한 한 좁히고 싶었다. 이와 함께 관객도 그들이 겪는 경험을 자기 것처럼 느끼게 시도했다. 디킨스는 내게 ‘영화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도록 하려면 두 명의 병사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카메라와 두 배우 사이에 거리를 두고 리듬을 지키면서 찍었다. 스타일과 내용이 좋은 결합을 이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영화의 내용을 당신의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했는데. “우리 조상은 포르투갈계 트리니다드 사람으로 할아버지는 10대 때 영국으로 유학을 왔다. 후에 작가가 된 할아버지는 얘기하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전쟁이 나자 자원입대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전쟁 경험을 자녀들에겐 말하지 않다가 나를 비롯한 손자들에게는 했다. 할아버지는 키가 5피트4인치(163㎝)의 단구여서 참호를 누비고 다니면서 전령 노릇을 했다고 한다. 겨울이면 피어나는 안개의 높이가 6피트(183㎝)나 돼서 서서 달려도 독일군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결코 자신의 경험을 자랑 삼아 말하진 않았다. 자기 경험뿐 아니라 전우들의 얘기도 들려줬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에 그 장면들을 상상으로 그리곤 했다. 할아버지는 손을 지나치게 자주 씻어 내가 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지금도 참호에서 묻은 진흙을 씻어버리려고 한다’고 알려줬다. 영화는 할아버지의 얘기와 자료를 통해 얻은 정보를 혼성해 만든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비롯해 모든 전쟁영화는 다 마찬가지다.”
   
   - 다른 전쟁영화들을 참조했는지. “영화를 만들 때 다른 영화들을 참조하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만은 아니다. 완전히 나와 디킨스의 독자적인 창작품이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참조한 것은 참호를 찍은 사진들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들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그 누구도 걷지 못한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주 신경이 쓰였다.”
   
   - 배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 달리고 뛰어내리고 헤엄을 치면서 움직여야 했는데 그들의 연기는 어느 정도가 즉흥적인가. “내가 생각한 대로의 연기와 즉흥적인 연기가 조화를 이루기를 바랐다. 주인공 역의 조지 맥케이의 강물 속 연기는 즉흥적인 것이다. 그는 차가운 물속에서 가라앉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보고 있자니 겁이 났다.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하겠다.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달리다가 넘어지는 연기도 혼신의 힘을 다 바쳐 했다. 진짜 다쳐서 일어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구급차를 부를 생각까지 했다. 이런 연기가 나오는 것은 처참한 경험을 얘기하는 전쟁영화여서 가능했다고 본다. 군인들이 3년간 겪은 호된 경험을 생각하면 배우들의 3주간 힘든 일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진흙탕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가. “질이 좋은 영국의 흙에다 엄청난 양의 물을 부어 만들었다. 일단 그 속에 들어가면 진흙이 밑에서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일어설 수가 없었고 여러 차례 넘어졌다. 카메라팀이 어떻게 촬영을 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대단한 일을 수행했다. 그래서 진흙탕 장면 촬영은 다른 장면을 찍을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경험은 그 안에서 살아야 했던 군인들의 경험의 1%도 안되는 것이다.”
   
   - 어려서 들은 얘기를 왜 이제야 영화로 만들었는가. “나는 지금 우리가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들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의 시대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들은 자녀와 손자들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들을 희생했다. 이는 기억할 만한 일이다.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얘기꾼들이 이상적이지 못하다면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전쟁 얘기는 인간을 절대적 한계 상황까지 몰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생과 사의 간격이 실낱 같은 그때 가서야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사랑과 우정과 집에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나는 그들이 자기 조국보다도 더 큰 무엇인가를 위해 싸우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말하고 싶었다.”
   
   - 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발발해 1918년에 끝났는데 왜 1917년을 선택했는가. “1917년은 독일군과 영국군이 3년간 치열한 전투을 벌인 후 독일군이 힌덴부르크 전선으로 철수한 해다. 독일군이 갑자기 철수하자 당시 영국군은 1주일간 과연 독일군이 철수를 했는지 후퇴를 했는지 또는 항복을 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두 나라는 150야드(137m) 너비의 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전진과 후퇴를 하면서 수십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독일군의 철수로 그 땅이 무인지대가 되면서 영국군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독일군은 철수를 하면서 나무를 몽땅 잘라버리고 과수원을 파괴하고 가축들을 죽였는데 나는 이런 파괴된 무인지대를 영화의 전령들인 두 군인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해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해가 1917년이다.”
   
   - 두 군인으로 나오는 조지 맥케이와 딘­-찰스 채프먼의 호흡이 잘 맞던데. “둘은 오디션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조지가 맡은 역인 스코필드는 위엄 있고 우아하고 내성적인 멋진 구식 남자다. 안으로는 강한 스태미나를 지닌 인물이다. 딘이 맡은 역인 블레이크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우스운 청년이다. 스코필드보다 한 계급 아래이나 선술집에서 술 한잔 같이 나누면서 사귀기 쉬운 서민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둘은 서로 다른 인물이라 평상시 같았으면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전쟁이라는 상황에 던져지면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강한 우정으로 연결된다. 이들처럼 서로 계급이 다르나 전장에서 알게 돼 친구가 된 사례가 많다는 것을 영화 자료를 보면서 알게 됐다. 그 우정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두 배우는 오랜 리허설을 통해 각자가 맡은 인물들로 변신했다. 나는 그들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따라갔다. 둘은 매우 재능 있는 사람들로, 이 영화를 통해 진짜 우정을 쌓았다. 일종의 ‘브로맨스’다. 이 같은 진짜 우정 때문에 촬영에 큰 도움이 됐다.”
   
   - 할아버지가 들려준 얘기 중 무엇이 가장 짙은 인상을 남겼는가. “할아버지는 당시 70대 후반이나 80대 초반이었다. 그는 내게 삶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이며 우리가 지금 이렇게 원하는 것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얘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할아버지와 함께 입대한 친구의 죽음이다. 친구가 독일군의 포격으로 직격탄을 맞았는데 돌아보니 친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체도 없고 문자 그대로 친구가 증발한 것이다. 그 얘기가 그 후 내내 기억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이 영화는 전투 영화도 아니요 전투 장면도 많지 않다. 모든 것은 매우 취약하니 귀중한 것들을 붙잡고 놓치지 말라는 얘기다. 노인이 아이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삶을 붙잡으라’고 한 얘기다. 귀중한 삶이 할아버지의 친구처럼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다행히 평화의 시대에 태어났다. 어렸을 때 벌어진 전쟁의 개념도 몰랐고 참호 전쟁이라는 것도 11살쯤에서야 알게 됐다. 이 영화는 인간의 여정과 임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일단 큰 전투를 경험한 스코필드는 전쟁에 염증을 느껴 또 다른 전선에 배치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컸다. 그는 끝에 가서야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런 상황에 처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종의 발견의 여정이다. 그런 여정을 통해 처음에는 냉소적이었던 그가 후에 자기 임무를 믿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할아버지가 내게 전달해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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