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Porto)는 포르투갈 북부의 도시로 이름처럼 항구도시이다. 포르투갈 도시 중 국적기가 취항해서 조금은 더 익숙한 리스본은 중남부에 위치해 있다. 포르투의 크기는 강남구보다 약간 크고(42㎢), 인구는 용산구 정도(24만명)이다. 유럽에서는 식전주로, 영미권에서는 디저트 와인으로 주로 마시는 포르투와인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와인이나 와인으로 만든 샹그리라 등을 마시는 장면이 흔히 보인다. 필자가 방문했던 7월에도 여름 최고기온이 25도일 정도로 쾌적한 편이었다. 직전 방문했던 스페인의 마드리드보다는 10도 이상 낮았다.

4000개의 리뷰가 달린 유명 식당

관광이 목적이 아니어서 유명한 포르투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 방문 이외에는 다른 계획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대도시도 아니어서 아무런 예약 없이 도착했다. 게으른 여행자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에 감사하며 여행사이트를 검색했다. 4000개 이상의 리뷰가 달린 식당이 있었다. 많아야 2000개 미만인 다른 식당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리뷰가 달려 있는 식당이 바로 ‘타파벤토’였다. 호텔에 컨시어지가 없어서 프런트에 예약 부탁을 했다. “2주는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다음에 포르투에 오면 가보라”고 했다. 얼마나 맛있기에 그럴까 하는 호기심에 일단 저녁 장사를 시작하기 15분 전쯤 식당 문 앞에 똬리를 틀었다. 중심역인 상벤투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데 호텔에서 걸어서 2분 거리였다. 여행객이 많이 가는 식당들은 분명 취소되는 자리가 있다는 경험치를 믿었다.

다행히 주인인 이사벨(Isabel Canhola)이 맞아주었다. 유명 식당에 예약도 없이 무작정 찾아와서 밥 달라고 하는 이국 여행객의 만행에 익숙한 것 같았다. 영화 ‘맘마미아’의 여주인공 포스가 나는 우아하고 상냥한 주인이었다. 좁은 층계를 거쳐 2층으로 올라가니 상벤투역이 내려다보이는 예쁜 창문이 인상적이다. 동화 속 예쁜 식당 분위기의 식당은 포르투갈, 스페인, 지중해식이 혼합된 요리로 여행객들과 이웃을 맞이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맞아주었던 주인이 와서 주문을 받으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답을 했더니 한글로 된 그림책을 한 권 가지고 왔다. ‘드로잉 인 포르투갈, 어반 스케치 트래블 노트’라는 색칠된 연필스케치가 책 전면에 그려진 예쁜 책이었다. 책을 쓴 사람을 아느냐면서 자기 집의 단골이었다고 소개했다. 책은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활동하는 스케치작가인 카콜(CaCol)이 포르투갈을 세 달 가까이 여행하며 그리고 썼다. 예쁘고 맛있는 음식의 글과 그림에 주인장에 대한 설명이 더해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꽤나 멀리 있는 작은 도시의 크지 않은 식당에 대해 한국인이 글과 그림을 그렸다는 게 꽤나 생경했다.

수증기를 뿜는 지중해식 해물찜 요리.
수증기를 뿜는 지중해식 해물찜 요리.

한국 스케치작가 카콜이 사랑한 식당

식당의 인테리어나 음식의 플레이팅 등이 그림 그리고 사진 찍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 리뷰가 많은 이유에 비주얼이 한몫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메뉴를 달라고 했다. 한국어로 쓰인 메뉴판을 가져다줘서 깜짝 놀랐다. 외국에서 본 어떤 한글 메뉴판보다 자세하고 번역이 훌륭해서 다시 한번 놀랐다. 한글만 읽어도 요리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번역기를 돌린 게 아니라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에게 감수를 받았다고 했다. 주인의 범상치 않은 세심함은 요리에 대한 기대를 크게 했다. 크림슨색으로 쓰인 굵은 한글 글씨가 식탁보와 잘 어울렸다. 여행사이트나 카콜의 책이 추천한 ‘오리가슴살과 달콤새콤한 푸아그라 소스’와 ‘오늘의 해물 요리’를 시켰다. 카콜의 책에서는 ‘오리스테이크’와 ‘해물찜’이라고 소개된 음식이다.

잘 구워진 오리가슴살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 나왔다. ‘겉바속촉’이라는 한국 사람의 입맛에 딱이었다. 퍽퍽할 수 있는 오리가 정말 부드러웠다. 서양 사람들은 고기의 씹는 맛을 중요시한다는 그간의 생각에 의구심이 들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런 오리라면 튀겨 먹어도 맛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고구마와 당근으로 만든 퓌레는 화려한 주황 색깔만큼이나 맛이 좋았다. 하얀색 접시의 절반을 덮고 있었는데, 흰 바닥이 드러날 때마다 아쉬움이 커졌다. 그동안은 고기 맛을 가릴까봐 퓌레는 가급적 덜 먹었다. 사이드 메뉴였으면 하나 더 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근과 고구마의 멋진 조합이었다. 접시 위 고기와 퓌레 이외의 공간은 베리 종류로 채워졌다. 딸기, 블루베리, 블랙베리, 무화과 등이 디저트 과일 접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가득했다. 산과 들의 풍성함이 흰 접시에 충만했다. 첫 접시를 먹자마자 내일 다시 오자고 마음먹었다.

디저트 초콜릿과 호두 브라우니.
디저트 초콜릿과 호두 브라우니.

오리가슴살과 해물찜의 향연

해물찜은 이게 왜 포르투갈 또는 지중해 요리일까 싶었다. 우리나라의 해물찜이 간장이나 고춧가루를 사용한다면 지중해 소스라는 걸 사용했다는 차이 정도였다. 냉면 그릇보다 더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바닷가재, 새우, 모시조개, 바지락, 가리비 등 어류를 제외한 바다 출신들이 ‘향우회’를 하고 있었다. 원산지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가까운 대서양이나 멀어야 지중해 정도에서 잡혔을 신선한 해산물이 수증기를 뿜으며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스에서 고수(실란트로) 냄새가 났다. 어지간해서는 기피하는 식재료인데 타파벤토에서는 예외였다. 복어를 좋아하는 미식가들이 복어독을 회에 살짝 뿌려먹는 느낌으로 조갯살을 입에 넣었다. 가리비도 새우가 새치기를 하면서 뒤를 따랐다. 고수를 싫어해서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점은 거의 가지 않는다. 다른 음식 시켜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라도 잘 안 간다. 고수 냄새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고수가 신선해서인지 아니면 해산물의 기가 강해서인지 고수 냄새가 가려졌다. 싫어하는 식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맛있게 먹으니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가리는 방법이 둘이 있다. 하나는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으면 맛있는 음식이다. 식어도 맛있는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다. 여기에 하나 추가했다. 먹은 다음날도 또 가서 먹고 싶으면 맛있는 음식이다. 타파벤토는 포르투에 머무는 5일 중 3일을 갔다. 가는 사람과 인당 지출액도 같이 늘었다. 첫날은 인당 3만원 선으로 먹었는데, 세 번째는 5만원 정도는 쓴 것 같다.

세 번째 간 날은 해물찜으로 실험을 했다. 한국 음식과의 유사성을 밝히려고 하였다. 라면의 면발을 다 먹은 후 찬밥을 마는 것처럼 해물을 다 먹고 남은 육수에 밥을 말았다. 전날 메뉴에서 확인한 밥(steamed rice)이 있는 게 신기했다. 시켜 먹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웨이터는 국물에 밥 말아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신기해했다. 나도 여기에 밥 말아 먹을 줄은 몰랐다고 답을 하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해물 육수를 가득 머금은 안남미가 한 톨도 남지 않았고 커다란 냉면 그릇은 설거지를 할 필요가 없었다. 국물도 없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생긴 것 같았다.

고구마 당근 퓌레와 함께 나오는 오리가슴살구이.
고구마 당근 퓌레와 함께 나오는 오리가슴살구이.

어디서도 못 본 훌륭한 한글 메뉴

포르투와인이 담긴 샹그리라도 주문했다. 샹그리라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이웃에서 와서인지 신선했다. 술병에 가득한 와인, 사이다, 맥주, 럼에 민트, 각종 과일이 으깨진 원액의 조화는 멀리까지 여행온 만족 이상의 보람이었다. 포르투와인이 알코올 함유량이 높고 단맛이 강해서인지 샹그리라가 더 맛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과즙 가득한 맛있는 과일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였다. 해물찜과 궁합이 매우 잘 맞았다.

디저트로 주문한 초콜릿과 호두 브라우니는 소나무 분재처럼 접시에 담겨나왔다. 오리와 함께 먹었던 베리의 친구들이 작은 들꽃과 함께 호두가 알알이 박힌 초콜릿 브라우니를 호위하며 등장하였다. 한편엔 보라색 꽃과 보색 대비를 맞춘 딸기 무스가 자리 잡았다. 꽃과 베리를 브라우니와 함께 먹으니 살찌지 않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이스크림을 얹어먹을 때 느끼는 칼로리에 대한 부담도 죄책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카카오와 사탕수수를 혼합해서 먹는 느낌이랄까. 1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이런 호사를 누린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눈도 입도 배도 마음도 음식처럼 흐뭇했다.

타파벤토라는 식당 이름은 매우 겸손하다. 작은 음식이라는 ‘타파’와, 도시락이라는 ‘벤토’가 반씩을 차지한다. 영어로 한다면 ‘Tapas & Lunch Box’ 정도일 거다. 배고픔이나 달랠 요깃거리라는 이름의 의미가 겸양인지 역설인지는 주인에게 확인하지 않았다. 겸양이라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지중해 음식을 올곧게 대접하는 주인의 넉넉한 마음일 것이다. 역설이라면 한때 제국을 이루었던 포르투갈 왕후장상의 점심도시락 정도일 것이다.

한글로 쓰인 메뉴판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우리는 포르투에 있지만 세계의 영혼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에게 레스토랑이란 즐겁고 좋은 사람들과 다채로우며 경이로움이 빛나는 식탁이 있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신선한 지역재료들을 이용해 세계의 맛을 열정으로 요리합니다. 다른 시간과 공간의 기억들을 만들어냅니다. 먼 나라에서 온 손님도, 가까운 곳에서 온 손님도 저희는 모두 환영합니다.” 어떤 기업의 사시(社是)보다도 훌륭한 식당의 정신이 한글로 인쇄되어 있었다. 한글이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포르투갈 사장님의 포용성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기 식당을 “언어와 문화의 용광로”라고 칭하며 식탁 위 접시에 대항해 시절 대서양과 전 세계를 휩쓸었던 포르투갈 함대의 위풍당당함을 담아내었다. 말은 포르투갈어를 쓰고, 재료는 지중해 주변에서 구해 지역의 음식을 요리한다. 동네 음식 가득한 식탁은 세계인을 향해서 차려져 있었다. 자기네 음식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 지중해 해물찜에 쌀밥을 말아먹을 정도로 말이다.

평가

Trip Advisor: 포르투 1898개 레스토랑 중 7위

Restaurant Guru: 포르투 4543개의 레스토랑 중 12위

주소 및 전화번호

R. da Madeira 222, Porto, Porto District, Portugal 351912881272

웹사이트

http://www.tapabento.com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tapab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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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권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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