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 어학연수도 우여곡절 속에 한 달이 지났다. 페루는 지난 3월 16일 국가비상사태가 발효된 이후 국경폐쇄와 의무적 사회격리가 계속되고 있다. 원래 3월 30일 끝날 예정이었지만 2차로 13일간 더 연장했다. 이 기간에 환자와 사망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대통령은 매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상황을 알리고 있고 상응하는 조치도 강화되고 있다.

이곳도 매일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그중 눈에 띄는 뉴스가 있었다. 지난 1분기 동안 페루에서 3000만장이 넘는 마스크가 미국, 중국, 홍콩 등에 수출됐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3M N95형 마스크를 개당 1달러 조금 넘는 가격에, 미국에는 일회용 마스크를 개당 4센트 정도 가격에 팔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페루에서는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각 가정에서 마스크 만드는 방법을 발표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장 닥칠 상황을 예측 못 했다는 것인데 국외자의 입장에서도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는 인공호흡기에 관한 것이다. 페루 보건부가 중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인공호흡기 생산을 위해 관련 기관과 합의를 했다는 뉴스였다. 페루 정부는 현재 인공호흡기가 276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국의 9823대에 비교하면 인구 3200만명의 페루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숫자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페루 당국은 며칠 후 모든 가용 자원을 다 뒤져 500대까지 인공호흡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국산 개발을 서둘러 한 달 이내에 100대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새로 개발되는 페루산 인공호흡기에는 ‘숨 쉬어라(respira)’라는 의미의 원주민어(케추아어)인 ‘사마이(Samay)’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한국발 뉴스를 보니 ‘페루의 중환자실 병상이 35개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다. 이는 명백한 오보이다. 참고로 최근 페루 보건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밝힌 페루의 중환자 병실은 800병상이다.

남성만 외출할 수 있는 금요일 슈퍼 앞 모습. 남성들만 서 있는 중간에 나이 든 할머니가 미처 뉴스를 접하지 못했는지 홀로 줄 가운데에 서 있다.
남성만 외출할 수 있는 금요일 슈퍼 앞 모습. 남성들만 서 있는 중간에 나이 든 할머니가 미처 뉴스를 접하지 못했는지 홀로 줄 가운데에 서 있다.

미식 탐험 대신 수퍼푸드 탐사

어쨌든 2차 국가비상사태가 시작된 지난 3월 31일에는 통행금지 강화 조처가 발표됐다. 그전까지는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모든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금지됐는데, 이날부터는 오후 6시로 통행금지 시간을 앞당겼다. 특히 위반 사례가 많고 환자 수도 상대적으로 많은 북부 5개 주에 대해서는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를 시행하는 초강도 조치를 발표했다. 페루의 확진자는 3월 31일 현재 1065명, 사망자는 30명이었다. 세계적 기준으로 볼 때 많은 숫자라고 볼 수는 없지만, 페루 정부는 자국의 취약한 사회 인프라와 의료시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아예 환자 발생 단계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막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리마시의 경우 코로나19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숙자들을 위해 투우장에 150개 침상의 간이 숙박시설을 만든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1776년에 지어진 이 투우장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투우 관계 단체에서 귀중한 문화유산을 노숙자 숙소로 쓸 수 없다고 반대하고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4월 2일에는 또 다른 규제 강화 조치가 발표되었다. 지금까지 식료품점, 약국 및 병원, 은행 업무를 위한 외출과 애완견 산책은 허가해 주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의 통행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남녀 성별로 외출 요일을 제한했다. 예를 들면 남성은 월·수·금요일, 여성은 화·목·토요일만 해당 기관 출입이 가능하다. 외출통제 강화와 함께 마스크 착용도 의무화했다. 또 검사 부족으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검사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 4월 5일 확진자는 2281명으로, 5일 만에 2배 이상 급증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이곳 사람들도 면역력을 키우는 약이나 음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페루는 ‘수퍼푸드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하고 건강한 식자재가 풍부하다. 특히 리마는 미식의 도시로 유명하다. 리마 어학연수를 계획하면서 식도락을 즐길 생각으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리마에 도착하고 일주일은 나름대로 준비한 미식 리스트를 찾아다니는 행복을 맛봤다. 그런데 난데없이 국가비상사태가 발효되고 모든 식당이 폐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집에 앉아 미식 탐험 대신 ‘수퍼푸드’ 탐사나 해보기로 했다. 슈퍼, 시장, 전문식품점들은 다행히 문을 열기 때문에 ‘수퍼푸드’로 불리는 식품들은 얼마든지 사서 시식해볼 수 있다.

흔히들 ‘수퍼푸드’라고 부르지만 사실 학술적으로 정립돼 있지는 않다. 건강에 좋은 물질을 많이 함유한 식자재로 포괄적인 정의를 내릴 수는 있으나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퍼푸드라는 용어는 1949년 캐나다의 한 신문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물이나 식물 또는 일부 생선류에 사용하던 것이 2005년 뒤늦게 ‘수퍼과일’이란 단어가 등장하면서 모두를 아우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요즘에는 ‘수퍼푸드’라는 명칭만 붙으면 묻지마 사재기가 벌어지고 몸값이 폭등한다. 이런 황금 시장을 두고 어떻게든 ‘수퍼푸드’ 대열에 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유럽연합에서는 2007년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공인된 정보 없이는 ‘수퍼푸드’라는 명칭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페루의 3대 수퍼곡물인 퀴노아, 키위차, 카니와 제품이 나란히 있는 한 전문점 진열대의 모습. 역시 퀴노아 제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페루의 3대 수퍼곡물인 퀴노아, 키위차, 카니와 제품이 나란히 있는 한 전문점 진열대의 모습. 역시 퀴노아 제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수퍼곡물 수출 1위는?

사실 수퍼푸드의 건강 효과에 대한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2010년의 수퍼푸드와 2020년의 수퍼푸드도 다르고 나라별 수퍼푸드도 다르다. 필자의 생각으로 수퍼푸드의 중요한 조건은 희귀성이다. ‘하루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사과의 경우 워낙 흔한 과일이기 때문에 수퍼푸드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페루의 수퍼푸드는 주목할 만하다.

페루는 해안(costa), 산악(sierra), 밀림(selva)이 모두 존재하는 자연조건 덕분에 원주민 시절부터 경작활동이 활발했고 곡물과 과일이 다양했다. 페루가 내세우는 수퍼푸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수퍼과일을 제외한 페루 수퍼푸드의 대표주자는 퀴노아를 필두로 키위차, 카니와, 마카, 사차인치, 카카오닙스라고 할 수 있다. 그중 퀴노아(quinoa), 키위차(kiwicha), 카니와(cañihua)는 페루의 수퍼곡물 3총사로 꼽힌다. 이들은 주로 시리얼 형태로 많이 판매된다.

맏형 격인 퀴노아는 스페인어로는 퀴누아(quinua)라고 부른다. 오래전부터 페루 원주민들이 재배해오던 곡물로, 그들의 언어인 케추아어로 ‘곡물의 어머니(grano madr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남미 안데스산맥 고원에서 자라며 좁쌀 크기의 동그란 형태로 페루가 주산지이다. 퀴노아는 곡물 중에서는 고단백 식품이면서 탄수화물이 상대적으로 적고 필수지방산 함량이 높다. 퀴노아의 영양학적·역사적 가치를 기리고자 유엔총회에서는 2013년을 세계 퀴노아의 해로 공표하기도 하였다. 최근 페루는 수퍼푸드의 열풍에 힘입어 상당한 물량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데 퀴노아는 항상 톱을 달리고 있다.

흔히 미니 퀴노아로 불리는 키위차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칫 과일 키위로 만든 차로 오해받기 쉬우나 페루의 수퍼곡물 중 하나다. 카니와도 퀴노아와 비슷한 성격의 곡물인데 해발 3500~4200m 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 수퍼곡물들은 그 인기만큼이나 다양한 건강증진 효과와 심혈관 질환, 당뇨병, 일부 암 질환 등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키위차의 경우 면역력을 높여 감염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다.

마카는 십자화과에 속하는 농작물로서 따지고 보면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등과 친척 관계의 식물이다. 땅속에서 자라는 뿌리 부분을 먹는데 생긴 것은 마늘과 비슷하다. 색깔은 흰색에서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하다. 우리나라에도 ‘페루의 인삼’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남자들에게는 정력제라는 주장도 있다. 식용과 약용으로 사용된 역사가 길다. 보통 생으로는 잘 먹지 않고 주로 주스, 분말 등으로 가공해 먹는다.

사차인치와 카카오닙스는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상품들이다. 사차인치는 ‘잉카의 땅콩’이라고도 불리는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등 심혈관 질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카카오닙스는 카카오 콩의 껍질을 제거, 코코아를 꺼낸 뒤 건조한 후 잘게 부순 형태이다. 그대로 먹거나 차로 마신다. 카카오닙스 역시 사차인치와 마찬가지로 심혈관 질환에 포괄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루 현지에서도 사차인치와 카카오닙스를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형태로 팔기도 하나 다른 수퍼푸드들처럼 초콜릿 등 응용 제품을 다양하게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키위차 시리얼을 확대한 모습.
키위차 시리얼을 확대한 모습.

맛도 모양도 생소한 수퍼과일의 천국

수퍼과일로는 우리에게 생소한 과일인 치리모야, 그라나디야, 아구아만토, 카무카무, 루쿠마, 투나, 코코나 등이 있다. 동남아 등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름이 달라 이국적인 마라쿠야(패션프루트), 카람볼라(스타프루트), 피타아야(드래곤프루트·용과), 아란다노(블루베리), 팔타(아보카도)도 있다. 이들의 건강 효과에 대해서 확인 없이 전하기는 부담스러우니 특징들을 알아보는 선에서 만족해야겠다.

먼저 치리모야(chirimoya)는 울퉁불퉁 사납게 생긴 겉모습에 큰 배보다 큰 것도 많다. 손으로 눌러서 폭신한 느낌이 많이 나는 것이 잘 익은 것이다. 반으로 자르면 하얀색 과육이 나오는데 부드러워서 작은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된다. 우리나라 배처럼 시원하고 달콤하면서도 농밀하고 크리미한 식감이 일품이다. 한번 먹어 보면 그 누구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라나디야(granadilla)는 치리모야에 비해 겉모습은 평범한데 속은 오묘하다. 우선 껍질을 귤처럼 손으로 까면 속에 희고 두꺼운 막이 마치 주머니처럼 무언가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다. 주머니를 열면 안으로 씨앗과 함께 젤리 같은 액체가 보이는데 작은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감미로우면서 색다른 식감이 환상적이다. 주머니 막도 먹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나 특별한 맛은 없다.

아구아만토(aguamanto)는 일단 첫 인상이 독특하다. 겉을 둘러싸고 있는 나뭇잎 같은 껍질을 벗기면 속으로 마치 보석처럼 황금빛 꽈리 모양의 열매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영어로는 황금베리(golden berry)라고도 불린다. 잉카제국 시절부터 즐겨 먹던 과일이라 하여 잉카베리(Inca berry)로 부르기도 한다. 먹어 보면 신맛이 강해 비타민C가 풍부할 것 같다. 잎이 겉을 둘러싸고 있으니 굳이 씻지 않고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페루 슈퍼에 가면 알맹이만 빼서 작은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파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카무카무(camucamu)는 붉은색이 나는 꽈리 모양의 과일로 크기는 아구아만토보다 약간 크다. 카무카무는 신맛의 끝판왕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신맛이 강해 보통은 생으로 먹지 않고 주스 또는 분말로 만들어 먹거나 다른 음식에 첨가해서 먹는다. 필자도 호기심으로 전통시장에서 구입해 맛을 보았으나 어찌나 신지 몇 입 먹지도 못하고 중도 포기했다. 오렌지에 비해 비타민C 함량이 48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수퍼과일들은 건강 가공제품으로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루쿠마(lúcuma)도 재미있는 과일이다. 원래 초록색이었다가 익을수록 약간 붉은색을 띤다. 자르면 물기가 거의 없어 보인다. 실제 먹어 보면 달콤하면서도 퍼석한 것이 마치 고구마나 단호박을 먹는 느낌이다. 과육의 노란 색깔 때문에 ‘잉카의 황금’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페루의 스타벅스에서는 ‘루쿠마 프라푸치노’라는 메뉴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투나(tuna)는 페루, 멕시코 등의 자생 선인장에서 나오는 열매로 껍질에 있는 돌기 때문에 영어로는 ‘prickly pear(가시 배)’로 불린다. 주로 붉은색과 초록색 두 종류가 있는데 초록색은 단맛과 함께 청량감이 있는 데 비해 붉은색은 밋밋하다. 필자는 초록색 투나를 선호한다.

코코나(cocona)는 겉모습은 약간 길쭉한 감처럼 생겼지만 신맛이 강하다. 생과일로도 먹고 주스나 소스, 잼 등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결론적으로 수퍼푸드는 영양학적 분석으로 보더라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치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처럼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적당히 먹고 즐겨야 약이 된다.

김원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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