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의과대학 교수로 지내면서 외국어는 관심도 없었다. 2003년 어느 봄날, 운명의 큰 전환점이 될 생각 하나가 나비처럼 마음 한곳에 내려앉았다. ‘이제 나이 오십이 되었는데 더 늦기 전에 제2 외국어를 하나 배워 볼까?’ 그렇게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로 이어졌다. 4개 국어 공부는 정년퇴임 후 ‘4개국 어학연수’라는 도전을 낳았다. 그리고 결국 2020년 3월, 페루의 스페인어 어학연수로 첫발을 떼면서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 과정은 주간조선(2589호)에 자세히 소개됐
총 20주로 계획된 툴루즈에서의 프랑스어 연수를 무사히 마쳤다. 15년 전, 당시 53세의 나이로 처음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현지 어학연수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여러 가지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별 문제없이 100% 대면 수업으로 이루어졌다.그동안 중간 레벨인 B2 1반에서 시작해 바로 B2 2반으로 월반해서 6주, 그리고 최고 수준인 C1반으로 진급해 나머지 13주를 보냈다. 어학연수를 올 때 목표가 C1반 진입이었다. B2반까지는 문법 수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문법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 학생들과 함께 어학연수라는 것을 하다 보니 새로운 경험을 한다. 대부분 20대인 학생들의 이동은 비교적 잦다. 필자처럼 어학연수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현지 진학이나 취업이 목표다. 이들의 특징은 실전 프랑스어에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 중 강의실에서 만나기 힘든 학생들이 있었다. 알고 보니 현지 체류를 위한 편법으로 어학원에 등록만 해놓고 가끔씩 얼굴을 내민다고 했다. 어학연수는 강의실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체험이야말로 어학연수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몰입
프랑스 어학연수 4개월째,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것 이외에는 모든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결석은커녕 지각도 한 적이 없다. 수업과 숙제, 운동, 집필 활동에다 프랑스어 이외에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실력 유지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주말까지 일정이 빡빡하다. 어학연수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주변 도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도 시간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두 도시만은 포기할 수 없다. 툴루즈에서 기차로 불과 1시간 거리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가 있다. ‘주교도시’ 알비와 ‘성채도시’ 카르카
“한국에서는 개를 먹는다는데 사실이냐?” 외국에 가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과거에는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곤 했지만 지금은 아예 무시하거나 “독특한 식문화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반격을 가하기도 한다. 중국이야 “다리가 넷 달린 것은 책상을 제외하고 다 먹는다”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을 정도로 엽기적 식문화로 소문나 있고, 일본만 해도 ‘바사시미(말회)’와 같은 독특한 식재료가 존재한다. 엽기적 식문화는 서유럽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일부에서는 비록 ‘자가용’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고양이 도축과 식이 섭취가 허용되는
서양의 주식은 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 표현에서 ‘빵’이란 단어는 어디서 나왔을까?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빵을 처음 소개한 포르투갈인들이 사용하던 용어 ‘팡(pão)’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어와 같은 로망스어군의 스페인어와 프랑스어에서 각각 빵을 뜻하는 ‘pan’과 ‘pain’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친숙하다. 반면 게르만어군의 단어 ‘Bread’(영어), ‘Brot’(독일어), ‘Brood’(네덜란드어)는 외국어라고 느낀다. 그런데 프랑스에 와서 보면
나의 툴루즈 어학연수의 최종 목표는 C1반 진입이었다. 프랑스어 능력평가인 ‘DELF(델프)’/‘DALF(달프)’는 A1, A2, B1, B2, C1, C2의 여섯 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두 번째로 어려운 단계 진입을 목표로 삼았다. 당초 툴루즈 어학원에 B2 1반으로 등록했다가 1주일 만에 ‘B2 2반’으로 월반한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언급했다. 월반은 좋은데 갈수록 수업 내용이 어려워지는 만큼 중압감도 상당했다. 1주일 단위로 끊임없이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무엇보다 스트레스였다. 각종 숙제와 퀴즈형 시험은 물론 한 달에 한 번
프랑스에 오면 와인과 치즈는 반드시 먹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종류도 다양하고 품질도 우수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필자의 경우 치즈를 무척 좋아한다. 여행을 다닐 때면 꼭 여러 가지 치즈들을 숙소로 사들고 와서 맛보곤 했다. 국내에도 다양한 치즈가 수입되지만 현지 가격보다 비싼 데다 생젖으로 만든 치즈들은 현재 국내법상 수입이 금지돼 있어 늘 아쉬웠다. 그러니 프랑스 툴루즈 어학연수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치즈였다.프랑스의 치즈 상점에 들르면 먼저 다양한 종류에 압도당한다. 프랑스 제5
코로나19 백신으로 숨통이 트이고 있지만 이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미국, 인도, 브라질에 이어 현재 환자 발생 수에서 세계 4위이다. 최근 빠른 속도로 하향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는 각종 지표가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엄격한 이동 제한 및 사회 봉쇄령의 시행과 해제를 반복하다 지난 1월 31일부터 3차 봉쇄령을 발표했다. 골자는 EU(유럽연합) 비회원국 및 프랑스 간 비필수적 입출국 금지(이후 EU 국가에도 적용), 모든 입국 시 PCR(유전자증폭)검사 음성
프랑스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대면 수업이 가능한가였다. 작년 페루에서의 스페인어 연수는 팬데믹으로 인한 국가비상사태 선언으로 어학원이 폐쇄되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프랑스어 연수는 대면 수업이 불가능하다면 선뜻 나설 수 없는 일이었다. 온라인 수업이 아무리 장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학 공부의 특성상 대면 수업이 주는 현장감과 효율성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툴루즈 현지 어학원에서는 대면 수업을 진행한다고 공지를 한 상태였으나 프랑스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일로였기 때문에 언제 어학원 폐쇄
‘장미빛 도시’ 툴루즈를 상징하는 색깔이 붉은색만은 아니다. 한때 푸른 금이라고도 불리며 경제를 윤택하게 만들었던 천연 쪽빛 염료의 재료 파스텔이 툴루즈를 대표하는 색깔이다. 파스텔(pastel)은 우리말로 대청(大靑)이라고 불리는 노란 꽃의 십자화과 식물로 그 잎에서 질 좋은 청색 염료가 얻어진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이런 특성이 알려져 있던 파스텔은 역사적으로는 옛날 브리튼, 즉 켈트족 전사들이 출정할 때 얼굴에 바르는 안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툴루즈의 경우 자연조건이 적합한 남동쪽의 로라게 지역에서 12세기부터 이미 많이
프랑스의 행정구역에는 가장 큰 단위로 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레지옹(région)이 있다. 모두 18개의 레지옹이 있는데 그중 13개가 코르시카섬을 포함하여 프랑스 본토에 있고 나머지 5개는 옛 식민지들이었던 해외 영토에 속한다. 툴루즈는 이 중 프랑스 남서쪽에 위치한 옥시타니(Occitanie) 레지옹의 주도이다. 인구 순으로 보자면 파리, 마르세유, 리옹에 이은 프랑스 제4의 도시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옥시타니주는 20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랑독-루시옹주와 미디피레네주가 합병되어 만들어졌다.옥시타니주에
프랑스어 관련 능력시험 중에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치러지고 최고의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DELF(델프)’ ‘DALF(달프)’다. 프랑스 교육부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언어구사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 인증하는 제도로 1985년 처음 시행됐다. 1992년에 한 차례 개정됐다. 2005년 9월부터는 유럽위원회(Conseil de l’Europe) 내의 언어정책 부서가 내놓은 ‘유럽 공용 외국어 등급표’에 따라 인정 급수가 A1, A2, B1, B2, C1, C2의 여섯 단계로 나뉘었다. 프랑스 현지
지난 4월 25일, 드디어 프랑스 남서부의 도시 툴루즈(Toulouse)에 도착했다. 작년 페루 리마에서의 스페인어 연수에 이은 ‘4개국 어학연수 대장정’의 시즌2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페루 연수는 국가비상사태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 치열했던 과정은 주간조선의 귀한 지면을 통해 현지 소식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고, 이제 한 권의 책으로도 정리되어 곧 출간할 예정이다.지난해 11월 페루에서 귀국 후 5개월여간의 재충전을 마치고 다시 프랑스어 연수에 도전했다. 그동안 고심 끝에
한바탕 긴 꿈을 꾼 것 같다. 지난 3월 8일, 3개월간의 스페인어 연수를 목적으로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11월이 돼서도 리마에서 이런 글을 쓸 줄은 몰랐다. 원래 계획은 4개국 어학연수, 일명 ‘3·3 프로젝트’였다.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로 명예퇴직을 하고 2020년 3월부터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의 순서로 3개월 현지 어학연수, 3개월 재충전을 반복하는 총 2년간의 일정을 계획했다. 15년 동안 4개 외국어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던 노력에 대한 내 나름의 ‘체면을 살리는 일
이것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을 운명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학창 시절 시험 목적 외에 외국어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특히 제2외국어는 할 이유가 없었다. 의대 교수에다 대학병원 의사라는 안정된 조건에서 영어 하나면 충분했다. 2003년 어느 봄날, 내 인생을 바꿀 하나의 생각이 마음 한곳에 내려앉았다. ‘나이 오십인데 더 늦기 전에 외국어 하나 더 배워두면 보람도 있고 혹 도움이 되지 않을까?’그즈음 대학과 병원에서 시니어 그룹에 속하다 보니 시간 활용도 자유로웠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일본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스페인어나
페루의 정치·경제 컨설팅 업체이자 여론조사 업체인 복스포풀리(Vox Populi)의 고문 이름으로 최근 흥미로운 통계자료가 발표됐다. 지난 5월 31일까지 페루의 코로나19 사망자수는 4506명으로 공식 발표됐는데, 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1만7141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4~5월 두 달 동안 페루의 사망자 신고 건수가 예년 평균 1만8127명인 데 반해 올해는 3만5268명이 신고됐다고 한다. 따라서 예년 평균 사망자수를 제외한 1만7141명이 코로나19 희생자라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페루의 코
최근 페루 수도 리마의 한 과일시장 상인 164명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에서 무려 90%가 양성으로 나왔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유럽, 미국에 이어 남미가 코로나19의 새로운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남미에서도 특히 페루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5월 25일 현재 페루의 총 확진자는 12만3979명이고 사망자는 3629명이다.무려 두 달 반에 걸친 국가비상사태와 엄격한 사회격리 조치에도 불구하고 환자 증가세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폭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국가비상사태로 식당 폐쇄가 장기화하면서 페루 국민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뭘까? 다름 아닌 닭 요리다. 페루에는 닭 요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포요 알 오르노(Pollo al Horno·오븐구이 닭), 포요 알 시야오(Pollo al Sillao·간장양념 닭), 포요 알 비노(Pollo al vino·와인양념 닭), 포요 아 라스 피나스 이에르바스(Pollos a las Finas Hierbas·향신료 닭) 등에다 심지어 콜라로 양념을 한 포요 아 라 코카콜라(Pollo a la Cocacola)까지 있다. 닭고기는 무엇보
지난 5월 8일 결국 페루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은 네 번째 국가비상사태 연장을 발표했다. 5월 10일 끝날 예정이었던 강제 사회격리와 야간 통행금지를 5월 24일까지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 발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착잡하다. 매일 3000명 이상 새로운 감염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많지만, 바이러스가 아니라 굶어 죽겠다는 불만도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상당수 빈민층은 정부의 조처에 관계없이 생계를 위해 거리에 나서고 있어 사회격리 조치를 무색게 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의 비협조를 탓하고,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