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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52호]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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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통신]‘더 프롬’서 춤추고 노래 부른 메릴 스트립

LA=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메릴 스트립(71)은 곱게 늙은 모습이었다. 얼굴에 삶의 예지가 가득해 보였다. 스트립은 질문에 종종 “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면서 자상하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평화로운 얼굴을 영상으로나마 대하니 인터뷰하는 사람의 마음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스트립은 브로드웨이의 동명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더 프롬’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의 슈퍼스타 디 디 알렌으로 나와 춤추고 노래 부른다. 넷플릭스가 만든 이 영화에는 즐거운 노래와 신나는 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니콜 키드먼이 함께 공연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수용을 촉구한 이 영화의 감독 라이언 머피도 동성애자다.
   
   스트립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영상 인터뷰를 마치고 손키스로 작별을 고했다. 슈퍼스타인데도 매우 겸손한 사람이다. 스트립은 영화 촬영차 머물고 있는 보스턴 인근의 버크셔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 뮤지컬 영화 ‘더 프롬’의 한 장면.

   - 당신의 첫 프롬(주로 고등학교 2~3학년이 끝날 때 갖는 댄스파티)을 기억하는가. “물론이다. 내가 14세 때였다. 18세 고등학교 3학년생이 파트너였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는데 흥분에 들떴었다. 파트너가 차를 갖고 와 나를 태웠는데 의자에 힘주어 앉다가 드레스의 줄이 끊어져 밤새 드레스가 흘러내리지 않게 손으로 잡고 춤을 춰야 했다.”
   
   - 자신이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따로 있는가. “인생에서 내가 있어야 할 상황에 항상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 만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니 난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다. 평생 내가 운이 좋다는 것을 알고 살아왔으며 그저 감사할 뿐이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젊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페라를 사랑하지만 사실 오페라 가수가 될 만한 음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저 노래 부르기를 사랑한다. 노래 부르기는 나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다.”
   
   - 디 디 알렌은 자만에 가득 찬 나르시시스트인데 나르시시즘을 어떻게 보는가. “영화나 연극 등 쇼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 나르시시스트라고 봐도 좋다. 자신에 대한 큰 불안정을 감추기 위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사적으로는 수줍음을 타는 사람들이다. 나르시시즘은 그들이 실제 생활에서 가질 수 없는 기회를 무대가 주는 것일 뿐이다. 어쨌든 나는 이 영화에서 밉상스럽고 기고만장한 나르시시스트 역을 하면서 신나게 즐겼다. 지나치게 자만에 가득 찬 사람들은 대부분 우스꽝스럽기 마련이어서 쇼에서 자주 희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 영화에서 디 디 알렌은 동성애 친구를 프롬에 동반하는 걸 금지당한 여학생을 돕자는 명목으로 학교를 방문하는데, 당신은 주위에서 성적 기호로 인해 차별대우를 받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던 남자 음악 선생님이 성전환 후 파면을 당했다.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선생님은 파면당했지만 인간성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의 이런 경험이 나로 하여금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들었다.”
   
   - 당신의 디바(프리마돈나) 역을 위해 무대의 실제 디바로부터 영감이라도 받았는지. “난 늘 무대의 위대한 여배우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연기해왔다. 예일대 4학년 때 공부할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기차를 타고 뉴욕에 가서 라이자 미넬리의 뮤지컬 ‘라이자 위드 Z’를 본 적이 있다. 학교 공부와는 달리 제일 싼 자리에 앉아 라이자의 공연을 보면서 무대와 연기와 공연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연기란 단순히 삶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추진력과 함께 관대함을 지닌 그 무엇을 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배우가 된 뒤에 라이자를 만나 그의 연기가 내 생애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말한 바 있다.”
   
   - 영화는 자기 것과 다른 것에 대한 수용과 관용을 말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만족에 빠진 과대망상증자 역을 하기가 즐거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메시지다. 영화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인 이른바 ‘수용’이라는 것이다. 난 영화에서 자기 딸의 동성애를 수용하는 어머니와 딸의 화해 장면을 보면서 울었다. 많은 가족에게 이런 수용의 마음을 줄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한 것이 자랑스럽다. 성적 기호로 인해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가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불관용 대신 사랑으로 아이들을 인도해 주길 바란다.”
   
   - 오스카상 수상자로서 이 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론이다. 자기 일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뜻있는 일이다. 사람들로부터 자기가 한 일이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 어렸을 때 TV로 옛날 영화를 많이 봤다고 들었는데 어떤 영화들이 기억나는가. “매주 목요일 방과 후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오후 4시에 방영하는 1940년대 흑백영화들을 즐겨 봤다. 특히 베티 데이비스와 캐서린 헵번, 바바라 스탠윅 등 여주인공들이 남자들을 입심으로 혼내주는 영화들을 즐겼다. 여자들이 2류 시민 취급을 받던 그때 그들이 보여준 용기는 참으로 가상한 것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여권 운동의 선구자들이라고 하겠다.”
   
   - 당신과 함께 일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당신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디바의 모습과는 달리 함께 일하기가 아주 편안하고 쉽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난 스스로를 일하는 배우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연기란 듣고 느끼는 일만 기준으로 자기 위치를 다른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놓아야 한다. 따라서 연기를 제대로 하자면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딸들도 배우인데 어머니에게 자문이라도 구하는가. “딸 셋이 다 배우인데 내게 자문을 구하기보다 자기들끼리 논의해 역을 고르고 있다. 그들의 불문율은 ‘엄마에게 말하지 마’여서 좀처럼 나를 찾지 않는다.”
   
   - 그 나이에 영화에서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데 어디서 그런 활력이 나오는가. “촬영이 끝나고 다섯 달 동안 무릎이 아파 혼났다. 훌륭한 댄스 교사가 지도했는데 그는 기술이 탁월할 뿐 아니라 인내심과 포용력도 큰 사람이었다. 아주 힘들었지만 머피는 우리를 지칠 만큼 혹사하지는 않았다. 폐활량이 허락하는 대로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수없이 반복해 댄스 장면을 찍었다. 정말로 힘과 스태미나가 필요했다. 그래서 폐활량을 조절하기 위해 일주일에 닷새 동안 매일같이 1마일씩 수영을 했다. 그것이 큰 도움이 됐다.”
   
   -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대신 스트리밍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집에 대형 스크린과 훌륭한 음향시설을 갖춘다는 것은 다소 돈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영화를 만든 영화인들로서는 자신들의 영화가 집에서라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 다시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게 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 경험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의 피를 잃는 것과도 같다.”
   
   - 당신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당신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버거웠겠지만 이제는 그에 대해 익숙해진 상태다. 아이들은 그것을 우아하고 관용하는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 명성이 내 잘못 때문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언론이 나에 대해 어떻게 쓰든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내게 있어 아이들은 모든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인도하고 있다. 세상과 윤리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충고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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