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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7호]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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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이건희 컬렉션이 역사 속에서 불러낸 이름들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2021-05-12 오후 5:08:18

▲ 메디치가가 300년간 모은 미술품을 모두 피렌체시에 기증한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942~ 2020)의 유족이 지난 4월 28일 고인이 수집한 값진 미술품 2만3000점을 고인의 뜻에 따라 국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18세기 진경산수화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고려불화인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등은 값을 매기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초고가로 거래되는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등의 대표작들은 물론 세계적 대가인 모네, 피카소 등의 걸작들도 포함되어 있다. 일부에서는 기증작들의 총가격을 2조원가량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그 가치는 앞으로 계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가이며 방대하기 때문에 보관과 전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견해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29일 “별도의 전시실이나 특별관” 마련을 검토하도록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별도의 수장고 건립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계 일부에서는 국내 근현대 회화 작품들만 한데 모아 전시하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외국에서는 개인이 고가의 미술품을 많이 기증할 경우 분산시키지 않고 별도의 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한곳에 모아 전시하는 것이 관례다. 이를 통해 기증자를 기리는 한편 국가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대규모 미술관을 건립하고 값비싼 미술품들을 구입하여 자국의 위신을 과시해왔다. 프랑스의 루브르, 스페인의 프라도, 러시아의 에르미타주의 소장품들은 대부분 국가재정으로 구입한 것들이다. 루브르의 대표적 소장품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자리자’는 16세기에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가 구입한 것이다. 스페인의 프라도미술관은 18세기에 국왕 카를로스 3세의 지시에 따라 설립되었다. 당시 국왕은 스페인의 회화 수준이 프랑스 등 선진국들 수준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하여 미술관을 건립했다.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미술관의 수집품 가운데 유럽의 명작들은 대부분 러시아제국 전성기 시절 황제들의 컬렉션이다. 로마 교황청의 바티칸박물관 소장품들도 역대 교황들의 컬렉션이다.
   
   
▲ 바사리가 그린 로렌초 메디치 초상화. 예술 애호가답게 고대의 미술품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메디치 가문의 우피치미술관
   
   국가를 대표하는 미술관들 가운데는 이건희 회장의 경우처럼 민간인이나 기업인들이 기증한 것들도 많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은 르네상스를 후원한 메디치 가문의 상속인이 기증한 것이다. 건물 자체가 16세기 메디치 가문의 수장인 코시모 메디치의 지시에 따라 세워졌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했다. 2층은 사무실, 3층은 처음부터 미술관으로 설계되었다.
   
   메디치가는 피렌체는 물론 이탈리아 정치에 군림하며 위세를 떨친 300년 동안 르네상스 화가들의 최고 명작들과 고대 로마시대 조각품들을 두루 수집하였다. 우피치미술관에는 고대 조각상들을 배경으로 바사리가 그린 로렌초 메디치의 초상화도 있다. 로렌초가 열렬한 예술품 수집가이자 애호가라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하여 그린 작품이다.
   
   18세기에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인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1667~1743)가 우피치에 보관된 소장품 중 단 하나라도 피렌체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건물과 함께 소장품 전체를 시에 기증했다. 우피치는 안나 마리아 사망 16년 후에 일반에 개방되었다. 지금도 우피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미술관 중의 하나로 피렌체 관광산업의 핵심이 되고 있다. 우피치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대가들의 개별 전시실이 있을 정도로 르네상스의 명품들이 즐비하다. 유명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 카라바조의 ‘메두사’ 등도 전시돼 있다.
   
   
▲ 러시아 화가 레핀이 그린 파벨 트레티야코프 초상화. 자신이 수집한 많은 회화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의 13만여점
   
   러시아에는 19세기 부유한 기업인이던 파벨 트레티야코프(1832~1898)가 기증한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이 있다. 트레티야코프는 사업가 집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 섬유 수입 판매와 면방직공장을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모스크바에 은행도 설립하였으며 부동산에도 적극 투자하여 모스크바에 널따란 저택 5채를 구입했다.
   
   트레티야코프는 20대 시절부터 러시아 역사와 러시아인들의 일상을 표현한 작품들을 집중 구입하였다. 트레티야코프는 당시 소재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아카데미 소속 화가들보다는 민중들을 위한 순회 전시회를 벌이는, 사회비판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갖춘 사실주의 화풍의 작가들을 좋아하였다. 트레티야코프는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뿐만 아니라 화가가 그리고 있는 작품들도 무더기로 구입하였다. 그는 페로프, 레핀, 수리코프, 세로프 등의 작품 전체를 구입해 보유하였으며, 노년에 들어서는 러시아정교회의 성화(聖畫)들도 수집하였다. 트레티야코프는 모스크바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는데 1892년에 자신과 형제들의 수집품 2000여점과 미술관을 모스크바시에 기증했다. 그의 미술관은 이후 러시아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볼셰비키혁명 이후 소련은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이를 증축, 확대하였다. 현재 트레티야코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은 13만여점에 이른다. 트레티야코프미술관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는 1980년에 스탈린 동상을 철거한 자리에 세운 것이다. 트레티야코프의 묘지는 러시아 최고의 국립묘지로 통하는 노보데비치사원에 자리 잡고 있다.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의 전시작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가 레핀이 그린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1581년 11월 16일’이다. 이반 뇌제가 아들을 때려 죽인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레핀은 1881년 알렉산더 2세 황제가 ‘민중의 의지’라는 혁명단체의 테러로 사망하자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 그림은 알렉산더 3세의 분노를 사서 전시가 금지되었다. 그후 트레티야코프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데 2018년까지 세 차례나 관람객에게 훼손되는 기록을 남겼다.
   
   레핀은 트레티야코프의 초상화도 남겼다. 트레티야코프는 자신의 자선 행위가 알려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초상화를 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레핀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잡았다고 한다. 로렌초 메디치 초상화처럼 미술작품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러시아의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이반 모로조프 초상화. 현재 러시아가 소장한 프랑스 근대 화가 작품들의 대부분은 그가 수집한 것이다.

   수리코프의 ‘처형의 날 아침’도 널리 알려진 역사화이다. 1698년 피터 대제에 대한 반란을 꾸미던 경비대원들을 처형하기 직전의 광경을 담은 역사화이다. 말에 올라타 노한 표정으로 처형을 지시하는 피터 대제는 전제주의 왕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로프의 ‘소녀와 복숭아’는 러시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인상주의 화풍이지만 세로프는 프랑스에서 인상주의가 대두하기도 전에 그렸다.
   
   러시아의 부유한 사업가인 이반 모로조프(1871~1921)는 서유럽의 명작들을 수집했다. 현재 러시아가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근대 화가 작품들의 대부분은 모로조프가 수집한 것들이다. 섬유업으로 대부호가 된 집안 출신의 모로조프는 1차대전 당시 군복을 납품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는 서유럽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전시회에 참석하면서 모네, 마티스, 르누아르, 고흐, 피카소 등의 대표작 250점을 수집해 모스크바의 저택에 보관하였다. 소련 공산정권은 모로조프의 컬렉션을 국유화하고 모스크바의 저택을 박물관으로 지정했다. 이후 모로조프는 박물관의 부관장으로 임명했다. 모로조프 사망 이후 공산정권은 컬렉션을 모스크바의 푸시킨박물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박물관 등에 분산했다. 공산정권은 모로조프 컬렉션 일부를 서구에 판매하기도 했다.
   
   소련은 공산혁명 이후 부족한 외화를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모로조프 컬렉션뿐만 아니라 왕족, 귀족, 기업인, 교회 등으로부터 국유화한 미술품들을 해외에 팔았다. 미국 워싱턴DC의 국립미술관은 당시 대부호 앤드루 멜론이 소련 당국으로부터 구입하여 기증한 명화들을 바탕으로 건립되었다.
   
   
01 수리코프가 그린 ‘처형의 날 아침’.
02 레핀이 그린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03 러시아 회화 작품 중 최고로 평가되기도 하는 세로프가 그린 ‘소녀와 복숭아’.
04 소련의 명화들을 대거 사들여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기반을 닦은 앤드루 멜론.
05 앤드루 멜론이 소련에서 사들인 라파엘의 ‘알바 마돈나’.

   소련 미술품 사들인 앤드루 멜론
   
   1928년 소련 공산당은 독재자 스탈린의 지시로 에르미타주박물관 등에 수출 가능한 미술품 목록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은 250개의 수출 가능 미술품 목록을 작성했는데, 소련에 최고가를 지불하며 미술품을 사들인 인물이 미국의 대부호인 앤드루 멜론(1855~1937)이다. 은행가 집안 출신의 멜론은 금융, 제철, 석유, 전자, 조선, 양조업 등 요즘 우리말로 표현하면 문어발 식으로 기업을 확장한 기업가이자 대부호였다. 그는 정계로도 진출해 재무장관도 지냈으며 자선사업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그가 세운 연구소는 나중에 카네기가 세운 연구소와 통합되어 카네기멜론대학이 되었다.
   
   30대부터 미술품을 수집한 멜론은 주영 대사를 지내던 중 소련의 미술품 판매 소식을 들었다. 그는 1931년까지 모두 665만달러를 들여 21점의 명작을 구입했다. 그중 라파엘이 1510년에 그린 ‘알바 마돈나’는 러시아제국의 니콜라이 1세 황제가 스페인의 알바 가문으로부터 사들인 것으로,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품 중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다. 멜론은 ‘알바 마돈나’를 당시까지 미술품 거래사상 최고가인 116만6400달러에, 얀 반 에이크의 명작 ‘수태고지’는 50만2899달러에 구입했다. 소련의 미술품 해외 수출은 다음해에 에르미타주박물관의 오르벨리 부관장이 목숨을 걸고 스탈린에 항의서한을 보낸 다음에야 중단되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가 외화부족으로 경제난에 처했을 때 러시아 의회는 당시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미술품의 해외수출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앤드루 멜론은 1937년 루스벨트 미 대통령에게 소련으로부터 구입한 명작 21점과 미술관 건립 비용을 기증하는 대신 미술관 운영은 자신이 하고 운영비는 정부가 지출하는 조건으로 미술관 건립을 제안하였다. 당시 멜론은 탈세 논란이 일기도 하였지만 루스벨트 대통령과 의회는 멜론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여 관련법도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워싱턴DC에 국립미술관이 건립되어 1941년에 개관하였다. 그후 앤드루 멜론을 기리는 음악당과 건물들이 건립되었으며, 트루먼 대통령은 1952년 워싱턴DC에 앤드루 멜론 기념 분수를 헌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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