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도시’ 툴루즈는 붉은 벽돌 건물들이 즐비하다.
‘장밋빛 도시’ 툴루즈는 붉은 벽돌 건물들이 즐비하다.

프랑스의 행정구역에는 가장 큰 단위로 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레지옹(région)이 있다. 모두 18개의 레지옹이 있는데 그중 13개가 코르시카섬을 포함하여 프랑스 본토에 있고 나머지 5개는 옛 식민지들이었던 해외 영토에 속한다. 툴루즈는 이 중 프랑스 남서쪽에 위치한 옥시타니(Occitanie) 레지옹의 주도이다. 인구 순으로 보자면 파리, 마르세유, 리옹에 이은 프랑스 제4의 도시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옥시타니주는 20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랑독-루시옹주와 미디피레네주가 합병되어 만들어졌다.

옥시타니주에는 하위 행정구역으로 모두 13개의 데파르트망(Département)이 있다. 툴루즈는 그중 오트가론 데파르트망에 속해 있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680㎞ 정도 떨어져 있는데, 프랑스 4대 강의 하나인 가론강 변에 위치한다. 남서부 최대의 교통, 산업, 문화의 중심지로 미국의 보잉사와 함께 세계 항공산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에어버스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툴루즈는 오래전부터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기원전 2세기 로마에 정복되면서 군사 전초기지가 들어서게 되고 이때부터 톨로사(Tolosa)라는 옛 이름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로마의 쇠락과 함께 5세기에는 서고트(Visigoth) 왕국에 함락되어 중요한 거점도시가 되었다가 6세기에 들어서는 왕국의 수도로까지 번성한다. 9세기 카롤링거 왕조의 지배하에서 툴루즈 백작령이 만들어지고 그 후 12세기 말까지는 프랑스 북부 왕정의 간섭에서 떨어져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1229년에 파리조약에 의해 툴루즈 백작령은 무너지고 1271년 프랑스 왕국으로 완전히 합병된다. 중세 말기부터는 곡물·섬유 무역과 함께 파스텔(pastel) 염료 산업이 폭발적 성장세를 이루면서 경제·문화적으로 번영하는 가운데 크고 작은 부침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툴루즈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카피톨 광장
툴루즈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카피톨 광장

툴루즈는 흔히 프랑스어로 ‘라 빌 로즈(La ville Rose)’, 즉 ‘장밋빛 도시’로 불린다. 시청, 성당 등 대표적인 건축물을 비롯해 일반 주택까지 붉은 벽돌을 사용한 건물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핑크 시티’로 번역되고 있는데 엄격히 말하자면 핑크빛의 밝은 분홍색은 아니고 짙은 붉은색이나 옅은 적황색을 띤다.

역사적으로 툴루즈에서 붉은 벽돌을 건축재로 사용한 것은 로마의 지배하인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당시 톨로사로 불렸던 이곳은 도시를 관통하는 가론강이 오랫동안 천천히 이동하면서 범람한 결과로 건축용 돌은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점토가 풍부했다. 그래서 점토로 만든 벽돌로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 점토에 철산화물의 농도가 높아 붉은색을 띠었다.

툴루즈의 붉은색 건물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론의 여지없이 도심 중앙 카피톨(Capitole)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이다. 이 중에서도 시청이 있는 툴루즈의 심장 카피톨이 단연 으뜸이다. 카피톨은 1190년에 짓기 시작해 17세기 들어서야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면서 애초의 건물들은 다 없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은 카피톨 탑뿐이다. 1725~1730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 신성로마제국 샤를 4세의 군대로부터 사람과 문서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카피톨의 압도적인 모습은 정면이지만 내부의 찬란함도 이에 못지않다. 현재는 툴루즈시청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웬만한 궁전에 뒤지지 않는다. 팬데믹 이전에는 관광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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