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발탁된 인사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이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여러 명 된다.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로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경우다.

그중 한 사람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김동연씨다. 언론에 알려진 대로 김 후보자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성공한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될 때 그의 직책은 아주대 총장이었다. 어떤 리더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조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이뤄진다. 김 후보자가 부총리로 지명돼 학교에 사표를 내자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학생들은 “총장님, 아주대를 떠나지 마세요”라고 울먹였다. 학생들에게 총장은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어려운 존재다. 감히 범접하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김동연 후보자는 아주대 총장 시절 학생들과 가깝게 지냈다.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썼다. 장관을 지내다 대학총장으로 간 사람들 중에는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는 달랐다.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넓은 세계를 보게 하려 영문 편지를 썼다. 학생들은 총장이 진심으로 학생들 편에서 노력해왔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누구든 승승장구하면 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출세한 사람이 조직 내에선 세평(世評)과는 다른 평가를 받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경기고-서울대’ 출신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가 곧잘 나온다. 그런데 김동연 후보자에게서는 그런 오만과 독선을 느끼기 힘들었다. 좋은 스펙으로 승승장구했다는 사람을 만나 보면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자기자랑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알려진 대로 그는 서울 청계천 판자촌 출신의 소년가장이었다. 덕수상고를 나와 서울신탁은행에 입사했다. 일하면서 국제대학(야간)을 다니며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며 야간대학을 다녔고 고시에도 합격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는 언제나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표를 정해 자신을 연마하고 채찍질했다.

그는 젊은날의 고난과 시련을 ‘위장된 축복’이라고 강조한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성숙한다는 뜻이리라. 모든 사람이 시련을 보약으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젊은날의 어려웠던 시간을 삶에 대한 용기로 전환했다. 그는 이를 ‘유쾌한 반란’이라고 부른다. 나는 김동연 후보자와 인터뷰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내면의 깊이에 감동하곤 했다. 젊은날의 작은 시련을 평생 울궈먹으며 대한민국을 욕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엇이 그를 이렇게 격(格)이 다른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그는 독서광이다. 특히 인문 분야의 책을 많이 읽는다. 아주대 총장 시절 그는 총장실에 ‘걸리버 여행기’를 수십 권씩 쌓아놓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꼭 읽어 보라며 선물하곤 했다. 혹시 독서가 그의 깊이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학생들에게 ‘No 1’이 아닌 ‘Only 1’이 되도록 노력하길 강조했다. ‘No 1’의 길에는 경쟁과 질투가 있지만 ‘Only 1’의 길에는 소신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지론(持論)이다. 아주대로서는 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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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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