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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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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의 正眼世論]영남의 전략적 투표는 불가능한가?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jayho63@gmail.com

▲ 지난 2월 18일 오후 대구 북구 산격동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지지자들이 김진태 당대표 후보를 연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7일에 끝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결과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첫째, 민심과 당심의 심각한 괴리 현상이다. 오세훈 후보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50.2%를 얻어 37.7%를 얻은 황교안 후보에 앞섰으나, 당원 투표에서 22.9%의 부진한 득표율로 55.3%를 얻은 황교안 후보에 합계 18.9%포인트 차로 대패했다. 역대 전당대회에서 민심에서 앞선 후보가 당심에서 밀려 대표가 되지 못한 경우가 있었으나, 이번만큼 격차가 크진 않았다. 둘째, 저조한 당원 투표율이다. 25.4%라는 수치는 2017년 7월 홍준표 후보가 당선되었던 전당대회 투표율 25.2%와 비슷하다. 세간의 관심과 이목의 집중도로 보면 비교가 안 되는 두 전당대회(2017년 당시 홍준표 후보와 경합했던 인물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의 투표율이 비슷하다는 것은 투표의욕을 상실한 당원들이 꽤 많았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이번 전당대회는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다수 당원들로부터도 외면받은 ‘그들만의 잔치’였다.
   
   정당은 구성원의 포괄범위에 따라 국민정당과 지지자정당으로 구분된다. 지지자정당은 뚜렷한 자기 색깔로 비교적 폭이 좁은 지지층을 형성한다. 이러한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각책임제와 다당제라는 제도적 환경과 연립정권 수립이라는 정치 문화가 필요하다. 독일의 자유민주당(FDP)이 대표적 사례다. 사회민주당(SPD)의 헬무트 슈미트 내각부터 기독교민주당(CDU)의 헬무트 콜 내각에 이르기까지 무려 18년(1974~1992) 동안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한스 디트리히 겐셔는 자유민주당의 총재였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와 양당제라는 승자독식의 정치 환경에서 지지자정당을 지향하는 것은 한마디로 집권을 포기하고 만년야당을 자처하는 것에 다름없다. 지지자정당과 달리 국민정당은 단독집권을 위해 다양한 구성원을 끌어안는 포괄정당(catch-all party)을 지향하며 중원(中原) 장악에 심혈을 기울인다. 자유한국당은 당연히 국민정당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는 ‘한국당의 정의당화(化)’를 보여주었다. 정의당이 좌파 지지자정당이라면, 한국당은 우파 지지자정당이 되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경포당(경제를 포기한 정당)’, 한국당은 ‘집포당(집권을 포기한 정당)’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승자독식의 제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전략적 투표’가 필수적이다. 전략적 투표는 후보자에 대한 좋고 싫음의 선호도가 아니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 일시적 자기만족의 유혹에서 벗어나 선거 형세를 냉철히 분석하여 최종 승리를 위한 전략적 판단과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한국 선거사(史)에 있어 전략적 투표로 유명한 곳은 호남이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킨 호남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최적의 후보 찾기로 고민하였다. 한화갑·정동영이라는 호남 출신 후보가 있었지만 본선 경쟁력이 의심되었고, 같은 백제권인 이인제 후보에 대해서도 미덥지 않게 여겼다. 결론은 부산 출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전략적 지지였다. 당장의 감성적 선호보다 상대방을 꺾을 수 있는 경쟁력을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광주의 노풍(盧風)’이 대세를 판가름 지었다. 그해 겨울 노무현은 부산·경남에서 5년 전 김대중이 얻은 득표율의 두 배가량을 획득한 데 힘입어 이회창을 2.33%포인트 차로 누르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였다.
   
   호남의 전략적 투표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만년야당의 신세를 면해 보고자 한 절치부심(切齒腐心)에서 비롯되었다. ‘호남+PK 상당부분’이라는 성공 공식은 문재인 당선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호남의 전략적 투표는 새로운 패턴을 만들며 한국 정치의 상수(常數)로 자리 잡았다. 1990년 YS의 3당 합당 이후 절대 열세에 놓여 있던 선거 구도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남은 어떠한가? 최근의 행동 패턴을 보면, 이해찬의 장기집권론이 단지 주관적 희망만은 아님을 느끼게 한다. 2002년 광주가 이방인 노무현을 영입하여 노풍의 진원지 역할을 했던 반면, 2016년 대구는 ‘헌법보다 의리’라는 봉건적 가치관을 앞세운 진박 소동의 진원지였다. 광주가 덧셈 정치를 한 반면, 대구는 뺄셈 정치를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재현되었다. 전체 투표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영남 당원들의 감성적 표심이 판세를 좌우하였다. 영남 당원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반 민심과의 현격한 괴리로 인해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다. 태극기부대의 발흥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민주당에 이득을 안겨다주는 ‘이적행위’로 귀결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이 냉엄한 정치현실이다.
   
   
   이제 영남도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우리처럼 양당제 문화를 지닌 영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9년 보수당에 정권을 내준 이래 대처리즘의 기세에 눌려 맥을 못 추고 있던 노동당은 1994년 41세의 토니 블레어를 당 대표로 선출한 후 1997년 5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18년 만에 정권을 교체하였다. 승리의 비결은 ‘제3의 길’에 있었다. 블레어는 당 대표가 된 후 1918년부터 노동당 정책의 대명사였던 당헌4조 국유화 강령을 폐기하는 등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파격적 변신을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들은 그를 토리당(보수당의 옛 이름)에 빗대어 ‘토리 블레어’라고 비꼬기도 하였으나, 일반 여론은 그를 비전과 결단력, 카리스마를 겸비한 새 시대의 지도자로 칭송하였다.
   
   반대로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에 3연패 당하고 위기에 처해 있던 보수당은 2005년 39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 대표로 선출한 후 당을 재정비하여 2010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13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캐머런이 내건 비전은 ‘시민보수주의(civic conservatism)’였다. 개인과 가족과 지역사회에 자신들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되돌려주는 것, 그럼으로써 책임과 기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따뜻한 보수주의자를 표방했던 캐머런은 자신이 대처의 열렬한 팬이기는 하지만, 대처리즘을 추종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반면 자신을 ‘토니 블레어의 계승자’라고 묘사하였다. 그는 2004년 10월에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정당의 목표는 집권에 있고, 집권의 길은 중도에 있다. 이제 영남도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다수파 형성에 보탬이 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보수의 심장, TK가 분발하여야 한다.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투표 행태를 이어나갈 경우, 보수의 성지가 아니라 만년야당의 진원지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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