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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7호]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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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과잉각성’ 문재인 시대, 당신은 괜찮습니까?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지난 12월 7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이날 문 대통령은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photo 뉴시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슴들이 표범에게 쫓기고 있다. 놀란 사슴들은 표범이 추격을 포기할 때까지 죽어라 달린다. 일단 위험이 지나가면 사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이것이 바로 동물의 세계다.
   
   사람을 포함해 동물은 낯선 적이 출현하거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닥치면 본능적으로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을 보인다. 이 말은 심리학적 용어로 긴박한 위협 앞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각성 상태를 말한다. 즉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우려 들거나, (상대방이 너무 강한 것 같으면) 36계 줄행랑을 칠 준비를 하며 거기에 맞게 몸을 최적화한다.
   
   신경생리학적으로 보면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 중 ‘국방부’ 내지 ‘가속기(accelerator)’ 역할을 하는 교감신경계가 주도권을 잡아 근육을 긴장시키고 필요한 에너지를 총동원한다. 호흡과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근육이 긴장되고 내장이 비상사태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종료되면 교감신경계는 뒤로 물러나고 ‘문체부’ 내지 ‘브레이크(brake)’ 역할을 하는 부교감신경계가 나서서 이완·평정·휴식을 제공해 몸을 정상 상태로 되돌린다.
   
   원시시대 때 인간도 이런 ‘투쟁-도피’ 및 이완 본능에 충실했다. 그러나 문명화되고 머리를 많이 쓰는 지금 현대인들은 그렇지 않다. 늘 긴장·불안해하고 쫓기며 살고 있다. 인간의 뇌는 호랑이 같은 외부의 큰 위협과, 불안·걱정·창피 등 내부의 작은 스트레스를 구별하지 못하고 똑같이 반응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이나 회사 동료들에게도 때로 ‘긴장’과 ‘위협’을 느낀다. 놀러가서도 회사 일 걱정하고, 밤에 잠도 잘 못 잔다. 24시간이 ‘투쟁-도피’ 상황인 것이다.
   
   항상 스트레스 속에 살다 보니 육체와 정신은 지치고, 생활의 흥미와 기쁨이 사라진다. 에너지는 한도 초과돼 번아웃(burnout·소진) 상태로 간다. 자율신경계 역시 평시와 전시를 구별하지 못하고 헷갈리는 반응을 하다가 결국 총체적 부실대응으로 이어져 면역계·신경계·혈액순환계 질병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구촌 문명사회의 현실이다.
   
   사소한 일에도 마치 호랑이를 만난 것처럼 투쟁-도피 모드로 살아가는 양태를 전문 용어로 ‘과잉각성(hyper-arousal)’이라고 부른다. 근육은 늘 긴장하고 공포, 불안, 격노 등의 강력한 정서가 유발된다. 신경계도 위협이나 순간적 반응에 필요한 아드레날린(에피네프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잉 배출한다. 교감신경계의 가속기 페달을 계속 밟으니 심신은 쉴 틈이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만성적 각성’에 빠지게 된다.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 살지만 심리적으로는 위험한 정글에서 사는 것이다. 이들에게 평온·안정·휴식·행복은 거리가 멀다. 스트레스에 대한 현대인들의 잘못된 대처 양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두 번째로 과잉각성의 또 다른 행태는 감정의 억누름이다. 겉으로는 과잉각성과 정반대로 마치 각성이 되지 않은 척한다. “난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라며 감정을 숨기고 가장한다. 감정의 방어벽을 치고 내재화한다. 심리적 압축밸브를 꽁꽁 막아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분노, 적개심, 불편함이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어쩌다 엉뚱할 때 터져 나와 난감할 때가 많다.
   
   정상적인 투쟁-도피 반응의 장점은 스트레스 상황이 끝나면 쉬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협으로 느끼지도 않고, 인식조차 못 하고 있다면 효과적 대응도, 달콤한 휴식도 찾아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기분인지도 모른다. 당연히 자율신경계도 헷갈린다. 분노조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이 같은 ‘지나친 감정의 억누름’과 조우하게 된다.
   
   세 번째는 일견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불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것이다. 종일 일에만 매달리는 일중독(workaholism)이 대표적 예다. 자기파괴적 회피행동이다. 알코올, 니코틴(담배), 카페인(커피), 설탕 등의 과다 사용도 마찬가지다. 과다한 식탐(食貪), 진통제·수면제·신경안정제 등 약물 남용, 코카인·헤로인 등 마약 사용도 그렇다. 이는 즉각적 만족이나 증상 완화를 느낄지는 모르지만 불편함 뒤에 있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네 번째는 앞의 과잉각성이나 감정의 억압 내지 회피 상황이 계속 진행돼 만성화하거나, 장기적 스트레스에 방치돼 마침내 심리나 건강이 무너져내리는 상태다. 예컨대 과잉각성은 결국 자신과 타인, 주변 환경에 대해 매사 부정적(투쟁적) 태도를 고착화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다. 반면 감정의 억누름은 어느새 자신을 ‘학습화된 무력감’ 속에 살게 만든다.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고 기쁨이 없다. ‘난 할 수 없어’ ‘구제불능이야’ ‘형편없어’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만성적 우울, 심리적 자원의 고갈 속에서 신체 호르몬계는 오작동하고 에너지는 소진돼 말기암, 자살, 돌연사 등 극단적 상태로 치닫게 된다.
   
   당신은 스트레스를 만나면 어떻게 해결하는가? 이 네 가지 양태 중 주로 어떤 타입인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금 한국은 ‘과잉각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늘 ‘투쟁-도피 반응’에 젖어 살다 보니 매사 ‘과도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별거 아닌 일에도 평정을 잃고 분노하거나, 충분히 대화로 해결될 일에도 싸움으로 반응하거나 아니면 지레 겁먹고 두려움 속에 회피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중용(中庸)을 못 찾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다.
   
   지금 이 사회를 이끌고 가는 정치·사회 지도층들의 행태에서 더욱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와 방법으로 거칠게 국정을 끌고 가는 세력, 이에 대해 조건반사적 투쟁만 보이다가 결국 ‘학습화된 무력감’으로 도피하는 세력, 나라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지는 언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숨어서 “아무 문제없어” “지금 괜찮아” 하는 회피적 행태를 일삼는 현실에서 말이다.
   
   70여년 된 우리의 짧은 헌정사를 놓고 봐도 정권 말기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과도하게’ 국정을 운영하다 결국 정권을 빼앗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대개 마지막에는 이성과 평정심을 되찾고 민심과 순리에 부응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나라는 순항할 수 있었다.
   
   집권 초기부터 ‘과잉각성’으로 일관한 문재인 정권은 이제 가속기 페달을 더욱 밟아 한계속도를 초과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평생 ‘민주화’를 신주처럼 모시고 살아오다 그 민주화의 이름으로 3권분립과 법치주의, 그리고 이 사회의 좋은 전통을 스스로 허물고 있는 행동의 결말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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