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주사 효과 검증 안돼
지나친 다이어트는 담석증·골다공증 일으켜

키 큰 남자, 마른 여자를 선호하는 ‘외모지상주의’가 대한민국 10대들을 골병들게 하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키 180㎝를 위해 1년에 1000만원이 넘는 성장호르몬주사를 맞고, 여자 아이들은 44사이즈(허리둘레 62㎝, 24인치)를 위해 밥을 굶는 과도한 다이어트도 불사하고 있다.

키가 153㎝인 김모(41·서울시 노원구)씨는 중학교에 입학하는 남자아이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여자아이를 둔 엄마다. 남자아이는 142㎝, 여자아이는 129㎝로 또래들에 비해 작은 편이다. 지난해 8월 대학병원에서 아이들의 엑스레이와 골밀도 검사를 받고 나니 의사는 “사춘기로 접어드는 단계고 앞으로 2년이 확실히 키가 크는 시기”라며 성장호르몬 주사를 2년 동안 맞아볼 것을 권유했다. 일단 3개월만 맞혀도 두 아이에게 최소 700만원이 든다. 더 큰 문제는 주사를 맞는다고 해도 키가 큰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민한다”며 매일 인터넷 검색을 해보지만 보이는 것은 병원 또는 한의원 홍보성 정보뿐”이라고 말했다. 성장판 검사 후 밀려오는 ‘키 180㎝’에 대한 공포감은 부족한 정보 때문에 더욱 커진다.

김씨가 아이에게 맞히려는 성장호르몬주사는 본래 성장호르몬결핍증, 터너증후군(성염색체인 X염색체가 부족한 난소의 기능 장애), 만성신부전증 등에 사용되는 치료제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는 키가 작은 아이들의 ‘키 크는 주사’로 둔갑했다. 성장호르몬주사를 취급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동성·동일 연령의 신장 표준치로 봤을 때 100명을 키순서대로 할 경우 앞에서 세 번째까지를 저신장증으로 의심한다. 이 경우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성장호르몬주사를 맞혀 키를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의사들은 성장호르몬주사를 매일 1회씩 평균 1~2년 가정에서 직접 투여하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10시 이전에 자는 것을 권장한다. 문제는 병원들이 부족한 정보와 부모 마음을 이용해 성장호르몬주사가 필요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처방해 ‘장사’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성장판 검사, 고가의 시술 비용, 불확실한 효과’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성장판 검사 자체가 정확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 성장판 검사는 엑스레이 촬영으로 손가락과 손목의 뼈성장 상태를 살핀다. 이를 통해 예상키를 측정하고 그에 따라 성장호르몬주사의 투여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다. 일반 대학병원 내 소아청소년과 성장클리닉에서는 대개 1만원 안팎의 엑스레이와 3만~4만원의 혈액검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서초구 H한의원은 35만원으로 7배나 비싸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 엑스레이와 혈액검사 외에도 초음파·모발·소변검사 등을 추가로 하기 때문이다. 인제대 백병원 박미정 교수는 “원래는 엑스레이 검사로 충분한데 일반 개인병원의 엑스레이는 대학병원급의 방사선 자격을 받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 다른 검사를 끼워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정확한 검사는 잘못된 진단을 낳는다. 박미정 교수는 “대학병원에 찾아온 아이들 중에는 이미 성장판이 닫혔는데도 열렸다고 오진해 이미 수백만원의 성장호르몬주사를 몇 개월간이나 맞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가의 시술 비용도 문제다. 성장호르몬주사는 성장호르몬결핍증 환자의 경우 보험 혜택을 받아 20%만 지불하면 되지만 대부분은 보험을 받지 못한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40㎏의 초등학생을 기준으로 4단위(중간용량)로 맞힌다면 1회 성장호르몬주사는 3만3000원이다. 매일 맞을 경우 한 달에 약 100만원이고 1년이면 1000만원이 넘는다. 물론 아이의 몸무게와 발육 상태에 따라 개인 차이가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개인 차이를 이유로 들어 연간 1000만원 하는 평균 성장호르몬주사 가격의 2~3배 이상을 청구한다.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다. 주부 온라인 커뮤니티 ‘레몬 테라스’에서 활동하는 A씨는 가격이 천차만별인 성장호르몬주사를 조심하라는 글을 남겨 관심을 끌었다. 키 160㎝의 중2 남자아이를 둔 A씨는 2년 전 병원에서 ‘곧 성장판이 닫힐 것’이라는 말에 하루라도 빨리 성장호르몬주사를 맞히려고 했다. 대학 병원은 이미 예약이 다 끝났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서울시 서초구 H소아과를 찾아갔다. H소아과에서 석 달간 770만원을 지불하고 외국제약회사의 성장호르몬주사를 맞혔다. 이후 서울시 노원구 B병원에서 같은 주사를 3개월간 700만원에 맞혔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Y대학병원에서는 효과에 큰 차이 없다며 국산 성장호르몬을 권했고 가격은 70일에 322만원이었다. 병원별로 2배 이상의 가격차가 났다. 부천여성병원의 윤경아 원장은 “성장호르몬 제품별로 원가 차이는 있지만 꼭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부모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photo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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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가격을 감수하더라도 그 효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안정적으로 성장호르몬주사가 생산되던 1980년대 이후 20년간 학계에서는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임상실험을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내분비계 의사들은 저신장증 아이에게 성장호르몬주사를 투여하는 것은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효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소아과 전문의들은 “성장호르몬이 정상보다 키를 더 크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 단계”라고 말한다. 성장호르몬주사를 맞힌 부모들도 ‘원래 클 키’였는지 ‘주사 때문에 자란 키’인지 헷갈린다는 반응이다. 성장호르몬주사를 맞는 아이들은 대개 10시 이전에 잠을 자고, 균형 잡힌 식사생활을 하는 등 생활지도도 함께 받는다. 성장호르몬주사를 처방하는 의사들조차도 주사를 맞은 후 키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한 빈도수는 1000분의 1 정도로 적지만 갑상선기능저하증, 부종, 관절통, 두통부터 심할 경우 고혈압이나 종양의 부작용도 보고된 바 있다. 높은 비용과 불확실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키 180㎝’를 향한 열망 때문에 매년 8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성장호르몬주사를 맞고 있다.

10대들에게는 키뿐만이 아니라 몸무게도 문제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딸을 둔 박모(49·경기도 부천시)씨는 방학이 두렵다. 키 165㎝, 몸무게 55㎏의 지극히 평범한 딸은 자신이 뚱뚱하다며 방학 때만 되면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저녁을 굶는다. 박씨는 “성장기에는 뭐든 먹어야 하는데 무조건 안 먹겠다는 딸 아이 때문에 속상하다”고 말했다.

10대들의 무리한 다이어트는 식사장애로 이어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1명 이상인 12.7%가 폭식을 하거나 식사를 기피하는 ‘식사장애’로 판정됐다. 특히 여자가 518명(14.8%)으로 남자 368명(10.5%)보다 많았다. 여학생들 스스로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비만 착시’현상으로 필요하지 않은 다이어트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인 김나연씨는 “주변 친구들 중에 다이어트 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애들은 거의 없고 심지어 살 빼려고 급식을 굶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성장기인 10대 여학생들의 다이어트가 인생 전반에 있어서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계란이나 바나나처럼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며 살을 빼는 ‘원푸드 다이어트’나 아예 밥을 굶는 것은 훗날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여성은 본래 폐경기 이후 골밀도가 급속도로 감소하는데 피하지방이 부족해지면 여성호르몬의 이상으로 더 빠르게 뼈 건강을 해칠 수 있다.

10대 다이어트의 위험성은 이미 20~30대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로 증명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골다공증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연평균 13%씩 증가했다. 그중 여성은 남성에 비해 13배 많은 68만7524명이다. 이처럼 골다공증환자의 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무리한 다이어트다. 골량을 형성하는 10~20대에 과도한 다이어트로 칼슘이 부족해지면 뼈에 구멍이 생기는 골다공증으로 이어진다.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정혜원 교수는 “체질량과 체지방지수가 생리를 못할 만큼 낮아질 정도로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는 10대들이 늘고 있다”며 “학계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도한 다이어트는 몸 안에 돌 같은 물질이 생기는 담석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담석증 환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20% 많은데 20~29세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2배 가까이 많은 경향을 보인다. 2009년 담석증 환자는 여성 2822명, 남성 1662명이다. 황재택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은 “지방 섭취가 극도로 제한되는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면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담낭에 고인 상태로 농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학계에서는 지금 당장 연예인들의 잘록한 허리와 가는 다리만 생각하고 10년, 20년 뒤 건강은 생각하지 않는 10대 여학생들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을지병원 내분비과 김진택 교수는 “10대 다이어트는 골다공증, 근육량 및 체력 저하, 월경불순, 심각한 경우 거식증과 같은 식이장애로 사망에 이르는 총체적인 질환을 가져오고 있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0~20대 만들어진 건강이 평생을 결정하기 때문에 더욱이 10대들의 무리한 다이어트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들이 ‘남자 키 180㎝, 여자 44사이즈’에 열광하는 한국 사회를 외국인들은 어떻게 볼까? 서울에서 2년째 영어강사를 하는 미국인 콜린 브라운(23)씨는 이와 관련한 경험이 있다. 학생들 중에 남자친구 있는 여성에게 다른 학생이 ‘남자친구 키가 몇이냐’를 첫 번째로 묻는 것이었다. 콜린씨는 “한국 사람들은 보이는 걸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서 몸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며 “특히 키나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굶으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10대들, 왜 그릇된 환상 갖나

‘루저 파문’ 등 미디어 영향 크다

10대들의 머릿속에 ‘남자는 180㎝, 여자는 44사이즈’의 환상을 심어준 것은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키 크고 늘씬한 연예인들에 익숙해진 10대들은 미의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2009년 KBS의 연예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 어느 여대생이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패배자)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180㎝는 돼야 한다”고 한 말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언론중재위원회에는 여대생의 ‘루저’ 발언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며 키 162㎝의 남성을 비롯한 손해배상 청구가 78건이나 접수됐다. 한 여대생의 발언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배경에는 키 작은 남자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다이어트 콤플렉스가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성의류는 66사이즈가 정상이었다. 하지만 점차 마른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55사이즈, 44사이즈가 표준으로 여겨진다. 여성의 경쟁력은 외모고 그중에서도 마른 몸매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연예인 스타일의 무리한 다이어트도 공유되고 있다. 최근 인터넷상에는 ‘소녀시대 식단’이란 제목으로 성인이 하루 섭취해야 할 칼로리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800㎉의 식단이 올라와 화제였다. 하루 종일 단호박 두 쪽, 방울토마토 다섯 알, 야채·새우샐러드, 수박, 파인애플, 레몬 한두 쪽만 먹는 것이 전부다. 건강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소녀시대 몸매를 갖기 위해서 이 식단에 도전하겠다는 10대들의 호응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30년간 10대 체형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12세 남자의 경우 30년 전에 비해 평균 신장이 13.9㎝나 컸다. 하지만 성장이 거의 완료된 17세 남자 평균 신장은 173.94㎝이다. 남자 키는 180㎝ 이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평균 신장은 7㎝나 작다. 여자 역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연예인들에 비하면 평균 몸무게는 ‘뚱뚱’한 편이다. 소녀시대의 멤버 중 제시카의 경우 162㎝로 평균 신장이지만 몸무게는 45㎏으로 평균 몸무게에 비해 10㎏이나 적다. 10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키와 몸무게에 대한 환상을 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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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차장 / 이은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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