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트라우마가 25만명 反원전 시위 촉발
‘원전 폐쇄’ 국민합의 위해 11시간 TV 생방송 토론
‘親원전’의 메르켈 총리 7시간 내각토론 거쳐 결론
독일 보슈그룹의 한 직원이 독일 중부 에르푸르트 근처 태양전지 공장의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태양광산업은 유가 급등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photo 연합뉴스·AFP
독일 보슈그룹의 한 직원이 독일 중부 에르푸르트 근처 태양전지 공장의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태양광산업은 유가 급등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photo 연합뉴스·AFP

지난 7월 4일 독일 남서부 징엔(Singen)의 한 작은 마을. 66가구가 사는 이곳은 독일의 ‘환경 수도’라고 불리는 프라이부르크의 축소판이다. 이곳에선 필요한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지붕 위의 태양광 시설 등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마을 수요보다 9배나 많다. 남는 전기는 외부의 전력회사에 판매한다. 이 마을에서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방법은 두 가지. 가축 분뇨를 이용해 만든 바이오가스가 있고, 은버들나무와 포플러, 옥수수를 잘라 만든 우드칩(Wood Chip)을 이용한 바이오매스가 또 다른 전기·열 에너지원이다.

‘에너지 자립 마을’ 실현을 이끈 주역은 시민기업 ‘졸라 콤플렉스(Solar Complex)’다. 시민 70여명이 2000년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설립 목적은 2030년까지 인구 20만명인 징엔 지역의 에너지를 100% 재생 가능 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700여명이 시민기업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액면가 2500유로(약 275만원)인 주식을 1주씩을 갖고 있다. 졸라 콤플렉스는 태양광발전, 소수력발전, 바이오가스플랜트 등 세부 사업에 대한 자회사까지 두고 이들 회사의 관리와 컨설팅을 한다.

독일에는 이처럼 시민들이 직접 재생에너지 투자에 뛰어든 경우가 많다. 포츠담 태양광 시민발전소를 이끌고 있는 소피 헤벨도 그런 경우다. 포츠담대학에서 화학자로 10년을 일해온 그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어떻게 하면 시민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전환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2006년 직접 회사를 차렸다.

그의 회사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태양광 지붕 공사에 투자할 주주를 모집한다. 3년 전 그는 포츠담시를 설득, 학교 건물을 30년 동안 사용할 권리를 허락받아 이곳 지붕에 60㎾(킬로와트)짜리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28만유로가 들었다. 절반은 은행에서 빌렸고 나머지는 60명의 주주가 1인당 500유로 이상씩 투자해 해결했다. 연 3~4% 정도의 수익이 나서 주주들에 배당을 했다. 꽤 이익이 컸다.”

헤벨씨는 자신의 재생에너지 투자가 가능했던 건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법’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에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면 송전망 운영자는 이를 반드시 사주도록 돼 있다. 헤벨씨는 “이 법이 없었다면 전력을 생산해 팔아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생태적인 투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2000년부터 시행된 이 법이 11년 동안 장기적으로 시행되면서 시민들의 태양광 설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독일의 새로운 도전이 지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의 세계 최강국인 독일이 ‘2022년 무(無)원자력발전소 시대’를 선언했다. 현재 독일에는 총 17기의 원전이 있다. 이 원전들은 독일 전체 전력 생산량의 23%를 담당해왔다. 독일인은 이 원전들을 10년 내에 폐쇄한다는 상상하기 힘든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모든 급격한 사태 발전의 진원지는 일본이다.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발생 이후 터진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가 독일에 충격을 줬다. 3월 14일 독일 전국에서 11만명이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촛불을 들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노후한 원전 7기와 고장으로 가동을 멈췄던 크루멜 원전 1기 등 8기를 3개월 동안 가동을 중단한다는 결정으로 성난 촛불을 달래려 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보다 앞선 작년 10월 이전 정부(1998~2005년녹색당·사민당 연립정부)의 원전 철폐 정책을 뒤집고 원전 수명 연장 결정을 내린 바 있었다. 메르켈 정부의 원전에 대한 새로운 결정에도 불구, 3월 26일에는 대도시 4곳에서 더 큰 원전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무려 25만명이 모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왜 유독 독일이 ‘원전 위험성’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유럽연합(EU) 환경자문회의 의장이자 동아시아 기후·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미란다 슈로이어 교수는 필자에게 “후쿠시마 사고가 독일인들에게 잊혀져 가던 체르노빌 사고 기억을 되살려냈다”고 설명했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역에 있는 친환경 건축물 ‘헨리 오트롭’. 유명 건축가 롤프 디시가 지은 집으로 건물 전체를 태양광발전판이 감싸고 있고 건물이 태양을 따라 움직이며 빛을 받아들인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역에 있는 친환경 건축물 ‘헨리 오트롭’. 유명 건축가 롤프 디시가 지은 집으로 건물 전체를 태양광발전판이 감싸고 있고 건물이 태양을 따라 움직이며 빛을 받아들인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독일에는 직격탄이나 다름없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던 바람을 타고 독일은 방사능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당시 방사능이 섞인 우유와 음식물, 방사능에 노출된 어린이 놀이터 등은 아직도 독일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원전에 대해 이전까지 50 대 50이던 독일 내 찬반 여론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부터 ‘80% 이상 원전 반대’로 균형의 추가 급격히 바뀌었다.

환경보호를 내건 정당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시피 현실 정치에 성공한 녹색당 존재도 이번 원전 폐쇄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꼽힌다. “1998년 녹색당이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세우면서 ‘원자력발전을 점진적으로 폐쇄한다’는 합의문 문구를 넣었다. 세금구조도 노동부문에서 거두는 대신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오염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바꾸었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시작했다.”(슈로이어 교수)

메르켈 정부에 충격파를 준 건 성난 여론이 선거에서 표로 집권당을 심판하면서다. 3월 27일, 독일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일대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곳은 1953년 이후 줄곧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온, 기민당의 텃밭이었다. 투표함을 열고 보니 기민당의 참패였다. 환경보호를 당의 최대 정강으로 하는 녹색당과, 녹색당과 연합한 사회민주당이 승리했다. 독일 사상 최초의 ‘녹색당 주지사’가 탄생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총선의 향방을 가른 두 가지는 모두 환경 이슈였다. 하나는 주도(州都)인 슈투트가르트의 오래된 철도 역사를 없애고, 최첨단 중앙역을 짓는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를 주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온 데 대한 반대 여론이었다. 또 하나는전국 차원의 이슈인 원전 폐쇄 여론이었다. 필자가 만난 칼 그라이싱 주정부 에너지 담당관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녹색당 집권에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의 신호등. 신호등에 자전거의 고·스톱을 나타내는 표시등도 있다.
베를린의 신호등. 신호등에 자전거의 고·스톱을 나타내는 표시등도 있다.

정치적 위기에 봉착한 메르켈 총리가 내건 카드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 출범이었다. 4월 4일 출범한 윤리위원회의 구성 멤버는 총 17인. 종교 지도자, 재계 인사, 원로 정치인, 대학 교수, 시민단체, 노조 관계자가 망라됐다. 전 독일 환경부 장관인 클라우스 퇴퍼를 위원장으로, 독일의 대표적 화학기업인 바스프의 위르겐 함브레이트 회장,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 울리히 피셔 가톨릭 주교, EU 환경자문회의 의장인 미란다 슈로이어 베를린 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장이 포함됐다.

17인 윤리위원회의 활동 시한은 4월 4일부터 5월 30일까지 8주로 못 박았다. 이들은 5월 말에 보고서를 연방정부에 제출한다는 일정표를 짰다. 녹색당은 ‘괜히 외부 전문가를 불러 정부가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려 한다’며 위원회 참여를 거부했다. 위원회 구성에 나흘만 시간을 썼을 정도로 당시 메르켈 정부는 급박했다. ‘17인 윤리위원회’에 엄청난 사회적 관심이 쏟아졌다.

6월 30일, 베를린의 대표적 명소인 포츠담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건물 9층에서 만난 귄터 바흐만 ‘17인 윤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원전을 완전 폐쇄할지, 계속 가동할지에 대한 최종 결론은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찬반양론이 그만큼 팽팽했다는 것이다. 귄터 바흐만 사무총장의 말이다.

프라이부르크 인근 신도시 리젤 펠트의 교회. 일요일인데도 교회 주차장에 자전거만 가득하다.
프라이부르크 인근 신도시 리젤 펠트의 교회. 일요일인데도 교회 주차장에 자전거만 가득하다.

“윤리위원회가 다룬 논의는 사실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당장 폐쇄한 8기의 원전이 담당해온 8.5GW(기가와트)의 전기를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느냐, 대체한다면 어떤 방식이 될 것인가 등을 다뤄야 했다.”

슈로이어 교수는 17인 윤리위원회의 핵심 쟁점은 △가동 중인 원전은 얼마나 안전한가 △지금 가동되는 원전이 모두 다 필요한가 △에너지 가격의 큰 인상 없이 대체할 다른 에너지원이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우선 일본 같은 하이테크놀러지를 가진 나라에서도 그런 사고가 났다면, 독일에서 사고가 날 경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위험이 있다고 봤습니다. 또 3개월 동안 원전 7기의 가동을 중단했어도, 전력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원전이 모두 필요하지는 않다는 뜻이죠.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진 기술로 현재 원전이 감당하고 있는 전력 공급분인 23%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프라이부르크 시내투어용 자전거. 디자인이 색다르다.
프라이부르크 시내투어용 자전거. 디자인이 색다르다.

이들이 택한 합의 도출 방식은 공개 TV토론이었다. 4월 18일 독일 공영방송인 피닉스가 무려 11시간에 걸친 토론을 생방송으로 독일 전역에 중계했다.

공개 TV 토론회에는 17인 윤리위원회 위원들과 30명의 외부 전문가가 참석했다. TV를 본 시민들은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날 토론 내용은 다음날 독일 유력 신문들을 통해 다시 소개됐다. 바흐만 사무총장은 “찬반양론이 팽팽한 이번 사안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중요했기 때문에 시민에게 모든 토론 과정을 개방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실제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TV토론과 윤리위 내에서는 원전 폐쇄에 대한 낙관적인 시나리오의 문제점도 제기됐다. “결국 전력이 부족해지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려는 것 아니냐” “재생에너지인 풍력을 확대할 경우, 북쪽에 위치한 풍력단지에서 나오는 전력을 남부지역의 공장지대로 어떻게 공급할 것이냐” “원거리 송전망을 깔게 되면 고압선이 필요한데 이 고압선이 지나가는 지역주민들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 “원전을 폐쇄해 화석연료를 확대하면, 결국 이산화탄소 배출이 확대돼 기후변화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 등 의견이 전국에서 쏟아졌다.

슈로이어 교수는 “독일의 이번 결정은 모험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원전 또한 경쟁력이 없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원자력 또한 한계가 있는 에너지입니다. 우라늄을 채굴할 수 있는 기간이 100년 남았고 가격도 올라갑니다. 핵 확산에 대한 문제도 있고요. 대신 재생에너지는 차세대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이 개발되면서 가격도 떨어질 겁니다. 풍력이나 태양광은 2050년이면 원자력이나 석탄보다 가격 경쟁력이 생길 겁니다. 특히 독일은 지금도 에너지의 70%를 수입하는데,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도 확보하고 동시에 에너지 안보도 지킬 수 있다는 측면이 고려됐습니다.”

실제 독일 정부는 2000~2009년 200억유로를 투자해 재생에너지 의존도를 6.3%에서 16.2%까지 끌어올렸고, 현재는 그 비율이 17%에 달한다.

5월 28일 17인 윤리위원회의 최종 결론이 나왔다. TV토론을 벌인 지 40일 만이었다. ‘2021년까지 모든 원전의 폐기(최근 지어진 원전은 상황에 따라 2022년까지)’였다. 다음 날인 5월 29일, 일요일이던 이날 오후에 보고서는 메르켈 총리에게 보고됐다. 그날 밤 메르켈 총리는 내각을 소집해 7시간에 걸친 토론을 다시 벌였다. 결국 월요일인 5월 30일, 메르켈 총리는 이 보고서를 채택한다고 국민에게 발표했다.

“AKWs aus, Sonne an! now.(지금 바로 원전 폐쇄하고, 태양에너지를 사용하라!)”

필자 일행은 6월 30일 오전 8시30분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앞에 있었다. 의회 앞에선 ‘분트(BUND)’ ‘캠팩트(Campact)’ 등 독일의 대표적인 환경단체 회원 50여명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연방의회 본회의가 개원하기도 전 이른 아침부터 이들은 이날 독일 에너지 역사를 바꿀 표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전 메르켈 총리가 발표한 ‘2022년까지 원전 100% 폐쇄’와 관련한 에너지법안 통과가 이날 예정돼 있었다. 이들은 “메르켈 총리의 10년 내 시간표보다 더 빨리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날 연방의회 표결 결과, 하원의원 513명 중 찬성 426표, 반대 79표, 기권 8표로 총 83%의 지지를 얻어 법안은 통과됐다. 탈(脫)원전이라는 세계를 놀라게 한 독일인의 선택은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노베르트 뢰트겐 독일 환경부 장관은 이를 두고 “하나의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의 원전 폐쇄 선언은 혁명의 불길처럼 유럽 전역에 확산됐다. 스위스(원전 5기 보유)도 2034년까지 원전 폐쇄를 결정했고, 이탈리아도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2014년부터 예정된 원전 10기 건설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핀란드(원전 4기 보유, 5기 추가 건설 중)도 “더 이상의 원전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독일의 탈원전 실험과 에너지 전환 정책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 야심 찬 실험이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을지 다른 나라에서는 의혹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역의 친환경 놀이터.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역의 친환경 놀이터.

탈원전 선택을 한 독일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할 고민을 들여다보자. 이상과 현실을 접목하기는 쉽지 않다. 녹색당 주지사를 맞은 뒤 새로운 에너지 플랜을 짜느라 분주한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도 어려움이 있다. 이 지역은 다임러 벤츠, 포르셰, 보슈 등 제조업이 매우 발달한 곳이라 에너지 공급에 민감하다. 그라이싱 담당관은 “독일 전체의 원전 의존도가 23%인 데 반해, 우리 주는 원전 의존도가 50%에 달한다”며 “2012년까지 풍력으로 10% 전력을 공급하는 등 하루빨리 대체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게 과제”라고 했다. 재생에너지 공급에도 난관이 있다. 그라이싱 담당관은 “송전선 문제가 현재로선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독일 북부에 위치한 대규모 풍력단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어떻게 남부로 끌어오느냐는 것이다. 현재의 송전 규모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압 송전선이 새로 필요한데, 송전선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주민들은 벌써부터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독일 전체적으로 보면 2022년까지 추가적으로 9기의 원전이 모두 문을 닫을 경우, 이들 원전이 생산해온 20GW 전력을 어디서 만드느냐는 게 급선무이다. 1990년부터 21년 동안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을 담당해온 독일 연방 환경부 샤프하우젠 국장은 이와 관련, “에너지 공급 시스템에 대한 전면 재설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필자에게 설명했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역의 거리 풍경. 건물 뒤편 동네로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역의 거리 풍경. 건물 뒤편 동네로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다.

독일의 구체적인 계획은 뭘까. 독일 정부가 원전 폐쇄 결정과 함께 마련한 ‘에너지 패키지 법안’에는 120가지가 넘는 정책 수단이 들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재생에너지 확대다. 독일은 1998년 4.8%에 불과했던 재생에너지 비중이 현재 17%로 대폭 늘어난 데 대해 무엇보다 자신감을 보인다. 10년 새 세 배 이상 확대된 것을 감안하면 2020년에는 35%, 2050년에는 80%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확대하는 것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원전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3배 이상 확대해온 것이 ‘2022년 무(無)원전시대’를 선언한 튼튼한 배경이 됐다는 얘기다.

“해상풍력과 바이오매스 확대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현재 2만대가 넘는 풍력발전 시설에서 27GW의 풍력을 생산하는데, 육상풍력의 경우 더 이상 설치할 장소가 없습니다. 때문에 기존 육상풍력은 리파워링(Repowering·예전에 설치한 적은 용량의 발전기를 신형 대용량 발전기로 교체하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2020년까지 해상풍력도 10GW까지 늘릴 계획입니다.”(샤프하우젠 국장) 독일은 전 세계 풍력발전 설비의 35%를 독일 기업들이 생산할 정도로 풍력발전 분야의 선두주자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도 시도할 계획이다. 샤프하우젠 국장은 “2050년까지 모든 건물을 기후 중립적인 건물로 만든다”고 했다. 예를 들면, 현재 대부분 건물의 이중창 대신 3중창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 열병합 발전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열병합 발전을 확대할 계획이다. 석탄 속에서 35%의 에너지만 뽑아내 전기로 사용했다면, 열병합발전을 이용하면 80~90%까지 전기로 쓸 수 있다.

독일 정부는 당장 올해부터 ‘에너지 효율 펀드’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 절약에 필요한 정보 제공과 기기 개발·보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 독일상공회의소와 함께 개별 기업과 ‘기후보호와 에너지 효율 파트너십’을 맺어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을 독려하기로 했다.

이런 정책의 추진에는 ‘녹색 일자리 창출’에 대한 독일 정부의 확신도 바탕에 깔려 있다. 연방 환경부 보고서(2009)에 따르면, 독일의 전체 재생에너지 산업은 그동안 총 2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역 입구에 있는 주차장. 주민들은 20대의 차를 함께 나눠 타는데, 차는 마을 입구의 이 주차장에 세워놓고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마을에 들어가야 한다.
프라이부르크 보봉 지역 입구에 있는 주차장. 주민들은 20대의 차를 함께 나눠 타는데, 차는 마을 입구의 이 주차장에 세워놓고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마을에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계획의 핵심은 비용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샤프하우젠 국장은 “독일에서 1인당 전기값이 1㎾h당 22센트 정도인데, 이 안에는 발전소 운영, 송전망 운영자의 부가가치세, 열병합발전소 운영자, 발전차액지원제도가 모두 포함돼 있다”고 했다. 사용자가 전기요금 납부로 모든 비용을 부담해 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원전 폐쇄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면 앞으로 4인 가족 기준으로 연 35~40유로(연 6만원가량)의 전기세 인상을 감당해야 할 전망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향후 원전 포기에 대한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 비용 조달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독일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원전 폐쇄로 연간 30억유로 이상의 비용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결국 국민이 어느 선까지 추가 비용부담을 수용할 수 있을지가 이번 에너지 전환 정책의 성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탈원전 실험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만으로도 전 세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탈원전 실험의 첫발을 디딘 첫 국가가 왜 하필 독일이냐는 점은 독일의 야심찬 미래 구상과 관련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곧 다가올 석유 고갈 시대에 맞서 재생에너지 패권까지 잡겠다는 독일의 눈은 이미 100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독일 환경부가 내놓은 ‘에너지 콘셉트’ 연도별 목표치

온실가스(1990년 기준) 40% 감축(2020년) → 80~95% 감축(2050년)

1차 에너지 중 재생에너지 비중 18%(2020년) → 60%(2050년)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중 35%(2020년) → 80%(2050년)

1차 에너지 소비(2008년 기준) 20% 감축(2020년) → 50% 감축(2050년)

건축물 에너지효율화 리노베이션 비율 현재 1% 미만에서 전체 빌딩의 2%까지

박란희 환경재단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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