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면 그 자리서 코 고는 지적인 원시의 수컷
웃음의 돌팔매질로 비상식을 사냥
 ⓒ일러스트 나소연
ⓒ일러스트 나소연

필자가 딴지일보에 첫 출근하던 날. 곰 같은 풍채에서 터져 나오는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비듬이 소복이 내려앉은 봉두난발에 무책임하게 자란 수염, 빨래한 지 일 년은 되어 뵈는 옷, 찌그러진 구두. 한국 최초의 인터넷언론 사주(社主)의 모습은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그렇게 존재감이 확고부동한 인간, 아니 동물은 처음이었다. 그가 내게 던진 첫마디는 “어쩌려고 이런 회사에 입사했냐?”였다. “아직 늦지 않았어. 도망가.” 구사하는 모든 문장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잠시 후 김어준 총수는 셔츠를 풀어헤치고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날 점심시간에는 그가 어떤 식물성 음식도 섭취하지 않고 오직 고기만 먹는 모습을 목도했다. 그때 생각했다. 김어준은 상식을 벗어난 인간이라고.

인간 김어준을 흉보라고 하면, 필자는 책을 한 권 쓸 수 있다. 졸리면 그 자리에서 자기 시작하고, 부하직원에게 일 독촉을 받을 정도로 게으르고, 재미 삼아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노골적으로 여자를 밝히며 검은 망사스타킹을 찬양한다. 무엇보다 수시로 자신이 잘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는 양심도 없지만 두려움도 없다. 회사 경영이 안 좋을 때 가장 얼굴이 밝은 사람이 바로 경영자인 김어준이다. 근엄한 고위권력자에게 무슨 팬티를 입었는지, 동성애와 포르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권력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습에 “잡혀갈까 무섭지 않냐”고 물으면 사식의 메뉴를 고민할 뿐이다. 김어준은 심각한 법이 없다. 그에게 즐겁지 않은 것은 죄다. 누구든지 그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 웃게 된다. 모든 회의는 스탠딩 코미디가 되어 끝난다. 딴지일보 특유의 유머는 그의 성격에서 유래한다. 김어준은 ‘함부로’ 산다. 싫으면 관두고, 하고 싶으면 한다. 일과 취미가 구분되지 않는 그에게 삶은 유희다. 그는 “김어준의 직업은 김어준”이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딴지일보가 망하지 않는 이유

문제는 김어준이 필자가 다니는 직장의 소유주라는 점이다. 이쯤 되면 어째서 이때껏 딴지일보가 망하지 않는지 고찰해 볼 만하다. 김어준은 외양(外樣)과 어울리지 않게 지적으로 예민하다. 물론 세상에 지적인 사람은 많다. 총수의 특징은 그가 지적인 현대인이 아니라, 지적인 원시인이라는 데 있다. 그는 맘모스를 사냥하다가 불현듯 현재의 대한민국에 불시착했기 때문에 현대의 모든 체제, 관습, 고정관념, 권위를 데카르트처럼 제로의 지점에서부터 다시 의심한다. ‘딴지’일보라는 사명(社命)은 그저 웃기려고 지어진 게 아니다. 김어준은 습관적 상식을 일단 벗어난 인간이 맞다. 그러나 사유를 통해 상식을 재구축한다.

그 결과 김어준은 공정하다. 최소한 비겁함은 없다. 타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자신의 권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김어준이 여당 대표를 대하는 태도는 직원을 대하는 태도와 놀랄 만큼 똑같다. 필자는 피곤하면 총수의 집무실에서 자곤 한다. 김어준은 직원의 근무태만에 화를 내기는커녕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필자의 얼굴에 낙서를 할 인간이다.

돌도끼를 든 데카르트인 김어준은 정치적인 진영논리가 없기 때문에 모든 진영에서 편파적이라고 공격당한다. 김어준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 “맞다. 편파적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하지만 편파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다.” 그렇다면 김어준은 왜 좌파인가? 아니 그 이전에 김어준은 좌파인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지형에 의해 좌파로 분류될 뿐이다. 그처럼 순수한 마초는 좌파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순도 높은 자유주의자다. 김어준은 자유롭게 욕망을 추구할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가 서로 피해를 입히지 않고 공존하는 상태를 ‘명랑사회’라 명명한다. 딴지일보의 창간 모토는 ‘명랑사회 창달’이다. 김어준은 자신이 망사스타킹을 탐할 권리와 성적 소수자가 동성(同性)의 육체를 욕망할 권리를 동등하게 해석한다. 그는 자타공인의 마초지만 동성애를 비난하는 마초는 비겁하다고 힐난한다.

단순명쾌하게 핵심을 잡아낸다

딴지일보라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연합일 수밖에 없다. 김어준은 자신과 타인의 발언권을 등가로 놓는다. 의아해 보이겠지만, ‘나는 꼼수다’와 관련해 총수를 비판한 진중권이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받은 곳이 딴지일보다. 딴지일보는 정해진 논조가 없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세련되면, 즉 읽을 만한 글이면 기사가 된다. 물론 재미없거나 허술한 글은 용서받지 못한다. 김어준은 자신을 욕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잘 정리된 욕에는 씩 웃어준다. 수준이 낮은 욕엔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는 남자도 사나이도 아니다. 남자는 근엄하고 사나이는 유치하다. 김어준은 인문학적으로 각성한 원시의 수컷이다.

필자가 가장 부러워하는 김어준의 능력은 어떤 문제나 주제의 핵심에 누구보다 빨리 접근하는 것이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문화적·사회적 사안을 단순명쾌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단박에 정리해낸다. 김어준은 언어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사물과 현상, 인간을 ‘드러내는’ 데 놀랍도록 탁월하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말’을 낭독하지만, 김어준의 인터뷰는 그 사람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이 능력도 데카르트식 접근법에서 나온다. 무에서 출발해 사고를 구축하기 때문에, 핵심에 이르기까지 번잡한 고정관념의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어준의 능력은 아이큐가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이 글의 독자들에게는 싱거운 소식이겠지만, 김어준 총수는 처음부터 ‘나는 꼼수다’가 이만큼 뜰 줄 알고 있었다. 잘난 체가 아니다. 말 그대로 그냥 ‘그럴 줄 알았다’. 다만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조금 빨랐을 뿐이다. 20만부를 돌파한 저서 ‘닥치고 정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어준은 별 반응 없다. 필자를 포함한 주변의 반응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는 자기 자신에 무척 심드렁한 사람이다. 총수는 어려워도 낙천적이고 잘나가도 우쭐대지 않는다. 그의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금방 전염된다. 작금의 인기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총수는 이렇게 답했다. “귀찮아.” 그래, 그럴 것이다. 그에겐 고기를 먹고 낮잠을 잘 시간이 필요하니까.

한 손엔 돌도끼를, 한 손엔 철학책을

사실 ‘나는 꼼수다’의 인기는 외려 김어준을 괴롭히는 편이다. 청취자가 폭증하면서 서버 관리 비용도 천정부지로 뛰어 김어준 개인과 딴지일보는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다. 서버비 후원조로 관련 상품을 팔고 콘서트를 열어도 관리 비용을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방송에 광고를 넣으면 된다. 요즘 딴지일보 직원들은 ‘나꼼수’ 광고 문의를 수없이 거절해야 한다. 김어준 총수가 광고를 거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나꼼수’가 상업화되면 첫째, 광고주의 입맛을 고려해줘야 한다. 둘째, 광고주의 안전을 걱정해야 한다. 자유로운 발언 환경이 조금이나마 제한된다. 자신에게는 날것을 말할 권리가, 청취자에게는 날것을 들을 권리가 있다. 그럼 후원을 받으면 될 것 아닌가? 그것도 안 된다. 청취자의 눈치도 보기 싫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자유주의는 그 정도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필자의 사장이라는 점이 큰 문제다.

한 손엔 돌도끼를, 한 손엔 철학책을 든 김어준은 원시인인 주제에 뻔뻔하게 아스팔트 위를 활보한다. 웃음의 돌팔매질로 비상식을 사냥하다가 졸리면 자고, 오줌이 마려우면 일어난다. 한국 사회에서 그는 생뚱맞은 존재다. 수채화에 떨어진 한 방울의 유화물감이다. 그런데 유화물감은 태연하고 수채화가 당혹스러워 한다. 필자가 겪은 김어준은 그렇게나 성가신 인간이다.

김어준

1968년

경남 진해 출생

홍익대 전기공학과 졸업

1998년

딴지일보 설립

2004년

CBS 라디오 ‘저공비행’ 진행

2011년

MBC 라디오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 진행


홍대선

딴지일보 편집국 부국장

인터넷 닉네임 ‘필독(fielddog)’

축구평론가·소설가

딴지일보에 축구와 역사,

시사 분야 기사 담당

대표 연재물 ‘축구문화사’,

‘테무진 to the 칸’

저서 ‘태양의 해적’(2009 오푸스),

‘축구는 문화다’(2010 책마루)

홍대선 딴지일보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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