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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특/집 1 3대 코리아타운을 가다]  유학생 2만명 대치동보다 더한 사교육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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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8호] 201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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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1 3대 코리아타운을 가다]유학생 2만명 대치동보다 더한 사교육 열풍

學의 도시 베이징

이동훈  기자 

▲ 베이징대의 옛 정문을 통해 등교하는 학생들을 돌사자가 굽어보고 있다.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서 한인타운 왕징(望京)까지는 지척이다. 12월 18일 서우두공항에서 6번 공항버스를 타고 왕복 6차선 공항고속도로를 달려 30분 만에 왕징에 도착했다. 왕징으로 들어가는 북쪽 입구인 광순베이다제(廣順北大街)에 자리 잡은 롯데마트와 뚜레쥬르를 시작으로 한글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왕징은 ‘수도(京)를 바라본다(望)’란 뜻이다. 청(淸)나라 건륭제(재위 1735~1795년) 때 붙은 이름이다. 만주족인 건륭제는 매년 여름 피서를 위해 청더(承德·열하)의 피서산장으로 순행을 떠나며 왕징의 언덕에서 예수회 선교사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건네준 망원경으로 자금성(紫禁城)을 돌아봤다. 자신과 조상들의 정복지가 건재한지 살펴봤다.
   
   건륭제가 망원경을 들었던 왕징은 약 250년이 지난 오늘날 19만 한국인이 차지했다. 1992년 한·중수교 직후 한인들은 서우두공항에서 천안문(天安門)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왕징에 둥지를 틀었다. 공항 길목이어서 1989년 천안문사태 같은 변란이 생기면 짐을 싸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좋아 이곳에 많이 살게 됐다는 말도 있다. 한국인이 모이자 조선족 동포도 옌볜(延邊)에서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왕징에 들어왔다.
   
   
   “수교 직후 태어난 아이들 왕징이 고향”
   
▲ 한인타운 왕징의 북경한국국제학교에 쳐진 철조망.
1992년 한·중수교 직후 이곳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들은 왕징이 고향이다. 1992년 태어난 아이들은 18세로 이제 ‘가오카오(高考·대입시험)’를 칠 나이다. 중국과 우리는 학기의 시작 시기만 다를 뿐 학제는 6·3·3으로 동일하다. 서울의 한국 학생들 목표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라면 왕징 아이들의 목표 대학은 ‘베이징대·칭화대’다.
   
   홍경미(49) 북경고려학원 원장은 한국 학생들을 베이징대와 칭화대로 가장 많이 집어넣는 사람이다. 홍 원장은 지난 2004년부터 ‘한국식 스파르타 기숙입시학원’을 표방한 이 학원을 이끌고 있다. 2010년 무려 191명의 학생을 베이징의 3대 명문인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대(人民大)에 합격시켰다. 2008년 이후 베이징대 외국인 입학 수석도 세 번이나 배출했다고 홍 원장은 자랑했다.
   
   왕징에서 북동쪽으로 차로 40분 떨어진 북경고려학원은 고구려 연개소문이 베이징 인근까지 쳐들어와 ‘영(營·캠프)’를 구축했다는 고려영(高麗營)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무성한 숲속에 고구려군 대신 지금은 북경고려학원이 진을 치고 있다. 홍 원장은 고려영 옛터에서 베이징대 입시전략을 짜느라 바빠 보였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몽골 학생들도 이 학원 원생이다. 북한 학생들도 이곳에서 한국식 입시교육을 받는다. 지금은 2명의 북한 학생이 베이징대를 목표로 입시교육을 받고 있다. 홍 원장은 “매년 원생의 1% 정도는 북한 학생들”이라며 “북한 당국의 눈치를 보는 주재원이나 외교관 자녀보다는 사업가 자녀가 많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던 홍 원장은 지난 2002년 베이징으로 건너왔다. 2001년 아들을 먼저 베이징의 고등학교로 조기유학 보내고,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1년 후 자신도 베이징으로 넘어왔다. 홍 원장은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이후 알고 지내던 학부모들의 부탁으로 조기유학생을 돌봐주다가 아예 베이징에 기숙입시학원을 차렸다.
   
   현재 베이징에는 고려학원을 필두로 청산, 명성, ECC, 차이나로, 제일 등 10여개 한국계 입시학원들이 중국 대학의 외국인 쿼터를 두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베이징대의 연간 외국인 학생 쿼터는 130~140명가량. 칭화대는 200~250명, 런민대는 300명 정도다. 베이징대의 경우 한국 학생이 너무 많이 몰려 한국 학생을 전체 쿼터의 60%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
   
   당초 홍 원장이 베이징 외곽의 숲속에 기숙입시학원을 세우자 “고려(학원)가 곧 망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그는 원생들이 쓰는 기숙사에서 원생들과 같이 먹고자며 입시학원을 안착시켰다. 수업료는 한 학기 3만5500위안(약 640만원), 기숙사비는 1만5700위안으로 제법 비싼 편이다. 그래도 홍 원장을 찾는 한인 학부모들의 전화는 줄을 잇는다. 매년 300명의 아이들이 거쳐가는데 중국 전역에 있는 고3 한국 학생들이 온다. 지방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들이 고3 때는 학교에 적만 걸어두고 기숙입시학원에서 입시 준비하는 것을 허용해준다고 한다.
   
   100명의 학원강사 가운데 한족 강사는 어문, 조선족 강사는 수학과 물리, 한국 강사들은 영어를 담당한다. 원생 전원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외출·외박은 부모 동의하에만 허용된다. 학생들은 7시에 기상해 밤 11시30분까지 공부를 한다. 남녀 원생 간에 연애는 금지되고 사감들은 감시의 눈을 번뜩인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왕징의 세계 최대 한국국제학교
   
▲ (왼쪽부터) 홍경미 북경고려학원 원장, 이원오 북경한국국제학교 교장, 박국신 북경총한국학생회연합 회장, 이동규 베이징대 한국유학생회 회장

   왕징 한인타운의 중심은 왕징 3, 4단지 아파트다. 지난해 12월 개통된 지하철 15호선 왕징역을 중심으로 남쪽에 자리 잡은 대단지 아파트다. 1998년 준공된 5300여가구의 3단지와 2002년 준공된 3500여가구의 4단지가 왕징제(望京街)를 경계로 서 있다. 서울의 잠실이나 목동의 대단지 아파트와 많이 닮았다. 왕징 3단지 안에 있는 마이톈(麥田)부동산의 부동산중개사 자오잉잉(趙營營)씨는 “왕징 3, 4단지 주민들의 절반 가까이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단지 곳곳에서는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자오씨의 안내로 찾아간 한 가정집에는 조선족 보모가 아이를 재워둔 채 소파에 누워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고 있었다. 아파트단지 안에는 (한)국어와 영어, 수학을 비롯해 태권도, 검도, 피아노, 미술학원이 단지 곳곳에 있다. 주부들을 위한 중국어학원과 골프교습소도 성업 중이다. 재능교육, 웅진씽크빅 등 방문학습지 광고도 게시판에 빼곡했다. 자오씨는 “아이들 교육에는 3단지가 최고”라며 “18세 때까지 아파트를 한발짝도 안 벗어나고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왕징에 사는 유영직(13)군은 북경한국국제학교의 6학년 학생회장이다. 제약회사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왕징에 살고 있다. 어머니의 권유로 5학년 때 부회장을 했고 지금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유군은 “베이징에 오히려 학원이 더 많다”며 “피아노, 영어, 수학 외에 중국어와 논술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 수학, 국어 학원만 다니는 자신은 그나마 나은 편”이란 것이 유군의 얘기다. 그는 그래도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건 기본”이라고 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겨 다니는데요. 새벽 1시에 집에 들어가는 애들도 있어요. 학원버스가 다른 학원 앞까지 데려다주고 마지막에는 엄마들이 학원 앞에 찾아와서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요.”
   
   유군이 다니는 왕징의 북경한국국제학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국국제학교다. 한국식 3월 학기제를 채택하며 100여명의 교사가 1180명의 한국 학생을 가르친다. 베이징의 한국인 자녀들의 절반가량이 북경한국국제학교 출신이다. 밥과 국, 김치로 이뤄진 한국식 급식이 제공돼 대다수 한국 학부모들은 자녀를 이곳에 보낸다.
   
   지난 12월 19일 찾은 북경한국국제학교 둘레에는 가시가 돋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높이만 무려 660㎝에 달하는 철조망은 교도소를 연상케 했다. 이원오(50) 교장은 “2007년 탈북자들이 국제학교로 진입해 외교문제로 비화하면서 베이징시 공안국에서 학교 주변을 철조망으로 둘러치고 주위에 CCTV를 설치했다 들었다”고 말했다.
   
   일선 사회과 교사 출신인 이원오 교장은 2009년 8월 베이징으로 왔다. 그는 2003년부터 5년간 상하이(上海) 총영사관에서 교육부 파견 교육영사로 근무한 것이 계기가 돼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서울 수도여고 교감으로 재직하던 2008년 북경한국국제학교 교장직 공모에 지원해 북경한국국제학교로 왔다.
   
   전 세계 한국국제학교는 30개. 이 중 10개가 중국에 있다. 북경한국국제학교는 1992년 한·중수교가 체결된 지 6년 만인 1998년 설립됐다. 학교 공간은 이미 포화상태다. 학생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 미봉책으로 복도 일부를 석고보드로 막아 교실로 쓰고 있다. 이 교장은 “1992년 한·중수교 후 양국 간 폭증한 교류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우다오커우의 한국 유학생들
   
▲ (왼쪽부터) 차신준 베이징대 대학원 교수, 김상형 장강상학원 학생, 류시호 화가, 김석봉 대교개발 대표

   왕징에서 자란 아이들이 가는 곳은 베이징 서북쪽의 우다오커우(五道口)다. 중국의 양대 명문대학인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비롯해 런민대, 어언대, 지질대, 임업대, 광업대, 체육대 등 주요 대학이 모여 있는 대학촌이다. 중국 IT산업의 요람인 중관촌(中關村)과도 지척이다. 왕징에서 4환로(4번 순환고속도로)를 따라 우다오커우를 찾았다.
   
   지하철 13호선 우다오커우역 맞은편의 동원빌딩은 한국 유학생들의 아지트다. 지하 1층의 글로벌클럽을 시작으로 1층 뚜레쥬르, 3층 사랑방과 포장마차, 4층 탄탄대로(고깃집), 5층 한국 노래방, 6층 커피숍이 있다. 베이징 특산인 옌징(燕京)맥주만큼 참이슬소주가 많이 팔리는 곳으로 ‘미성년자 출입금지’ 같은 경고문도 한글로 쓰여 있다.
   
   한국 유학생들은 1992년 한·중수교 직후부터 우다오커우에 모였다. 유학생들은 환율로 인한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며 우다오커우 상권을 키워냈다. 하지만 1999년 베이징시 당국이 외국인 불법주거단속에 나서면서 우다오커우 상권은 치명타를 맞았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유학생 상당수가 귀국해 지금은 2만명 정도가 남은 것으로 추산된다. 분위기는 예전만 못했다.
   
   런민대에 재학 중인 박국신(28)씨는 베이징의 한국 유학생 대표다. 공군 대령으로 예편한 부친의 권유로 다니던 지방대를 중퇴하고 우다오커우에 왔다. 지난 7월부터 북경총한국학생회연합(북총)을 이끌고 있다. 주중대사와 베이징총영사와도 종종 만나고, 지난해에는 류우익 통일부 장관(전 주중대사)과도 자리를 함께했다. 박씨가 이끄는 북총에는 베이징 소재 21개 대학 중 19개 대학이 소속돼 있다. 각 대학의 한국유학생회 대표는 임기 1년의 북총 회장을 선출한다. 피선거권은 각 대학 전임 학생회장 등으로 제한된다.
   
   베이징대의 한국유학생회 회장은 이동규(25)씨다. 한영외고 중국어과를 나온 이씨는 서울의 명문대학 공대에 합격했으나 중국으로 건너왔다. 베이징대 4학년인 그는 광화관리학원(경영대)에서 공상관리학(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모 시중은행 부행장의 아들인 이씨는 졸업 후 투자은행이나 보험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이씨는 “과 동기 180명 가운데 11명이 한국인”이라고 했다. 중국의 성(省)급 행정구역 34곳의 ‘장원(1등)’ 중 무려 28명이 그와 같은 수업을 듣는다. 그는 “공모전을 휩쓸고, 교수보다 설명을 잘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처음 입학하니까 너는 어디 성의 장원이냐고 물어요. 전부 다 장원이라 저도 그냥 ‘난 서울 장원’이라고 답했죠.”
   
   그에 따르면 특출난 중국 학생은 3학년 말이나 4학년 초에 기업에 스카우트돼서 1년을 그냥 논다고 한다. 학생들은 대개 홍콩이나 싱가포르, 상하이, 선전 등 남쪽지방의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베이징에 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씨는 “경영학 전공이라서 공직을 지망하는 친구들은 생각보다 적다”며 “대신 다들 ‘돈 욕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비싼 학비는 그의 고민거리다. 특히 자국학생과 외국학생 간의 학비와 기숙사비 차별은 심각하다. 베이징대 중국 학생들이 연간 등록금이 5000위안인 데 반해 외국인 학생은 2만6000위안(문과)에 달한다. 이과의 경우 3만위안이다. 기숙사비도 중국 학생들이 연간 900위안인 데 반해 유학생은 한 달에 2700위안이다.
   
   대학생활이 한국과 판이하다보니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도 많다. 차신준(53) 베이징대 대학원 객좌교수는 매 주말 베이징의 한국 유학생들을 상대로 경제학 강의를 한다. 지금껏 그의 강의를 거쳐간 베이징의 한국 유학생은 700여명이 넘는다. 한인사회에도 소식이 퍼지자 일부 기업들은 “강의 비용 일부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한때는 도피유학이 80% 차지”
   
   “우다오커우는 한때 밤만 되면 ‘소돔과 고모라’였어요.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도피성 유학이 80%였죠. 전형방법이 달라 베이징대도 맘먹고 1년만 공부하면 쉽게 들어갔거든요. 하지만 중국말도 안 통하지, 대학에서는 유학생 대접도 안해주고 유학생들끼리 따로 배우게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을 채용하는 기업에서도 불만이 많았죠.”
   
   차 교수가 중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한·중수교 전인 1989년이다. 노태우 정부 때 한·중수교를 학술 차원에서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 등을 도와 한·중 간 학술교류 업무를 도왔다”고 했다. 중국 측 인사들을 한국에 초청해 포항제철과 울산현대조선을 보여주는 등 산업시찰과 국제회의도 기획했다.
   
   1992년 수교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중국 전문가가 극히 부족했다고 한다. 차 교수 역시 한국외국어대에서 줄곧 강의를 해오다 수교 5년 후인 1997년에야 랴오닝성 다롄(大連)의 동북재경대학에서 약 1년간 중국어를 배웠다. 2002년부터는 아예 베이징으로 옮겨와 베이징대에서 박사후과정을 수료하고 중국과 한국 유학생들을 상대로 한국 경제를 가르치고 있다.
   
   “베이징대와 하버드대를 종종 비교하지만 베이징대와 하버드는 현격한 수준 차가 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는 “중국 대학의 경우 커리큘럼이 지나치게 편중돼 있고, 우리나라처럼 학생들 인성을 길러내는 데는 실패했다”며 “수업 중에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 아무 거리낌없이 짐을 챙겨가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고 했다.
   
   그 역시 베이징대 학생들이 특출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는 “베이징대 중국 학생들은 심오한 내공 같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이나 장쩌민(江澤民) 같은 중국 정치가들 있죠. 이런 사람들은 한국 정치인과 달리 뭔가 표현하기 힘든 심오한 깊이가 있잖아요. 베이징대 학생들도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것을 느껴요.”
   
   
   “관시 찾아 베이징 MBA스쿨로”
   
▲ 베이징의 대학촌 우다오커우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의 아지트 동원빌딩.
‘관시(關係)’를 찾아 베이징으로 오는 30대 직장인도 있다. 김상형(34)씨는 4 대 1의 경쟁을 뚫고 지난 9월 장강(長江)상학원에 입학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공군장교를 거쳐 무디스 계열의 한국신용평가(한신평)과 수천억원 자산을 굴리는 개인투자사 가이저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왕푸징(王府井)에 있는 장강상학원은 세계 최고의 화상(華商) 리카싱(李嘉誠) 홍콩 청쿵(長江)실업 회장이 세운 MBA스쿨이다.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추종파)에 맞서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과도 지척이다. 리카싱은 사회주의 중국의 심장부에 MBA스쿨을 세워 자본주의 경영기법으로 무장한 ‘붉은 자본가’를 길러내고 있다.
   
   지난 12월 20일 중국 상무부(商務部) 청사가 내려다보이는 장강상학원에서 김씨와 만났을 때 성탄절 파티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그는 “파티를 통해 상학원 동료들과 관시를 다진다”며 “장강상학원에서는 이같은 파티가 거의 매일 있다”고 말했다. 관시를 다지러 온 김씨는 “공부와 사교를 50 대 50으로 가져가려 한다”고 말했다.
   
   “중국 쪽에 투자를 하려다 보니 정보에 제약이 너무 많았어요. 데이터도 부족할 뿐더러 믿을 수가 없었죠.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 금융 쪽에서도 여러 명을 접촉해 봤지만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어요. ‘관시’가 제대로 된 사람도 없고요. 그래서 중국 중심의 친구들과 ‘관시’를 맺을 만한 곳에 가자고 결정했죠.”
   
   장강상학원의 원생은 60명에 불과한데 이 중 7명이 외국인이다. 또 6명은 ‘ABC(미국 태생의 중국인)’로 한국인은 김씨를 포함해 단 2명에 불과하다. 그는 장강상학원에서 제공하는 100㎡(30평) 고급 레지던스에서 동료 3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장강상학원 원생들은 레지던스에 1년간 엉켜 살며 끈끈한 관시를 다지는 데 주력한다.
   
   김씨에 따르면 원생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전후다. 중국에서 중상위권 이상 집안의 자제들이 들어오는데 수천억원대 사업을 굴리는 집안 자제도 여럿이다. 김씨는 “가장 부잣집 아이는 지린성(吉林省)에서 광산으로 떼돈을 번 조선족 아들”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개 부모의 사업을 이어받으려 하거나, 자기 사업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물론 “공부도 혹독하게 시킨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1년에 들어가는 학비는 미국의 상위권 MBA 수준인 31만위안(약 5600만원)에 달한다. 베이징대나 칭화대 MBA의 2~3배다. 하지만 100%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1년간의 MBA 기간 중 춘절(春節) 3주 휴가를 제외하면 방학도 없다. 그는 “장강상학원은 그야말로 한국식 학원”이라고 말했다.
   
   왕푸징에서 다시 왕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왕징에 있는 중앙미술학원은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이다. 중국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예술가들이 공방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다산쯔(大山子) 798 예술구’와 도로 하나 건너에 있다. 중앙미술학원에서 유학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약 200여명. 이 중 절반이 넘는 100여명이 한국인 미술학도다.
   
   
   중앙미술학원 외국인 중 절반 한국인
   
   화가 류시호(50)씨는 지난 2004년 “한국화의 뿌리를 찾겠다”며 왕징으로 넘어왔다. 그전까지 류씨는 고향인 충북 제천에서 수묵화를 그리던 전업화가였다. 류씨는 지난 6월 중앙미술학원 석사를 졸업하며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류씨는 “외국인이 우수작품상을 받은 것은 중앙미술학원 94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류씨가 중국을 택한 것은 제천미술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다. 2000년부터 3년간 구이린(桂林) 지역 미술가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후 곧장 중국행을 결심했다. 유학원을 수소문해 중앙미술학원을 점찍었다. 사실 그는 “베이징으로 건너올 때 ‘한국 수묵화를 중국 대륙에 제대로 알려줄 것’이란 자만심도 있었다”고 했다.
   
   류씨는 “한·중 간 미술교육이 너무나 달라 처음 3년간은 적지않게 방황했다”고 말했다. 중앙미술학원의 중국 교수들에게 한국 유명화가의 작품을 보여주자 “고등학생이 그린 그림이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선 미술의 기본인 석고데생은 거의 안 했다. 높은 서양인 코의 석고모형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모델만을 고집했다. 모델층이 전문 모델로만 협소한 한국과 달리 13억 중국에서는 10대 소녀부터 70대 할머니까지 일반인들을 ‘올 누드’를 전제로 마음껏 그릴 수 있었다. 교육 방식도 교수가 일일이 지도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각종 고서와 옛 그림들을 찾아서 ‘임모(臨摸·베껴 그리기)’하는 식이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서예를 해볼 것도 권했다.
   
   결국 본과 졸업을 1년 앞두고 그는 “중국식 방법을 따라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림붓 대신 서예붓을 잡고 유명화가 작품을 임모했다. 그러다 보니 역대 화가들의 준법이 자연히 익혀졌다고 한다. 그는 “임모가 수련으로만 끝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장다첸(張大千), 리커란(李可染)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도 임모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작품활동이 이뤄지는 미술품 중 80%는 (중)국화예요. 우리는 한국화가 작품활동 중 4분의 1 정도나 될까요. 미술가의 최일선인 서울 인사동 화랑가에서는 ‘수묵화만 아니면 된다’고 말해요. 수묵화가 그만큼 대접을 못 받는다는 얘기죠. 자국의 고유문화와 전통에 대한 존중이랄까 이런 것들은 중국에서 정말 부러운 부분입니다.”
   
베이징 유일의 한국 호텔 ‘북경교육문화호텔’
   
   온돌방·한국어·한국가요… “개관 2년 만에 흑자 예상”
   
▲ 왕징의 북경교육문화호텔
학(學)의 도시 베이징(北京)에는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운영하는 호텔이 있다. 왕징(望京) 한인타운 한가운데 있는 북경교육문화호텔이다. 하얏트, 메리어트, 샹그릴라 등 외국계 호텔의 경쟁이 치열한 베이징에서 유일한 한국브랜드 호텔이다. 150개 객실을 갖춘 비즈니스호텔로 중국 이름은 교문대주점(敎文大酒店)이다.
   
   지난 12월 19일 찾은 북경교육문화호텔 옥상에는 교직원공제회의 심벌마크가 선명했다. 호텔 입구에는 ‘북경교육문화호텔’이란 한글 간판도 보였다. 호텔 주위로는 중국 최대의 한인타운 왕징답게 오발탄(양대창) 등 한국 음식점도 많이 보였다.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30분, 지하철 15호선 왕징역에서 도보로 5분거리에 불과했다.
   
   호텔 로비로 들어가자 한국 가요가 흘러나왔다. 호텔 프런트에서 쓰는 공용어는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였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여행자들도 호텔 이용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이 호텔 이원만 영업부장은 “중국 호텔로는 유일하게 한국식 온돌방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직영하는 북한 식당 옥류관과도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이 호텔을 위탁운영하는 사람은 교직원공제회 산하 대교개발의 김석봉(58) 대표다. 특2급 서울교육문화회관을 비롯 경주와 지리산, 설악산 등 네 곳의 교육문화회관(호텔)을 이끄는 김 대표는 국내 호텔업계의 숨은 실력자. 그는 지난해 중국 측 파트너가 제안한 20년간 위탁운영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인타운 왕징에서 한국 브랜드가 먹힐 것이라고 판단했다. 더욱이 김 대표는 새해부터 국내 호텔 객실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는 점에도 주목했다. 새해 국내에는 30여개의 신규호텔 공급이 예정돼 있다. 객실로는 약 2만5000실이 증가된다. 만성적 숙박난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호텔 업계로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다. 이 같은 경쟁을 중국 베이징에서 돌파하자는 것이다. 이미 이 호텔은 베이징 연수와 세미나 등이 많은 교육계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서울대, 건국대 등 대학들의 각종 세미나도 이어졌다. 여름과 가을 성수기 때 방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베이징에서 유일하게 교직원 할인혜택도 제공한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건너가는 60만 교원가족에게는 50%의 할인혜택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한국 브랜드 호텔 개관에 주중대사관과 코트라 등에서도 반색을 표하고 나섰다고 한다. 김 대표는 “개관 첫해 평균 객실판매율은 70%를 상회했다”며 “새해에는 개관 2년 만에 흑자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초기투자가 막대한 호텔업 특성상 개관 초 4~5년간의 적자가 불가피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다.
   
   서울교육문화회관의 베이징 진출은 롯데와 워커힐 등 대기업 호텔들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한국 브랜드로 호텔을 위탁경영하는 곳은 쑤저우의 신라호텔이 유일하다. 조기현 서울교육문화회관 경영지원실장은 “롯데와 워커힐도 향후 중국 시장 진출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안다”며 “북경교육문화호텔이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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