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용 교과서 ‘iBooks 2’를 실행하는 모습.
애플용 교과서 ‘iBooks 2’를 실행하는 모습.

‘2012년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최고 인기 상품은?’

답은 애플 제품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고가품에서부터 이어폰, 소형 마이크,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애플 로고가 찍힌 제품이 밸런타인데이를 지배했다.

붉은 장미를 선물하는 ‘촌스러운’ 풍경은 멀고도 먼 20세기 이야기가 돼 버렸다. 한입 베어문 사과의 색깔은 하나만이 아니다. 무지개나 팔색조의 얼굴이 애플 로고 바탕색이다. 붉은 장미쯤은 팔색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2012년 애플이 가장 주목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애플의 일 하나하나가 전부 중요하고 유기적으로 통합화돼 있다는 점에서 단 하나를 집어내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애플의 성장 과정과 그동안의 사업 방향을 보면 중요한 흐름 정도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 사업이다.

애플은 올해 들어서 즉시 아이패드를 통한 교과서 개발에 적극 나설 것을 선언했다. 지난 1월 18일 발표된 ‘iBooks 2’ 프로젝트다. “(교육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 걸쳐, 그 어떤 수준의 학생에게도 맞는 교과서를 학생 모두에게 제공하겠다.”

권당 가격은 최고 14.99달러

생물학과 출신의 애플 부사장 필립 실러가 발표한 애플의 2012년 사업계획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를 전부 애플로 흡수해서 제공한다는 의미다. 권당 가격은 최고 14.99달러라고 못박았다. 함께 교과서 제작에 들어갈 두 군데의 회사도 소개됐다.

교과서를 디지털로 바꾼 뒤 아이튠스를 통해 학생들에게 공급한다고 한다. 애플용 교과서가 나오면 학생들의 성적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 사항’도 사업계획 안에 들어가 있다. 미국 학생들의 수준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할 때 읽기가 17위, 과학이 23위, 수학이 31위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교과서는 영어로 텍스트북(textbook)이다. iBooks 2 프로젝트는 텍스트북이 텍스트(text)나 북(book)이 될 필요가 없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문자로 표현되는 텍스트일 필요도 없고, 종이로 뭉쳐진 책으로 만들어져야만 한다는 법도 없다. 그래프, 3차원, 애니메이션, 친구나 교사와의 소셜네트워킹, 원거리 학습, 국경을 넘어선 글로벌 학습, 자동 번역과 실시간 통역을 통한 외국 여행…. 이 모든 것들이 iBooks 2의 교과서를 통해 가능해진다.

필자는 애플이 제공하는 iBooks 2의 모델용 교과서에 들어가 21세기 학습 교과서가 무엇인지를 확인해봤다. 화면이 전부 컬러로, 선명한 사진과 동영상이 어디를 가도 따라다닌다. DNA 구조를 3차원 그래프로 볼 수 있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교과서 내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질문을 올리고, 그러면 곧바로 누군가로부터 답을 얻는다. 답이 맞는지 여부에 대한 코멘트도 곧바로 따라온다.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 다른 나라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며 과제를 준비할 수도 있다. 인류가 쌓아온 모든 IT기술과 정보가 교과서 안에 들어가 있다. 필립 실러가 말한 대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애플 속 교과서에서 발견될 수 있다.

다채롭고 무한한 콘텐츠

iBooks 2 교과서의 최대 장점은 다채롭고 무한한 콘텐츠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이란 인간 본능에 호소하는 물건이 iBooks 2 교과서다. 어른을 대상으로 한 애플 임팩트가, 호기심에 넘치는 미성년자로 확대된다는 의미다.

미국 내 초·중·고 학생의 수는 5500만명 정도다. 1만3000여 학교가 전국에 있다. 애플 측은 이미 150만대의 아이패드가 학교 현장에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학교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아이패드를 구입하고 있다. 2011년 피어슨(Pearson)재단 조사에 따르면, 아이패드를 중심으로 한 태블릿PC를 구입할 의사를 가진 고등학생은 70%가 넘는다고 한다. 20%의 고등학생은 6개월 내에 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패드가 없기 때문에 iBooks 2 교과서를 읽을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가까운 시일 내에 사라질 전망이다. 까마득한 옛날 얘기처럼 들리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논쟁은 아이패드에 관한 한 수년 내로 끝날 것이다. 애플 교과서의 경우 시중에서 구입하는 아날로그 교과서에 비해 절반 이상 싸다는 점도 강조된다. 개인 돈으로 아이패드를 산다 해도 전체적으로 볼 때 저렴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소비자 5500만명을 대상으로 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겸비한 총천연색 비즈니스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3차원으로 나타나는 피노키오 얘기와 아날로그 책에 담긴 피노키오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피노키오 탄생에 관한 배경 스토리와 피노키오의 이미지를 SNS를 통해 이탈리아 어린이들과 비교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 필자조차 참가하고 싶은, 흥미로운 교육 방법이다. 현재 애플의 기술력과 창조력을 감안한다면 100%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다.

한 세대 앞을 내다본 투자

한국과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한국 초·중·고 교과서의 상당 부분도 애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자연과학, 문학, 미술, 수학, 공학 등에 관한 교과서가 한글로 번역된 뒤 곧바로 시판될 것이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교과서 선정을 둘러싼 비리도 꼬리를 감출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iBooks 2에 대한 애플의 집착은 경제적 관점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과서는 차세대를 위한 나침반이다. 차세대를 대상으로 한 미래 투자가 애플이 구상하는 iBooks 2의 진정한 가치다. 미국의 괜찮은 공립학교를 가면, 실험실이나 연구실 한 부분에는 반드시 애플의 맥(Mac)이 자리 잡고 있다. PC도 있지만, 어린이들의 관심을 끄는 컴퓨터는 역시 애플 제품이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사진 영상에 관한 소프트웨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필자도 똑같이 느끼지만, 애플 맥은 컴퓨터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똑똑한 천재를 존경할 수는 있어도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애플 맥은 지적 수준 여부에 관계없이 신비로운 향기로 가득찬 아름답고 젊은 여인으로 받아들여진다. 공립학교에 갈 때마다 목격하지만, 어린이들이 주로 모여있는 곳은 결코 PC가 아니다. 애플 맥이 주된 놀이 공간이다.

애플 제품에 환호하는 애플 ‘신자’들의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이미 애플 맥에 익숙했다는 배경을 갖고 있다. iBooks 2는 미래의 애플 신자를 만들기 위한 투자다. 하드웨어로서의 애플이 아닌, 소프트웨어로서의 애플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한 세대 앞을 타깃으로 한 비즈니스다.

정상 기업을 만드는 최고의 비전

미국 젊은이 중에 유독 소니 제품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존닷컴의 CEO 제프 베조스도 그중 한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1980년대 일본의 경제 신화를 지켜본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최첨단이었고 비싼 소니 제품을 산 아버지를 둔 세대들이다. 일본인들조차 멀리하는 컴퓨터 소니 바이오(Vaio) 시리즈가 아직 미국에서 팔리는 이유는 바로 30여년 전 기억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니 노스텔지어는 앞으로 길어야 10년 내로 사라진다. 소니에 환호하는 현 세대 미국 소비자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사회봉사적 의미가 강한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감동 스토리’가 될 것이다. 애플의 교과서 사업이, 빌 게이츠의 기부 NGO와 같은 위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시간문제다.

세계 정상에 선다는 것은 최고에 걸맞은 비전과 업적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언제부턴가 애플은 그 같은 사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들어서 있다. iBooks 2 프로젝트를 통한 미래의 투자야말로 애플이 하고 싶고 가장 중시 여기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IT세계라고 하지만 애플은 이미 한 세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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