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섭 대상 확보 → 본부 보고 → 인적사항 입수 → 접근 → 방북 → 세뇌 경제인은 사업 도와주고 정치인은 정치자금 대주는 방식으로 작업

“권영길·김근태·손학규·임종석도 포섭 대상 명단에 권영길 전 대표에 공작 시도했으나 끝내 넘어오지 않아 정치인 프로필 외운 후 가상 포섭 훈련도”

“민혁당·중부지역당·일심회·왕재산사건 북 노동당 지하당 사건 맞다 아직 밝힐 수 없는 정치권 간첩사건도 많아”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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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흡수하는 데 2년 정도 걸린다. 3년을 공들이다가 포기한 경우도 있다.”

마주 앉은 최진호(가명·50대)씨의 입이 어렵게 열렸다. 전해 들은 이야기 말고 자신이 직접 겪었거나 경험한 ‘대남공작’을 증언해 달라고 부탁하자 오랜 침묵 끝에 최씨의 말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최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5년간 북한 노동당 대남공작부의 해외 총책임자로 일한 인물. 아시아의 한 주요 국가에서 한국인과 조선족에 대한 포섭 임무를 수행하다 2003년 제3국으로 망명했다. 그동안 국내 언론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최씨를 최근 두 번에 걸쳐 인터뷰해 지금도 진행 중인 북한의 대남공작 실상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최씨는 “서울에 오기 전 지난 15년간 내가 ‘흡수’한 인물이 40여명”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포섭’이라는 말 대신 포섭의 북한 용어에 해당하는 ‘흡수’라는 말을 썼다. ‘무역 대표’라는 직함을 쓰는 사업가로 활동하며 적당한 대상을 찾아 간첩으로 흡수하는 게 자신의 임무였다고 한다.

최씨는 “흡수한 40명 중에 한국인 10명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나머지 사람들은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과 기타 아시아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구체적인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대략적인 신상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포섭한 한국인 10명은 주로 해당 국가의 지상사 주재원과 업무상 출장 온 사람들이었다고 밝혔다. 그에게 “포섭한 한국인들이 당국에 적발됐느냐”고 묻자 “내가 흡수한 인물들 중 마카오의 정보기관에 걸려 잘못된 조선족 2명을 제외하고는 잡혔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했다. 그에게 “다른 30여명은 지금도 간첩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냐”고 되묻자 최씨는 뜻을 알 수 없는 웃음만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최씨는 자신의 포섭 공작은 대상자 물색에서 시작해 북한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포섭 대상자를 북한에 보내 북한의 대남공작부서 소속 과장, 부과장, 차관과 차례로 접촉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는 끝났고, 대상자를 설득해 최종적으로 간첩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임무였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일단 포섭 대상이 선정되면 북한에 있는 대남공작본부에 간략한 신상정보를 보고한다. 주로 암호문으로 된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좋은 상품(포섭 대상)이 있어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회사의 의견을 알려주십시오’라고 보낸다. 이미 포섭된 대상들 중 변절의 기미가 있거나 이중간첩이란 의심이 들면 ‘전번에 계약한 ◯◯◯ 상품이 변질되어 계약을 파기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통신문을 작성한다.

이때부턴 북한의 대남공작부와 긴밀히 협조하며 포섭이 이뤄진다. 포섭 대상을 확보한 뒤 본부에 보고하면 그로부터 한 달 안에 대상자에 대한 세세한 인적사항이 날아온다. 이 자료엔 대상자의 가족관계, 친분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성향, 취미활동까지 담겨 있다. 포섭 대상자 거주 국가에 포진해 있는 북한의 간첩들이 수집한 자료다. 최씨는 “이 자료에 나온 사람의 성향을 염두에 두고 친분을 맺는다”며 “흡수에는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포섭 대상자를 발견하면 다가가 친해지면서 경계심을 푸는 게 우선이다. 잦은 만남과 통 큰 사업 지원 등으로 친구가 되는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외로 흡수가 쉽다”며 “경제인인 경우엔 무역사업이 수월하게 되도록 도와주면 되고, 정치인인 경우엔 정치자금을 대주는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와주면서 서서히 물들게 하는 것”이라며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된 경험이 있거나 현재 그런 사람이라면 (흡수가) 더욱 쉽다”고 했다. 그는 “주체사상에 한번 경도되면 빠져나오기란 상당히 어렵다”며 “그런 점에서 대남 간첩이었다가 전향한 김영환은 특이한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물론 포섭 대상자들에게 접근할 때 북한 대남공작기관의 간부란 말은 하지 않는다. 조국평화통일 사무국이나 해외동포 사무국 등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한다.

간첩 포섭의 종지부는 방북이다. 그는 “방북하고 안 하고는 엄청난 차이”라며 “일단 북한에 가면 세뇌시키는 프로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남공작부서 직원뿐만 아니라 대학 교원(교수)까지 동원된다는 것이다. 이들 대학 교수들은 사실 최면술사 혹은 심리학자에 더 가깝다고 그는 말했다. 세뇌된 포섭 대상들은 김일성·김정일에게 혈서를 쓰면서 충성을 맹세하고, 노동당에 가입함으로써 대남 공작부원이 된다. 그리고 공작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는 “간첩들에게 부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지하당 구축”이라고 했다. 주체사상에 동조하는 사람의 수를 늘리고 각종 매체를 통해 주체사상을 널리 알리는 게 임무다. 그밖에 해당 국가의 정치·경제·군사·문화의 모든 분야의 자료들을 수집해 공작본부에 보고한다.

최씨가 밝힌 간첩 포섭 공작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의 정치권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는 “우리의 흡수 대상자 목록에는 권영길 전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임종석 전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올라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권영길 전 대표의 경우는 실제로 꾸준히 공작 활동에 들어갔으나 끝내 넘어오지 않아 특히 포섭이 어려운 인물로 소개되기도 했다”고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정치권 인사들은 공작원 양성 시 가상의 훈련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포섭 대상에 오른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상세한 프로필을 숙지케 한 뒤 공작원 교육 마지막 단계에 가상 포섭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최씨는 “여러 명의 프로필 중 한 명을 선택하게 한 뒤 시험 보조 교원을 해당 인물로 가상 설정하고 그를 설득해 보이는 시뮬레이션 역할 게임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있었던 남한 정치권 공작 사례를 공작원 교육 교재로 활용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1950년 5·30 총선 당시 벌어졌던 ‘성시백 간첩 사건’. 이 사건은 북한이 총선을 이용해 정치적 침투 교두보를 확보하려고 했던 것으로, 정치인 100여명과 군 고위장교, 미 군정과 중화민국 대사관 직원 등 모두 200여명이 연루된 대규모 간첩사건이었다. 간첩 성시백은 1950년 5월 체포돼 6월에 처형됐다. 최씨는 “성시백 사건은 공작원 교육과 공작원들의 임무 수행을 위한 준비 단계에서 실제로 이용되는 교재에 담긴 사건”이라며 “성시백 공작조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짧은 시간에 조직망을 급속하게 확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하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단선 연락과 점조직의 원칙을 지키지 않아 조직원들 간에 혼선이 일어나고 조직 내 비밀 엄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재 성시백은 남한에서 세운 대남공작 활동의 공로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북한 신미리 애국열사릉(우리의 현충원에 해당)에 시신도 없이 안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인 지하당 조직사건으로 1953년 박정호 간첩사건, 1964년 통일혁명당 사건을 지목했다. 두 사건 다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전형적인 지하당 조직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핵심 인물을 노동당에 입당시켜 전국적인 지하당을 구축했고, 무장투쟁을 위한 특별조직까지 만든 사례라는 주장이었다.

최씨는 최근 국내 정치권의 종북 논란과 관련해 새삼 주목받고 있는 정치권 간첩사건이 조작된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 제기를 ‘말도 안 된다’며 부인했다. 그는 “민혁당 사건, 중부지역당 사건, 일심회 사건, 왕재산 사건 등은 북한의 공작원들에게 흡수된 간첩에 의해 결성된 대표적인 북한 노동당 지하당 사건들”이라며 “적발·처벌됐던 간첩사건들이 조작된 것이라면 북한 고위 인사와 공로가 인정되는 사람들만 안장되는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그들의 묘비와 가묘가 왜 존재하겠는가. 또 그 활동들에 대한 구체적 자료가 평양의 용성구역에 있는 조국통일전람관에 전시되고 공작원들의 양성 자료로 쓰이는 이유는 뭐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직 밝힐 수 없는 많은 (정치권 간첩) 사건들이 있다”면서 “통일되면 북한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날 한국 정치인들이 몇몇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종북 논란도 “과거 간첩사건들의 올바른 청산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국내 정세에 따라 왜곡되는 안보관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해외공작원 교육기관인 봉화정치학원에서 교육받고 배출되는 공작원 수만 50명 안팎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대남공작기관들은 해마다 최소 50명의 공작원을 육성하고 있는데 그들이 한국과 해외에서 지하당 조직 결성을 위해 공작 활동을 진행한 지 50년이 지났으니 그 규모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북한 정권이 존재하는 한 두 가지는 계속된다”고 강조했다. 핵무기 개발과 간첩에 의한 지하당 결성이다.

“핵무기는 북한의 히든카드이자 최후의 보루다. 6자회담을 백날 해도 김정은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공작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적화통일 야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북한 노동당과 군부, 국가안전보위부의 대남공작기관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남공작 활동 역시 시대에 따라 조금씩 전략을 바꾸며 이어질 것이다. 제2의 통혁당, 중부지역당과 같은 지하당 조직들이 계속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최진호씨와 어떻게 연결됐나

고위 탈북자 통해 소개받아… 北에 가족 생존, 신분노출 극도로 꺼려

기자는 북한의 해외 대남공작 아시아 지역 총책을 지낸 최진호(가명)씨를 우연히 알게 됐다. 처음엔 국내의 한 고위 탈북자로부터 “해외에 거주하는 북한 중앙당 고위층”이라고만 소개를 받았다. 이후 그와 수차례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갔고, 그러던 중 그가 대남공작부서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기자를 처음 만난 최씨는 자신이 15년간의 공작 활동에 대한 공로로 김일성·김정일로부터 ‘김일성’ 세 글자가 새겨진 스위스 명품 브랜드 오메가시계를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김일성 시계를 선물 받는 것은 공작원으로서 최고의 명예에 해당한다”고 했다. 시계 외에 간첩 포섭 및 주요 정보 입수의 공로로 김일성 표창장, 김정일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대남공작부서 해외 총책이라는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씨는 공식 인터뷰 자리에 나온 후에도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다. 가명을 요구했고, 자신이 수행한 공작 활동의 구체적 연도와 지명 등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 장소도 국내가 아닌 해외의 서로 다른 두 곳에서 갖자고 했다. 사실 그가 일하던 북한 노동당 산하 대남공작부서는 대외연락부(225국), 통일전선부,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 작전부 중 한 곳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구체적인 기관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자신의 신분 노출을 꺼린 이유는 아직 생존해 있는 북한의 가족 때문이다. 엘리트 계층이었던 최씨의 가족은 북한에서 상류층의 삶을 누렸지만 최씨의 망명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의 부모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뒤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최씨는 인터뷰 전인 5월 말 기자에게 ‘북한 대남공작 활동에 대한 분석’이란 장문의 원고를 보냈다. 그는 원고의 서두에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제 나름대로 쏟아져 나오는 북한의 대남공작에 대한 평가 자료들을 보면서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에 오랫동안 종사했던 한 사람으로 그 실상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진실되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이런 각오와 준비 끝에 어렵게 이뤄진 것이다.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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