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7일 대통령직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의 기자실 노트북.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1월 17일 대통령직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의 기자실 노트북. ⓒphoto 조선일보 DB

미디어빅뱅 시대다. 신문, 방송, 통신, 인터넷방송이 융합하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신매체가 탄생하고 있다. 매체 증가에 비례해 기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 등록된 출입기자만 1000명이다. 대통령 후보 유세장에 가면 군중의 3분의 1이 기자라는 우스개도 있다. 인수위에 1000명의 기자가 과연 필요한가. 이대로 가도 괜찮은가. 소통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은 무엇이며, 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 언론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인수위 출입기자가 1000명이 과연 필요한가?’에 있어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찬반 양론으로 나뉘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인구 대비 기자의 수가 많다는 것은 긍정적 지표이지 부정적 지표가 아니라는 것. 많은 기자들이 기사를 쏟아내면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질 것이라는 차원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박 교수는 “택시기사들이 택시가 너무 많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업계 사람들이 먹고살려고 하는 것을 뭐라고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를 표명하는 언론학자들이 더 많았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기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출입기자는 정보 공급처와 언론사 양쪽의 편의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이쯤 되면 효율성 차원을 넘어선 것”이라는 의견이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역시 “언론사들의 밸류나 사회적 합의 없이 기자로서 인정해주다 보니 컨트롤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지적했다. 현재 인수위에 쏟아지는 부정적 기사들은 결국 출입기자가 많은 데에 연유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의 말이다.

“인수위 관련 부정적인 기사, 기자 많은 탓”

“1000명의 기자들이 특종 경쟁을 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빨리 특종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있는데, 인수위에서는 정보를 빨리 내놓지 않으니 소통부재다 뭐다 하는 기사라도 내는 형국이 된 거다. 인수위가 소통부재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언론의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 구상의 단계가 아닌데, 인수위에서 내놓을 만한 새로운 뉴스가 얼마나 있겠나.”

미디어의 요건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다 보니 소규모의 온라인 언론사가 부지기수다. 대학에서 홍보처장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소규모 온라인신문사의 횡포에 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1인 온라인신문사에서 우리 학교와 관련해 부정적인 기사를 냈는데, 그 뉴스가 온라인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 모 방송사 뉴스에까지 보도됐다. 온라인신문사에 광고를 안 하면 큰코다칠 수 있다.”

대부분의 언론학자는 현재의 미디어 과잉이 비정상적 현상이라는 데에는 동감했다. 하지만 규제의 필요성과 규제 방식에 있어서는 저마다 의견이 달랐다. 성동규 교수는 법률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 교수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기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다. 법률적으로 인터넷미디어에 대한 개념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몇 명 이상의 기자를 두고 하루에 몇 건 이상의 기사를 올려야 미디어로서 자격을 인정해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대체로 특정 잣대로 선별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유의선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특정 관점을 기초로 어떤 소속의 기자를 못 들어가게 하는 건 위헌적 소지가 크다”라고 말했다. 한규섭 교수 역시 “우리나라는 독재정부의 트라우마 때문에 법적 규제가 쉽지 않다”며 “자격 위주로 규제하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했다. 박성희 교수는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업계 내의 문제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규제하는 건 언론탄압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낚시성 제목이 들어간 기사를 모아서 보여주는 사이트 ‘충격 고로케’.
낚시성 제목이 들어간 기사를 모아서 보여주는 사이트 ‘충격 고로케’.

결국 손해를 보는 건 독자다. 온라인을 통해 마구 쏟아지는 뉴스 중에는 정제되지 않은 기사가 많다. 사실 관계가 부정확한 뉴스가 있어도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없다. 그렇다 보니 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사들이 난무하고 자극적인 뉴스들이 판을 친다.

‘충격 고로케’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자극적인 제목이 들어가는 기사들을 모아 놓은 사이트로, ‘충격’ ‘경악’ ‘헉’ ‘이럴 수가’ 등 자극적인 어휘별로 분류해서 기사를 보여준다. 이 사이트 통계에 의하면 하루 2000여건의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쏟아진다. 사이트는 친절하게도 해당 낚시성 어휘가 많이 들어간 언론사를 순위별로 보여준다. 사이트에는 ‘충격’의 사전적 의미를 언급하면서 ‘언론’ 분야에서의 의미를 이렇게 재정의했다. ‘부디 꼭 클릭해달라고 독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거나 독자를 낚아보기 위해 언론사가 기사제목에 덧붙이는 일종의 주문’.

지난 1월 3일에 오픈한 이 사이트에 쏟아지는 관심은 폭발적이다. 개발자 이준행씨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기사는 무엇이며, 왜 사람들이 이 사이트에 열광하고 좋아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충격 고로케’를 보면 제목만으로 봐서는 메이저 언론사든, 소규모 언론사든 차별화가 안 된다. 독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누가누가 더 자극적인 제목을 다나’를 내기라도 하는 듯하다. 이준웅 교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언론사나 군소 언론사가 많은 건 문제가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다. 좋은 기사를 쓰는 거다. 품질 경쟁으로 승부해야 한다. 자극적인 제목이 아니면 독자들이 안 볼 거라고 예단하는 게 문제다.”

유의선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외국의 정통 저널리즘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지 않는다. 인식의 문제다. 매체가 많아지는 것을 현실적으로 규제하기 힘들다. 독자는 냉정하게 보고 있다. 정통 언론에서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남들은 그래도 저널리스트로서 제대로 가자’ 하는 문화의식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규섭 교수 역시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매체가 많아도 서로 다른 마켓을 가지고 갈 거다. 이념적으로도 그렇고, 연령별로도 그렇다. 미국 팍스뉴스가 성공한 것은 이념적 색채를 확실히 했기 때문이다. TV조선이 대선기간 동안 시청률이 증가한 것은 니치(niche)마켓을 잘 잡았기 때문이다. 매체에 맞는 포맷을 개발하면 분명히 열혈 독자가 있다.”

매체의 수가 양적으로 폭증한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수치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가 유독 두드러진다. 기사의 공급 과잉을 시장 기능에 맡길 것인가,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규제를 할 것인가. 황근 교수는 원하면 누구나 다 기자가 될 수 있는 현재의 미디어 구조에 대한 우려가 강했다.

“인수위 출입기자 1000명 시대에는 엠바고가 있을 수 없다. 특종 경쟁에만 목매는 분위기에서 기자들에게 무슨 책임감이나 윤리성을 기대하겠나. ‘알 권리’라는 미명이 많은 것을 가린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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