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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9호] 2013.03.25

40개국 과학자 3600명 힉스입자 올림픽 “한국서도 쫓고 있다”

힉스입자 연구팀 한국 대표 박인규 교수의 3년 추적기

정장열  차장 

▲ 스위스 제네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가 운용하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설치된 충돌입자검출기(CMS) 앞에 선 우리나라 학자들.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고려대 문동호 박사, 서울시립대 김지현 박사, 고려대 심광숙 명예교수,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학부인턴, 대학원생이다. 이 사진은 2009년 찍은 것으로 문동호 박사는 현재 미국 시카고대 박사후 과정에 있다. photo 서울시립대 CMS센터
지난 3월 19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학교 과학기술관. 2층 ‘서울 CMS센터’ 입구의 벽면에 붙어있는 101.6㎝(40인치) 크기의 모니터에 물감을 흩뿌려 놓은 추상화 같은 화면들이 깜박이고 있었다. 거의 1초마다 화면이 바뀌면서 서로 다른 모양의 영상들이 떴다가 사라졌다.
   
   “제네바에서 글로리아망을 타고 오는 힉스입자 추적 데이터입니다. 일종의 중계방송이죠. 우리 연구진이 이를 분석합니다.”
   
   센터 안내를 하던 박인규(48) 교수의 말에 귀가 번쩍 트인다. 박 교수에 따르면 서울시립대의 CMS센터로 전송되는 영상들은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운용하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충돌 실험을 한 입자들이 부서지며 그려낸 궤적을 담은 데이터다. 이 실험 데이터가 제네바와 한국을 잇는 전용망을 타고 빛의 속도로 날아온다는 것이다. CERN의 실험은 둘레가 27㎞에 이르는 거대한 원형가속기 안에 일종의 초미니 빅뱅을 구현해 ‘신(神)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입자(Higgs Boson)를 찾아내는 지구적인 프로젝트다. 힉스입자는 현재로선 우주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준모형 이론에 등장하는 17개의 입자 중 아직 인간이 실험을 통해 확인하지 못한 유일한 입자다. 힉스입자를 찾으면 표준모형이 완성되면서 물질에 어떻게 질량이 부여됐는지가 설명된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비밀이 하나 더 밝혀지는 셈이다.
   
   이런 엄청난 인류 실험의 현장이 서울 한복판까지 연장돼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현재 서울시립대에는 박인규 교수를 비롯해 박사후(post-doc) 과정에 있는 연구원 3명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4명 등 모두 8명이 제네바에서 날아오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아직 전 세계 어떤 과학자도 공식 확인하지 못한 힉스입자 찾기에 매일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립대의 연구자들뿐만이 아니다. 제네바에서 전송되는 데이터를 보는 한국의 연구자는 서울에만 30명 가까이나 있다. 서울시립대 외에 고려대 10명, 성균관대 8명의 연구진이 데이터 분석에 참가하고 있고, 올해부터 프로젝트에 참가한 서울대에도 1명의 교수가 ‘힉스 찾기’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로 치면 연구자는 더 늘어난다. 지방에도 경북대와 전남대, 강원대, 전북대가 힉스입자 추적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2007년부터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의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현재 모두 77명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다. 2007년 55명으로 출발해 인원이 현재 규모로 늘었고, 올해는 80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게 박인규 교수의 설명이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연구비도 2007년 연간 7억5000만원에서 시작해 현재는 연간 15억원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현재 연구진 중 12명은 교수, 박사 연구원이 28명, 나머지 40명 정도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이다. 77명의 연구진 중 박사 연구원 5명과 학생 8명 등 13명이 풀타임 연구원으로 제네바에 가 있다. 박인규 교수는 지난 3년간 이 77명으로 구성된 한국 연구팀 대표를 맡아왔고, 오는 5월에 고려대 최수용 교수(물리학)에게 대표직을 넘긴다. 박 교수는 지난 3년간 대표를 지내면서 2010년 1년간은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이곳에서 입자 가속기가 첫 영상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쏟아내는 짜릿한 현장을 지켰고, 그외 기간에는 수시로 제네바에 출장을 다녀왔다. 박 교수는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 제11대 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제네바발(發) 데이터 영상을 보는 과학자들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전 세계 40개국, 200여개 대학의 3600여명의 과학자들에게 ‘CMS 영상’이 전달된다. 제네바의 거대강입자가속기에는 15m 높이, 건물 5~6층 규모의 입자 검출기 두 개가 붙어 있는데, 서울시립대 센터명에 붙어 있는 CMS는 이 검출기 중 하나를 뜻한다. 이 검출기는 충돌 입자의 궤적들을 촬영할 수 있는 일종의 고속 특수 디지털카메라다. 원형가속기에는 CMS 외에 아틀라스(Atlas)라는 또 다른 검출기가 CMS 정반대에 설치돼 있다. CMS팀과 아틀라스팀은 인적·정보 교류가 차단된 완전히 독립된 상태에서 각각 충돌 입자 데이터를 분석하며 힉스입자 찾기에 나서고 있다. 한쪽 팀이 힉스입자를 확인했을 경우 이를 다른 팀의 분석 결과와 비교해 힉스입자 확인을 완벽하게 입증하기 위해 독립된 두 개의 연구팀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진은 미국이 주도하는 CMS 연구팀에, 일본의 연구진은 유럽이 주도하는 아틀라스 연구팀에 속해 있다.
   
   아틀라스팀에도 CMS팀과 비슷한 규모의 전 세계 연구진이 아틀라스 검출기가 보내오는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전 세계 80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힉스입자 찾기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박인규 교수는 “힉스입자 찾기 프로젝트는 인류가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집단 지성의 올림픽”이라고 표현했다. “힉스입자를 찾는 과정은 너무 복잡합니다. 20개 CERN 회원국들이 LHC가속기 건설을 승인한 것이 1992년인데, 이후 설계부터 설치, 운영까지 총 14년이 걸렸고 돈도 7조원이 들어갔습니다. 가속기가 완성됐다고 끝이 아닙니다. 검출기를 만들어야 하고, 입자 충돌 시 언제 검출기 내부의 셔터를 당겨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전자회로 보드도 설계해 트리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데이터 저장, 분석, 압축, 전송 등 엄청난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600명의 두뇌가 말 그대로 한 몸같이 일을 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작업입니다.”
   
▲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가 운영 중인 둘레 27㎞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내부.

   사실 서울시립대 ‘CMS센터’ 전광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제네바발 영상 데이터들은 ‘중계방송’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간이 지난 것들이다. 기자가 본 영상들에는 ‘2011년 5월 ○○일’이라는 실험 날짜가 찍혀 있었다. 본래는 실시간으로 영상이 날아오지만 작년 12월 가속기가 가동 중단된 이후 과거 데이터 중 힉스입자 사상(寫像)이라 여겨지는 데이터를 CERN에서 보내온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이 영상 데이터 분석 작업과 관련해 “입자를 충돌시킨 후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충돌한 입자가 붕괴돼 쪼개지며 흩어지는 궤적이 나타나면 이를 역추적해 쪼개지기 이전의 ‘엄마 입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엄마 입자’의 질량을 분석해 이것이 힉스입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영상 데이터를 보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선 중에서 의미 있는 입자의 궤적은 두드러지게 굵은 선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이 힉스입자가 붕괴되며 나타나는 사상(寫像)인지를 따진다는 것이다. 좀더 전문적으로 얘기해 “힉스입자는 충돌하면 힘을 매개하는 입자로 알려진 w보존(boson), z보존으로 계속 붕괴돼 나가는데 이를 다시 합쳐 힉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역추적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제네바에서 날아오는 데이터는 천문학적 규모의 데이터에서 추려낸 것들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원형가속기 내부의 빔이 1초에 40㎒(메가헤르츠)의 힘으로 4000만번 도는데 1회전 할 때마다 매번 의미 있는 입자 충돌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입자 충돌 중 높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경우만 검출기의 셔터가 눌러진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초에 검출기에 찍히는 충돌은 150번에 이른다. 이 중 평균적으로 149번의 충돌은 버리고 불꽃놀이처럼 크게 터지는 의미 있는 1회의 충돌 데이터만 확보해 역추적을 의미하는 리컨스트럭팅(reconstructing) 작업을 마치고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전송한다. 1초 만에 찍히는 150개 데이터의 용량은 0.5GB (기가바이트)에 이른다.
   
   제네바의 원형가속기는 2008년 첫 가동을 시작했지만 바로 헬륨가스가 새어나오는 사고가 발생해 거의 1년간 가동이 중단됐고 2009년 후반에서야 제대로 가동이 되기 시작했다. 이 가속기는 3년의 가동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일단 셧다운됐다. 그렇더라도 3년간 가동되며 기록된 입자 충돌 데이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다. 박인규 교수는 이를 “10PB(페타바이트)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1PB는 1000TB(테라바이트)에 해당하며, 1TB는 1000G(기가)의 용량이다. 즉 지금까지 제네바 가속기가 만들어낸 힉스입자 추적 데이터의 양은 1TB짜리 하드디스크 1만개 분량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원형가속기가 처음 가속될 때는 1TB짜리 하드디스크도 없어 저장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지금도 제네바 가속기가 만들어낸 입자 충돌 데이터들은 여러 나라에 분산 저장돼 있다. 제네바의 티어(tier) 0센터를 필두로 저장 용량에 따라 티어 1, 2, 3센터들이 각국에 흩어져 있다. 티어 1센터의 경우 미국 2개를 포함해 프랑스, 영국, 대만, 독일, 스페인에 각각 하나씩 있다. 우리나라에는 티어 1급 센터는 없고 경북대에 티어 2급 센터가 있다. 티어 2급 센터의 경우 현재 전 세계에 80여개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티어 1급의 센터를 대덕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만들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립대의 센터는 티어 3급에 해당한다. 티어 1급은 PB의 용량을, 티어 2급은 수백TB 정도의 용량이라고 한다.
   
   현재 힉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국내 연구진은 제네바에서 날아오는 데이터를 경북대나 서울시립대 서버에서 꺼내볼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실험 날짜의 데이터를 제네바에 요청하면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센터에서 전송돼 온다. 클라우드컴퓨팅과 유사한 그리드컴퓨팅 개념으로 시스템이 운용된다고 한다. 현재 한국과 제네바는 글로리아망이라는 전용망으로, 국내 연구진끼리는 크레오넷이라는 전용망으로 연결돼 있다. 박 교수는 “요즘은 민간 인터넷망도 발달해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지는 않지만 트래픽이 없어 안정적으로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다”며 “이 망을 통해 데이터 분석 논문도 보내고 화상회의도 한다”고 말했다.
   
   그럼 전 세계 8000명이 넘는 과학자가 참가하고 있는 ‘힉스 올림픽’은 언제쯤 대회를 마치고 성화를 끌까. 힉스입자는 지난해 7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가 “힉스입자로 추정되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는 발표를 하면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 온 데 이어 최근에도 뉴스를 만들어내며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 중순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가 “새로 발견된 입자가 힉스입자일 가능성이 99.6%” “힉스입자 발견이 확실시되고 있다”고 밝혔다는 외신 보도가 계기였다. 하지만 박인규 교수는 이 외신 보도가 “약간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내용도 공식 브리핑은 아닙니다. 최근 열린 한 학술회의에서 데이터 분석 중간 결과를 발표하면서 ‘새로 발견된 입자가 힉스입자에 가깝다’고 발표된 내용이 한 회의 참석자의 블로그를 타고 ‘확실시되고 있다’고 약간 과장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작년 7월 검거된 용의자에 대한 조사는 계속되고 있고 ‘범인이 맞는 것 같다’는 심증이 계속 굳어지는 단계라고 할까요. ‘드디어 힉스입자를 확인했다’는 공식 발표는 데이터 분석이 끝나는 8~9월 이후에나 나올 것입니다.”
   
작년 7월 발견된 새로운 입자가 힉스입자일 가능성이 지금도 98~99%에 이르지만 이 확률이 174만번 중 한 번 틀릴까 말까 할 정도(99.9999%)까지 올라가야 힉스입자를 확인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힉스입자는 붕괴하면서 여러 가지 신호(signal)을 내놓는데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의 가속기 충돌실험에서 포착된 5가지 신호 중 일부 신호가 표준모형과 일치하지 않아 힉스 입자 확인에 애를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5가지 신호 중 b쿼크, w보존, 타우입자 세 종류가 125GeV(기가전자볼트)에서 신뢰도 있는 결과를 나타내야 표준모형이 말하는 힉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전 세계 과학자들이 입자 가속기가 3년간 쏟아낸 천문학적 데이터를 다 살펴보고 그 결과를 종합해야 비로소 ‘신의 입자가 있다’는 공식 발표가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힉스입자가 올해 공식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세계 과학계는 우주의 비밀에 대해 아주 작은 성취를 이룰 뿐 탐구할 게 무한대로 쌓여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힉스입자가 확인되더라도 인간은 우주의 4% 정도만 그 근원을 이해하게 되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의 25%는 아직 관측되지 않은 ‘다크 매터(dark matter)’라는 암흑물질로 채워져 있고, 또 나머지 70%는 미지의 ‘다크 에너지(dark energy)’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들 암흑물질과 에너지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뉴턴이 말한 대로 여전히 인간은 바닷가의 모래 한 줌 정도를 파악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4%가 갖는 의미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박 교수는 “힉스입자의 발견으로 표준모형이 완성되면 1850년대 주기율표가 완성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주기율표 완성 전까지는 원자들은 서로 독립된 것이었습니다. 서로 어떤 반응을 하는지를 몰랐죠. 하지만 주기율표가 완성되면서 인간은 원자들 간의 관계를 알게 됐고 물질을 다룰 수 있는 근본 원리를 파악하게 됐습니다. 힉스입자를 통해 표준모형이 완성되면 원자의 중심에 있는 핵을 완전히 파악하고 핵의 기본 입자들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단계가 펼쳐집니다. 물질 자체를 새롭게 파악하게 되는 셈이죠.”
   
   박 교수는 “우리 과학자들이 이 세계적인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힉스가 아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힉스가 아니면 뭐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제네바에 가 있는 30대 후반의 과학자들을 포함해 우리 과학자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얻는 경험은 값진 것입니다. 서열을 매기고, 경쟁을 시키는 우리 학문 풍토에서 진정한 공동연구가 뭔지를 체험하는 보기 드문 기회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전 세계 학자들이 쓰는 힉스 관련 논문들은 무조건 ABC 이름 순서로 논문 목록이 나옵니다. 논문을 쓰는 수천 명의 학자들 중에는 노벨상을 탄 사람도, 평범한 대학원생도 다 포함되지만 유명한 학자라고 특별한 대접을 해주지는 않습니다. 인류가 공동으로 소유할 학문적 성과이기 때문에 진정한 학문의 콜레보레이션을 달성한다는 정신이지요.”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제네바에는 김태정(고려대)·김민석(성균관대)·이상은(경북대)·김태연(강원대)·서현관(성균관대)씨 등 5명의 박사가 나가 있다. 서울시립대 박차원 박사는 최근 막 귀국했다. 이들은 모두 30대 후반의 학자들로 앞으로 제네바에서 공동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활약이 기대된다는 게 박 교수의 말이다. 이들을 비롯한 이번 프로젝트 연구팀은 2년마다 한 번씩 정부 지원을 받는 사업단과 계약을 체결하며 제네바 현지에는 최장 4년씩 나가 있다고 한다. 제네바 현지에 나가 있는 연구원들은 사업단으로부터 급료를 지급받는다. 대부분 기혼자들로 가족과 함께 현지에 거주하며 연구소로 출퇴근하는 생활을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우리 학자들은 연구 성취에 있어서도 다른 나라 학자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한다.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연간 운영비로 1조원을 씁니다. 우리나라는 1.5%에 해당하는 15억원 정도를 매년 내지요. 그런데 제가 프로젝트 참가 학자들이 발표한 2011년도 논문을 살펴보니까 전체 500여편 중 우리 학자들의 논문이 20여편이나 되더군요. 돈으로 계산한 지분은 1.5%에 불과하지만 학문적 기여도는 4% 정도 되는 셈입니다. 현지에 나가 있는 우리 학자들은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24시간 일을 합니다. 서양 학자들은 연애도 하고 술도 마시지만 우리는 지독하게 연구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은 기초과학에서는 가난한 나라지만 연구진들은 마치 삼성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평가하더군요.”
   
   박 교수가 3년간의 연구팀 대표직을 마무리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이다. 이렇다할 기초과학 투자가 없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반성이 컸다고 한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이번 CERN 프로젝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힉스입자를 찾는다며 7조원짜리 가속기를 짓고 매년 1조원의 운영비를 쓰는 게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힉스입자 프로젝트 때문에 제네바에 몰려온 과학자와 그 가족을 합하면 숫자가 1만명에 이릅니다. 이들이 1년에 쓰는 돈이 1억원입니다. 1조원을 제네바에 다시 뿌린다는 얘기죠. 기초과학 투자라는 게 이런 부대 효과를 냅니다.”
   
   박 교수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도 ‘경이’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LHC는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구조물 중 가장 크고 복잡한 것입니다. 수백만 개의 부속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불량률 제로에 도전하는 식스 시그마 기준으로 부속품을 만들더라도 100만분의 1 확률로 고장이 난다. 그런 부속 100만개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확률상 불가능한 기계’라는 혹평도 했습니다. 이게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LHC는 CNN이 선정한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New Wondcer 7)’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로켓 사이언스’처럼 이 가속기와 그 안에 들어가는 검출기 관련 사업으로 먹고사는 유럽의 중소기업이 부지기수입니다. 1954년 설립된 CERN이 힉스입자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미국이라는 신대륙으로 유출된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을 다시 흡수해 과학 종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전혀 뜻밖의 혁신적 기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기도 하다. 1911년 미국의 과학자 러더퍼드가 핵을 발견했을 때 이것이 30년 후 원자폭탄으로 구현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당시 거의 없었고, 1887년 전자의 발견이 전기라는 문명의 혁신을 몰고 올지 애초에 예상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CERN 운영 과정에서도 세상을 바꾼 뜻밖의 혁신적 기술이 나왔는데 그게 바로 월드와이드웹(WWW)입니다. 초창기 CERN에서 일하던 물리학자들이 과거 우리가 쓰던 천리안, 하이텔 같은 망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다가 불편함을 느껴 만든 게 월드와이드웹이죠. 팀 버너스 리라는 학자가 데이터를 브라우저를 통해 서로 직접 볼 수 있게 HTML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서버를 구축하자고 제안하며 월드와이드웹이 탄생했습니다. 1989년에 세계 최초의 서버가 CERN에 구축됐지요.”
   
   박 교수는 “실제로 세상을 바꾼 것은 인문학, 사회과학이 아니라 전기, 전자, 핵, 월드와이드웹 같은 기초과학의 산물들”이라며 “우리도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 힉스입자 연구팀 한국 대표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박 교수가 근무하는 서울시립대 ‘서울 CMS센터’ 벽면 모니터에는 제네바에서 전송되는 힉스 추적 영상 데이터들이 뜬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올해 힉스입자가 공식 확인되면 세계 과학계는 또 다른 지구촌 프로젝트에 나설 계획인데 이를 둘러싼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말이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가동 중인 원형가속기와는 다른 국제선형가속기를 건설하는 것으로 일본과 미국, 독일, 스위스 등이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현재 가동 중인 가속기는 원형이지만 선형가속기는 약 30~40㎞ 길이의 거대한 직선 관 모양의 가속기를 만들어 양성자 대신 전자와 반전자를 충돌시키자는 프로젝트입니다. 쿼크 같은 기본 입자가 들어있는 양성자와 달리 전자는 단일 입자이기 때문에 충돌시키면 깨끗한 시그널이 나옵니다. 힉스입자 이후를 더 파고들 수 있는 겁니다. 기존 원형가속기를 지을 때보다 기술이 발달해 선형가속기 건설에는 2조~3조원이 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부지를 제공하는 나라가 1조2000억원을 투자하고 나머지 금액을 다른 나라가 나눠서 대는 식으로 프로젝트가 추진될 전망입니다. 관련 국제위원회가 제네바에 이은 세계 과학자들의 메카가 어느 나라에 들어설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박 교수는 “교육과학부 간부들에게 농담 삼아 휴전선 땅굴을 활용해 남과 북을 잇는 선형가속기를 만들고 판문점쯤에 입자 충돌 검출기를 달아 세계 과학의 메카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했다”며 “이번 힉스 프로젝트를 계기로 우리도 기초과학에 대한 꿈을 갖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힉스입자가 완성할 표준모형이란?
   
   우주 기원 밝힐 17개 입자 중 힉스만 확인 안 돼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현대 입자물리학의 대표적 이론이다. 표준모형 이론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6개의 중입자 쿼크(스트레인지·참·톱·업·다운·보텀)과 렙톤이라는 6개의 경입자(전자·중성미자·뮤온·뮤온중성미자·타우입자·타우중성미자)와 이들 간에 힘을 전달하는 4개의 ‘보존(boson)’,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 17개의 입자 중 힉스만이 아직 실험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 힉스입자가 발견돼야 물질을 구성하는 쿼크와 렙톤, 그리고 이들 간에 힘을 매개하는 보존입자가 어떻게 질량을 갖게 됐는지가 설명된다.
   
   현대 양자역학은 우주가 힉스장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장이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힉스장과 강하게 결합하는 입자는 질량이 크고, 힉스장과 약하게 결합하는 입자는 질량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힉스입자 자체는 우주가 생성된 137억년 전 빅뱅 시기에 잠시 나타났다가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고는 사라졌다고 설명된다.
   
   힉스입자는 1964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인 피터 힉스(P. W. Higgs) 등 일련의 이론물리학자들이 초기 표준모형을 만들면서 존재가 가정됐다. 이후 선진국들은 힉스입자를 찾기 위해 가속기 건설에 앞다퉈 나섰다. 그러다 1980년대 표준모형이 예견하던 z, w 보존이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에서 발견됐고, 1990년대 톱쿼크가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테바트론 가속기에서 발견됐다.
   
   힉스입자가 ‘신의 입자’로 불리게 된 것은 노벨상 수상자인 레온 레더만 박사가 표준모형을 설명하는 책을 쓰다 힉스입자에 대한 내용이 쉽지 않아 “갓 댐 파티클(God Damn particle·빌어먹을 입자)”이라고 책 제목을 달았는데, 출판 때 ‘댐(Damn)’이 빠져 ‘갓 파티클(God particle·신의 입자)’이 되면서 ‘신의 입자’로 굳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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