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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5호]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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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오래전, 나를 파괴해버린 무엇을 찾아 떠나는 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어떤 작품

정여울  문학평론가  

▲ 무라카미 하루키 photo 조선일보 DB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오래전, 나를 파괴해버린 그 무엇을 찾아 떠나는 마음의 여행을 그린다. 가장 나다운 그 무엇을 잃어버린 그 공간. 그곳이야말로 새로운 삶이 시작될 무한한 가능성을 품어 안은 공간이기에, 이 여행은 아프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영혼의 성장통을 동반한다.
   
   도쿄의 철도회사에서 근무하는 다자키 쓰쿠루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후, 마치 시간이 완전히 멈춰버린 것 같은 삶을 무심히 반복한다.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은 채 최소한의 의식주로 스스로를 유폐해버린 쓰쿠루. 그는 뼈아픈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 고향 나고야에서 어린 시절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냈던 네 명의 친구로부터 하루아침에 절교 선언을 들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친구와 이별한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네 명의 친구 아카, 아오, 시로, 구로가 ‘작고 아름다운, 완벽한 세상 그 자체’였다는 것을 알고 나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는 단지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한 느낌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네 명의 친구와 함께 나고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쓰쿠루는 그들과 함께 “흐트러짐 없이 조화로운 공동체”를 경험했다. 학습능력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시작된 이들의 공동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 자체를 위한 공동체로 변모해 갔다. 그들은 함께하는 일을 넘어 함께하는 삶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 이름 속에 색채가 들어 있는 네 명의 친구들과 달리 쓰쿠루는 자기 이름에만 색채가 없다며 자신을 이 그룹에서 가장 ‘개성 없는 아이’로 위치 짓는다. 쓰쿠루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시로에게 마음이 끌리지만 ‘다섯 명이 함께하지 못하는 일은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 때문에 사랑마저 포기한다. 시로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한 여자에 대한 사랑보다 다섯 명의 친구가 함께 나누는 우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아카, 아오, 시로, 구로 모두가 나고야에 남기로 했지만 혼자만 도쿄의 대학에 입학하게 된 쓰쿠루. 쓰쿠루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방학 때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네 사람은 어느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쓰쿠루를 철저히 따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연락 자체가 두절되고 만다.
   
   그 후 하루하루 무덤 같은 생활을 지속해 오던 쓰쿠루. 그로부터 16년이 지나 이제 30대 중반의 남자가 된 쓰쿠루는 매력적인 여성 사라를 만나 비로소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사랑 시로 이후 처음으로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쓰쿠루는 사라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그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영혼의 공동(空洞)이 존재했던 것이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쓰쿠루. 마치 기적처럼 찾아온 진정한 사랑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 힘으로 공들여 얻고 싶다’는 열망을 키우게 된다. 쓰쿠루의 이야기를 들은 사라는 그에게 조언한다. 16년 전의 그 상처와 용감하게 대면해 보라고.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정보탐색 도구를 이용해 네 명의 옛친구들의 소식을 알려주는 사라. 그녀로부터 쓰크루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그의 첫사랑 시로가 누군가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쓰쿠루는 아카와 아오, 구로를 모두 만나 자신이 왜 16년 전에 그들로부터 버려졌는지, 왜 시로가 살해당했는지를 알아보려 한다. 그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준 장소, 그 장소는 곧 나를 파괴한 장소였던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스스로를 고문해 온 쓰쿠루에게 이 재회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또 다른 트라우마의 기원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라를 위해 자신의 끔찍한 상처와 대면한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난 쓰쿠루에게 사라는 처음으로 ‘내가 힘겹게 싸워 쟁취해내야만 하는 열정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아카와 아오를 통해 16년 전 그들이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를 들은 쓰쿠루는 망연자실해진다. 부서질 듯 연약한 영혼으로 자신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던 첫사랑 시로가 ‘쓰쿠루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루머를 퍼뜨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로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마치 세상에 종말이라도 온 듯 절규하는 시로의 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쿠루를 축출했다는 것이다. 그럼 왜 시로는 살해당한 것일까. 시로와 가장 친했던 구로는 결혼하여 핀란드에 살고 있었다. 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여행’은 머나먼 땅 핀란드에 가야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그는 구로가 핀란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은 전혀 몰랐던 시로의 비밀을 전해 듣게 된다. 쓰쿠루는 ‘내가 기억하는 나’와 ‘그들이 기억하는 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뭔가 개성이 없는, 이름처럼 뭔가 ‘색깔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무색무취의 인간에게 유일하게 색깔을 부여해준 것이 바로 네 친구였던 것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쓰쿠루는 달랐다. 단짝이었던 시로와 구로는 두 사람 모두 쓰쿠루를 열렬히 사랑했다. 그는 자신이 ‘나고야’로 상징되는 아늑하고 다정한 공동체에 완전히 편입될 수 없었기에 도쿄를 떠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쓰쿠루만이 진정으로 나고야를 떠날 용기, 즉 고향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창조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쓰쿠루의 빛깔은 다른 친구들처럼 빨강이나 파랑으로 규정할 수 없었다. 아무 색이 없기 때문에 몰개성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색깔과 어울릴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의문사를 당한 시로를 되살릴 수도, 지나간 옛사랑을 되찾을 수도, 완벽하고 조화로운 옛 공동체를 되살릴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넘어진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있다. 가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해 본 적이 없던 그는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사라를 사랑하고 싶은 자신을,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더 강해질 필요를 느낀다. 철도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아름다운 기차역을 만들고 싶어한다. 아니 어쩌면 ‘반드시 들러야 하지만 머물 수는 없는 장소’를 만들고 싶은 무의식의 열망이 그를 기차역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 ‘추억’이라는 이름의 마음속 기차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트라우마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감춰진 영혼의 무한한 저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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