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완공 예정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신고리 4호기 건설 현장. 엄청난 양의 철근과 철판이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오는 9월 완공 예정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신고리 4호기 건설 현장. 엄청난 양의 철근과 철판이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 1호기. 1978년 2월, 고리 1호기(1972년 5월 가동)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가동을 시작한 이 원전은 16개월째 멈춰 서 있다. 지금까지 1억390만MWh의 발전량을 기록한 설비용량 679MW의 가압형중수로 원전이다. 이 발전소가 터빈 엔진 소리 하나 없이 적막감에 휩싸여 있다. 이 원전이 가동 중단된 이유는 2012년 11월 20일자로 설계수명 30년을 채웠기 때문이다. 원자로에 장착된 연료가 핵분열을 통해 최초로 열을 발산하기 시작한 최초 임계일(1982년 11월 21일)로부터 30년간 쉼 없이 달려온 끝에 일단 수명을 다한 것이다.

원전은 설계 때 제시된 설계수명이 다하면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가동 여부를 판정할 심사를 받는다. 월성 1호기도 가동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신청으로 2010년 10월부터 심사에 들어갔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서류 검토와 현장 점검 등을 통해 재가동할 수 있는지를 따져 심사 보고서를 제출하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최종 판정을 내린다.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10년간 수명이 연장되고, 재가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영구 폐쇄된다. 월성 1호기는 조만간 사망선고냐, 수명연장이냐 사이에서 운명이 갈릴 예정이다.

월성 1호기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 1호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가동된 이 원전 역시 2007년 6월 설계수명 30년(최초 임계일 1977년 6월 19일 기준)을 다했지만 심사 후 10년 수명 연장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원전 수명이 연장된 첫 사례였다. 36년째 쉬지 않고 가동 중인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이 되면 다시 수명 연장이냐, 폐쇄냐는 갈림길에 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23개 원전(월성 1호기 포함)의 맏형 격인 이 두 원전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이슈로 떠올랐다. 후보들은 앞다퉈 이 두 노후 원전을 영구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 시작했다. 3년 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거론하며 후보들은 설계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재가동은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심사 중인 월성 1호기는 재가동하지 말고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재가동 중인 고리 1호기도 폐쇄하든지, 최소한 2017년 이후 수명 재연장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부산시장 김영춘 예비후보와 정의당 울산시장 조승수 예비후보는 후쿠시마 원전사태 3주기를 맞은 지난 3월 11일 부산시 기장읍 고리원전본부 인근 방파제에서 ‘탈원전 후보 연대 제안식’을 갖고 “국민의 목숨과 안전을 담보로 한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신재생에너지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고리원전 1호기를 즉각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새누리당 부산시장 예비후보인 서병수 의원도 “고리원전 1호기는 수명을 더 이상 연장해서는 안 되며 수명이 종료되는 2017년에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서 의원은 “원전을 폐쇄하면서 해체기술을 확보해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원전 해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서 의원의 주장대로 원전은 영구 폐쇄 결정을 내린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폐쇄 다음의 절차인 원전 해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 해체는 원전을 짓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로선 원전을 영구 폐쇄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원전을 지을 줄만 알았지 해체할 기술은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상업용 원전을 해체해 본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세 나라밖에 없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12년 7월 기준 미국은 14기의 원전을 해체해 가장 해체 경험이 많다. 이어 독일이 3기, 일본이 1기의 원전을 해체 완료했다. 현재 전 세계에는 140기의 원전이 영구정지되어 이 중 17기가 해체 완료되었고 122기가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 상업용 원자로보다 규모가 작은 연구용 원자로를 포함하면 해체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이들 세 나라를 포함해 영국과 프랑스 등 다섯 개 국가로 늘어난다.

우리나라도 상업용 원전이 아닌 소형 연구용 원자로는 딱 한 차례이지만 해체해 본 경험이 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옛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가동되던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TRIGA MARK) 3의 경우 1972년부터 1995년까지 24년간 가동되다 해체됐다. 용량이 상업용 원전의 수백분의 1에 불과한 2MW급의 소형 연구용 원자로였지만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12년에 걸처 17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해체했다.

원전의 해체에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든다. 원전을 영구정지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해체 준비를 거쳐 실제 해체 작업을 거친 후 원전 부지의 환경 복원까지 해야 해체 프로젝트가 완료되는데, 여기에 최소 20년이 걸린다. 사업비도 천문학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2년 기준 원전 1기당 해체 비용을 6033억원으로 책정해 놓았다. 원전 1기를 새로 짓는 데 드는 비용(3조원가량)의 5분의 1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정해놓은 6033억원의 해체 비용이 적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 원전을 해체해 본 나라들이 들인 평균 해체 비용만 해도 6546억원에 이르며, 미국과 일본이 실제 해체에 들인 비용은 각각 7800억원, 9590억원으로 우리가 정해놓은 비용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은 매년 충당부채 형태로 원전 해체비용을 적립 중인데, 2012년까지만 해도 호기당 해체비용이 3989억원에 불과했다. 2012년 말 열린 정부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금운용심의회’에서 이 해체 비용이 현재의 6033억원으로 그나마 현실화된 것이다.

원전 해체에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드는 이유는 3년 전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당시 섭씨 1200도 이상의 고열에 핵 연료봉을 둘러싼 지르코늄 합금까지 녹아내리는 이른바 노심용융(melt down)과 세슘, 스트론튬, 요오드 등의 방사성 물질로 뒤범벅이 된 끔찍한 현장이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원전이 가동을 중단키로 한 후에도 원전 내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본 장면과 비슷한 상태로 남는다. 오랫동안 방사능에 노출된 원자로와 제어봉 등은 스스로 방사성 물질로 변한 상태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이 극한 상황에서 원전을 뜯고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원전 영구정지 결정을 내리면 해체 기관은 원자로 노심에서 핵 연료를 제거해야 한다. 수백~수천 도를 오갔던 노심은 5년간의 냉각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이 준비기간 동안 해체 기관은 구체적 계획을 세워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해체 인허가를 받는다. 1차 작업은 방사능 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decontamination).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문제권 제염해체연구부장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원자로 내의 압력용기, 가압기, 냉각기 펌프, 증기발생기 등 1차 계통부터 제염을 하고 격납용기나 건물 등 시설 표면의 제염을 한다”며 “화학제품을 투여해 제염작업을 하는데 제염 대상의 재질과 형태, 오염상태에 따라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했다. 제염작업이 끝나면 절단 및 철거작업을 해야 한다. 이때는 오염이 상대적으로 적은 외곽설비부터 시작해 원자로 격납용기, 내부 압력용기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이 절단 작업이 어려운 것은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모든 작업을 원격으로 조종해야 하기 때문. 문제권 부장은 “절단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기계적 절단 외에 다이아몬드, 고압의 워터제트(water jet), 레이저 커팅이 다 동원되는데 모든 작업을 사람을 투입하지 않고 원격제어해야 한다는 점에서 힘들다”고 설명했다.

원전 내외부 시설을 모두 뜯어낸 후에 남는 엄청난 양의 방사성폐기물은 가연성, 불연성, 액상, 고상 등 성상별로 분류해 방폐장에 처분한다. 물론 이 작업의 전제는 방사성폐기물을 묻을 처분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중·저준위 방폐장을 하나 짓는 데도 엄청난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해체된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폐기물을 어디다 묻을 것인가는 쉽게 답을 구하기 힘든 난제로 보인다. 이는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1966년 가동을 시작한 일본의 첫 상업용 원전인 도카이 원전은 1998년 3월 가동을 멈춘 후 2001년 12월부터 해체 작업에 들어갔지만 폐기물 처분장을 찾지 못해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준비 작업을 거쳐 2006년 부품과 제어봉 등 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지하 50~100m에 묻는다는 계획을 세워 해체 작업 허가를 받았지만 처분장을 구하지 못해 계속 해체 작업이 늦춰지고 있다. 비용도 자꾸 늘어 2006년 기준 전체 해체비로 885억엔(9300억원)이 책정된 상태다.

이런 사례를 감안하면 원전 하나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최소 20년이 걸린다는 것은 과장이 아닌 셈이다. 5년의 준비작업을 거쳐 제염과 절단, 철거, 폐기물 처리까지만 보통 10년이 걸리고 이후 환경 복원에도 최소 5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원전 부지에 대한 잔류 방사능 측정 등을 거쳐 부지가 사람이 살 만한 환경으로 되돌려졌다는 판단이 내려져야만 전체 원전 해체 작업이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전 해체 전 공정을 아직 우리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원전 해체 작업을 해낼 수 있는 핵심 기반기술 38개 중 우리가 확보한 것은 17개에 불과하다. 절반의 기술도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작성한 ‘원자력 시설 해체 핵심 기반기술 개발 계획’에 따르면, 21개 미확보 기술은 해체 준비(2가지), 제염(3가지), 절단(6가지), 폐기물 처리(6가지), 환경 복원(4가지) 등 전 영역별로 골고루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해체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70% 수준으로 평가받는데, 해체 준비(80%), 제염(70%), 절단(60%), 폐기물 처리(80%), 환경복원(60%) 등 영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난다는 게 원자력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절단 분야 기술 확보가 가장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대 서균열 교수(원자핵공학과)는 주간조선에 “절단 기술은 결국 원격제어를 핵심으로 한 로봇기술로 우리가 가장 취약한 분야”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원전 해체 기술을 가장 앞장서 개발, 축적하고 있는 곳은 대덕의 한국원자력연구원이다. 여기에 있는 원자력시설 해체기술개발팀이 앞으로 원전 해체를 떠맡을 핵심 부서다. 제염, 원격제어, 폐기물 처리, 환경 복원 등 4개 분야 전문가 23명이 근무하고 있는 해체기술개발팀은 작년 말 작은 성과를 거뒀다. 원전 해체 모든 공정을 가상의 디지털 3차원 공간에서 구현해볼 수 있는 ‘해체 시뮬레이터’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시뮬레이터를 통해 디지털 3차원 공간에서 실제 절단 작업을 해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개발팀의 설명이다. 문제권 부장은 “원격절단을 할 때 재질과 부위별로 느낌이 다른데 이를 3차원 그래픽을 통해 구현하려면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원전 해체 기술을 개발하는 데 향후 10년간 1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1300억원을 정부가 부담하고 200억원은 민간이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원전 해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는 2020년대 초반까지 미확보한 21개 핵심 기반기술의 개발을 완료한다는 것이다. 특히 21개의 미확보 기술 중 시장 지배력이 높은 8개 기술은 현 선진국이 보유한 기술 수준 도달 목표(일반 과제)와 이를 뛰어넘는 도전적 목표를 가진 과제(혁신형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 가능성이 인정되면 혁신형을 선택해 원전 해체 시장을 주도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원전 해체 시장은 확실한 블루오션이다. 지금도 122기의 원전이 해체를 기다리고 있는 원전 해체 시장은 2050년까지 9800억달러(약 1054조원)의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는 상업용 원전 해체 시장(2625억달러로 예상)을 비롯해 군사용 원자로 시설(6400억달러), 연구로(19억달러), 핵연료주기(709억달러, 채광·정제·사용 처분 등 핵연료 사용과 관련한 전 과정) 등이 모두 포함된다. 상업용 원전의 경우 2050년까지 현재 운영 중인 440여기 중 430여기가 해체되어 약 2600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이러한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해체 기술에서 뒤질 경우 세계 시장은 고사하고 우리나라 시장도 외국 자본과 기술력에 잠식당할 것이 뻔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2030년까지 현재 가동 중인 23기의 원전 중 12기가 일단 설계수명을 다한다. 반핵 여론이 자꾸 높아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수명 연장이 쉽지 않을 전망이고, 원전 해체가 실제 목전의 과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의 경우 원전 해체 기술 확보에 국가적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왔다. 원전 해체 기술이 가장 앞선 미국의 경우 1996년부터 2003년까지 8년간 대규모 해체 기술 실증 사업(LSDDP)을 추진해 해체 핵심 기술 및 장비를 개발해 왔다. 유럽연합(EU)은 원전 해체 기술 축적에서 미국보다 오히려 앞섰다. 1979년부터 1999년까지 5개년 단위로 기술개발과 실증시험을 거쳐왔다. 일본은 1981년부터 1986년까지 6년간 해체 관련 핵심 기술을 개발한 후 10년간 실증시험을 통해 전체적인 해체 기술을 확보했다. 원전 해체 기술은 각국에서 정부 주도로 축적됐지만 이를 민간에 이양해 현재 전 세계 원전 해체 시장에서는 대형 전문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PCI 에너지서비스와 에너지솔루션, 영국의 VT그룹과 AMEC, 프랑스의 누비아그룹, ONET그룹 등이 원전 해체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전문 기업들이다.

우리의 경우 원전 해체 기술 축적에 뒤늦게 뛰어들어 정부 주도로 기술력을 쌓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대 서균렬 교수는 “일단 관련 법부터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관련법이 전무하다 보니 원전 해체 사업을 누가 주도하는 것인지, 실제 해체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지난해 11월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원전해체산업 협의회’가 출범할 예정이었지만 구체적 로드맵이 마련되지 않아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부산시장에 출마한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은 원전 해체 기술을 독립적으로 개발하는 ‘원전 해체 기술 종합연구센터’를 부산에 설립해야 한다는 걸 선거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서울대 서균렬 교수는 “원전 해체 시장이 돈이 되는 걸 알고 정부 부처와 공기업과 지자체 모두가 관심을 갖고 뛰어드는 형국”이라며 “제3의 독립적 전문기관인 ‘원전해체청(NDA)’을 만든 영국의 사례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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