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경주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내부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3월 10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경주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내부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조선광업회란 이름으로 1918년 설립된 한국광업협회는 100여개가 넘는 광물자원 관련업체의 이익단체다. 이 단체의 협회장은 통상적으로 소속 회원사의 회장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데 명예직이다. 실질적 업무는 상근부회장이 총괄한다. 2014년 5월 7일 현재 한국광업협회 부회장은 총 5명으로 상근부회장은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이하 산자부로 표기) 관료 출신이다. 나머지 4명 중 3명은 회원사 대표이사이며 다른 1명은 한국광물자원공사 본부장이 맡고 있다. 상근부회장 A씨는 지경부에서 광물자원팀장(4급)으로 정년퇴직 후 2012년 한국전력거래소 기획본부장에 임명됐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한국광업협회 상근부회장이 됐다.

A씨가 퇴직 후 자리를 옮긴 과정은 산자부 출신 관료들의 정년퇴직 후 모습의 전형이다. 산자부 출신 관료들은 퇴직 후 2년 동안은 41개 공기업 중 한 곳의 실장이나 본부장급 자리를 보장받고, 그 후 2년은 유관단체 임원으로 일하는 게 관례다. 산자부 출신 관료들 사이에서는 이런 관례를 “(산자부에서) 최소 두 번은 말아준다”라고 표현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공기업 전임 임원은 “서기관이나 사무관만 돼도 공기업과 유관단체 임원 자리가 4년은 보장되고, 고위공무원 출신은 공기업 사장 또는 부사장 자리를 꿰차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산자부 산하에 공기업이나 유관협회의 주요 보직은 산자부 관료 출신들이 줄줄이 꿰차고 있다.

지난 여름 최악의 전력난을 일으켰던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조석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사장으로 있다. 그는 지경부 성장동력실 실장으로 일하다 퇴직 후 2011년 8월부터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몇 개월 후 다시 지경부 2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으로 왔다. 고정식 한국광물자원공사 역시 지식경제부 국장 출신으로 특허청장 역임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일하다 현재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 출신이고 김창룡 한국표준협회 회장은 특허청 차장 출신이다. 산자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사무관 이상 정도 되면 산자부 현업 부서에서 인력 풀을 관리하고 인사 파트에서 알아서 챙겨준다”며 “공기업 본부장 2년, 유관협회 2년 정도 근무하면 연봉으로만 7억~8억원 정도는 챙긴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자부 관료들이 이처럼 안정적으로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이유는 산자부 산하에 있는 공기업과 유관단체의 규모 때문이다. 현재 산자부는 산하에 41개 공기업이 있으며, 공기업 산하에 유관단체만 7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각 공기업과 유관단체에 한 자리씩만 관료들이 차지한다 해도 750명이 넘는 자리가 만들어진다.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은 셈이다. 자리가 넘쳐나다 보니 공기업 2년에 유관단체 2년까지 기본 4년은 무난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산자부에 산하 공기업이나 유관단체가 이처럼 많이 생긴 것도 관료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 때문이다. 고위관료들은 재직 당시 본인이 직접 공기업을 만드는 법안을 입안하거나, 유관협회를 만들도록 유도해서 퇴직 후 자리를 늘려간다. 얼마 전 입찰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은 한국광해관리공단의 사례도 여기에 속한다. 광해관리공단은 1987년 상공부 산하 석탄산업 합리화사업단으로 설립됐다가 2006년 지금의 광해관리공단으로 출범했다. 광해관리공단이 독자적인 기관으로 바뀌는 법안을 주도했던 사람이 지경부 석탄산업과 사무관이었던 권모씨였는데 그는 퇴직 후 공단 연구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2년 임기인 연구센터장 자리를 한 번 연임하면서 각종 입찰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러 기소됐다. 광해관리공단이 생긴 후 3년 뒤 광해협회라는 유관단체가 공단과 같은 건물에 창립했고, 이 단체에 산자부 출신 관료들이 영입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 해외자원개발이 ‘붐’을 일으키면서 해외자원개발과 관련된 협회만 해도 10여개가 생겨나기도 했다.

산자부가 퇴직관료들의 밥그릇을 챙겨주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상공부 시절부터 시작되어 동력자원부, 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를 거치면서 공고해졌다. 산자부 퇴직 관료들의 모임인 ‘상우회(商友會)’란 모임도 생겼다. 이 모임에는 1300명의 퇴직관료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굳어져 온 이러한 관행들을 알고 정권 초부터 낙하산과 관피아 근절을 외치고 있지만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관피아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인 2월 말 기준으로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121명 가운데 대선 캠프 및 ‘친박’ 인사 출신은 32명, 관피아는 45명으로 63%를 차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낙하산을 근절하겠다고 한 날도 산자부 산하 공기업 임원으로 정치인과 관료 출신들이 임명되기도 했다.

관료마피아는 산하 공기업의 전문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기까지 저하시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기업 임원은 “본부장 4~5자리 중 한 자리는 으레 산자부 퇴직 관료들의 몫”이라며 “수십 년간 해당 공기업을 위해서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자기의 윗선으로 퇴직관료가 낙하산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 직원들 사기가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관피아를 완전히 근절하겠다고 다시 한 번 공언했다. 공직사회도 지금 분위기에서는 일단 바싹 엎드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수십 년간 이어져온 먹이사슬이 하루아침에 끊어질 것이라고 보는 공무원들은 거의 없다. 관피아를 개혁하겠다고 만든 대책이나 개혁방안들이 결국은 관피아들 손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경우 원전 비리를 ‘셀프 개혁’하겠다며 올해 대대적으로 인사를 했지만, 청렴하다고 발탁했던 이청구 부사장이 최근 납품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이런 ‘셀프 개혁’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은 이미 조사장이 취임한 당시부터 산자부 주변에서는 “관피아들이 원전비리가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꼬리 자르기 차원에서 조 사장을 임명했다”는 우려를 나타냈었다. 관피아를 근절시킬 수 있는 조항이 없어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공직자윤리법을 통해 관료들의 유관단체 취업을 2년간 금지하고 있지만 비영리단체나 협회는 이 조항에서 제외된다. 항상 예외조항을 만들기 때문에 관피아들은 자신의 자리를 보전해왔다. 미래에 보장된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고, 또 나중에 화살이 돼 돌아올지 모르는 대책을 자기 손으로 만드는 일은 이처럼 번번이 헛물을 켰다. 정권은 5년이지만 관료는 영원하다는 말이 공직사회에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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