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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4호]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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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슈틸리케는 왜 무명의 이정협을 발탁했나

윤동빈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 이정협이 지난 1월 17일 아시안컵 조별리그 3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슈틸리케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photo 연합
축구대표팀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의 박지성(34),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의 이용래(29)도 사실 축구계에선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받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이정협(24·상주 상무)은 협회 관계자도 “그런 이름 처음 듣는다”고 말했을 정도로 인지도가 없었다. A매치 경력은 물론 연령별 대표팀 경기에 단 한 번도 나서본 적 없었던 이정협은 말 그대로 ‘무명(無名)의 공격수’였다.
   
   울리 슈틸리케(61) 한국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12월 ‘초짜’ 이정협을 과감하게 발탁했다. 그것도 평가전 멤버가 아닌 2015 호주 아시안컵 대표팀 명단에 이정협을 넣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험 없는 선수를 발탁했을 때 그의 경기력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며 이례적으로 특정 선수를 두둔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이정협은 지난 1월 4일 자신의 A매치 첫 경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한국인 선수로는 역대 15번째 A매치 데뷔전-데뷔골이었다. 아시안컵 본선에선 더욱 중요한 골을 넣었다.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조 1위 8강행을 이끌었고, 이라크와의 준결승에선 감각적인 헤딩골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월급 15만4800원을 받는 육군 상병의 동화 같은 성공 스토리 때문에 팬들은 ‘군데렐라’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도대체 이정협의 어떤 점이 슈틸리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왜 이정협은 외국인 감독이 오고 나서야 빛을 보게 된 것일까.
   
   슈틸리케 감독이 이정협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 10월 22일 FC 서울과 상주 상무의 FA컵 준결승전. 이정협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중앙과 측면을 활발하게 오가며 돌파·크로스·몸싸움 등 자신의 장기를 유감 없이 뽐냈다. 슈틸리케 감독이 “저 선수 대표팀에 뽑고 싶다”고 했을 때 협회 관계자가 “지나치게 파격적인 발탁”이라며 난색을 표하자, 슈틸리케 감독은 “그럼 앞으로 네 번 더 관찰하고 뽑겠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에 대해 “움직임이 매우 흥미롭고 신체 밸런스가 좋다”고 말했다. 이정협을 지도했던 박형주(43) 전 부산 동래고 감독, 윤성효(53) 부산 아이파크 감독(전 숭실대 감독) 등도 “이정협은 큰 체격(186㎝·76㎏)인데도 스피드가 빠르고 활동량이 많다”고 했다. 이정협의 타고난 신체조건은 아버지 이웅재(61)씨와 어머니 배필수(57)씨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 이씨와 어머니 배씨는 각각 제주 오현고, 경남 밀양여고 육상부 출신이다.
   
   아버지는 화물선 선원으로, 어머니는 식당 직원으로 일하면서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는 이정협을 위해 체계적인 지원을 했다. 이정협이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은 이정협을 데리고 한의원, 활기원 등을 다니며 세 달 동안 골격을 맞췄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던 이정협의 골격은 좌·우가 약간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협은 양손과 팔에 추를 매달아가면서 골격을 맞췄다. 어머니 배씨는 “단거리 달리기야 큰 차이가 없지만 장거리 달리기는 양쪽 신발 무게가 조금만 달라도 기량에 영향을 준다”며 “축구도 장거리 달리기이기 때문에 ‘굽은 나무를 펴줘야 크게 자란다’는 생각으로 골격을 먼저 맞춰줬다”고 했다.
   
   그동안 걸출한 국가대표 여러 명을 길러낸 서울의 한 명문고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십 년 넘게 유망주들을 봐 오면서 ‘신체 밸런스가 좋은 선수들이 오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신체조건과 스피드는 타고나는 것이다.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큰 체격조건을 갖췄으면서도 스피드가 빠르고 탄력이 좋은 이정협이 슈틸리케 감독 눈에 ‘원석(原石)’처럼 보인 것 같다.”
   
   사실 이정협이 외국인 지도자의 눈에만 원석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이정협은 “나는 선생님(감독) 복이 많은 선수”라고 말한다. 이정협은 부산 덕천중 시절부터 뛰어난 체격 조건 때문에 지역 명문고의 스카우트 제의를 수차례 받았던 특급 유망주였다. ‘독수리’ 최용수가 졸업한 동래고에서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맡았던 이정협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당시 동래고를 U―18(18세 이하) 유스팀으로 두었던 부산 아이파크는 일찌감치 이정협의 가치를 인정해 우선 지명권을 사용했다. 다만 곧바로 1군에 올릴 실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산은 이정협에게 대학 입학을 권유했다.
   
   프로팀 입단이 확정된 이정협은 편한 마음으로 대학을 골랐고, 서울의 명문대 러브콜을 수차례 받은 끝에 숭실대를 택했다. 그가 숭실대를 택한 이유는 윤성효 감독 때문이었다. 이정협은 “당시 윤성효 감독님의 엄청난 훈련량 때문에 숭실대가 속칭 ‘빡센’ 학교로 통했다”며 “편하게 축구하고 싶지 않았고 늘 ‘나를 성장시켜줄 곳은 어디일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숭실대를 택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이정협이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원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윤 감독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정협의 성실성과 재능을 눈여겨봤고, 2012년 12월 부산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이정협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꾸준히 1군 출전 경험을 쌓게 했다. 이정협은 이를 발판 삼아 상주 상무에 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정협은 왜 연령별 대표팀에 한 번도 뽑히지 못한 것일까. 한 고교축구 지도자는 “대표팀은 성장하는 곳이 아니라 완성된 선수들이 모여 결과를 내는 자리”라며 “그럼에도 미완(未完)의 선수를 뽑아 이렇게 성장시킨 슈틸리케 감독의 혜안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정협 같은 스타일은 감독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토너먼트에서 단기 성과를 내야 하는 감독들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이정협을 뽑긴 어렵습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인데, 득점을 담당하는 스트라이커 자리에 당연히 골 결정력이 높은 선수들을 뽑지 않겠어요? 이정협은 다방면으로 뛰어난 공격수였지만 골 결정력만 가지고 평가하자면 그 나이대 선수들보다 약간 모자란 게 사실이었어요.”
   
   그러나 이정협의 동래고 시절 코치였던 송세림(35) 동래고 감독은 “정협이가 고교 무대에서 득점상을 휩쓸지 못한 이유는 본인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팀 전술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통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짜는데, 조직력이 강한 상대를 만나면 잠식당할 위험이 커요. 그래서 우리는 수비 시에 필드 플레이어 전원이 압박에 가담하는 전술을 쓰고, 원톱 공격수였던 정협이에게 동료를 살려줄 수 있는 움직임을 많이 요구했지요. 이 때문에 정협이가 ‘확 튀는’ 공격수로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전술적 움직임은 예전부터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협의 원래 이름은 이정기(廷記)다. 무난한 이름의 무난한 선수로 남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난해 12월 작명관에 가서 ‘욕구가 충만하고 강한 성향’의 이름이라는 정협(庭恊)을 새로 받았다. 어머니 배씨는 “이름을 바꾸면 귀인을 만난다고 했는데, 그 귀인이 슈틸리케 감독님인가봐요”라고 말했다. 이정협은 아시안컵 활약 덕분에 국군체육부대로부터 휴가를 받아 부산 자택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는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이번 아시안컵은 운이 좋았고, 나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선수다. 소속팀에서 주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축구대표팀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의 박지성(34),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의 이용래(29)도 사실 축구계에선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받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이정협(24·상주 상무)은 협회 관계자도 “그런 이름 처음 듣는다”고 말했을 정도로 인지도가 없었다. A매치 경력은 물론 연령별 대표팀 경기에 단 한 번도 나서본 적 없었던 이정협은 말 그대로 ‘무명(無名)의 공격수’였다.
   
   울리 슈틸리케(61) 한국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12월 ‘초짜’ 이정협을 과감하게 발탁했다. 그것도 평가전 멤버가 아닌 2015 호주 아시안컵 대표팀 명단에 이정협을 넣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험 없는 선수를 발탁했을 때 그의 경기력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며 이례적으로 특정 선수를 두둔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이정협은 지난 1월 4일 자신의 A매치 첫 경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한국인 선수로는 역대 15번째 A매치 데뷔전-데뷔골이었다. 아시안컵 본선에선 더욱 중요한 골을 넣었다.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조 1위 8강행을 이끌었고, 이라크와의 준결승에선 감각적인 헤딩골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월급 15만4800원을 받는 육군 상병의 동화 같은 성공 스토리 때문에 팬들은 ‘군데렐라’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도대체 이정협의 어떤 점이 슈틸리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왜 이정협은 외국인 감독이 오고 나서야 빛을 보게 된 것일까.
   
   슈틸리케 감독이 이정협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 10월 22일 FC 서울과 상주 상무의 FA컵 준결승전. 이정협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중앙과 측면을 활발하게 오가며 돌파·크로스·몸싸움 등 자신의 장기를 유감 없이 뽐냈다. 슈틸리케 감독이 “저 선수 대표팀에 뽑고 싶다”고 했을 때 협회 관계자가 “지나치게 파격적인 발탁”이라며 난색을 표하자, 슈틸리케 감독은 “그럼 앞으로 네 번 더 관찰하고 뽑겠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에 대해 “움직임이 매우 흥미롭고 신체 밸런스가 좋다”고 말했다. 이정협을 지도했던 박형주(43) 전 부산 동래고 감독, 윤성효(53) 부산 아이파크 감독(전 숭실대 감독) 등도 “이정협은 큰 체격(186㎝·76㎏)인데도 스피드가 빠르고 활동량이 많다”고 했다. 이정협의 타고난 신체조건은 아버지 이웅재(61)씨와 어머니 배필수(57)씨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 이씨와 어머니 배씨는 각각 제주 오현고, 경남 밀양여고 육상부 출신이다.
   
   아버지는 화물선 선원으로, 어머니는 식당 직원으로 일하면서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는 이정협을 위해 체계적인 지원을 했다. 이정협이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은 이정협을 데리고 한의원, 활기원 등을 다니며 세 달 동안 골격을 맞췄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던 이정협의 골격은 좌·우가 약간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협은 양손과 팔에 추를 매달아가면서 골격을 맞췄다. 어머니 배씨는 “단거리 달리기야 큰 차이가 없지만 장거리 달리기는 양쪽 신발 무게가 조금만 달라도 기량에 영향을 준다”며 “축구도 장거리 달리기이기 때문에 ‘굽은 나무를 펴줘야 크게 자란다’는 생각으로 골격을 먼저 맞춰줬다”고 했다.
   
   그동안 걸출한 국가대표 여러 명을 길러낸 서울의 한 명문고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십 년 넘게 유망주들을 봐 오면서 ‘신체 밸런스가 좋은 선수들이 오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신체조건과 스피드는 타고나는 것이다.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큰 체격조건을 갖췄으면서도 스피드가 빠르고 탄력이 좋은 이정협이 슈틸리케 감독 눈에 ‘원석(原石)’처럼 보인 것 같다.”
   
   사실 이정협이 외국인 지도자의 눈에만 원석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이정협은 “나는 선생님(감독) 복이 많은 선수”라고 말한다. 이정협은 부산 덕천중 시절부터 뛰어난 체격 조건 때문에 지역 명문고의 스카우트 제의를 수차례 받았던 특급 유망주였다. ‘독수리’ 최용수가 졸업한 동래고에서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맡았던 이정협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당시 동래고를 U―18(18세 이하) 유스팀으로 두었던 부산 아이파크는 일찌감치 이정협의 가치를 인정해 우선 지명권을 사용했다. 다만 곧바로 1군에 올릴 실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산은 이정협에게 대학 입학을 권유했다.
   
   프로팀 입단이 확정된 이정협은 편한 마음으로 대학을 골랐고, 서울의 명문대 러브콜을 수차례 받은 끝에 숭실대를 택했다. 그가 숭실대를 택한 이유는 윤성효 감독 때문이었다. 이정협은 “당시 윤성효 감독님의 엄청난 훈련량 때문에 숭실대가 속칭 ‘빡센’ 학교로 통했다”며 “편하게 축구하고 싶지 않았고 늘 ‘나를 성장시켜줄 곳은 어디일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숭실대를 택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이정협이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원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윤 감독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정협의 성실성과 재능을 눈여겨봤고, 2012년 12월 부산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이정협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꾸준히 1군 출전 경험을 쌓게 했다. 이정협은 이를 발판 삼아 상주 상무에 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정협은 왜 연령별 대표팀에 한 번도 뽑히지 못한 것일까. 한 고교축구 지도자는 “대표팀은 성장하는 곳이 아니라 완성된 선수들이 모여 결과를 내는 자리”라며 “그럼에도 미완(未完)의 선수를 뽑아 이렇게 성장시킨 슈틸리케 감독의 혜안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정협 같은 스타일은 감독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토너먼트에서 단기 성과를 내야 하는 감독들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이정협을 뽑긴 어렵습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인데, 득점을 담당하는 스트라이커 자리에 당연히 골 결정력이 높은 선수들을 뽑지 않겠어요? 이정협은 다방면으로 뛰어난 공격수였지만 골 결정력만 가지고 평가하자면 그 나이대 선수들보다 약간 모자란 게 사실이었어요.”
   
   그러나 이정협의 동래고 시절 코치였던 송세림(35) 동래고 감독은 “정협이가 고교 무대에서 득점상을 휩쓸지 못한 이유는 본인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팀 전술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통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짜는데, 조직력이 강한 상대를 만나면 잠식당할 위험이 커요. 그래서 우리는 수비 시에 필드 플레이어 전원이 압박에 가담하는 전술을 쓰고, 원톱 공격수였던 정협이에게 동료를 살려줄 수 있는 움직임을 많이 요구했지요. 이 때문에 정협이가 ‘확 튀는’ 공격수로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전술적 움직임은 예전부터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협의 원래 이름은 이정기(廷記)다. 무난한 이름의 무난한 선수로 남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난해 12월 작명관에 가서 ‘욕구가 충만하고 강한 성향’의 이름이라는 정협(庭恊)을 새로 받았다. 어머니 배씨는 “이름을 바꾸면 귀인을 만난다고 했는데, 그 귀인이 슈틸리케 감독님인가봐요”라고 말했다. 이정협은 아시안컵 활약 덕분에 국군체육부대로부터 휴가를 받아 부산 자택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는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이번 아시안컵은 운이 좋았고, 나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선수다. 소속팀에서 주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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