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츠지 출신 남창수 ‘미나미’ 오너셰프. (우) 핫토리 출신 김찬중 ‘오마에’ 오너셰프.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좌) 츠지 출신 남창수 ‘미나미’ 오너셰프. (우) 핫토리 출신 김찬중 ‘오마에’ 오너셰프.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핫토리냐, 츠지냐?’ 일본으로 요리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고민 중의 하나다. 세계적 요리학교로 프랑스에 르코르동블루, 미국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가 있다면 일본에는 츠지 조리전문학교와 핫토리 영양전문학교가 있다. 두 곳 모두 세계 5대 요리학교에 손꼽힐 만큼, 일본 요식업계의 학맥도 핫토리와 츠지 출신이 양분하고 있다.

역사는 핫토리가 오래됐다. 핫토리는 1939년(설립자 핫토리 미치마사), 츠지는 1960년(설립자 츠지 시즈오)에 설립됐다. 두 학교 모두 요리기초를 배우는 1년 과정과 전문가를 위한 2년 과정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핫토리는 도쿄에 있는 만큼 퓨전요리에 강하고 오사카에 본원이 있는 츠지는 일본 전통요리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84년부터 일본 최고 요리사들을 뽑는 조리사양성시설조리기술 전국대회 우승자 명단도 일본요리와 중국요리 부문은 츠지 출신, 서양요리 부문은 핫토리 출신으로 나뉜다. 핫토리의 성장에는 일본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핫토리 유키오 교장의 힘도 크다. 후지TV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요리의 철인’으로 유명해진 핫토리 교장은 요리업계의 대표리더로 꼽힌다. 대외활동보다 교육 중심인 츠지는 100% 가까운 취업률을 자랑한다. 매년 일본 각지의 기업, 요리업체에서 츠지 졸업생을 모시기 위한 구인 요청이 쏟아진다.

국내 이자카야 업계에서도 츠지와 핫토리 출신 유학파들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한국에는 핫토리가 먼저 알려진 때문에 수적으로는 핫토리 출신이 더 많다. 핫토리 한국사무국 신현진 사무장은 “최근 들어 매년 졸업생이 70명에서 많게는 100명 가까이 나온다. 정확한 집계는 안 돼 있지만 총 졸업생이 1000명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사무장도 핫토리 출신이다.

푸드코디네이터가 되고 싶어 2007년 핫토리에 입학했다는 신 사무장은 “1990년대 초부터 한국 유학생들이 한두 명씩 가기 시작해서 2005~2008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늘었다. 당시 엔저로 인해 학비 부담이 줄기도 했고 국내 이자카야 열풍이 불면서 일본요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즘엔 한 반에 10~20%가 한국 학생이다. 매년 8월 국내 동문 모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학비는 1년 과정이 연 160만엔, 2년 과정이 310만엔이다. 자격은 일본어능력시험인 JLPT 2급 이상이거나 일본 어학원에서 6개월 이상 공부하면 된다. 신 사무장은 “전문용어들이 많이 나오는 만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어학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핫토리 1세대로 대표적인 스타셰프는 ‘퓨전일식’으로 유명한 남경표(45)씨다. 남씨는 핫토리 개교 이래 외국인 첫 수석졸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다이닝사케바로 퓨전일식 붐을 일으킨 장본인. 현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우동 전문점 ‘면통단’을 하고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일식당 ‘스시조’의 이진욱 셰프, 서울 강남역 근처서 복어스시집으로 유명한 ‘아카사카’의 곽문영 셰프, 배화여대 김정은 교수(전통조리과), 요리전문 케이블 채널 올리브의 ‘올리브쇼’에 출연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는 손봉호 오너셰프(아라쓰) 등이 요즘 활약 중인 핫토리 스타들이다.

츠지 조리전문학교는 국내에 사무국은 없다. 대신 츠지 졸업생들의 모임이 있다. 츠지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청강대 푸드스타일리스트와 황지희 교수를 중심으로 매년 두 차례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간사 역할을 맡고 있는 남창수씨는 “츠지 출신에 대한 집계는 없지만 대략 200~300명 선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유학생 수가 부쩍 늘어 한 해 평균 70~80명이 입학하고 있다고 들었다. 2006년 내가 입학할 때는 같은 기수가 30명 정도 됐다. 그전에는 10명도 안 됐다고 들었다. 2000년 중반 이후 한국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모임에는 50~60명 정도가 참석한다. 현업에 있기 때문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모임을 통해 정보 교류도 하고 선후배 간 친분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츠지 출신 중 이름이 많이 알려진 셰프로는 최근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 이자카야 중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카덴’의 정호영 오너셰프가 있다. 정씨는 이자카야 카덴 이외에도 ‘우동 카덴’ ‘로바다야 카덴’을 운영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 K STAR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 ‘식신로드’에 소개되는 등 문을 열자마자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자카야 ‘분노지’(서울 서초구 신논현역 인근)의 문동택 셰프도 츠지 출신이다.

이들처럼 일본으로 요리 유학을 다녀온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공중파, 종합편성, 케이블 할 것 없이 채널만 돌리면 요리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예능 프로그램까지 스타셰프 띄우기에 나서면서 ‘셰프의 전성시대’라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 셰프!” 복창 소리 들으면서 폼 잡는 셰프는 드라마 속에나 가능할 일이다. 현장을 지키는 셰프들은 하나같이 “주방은 전쟁터처럼 치열한 곳이다”라고 말한다. 핫토리와 츠지를 각각 졸업하고 일본요리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두 명의 오너셰프 남창수씨(미나미)와 김찬중씨(오마에)를 만나 치열한 주방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바 전문점 ‘미나미’의 오너셰프 남창수(36)씨는 2006년 츠지를 졸업했다. 수타 소바 맛집으로 소문난 미나미를 찾은 날은 평일 점심시간. 한적한 골목길에 있는데도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남씨는 지난해 SBS ‘생활의 달인’에서 메밀국수의 달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가게 한편에 매일 남씨가 국수를 뽑는 제면실이 있다. 보통 하루에 두 번 정도 면을 뽑는데 여름철이 가까워지면서 한 번에 1~2시간씩, 하루 세 번은 면을 뽑아야 주문을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남창수 셰프가 개발한 미나미의 냉소바 ‘토마토 히야시’.
남창수 셰프가 개발한 미나미의 냉소바 ‘토마토 히야시’.

남씨는 요리경력 11년. 국내에서 조리과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학코스까지 포함 4년 만에 돌아와 부산 롯데호텔에서 4년 일하고 2012년 미나미를 오픈했다. 남씨는 빨리 성공한 편이다. 남씨는 유학파들이 오히려 자리 잡기가 힘들다고 했다. “유학파들이 돌아와 취업을 알아볼 때 1차 좌절을 겪습니다. 보통 남자 신입들 나이가 26~27세인 반면 유학을 다녀오면 30대 전후가 되다 보니 주방에서 부담스러워하고 취업이 쉽지 않습니다. 어렵게 들어가서도 문제입니다. 좀 실수라도 할라치면 ‘유학까지 갔다 와서 그것도 못해’라는 시선이 바로 쏟아집니다. 그때 2차 좌절을 겪습니다. 사실 유학 가서 배운 것은 요리의 기본이지 현장에서 필요한 테크닉이 아니거든요. 이때 현장을 포기하고 학원이나 외식 관련 기업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과정을 극복하고 버텨내서 실력을 쌓아야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남씨는 츠지에서 연 2000만원이 넘는 학비를 내고 배워온 것은 ‘오모테나시(진심으로 손님을 환대한다)’ 정신이라고 했다. “기술보다는 요리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사실 테크닉은 반복과 시간을 통해 내 몸에 스며들게 돼 있습니다. 오모테나시의 정신을 지키는 것, 좋은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할 때도 ‘오모테나시’의 정신을 역설한 것이 주효했다고 들었습니다.”

남씨는 요즘 우리나라 주방에서는 요리의 기본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요리는 실습이 아닙니다. 손님이 처음 음식을 먹는 순간 다시 올지, 다시는 오지 않을지가 결정이 됩니다. 바로 매출과 직결됩니다. 절박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요즘 요리 배우려는 사람들 보면 이 식당 저 식당 돌아다니면서 노하우만 배워 나가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창업해서는 성공을 못합니다. 기본이 없으면 모방은 할 수 있어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거죠. 츠지 모임에 나가면 다들 주방 스태프들 구하기가 어렵다고 난리예요. 일 좀 가르칠 만하면 1년을 못 넘기고 나갑니다. 일본은 한 곳에서 20년, 30년씩 근무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백발 노장부터 주방에 줄줄이 서 있어요. 요리 경력 10년차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1~2년차는 칼은 잡지도 못합니다. 엄청 힘들고 엄격하게 가르칩니다.”

남씨는 츠지 모임을 만든 장본인이다. 츠지 졸업 후 진로가 막막했다. 선배들의 조언도 듣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한국인 졸업생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 한두 명씩 동문 선배들을 찾기 시작했다. 7년 전 첫 모임에는 황지희 교수를 포함해 딱 5명이 나왔더란다. 남씨는 “요리 좀 한다고 덤벼들었다가는 바로 무너지는 곳이 주방이다”라면서 “요리는 한 끗 차이다. 그래서 어렵다”고 말했다. ‘소바’ 하면 ‘미나미’로 기억되고 싶다는 남씨는 장사꾼이 아닌 요리꾼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오마에는 논현동에서 ‘화로구이’로 제2의 도전을 하고 있다.
오마에는 논현동에서 ‘화로구이’로 제2의 도전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일본식 화로구이 전문점 ‘오마에’의 김찬중(39) 셰프는 2006년 핫토리를 졸업했다. 졸업작품전 일식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실력이 탄탄하다. 5년 전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시작한 이자카야 오마에로 먼저 유명해졌다. 김씨가 2010년 처음으로 서래마을에 매장을 열었을 때는 이자카야 창업 붐이 한창이던 때. 김씨의 매장 주변에만 이자카야가 18~20개가 있었단다. “막차를 탔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도 계속 늘어나더라고요. 일대가 이자카야 골목이 됐어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프랜차이즈들이 점점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인 매장들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나기 시작했다. 3년 만에 수직으로 올라가던 오마에의 매출 곡선도 처음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월세도 450만원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 800만원까지 올랐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자카야 메뉴를 줄이고 화로구이로 방향을 틀어 2년 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새로운 곳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오마에는 골목길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데도 벌써 화로구이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김씨는 “처음 찾는 손님 중 대부분이 재방문을 하고 있다”고 했다.

화려한 상권보다는 자신의 이름과 맛으로 승부를 걸고 싶다는 김씨는 “이자카야가 평준화되면서 요리사가 아닌 관리자가 필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경영능력이 떨어지는 요리꾼들이 살아남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임대료·인건비는 빤하고 단가를 맞추려면 재료비를 낮춰야 합니다. ‘요리사로서 질을 고수할 것이냐, 현실과 타협할 것이냐’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게 됩니다. 결국 타협을 하는 사람도 있고, 버티지 못하고 요리계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마에 매장 입구 벽에 ‘야루시카나이(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라는 글씨가 쓰인 액자가 붙어 있었다. 김씨는 “현장이 워낙 힘든 곳이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내 자신을 다잡기 위해 써놓은 글”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은 손님이 “만족했다”고 말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김씨는 핫토리에서 배운 가장 큰 재산은 ‘요리의 정신’이라고 했다.

‘츠지 vs 핫토리’의 취재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이자카야 ‘오오키니’(일본 관서지방 사투리로 ‘감사합니다’)에서 시작됐다. 홍대의 메인 상권에서 비켜난 홍대입구역 근처 골목길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할 곳을 찾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간 곳이 오오키니였다. 셰프 혼자서 요리와 홀 서빙을 모두 하고 있었다. 바 테이블에 앉은 덕분에 셰프의 움직임이 모두 보였다. 무뚝뚝해 보이던 셰프가 칼을 들자 완전히 달라졌다. 칼질을 할 때마다 도마를 닦고 또 닦고, 한 점 한 점 생선회를 뜨는 모습이 그렇게 진지해 보일 수가 없었다. 실내를 다시 둘러봤다. 일본에서도 워낙 귀해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일본 소주 ‘마오(魔王)’를 비롯해서 흔하지 않은 사케들이 진열된 한쪽 벽면에 츠지 졸업장과 츠지 졸업생에게 주는 일본 조리사자격증이 걸려 있었다.

“아직 내놓을 만한 실력이 못 된다”면서 인터뷰를 굳이 사양하는 오강석(36) 셰프는 재료와 요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매일 재료를 소량으로 구입하다 보니 원가는 너무 높고, 젊은층이 많은 상권이다 보니 가격대가 안 맞아 고민이 많다고 했다. 문을 연 지 3년째, 주변 가게 중에 간판이 아직 안 바뀐 곳은 오오키니를 비롯해 2~3곳밖에 없다고 한다. 오씨는 “좋은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해야 한다는 배움대로 초심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찍어내듯 비슷한 메뉴를 내건 식당들이 유행 따라 간판을 바꾸고, 몸집 큰 프랜차이즈들이 상권을 점령하는 틈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려는 요리꾼들이 골목골목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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