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의 대전제는 ‘우리는 나보다 힘이 세다’ ‘개인은 미력하나 집단은 강하다’다. 평범한 대중이 만들어가는 지식이 영향력이 생기면서 권력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영국의 혁신 전문가 찰스 리드비터는 그의 책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21세기북스)에서 “세계가 기술에 의해 뒤엎어지고 있다”며 “덜 위계적인 공동체로 가고 있다. 지식과 권력이 보다 고르게 분배되는 공동체로 향하고 있다. 사회 중심부에 집중됐던 권력을 주변부에 넘겨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 불신’도 집단지성 시대가 낳은 현상이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만들 수 있고, 공유할 수 있고,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보 제공자인 전문가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전문가가 필요 없다”고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다. 누구나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정보로 무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진짜 전문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 사이비 전문가는 발붙일 데 없는 시대가 됐다.

집단지성의 역사는 짧다. 1995년 ‘정보 공유 자원’ 운동에서 시작했으니 20년밖에 안 됐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정보의 디지털화를 등에 업고 사회 곳곳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일으켜왔다. 이 시대의 거대한 조류인 집단지성. 그 명(明)과 암(暗)을 조명해 본다.
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지난 6월 3일 저녁, 한 시민이 만든 사이트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지도’였다. 프로그래머 박순영씨가 몇 시간 만에 개발한 메르스 확산지도에 힘을 실어준 건 이름 없는 시민들의 제보였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은 정보의 힘은 컸다. 추후에 보건당국에서 밝힌 병원 정보와 시민들의 제보는 거의 일치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집단지성. 공유지식, 협업지성, 공생지능으로도 불리는 이 집단지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촉발된 정보 공유는 평범한 대중의 아이디어 속에서 무한팽창 중이다. 사용자 제보로 만들어지는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네이버 ‘지식인’은 시작에 불과하다. 고(古)문서를 디지털화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리캡차’, 사용자의 신고로 스팸을 구별하는 앱 ‘후후’ ‘후스콜’, 각종 동영상 사이트의 공동 자막 번역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리캡차 (reCAPCHA)

고문서나 컴퓨터가 읽어내지 못하는 글자를 디지털 문서화하는 프로젝트로, 일명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로 불린다. 전 세계 수억 명 대다수가 자신도 모르게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최근의 활자는 컴퓨터가 읽을 수 있지만 누렇게 바랜 책, 희미해진 글자는 컴퓨터가 읽어내지 못한다. 일일이 사람이 구별해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위해 고안됐다.

‘리캡차’는 ‘캡차’에 공유지식 개념을 더해 탄생했다. ‘캡차’는 컴퓨터의 자동 가입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인터넷 카페 가입 시 꼬불거리는 글자를 입력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글자는 사람은 읽을 수 있지만 컴퓨터는 읽지 못한다. 이를 통해 회원 가입자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별하는 것이다. ‘캡차’의 개발자 루이스 폰 안(미국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과학과 교수)은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캡차에 문자를 입력하는 평균시간 10초를 인류를 위해 사용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리캡차(reCAPCHA)’다.

‘리캡차’는 단어 하나를 더해 나란히 두 개의 단어를 보여준다. 하나는 본래의 기능인 ‘자동가입방지’용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문서화용이다. 두 번째 단어는 회원가입 여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책 이미지를 스캔해 보여주는 이 단어는 글자 상태에 따라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답이 없기 때문에 틀려도 회원가입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통계적으로 대중 다수가 선택한 문자를 답으로 인정한다.

리캡차로 입력한 단어 수는 하루 1억개가 넘는다. 지금껏 리캡차를 통해 디지털화된 문서는 연간 평균 250만권의 분량이다. 복원된 책의 종류도 다양하다. 플라톤의 ‘향연’부터 최근에 발표된 논문까지 망라한다. 리캡차는 오롯이 전 세계 대중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다. 대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류에 공헌하고 있는 셈이다.

메르스 확산지도

메르스 발생지역을 한눈에 알아보게 만든 지도다.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지 이틀 후인 지난 6월 3일 오후 4~5시경 만들어졌다. 프로그래머 박순영씨가 만든 이 지도는 전문가가 아닌 대중의 공유지식에 의해 완성된다. 이메일을 통해 받은 네티즌들의 제보가 정보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이 메르스 확진자가 거쳐간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SNS를 통해 온갖 유언비어가 나도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탄생한 ‘메르스 확산지도’는 밀실 정보를 광장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했다. 어떤 경로로든 관련 정보를 알게 된 시민들은 ‘나만 아는 지식’을 ‘전 국민이 아는 지식’으로 기꺼이 공유했다.

이 사이트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제보를 받아 메르스 환자들이 거쳐간 병원의 이름과 위치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이 사이트는 불안에 떠는 시민들의 해방구가 됐다. 단 하루 만에 100건가량의 제보가 쏟아졌고, 한때 접속자가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지도 개발자 박순영씨는 한 방송사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확산에 대한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SNS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보다 해당 정보의 투명성과 사실 유무를 평가하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개발의 배경을 밝혔다.

이 지도가 개설된 지 하루 만인 6월 5일, 보건당국은 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메르스가 최초로 발생한 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관련 환자가 거쳐간 병원 숫자를 공개했다. 당시 보건당국이 밝힌 병원 숫자는 14곳. 메르스 확산지도에 표시된 수와 일치했다. 보건당국이 관련 병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이 지도는 폐쇄했다.

꿀위키, 나무위키… 위키피디아의 변형판

대중의 정보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백과사전이다. ‘우리 모두의 사전’을 표방한 위키피디아와 비슷한 형태로 운영된다. ‘나무위키’는 게임, 미술, 음악, 인물 등을 망라하고, ‘꿀위키’는 IT회사의 정보를 취급한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 가능하고, 새 항목을 작성하거나 기존 항목을 수정할 수도 있다. 게시글에 대한 평가와 반박, 보충 등의 편집과정이 그대로 노출된다. 작성자의 인터넷주소(IP)가 저장된다.

‘꿀위키’를 보면 내부자들만 알 수 있는 알짜 정보가 많다. 한 게임회사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매출 규모에 비해 복지 좋은 편. 어버이날 5만원 상당 카네이션 배송, 직원 자녀 초등학교 입학 시 책가방 지원, 조식(김밥, 빵) 제공-정시 출근해도 늦게 오면 아무것도 없음. 사내 분위기? 야근 겁나 함. 새벽까지 일하고도 반드시 정시 출근을 해야 함. S등급은 15% 인상, 각 부서 한 명 나올까 말까. 회사 옆에 있는 카페 ○○은 아메리카노 정말 맛 없다.”

관계자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된 이 사이트는 얼마 전 잠정폐쇄됐다. 본래 목적과 다르게 회사의 기밀이나 내부 고발 등을 무분별하게 올리면서 ‘뒷담화’ 사이트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성장해갔기 때문이다. 사이트 개발자는 폐쇄 공고문에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뒷담화를 도려내고 개발자들의 백과사전으로 틀을 잡아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명시했다.

동영상 사이트의 공동번역 프로젝트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 ‘비키’(www.viki.com), ‘비메오’(www.vimeo.com)에서는 전 세계 사용자들이 달라붙어서 빠르게 공동번역이 이루어진다. 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올 1월 한국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한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한 동영상 사이트에 방영 3시간 만에 자막이 서비스됐다. 드라마 제목은 ‘Shine or Go Crazy’라고 번역됐고, 대사 하나하나에 영어 자막까지 붙은 건 놀라웠다. 전 세계 각지에서 사이트에 접속한 온라인 사용자들이 각자 임무를 나눠 동시에 번역한 덕분이다.

공동번역 프로젝트는 대부분 속도는 기본, 전문 번역가 못지않은 정확도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비키의 태미 남(Tammy Nam) 최고경영자는 “비키에서 서비스하는 드라마 자막은 전문 번역가 수준의 정확도를 지녔다”고 말했다.

후후, 후스콜

스팸전화 여부를 알려주는 앱이다. 휴대폰 판매, 대출, 보험, 카드가입 등 스팸 전화를 미리 알 수 있다. ‘후후’나 ‘후스콜’ 앱 사용자들이 스팸을 신고하여 정보를 공유한 덕분이다. 모르는 전화가 왔을 때, 번호와 함께 다른 사용자들이 신고한 내용이 뜬다. ‘대출신고 290건, 카드가입 권유 560건’ 이런 식이다. 심지어 ‘보이스 피싱’으로까지 뜬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스팸전화 판별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두 앱의 경우 1000만명 이상이 사용해 정확도가 높다.

한편 신고한 사람들의 내용이 그대로 뜬다는 측면에서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만약 누군가 악감정을 품고 특정인 전화번호에 ‘뺀질이’라고 공유정보로 등록하면 이 앱 사용자들에게 그는 ‘뺀질이’로 뜬다. 해당 앱 개발자는 “필터링을 거치지만 완벽한 필터링을 못해서 과정 중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집단지성 시대, 가짜 정보 거름망이 필요

김용학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네트워크 연결망 분석 전문가다. ‘사회연결망 분석’(김영사)과 ‘네트워크 사회의 빛과 그늘’(박영사)을 통해 집단지성의 등장으로 달라지는 권력의 양상을 분석했다. 주간조선은 지난 6월 25일 ‘집단지성이 바꾸는 세상’에 대해 그와의 전화 통화로 들어봤다.

- 책 ‘네트워크 사회의 빛과 그늘’에서 네트워크 사회의 구조 변동에 의해 권력의 본질이 바뀐다고 언급했다. 어떻게 바뀌나. “여기에서 권력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둘 다 포함한다. 경제권력의 경우, 리눅스가 한 예다. 소스 코드를 무료로 공개하는 pc용 운영체제인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독점적 지성에 도전하고 있다. 다수를 위해 공개되고 수시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전 세계 수백만 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양상이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빠르게 부상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픈소스 설계를 빠르게 잘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규제가 적어 혁신이 빠르다. 정치권력을 예로 들면 ‘아랍의 봄’이 그 예다. 2010년 중동, 북아메리카에서 촉발된 이 반(反)정부 시위는 일반 대중이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일반 대중의 힘이 커지면 평등사회에 가까워질까. “그럴 잠재력이 있긴 하다. 한편 정반대의 야누스적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이 양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그것이다. 더 거대한 기관, 기업이 나타나면 기존의 약한 존재는 생존이 어렵다. 네트워크가 커질수록 수용력도 커진다. 승자독식의 사회는 여전할 거다.(싸이월드는 과거 인기몰이를 했던 마이크로 블로그 사이트이고, 페이스북은 현재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sns다.)”

-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전문가도, 일반인도 평등한 한 표다. “그렇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그의 ‘생물학적 다양성’ 연구는 대중의 지식과 정보가 큰 역할을 한다. 처음 본 듯한 벌레나 식물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면 전 세계 대중이 그 생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공유지식의 힘은 크다. 한 사람이 가진 지식의 양이 1이라면 10이 모여서 만든 지식의 양은 10이 아니다. 시너지를 이뤄 100이 되는 거다.”

- 집단지성은 다수가 택한 답을 선택하는데, 그 답이 정답이라는 보장이 없다. 거짓정보의 위험성을 피해갈 수 없다. “위험사회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거짓정보가 확 퍼지면 걷잡을 수 없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은행이 파산했다는 가짜 정보를 퍼뜨리면 패닉상태가 될 수 있다. 무조건 대중의 힘을 믿는 구글을 이길 수 있는 차세대 주자가 필요하다. 정보의 신뢰성을 평가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얼마 전 메르스에 걸린 의사가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거짓정보가 퍼지면서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이 경우처럼 갑자기 검색 수가 확 늘어난 정보를 초기에 찾아내 진위를 밝혀주는 기관이 필요하다. 국가기관이든 시민단체든.”

- 논문에서 권력 이동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중앙에서 변방으로 뻗어나가는 ‘방사위계형’에서 변방끼리 조밀해진 ‘수평형 네트워크’로 변해간다고 했다. 부연 설명을 해달라. “교수가 학생에게 강의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학생들이 강의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전달받았다. 책도, 지식도 교수가 학생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 경우 학생들은 교수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달라졌다. 학생이 가진 정보가 교수가 가진 정보와 다르거나 더 좋은 정보일 수도 있다. 교수와 학생 간의 권력관계가 변해갈 수밖에 없다. 교수의 권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 누구나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미네르바 사건을 보라. 경제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아니었지만 리먼사태를 예측하면서 경제대통령으로까지 불렸다. 정보 획득이 쉬워서 가짜 전문가 행세가 쉬워진 것은 맞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곧 들통난다. 진짜 전문가는 살아남고, 진짜 전문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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