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평양랭면관에서 공연 중인 북한 봉사원들.
프놈펜 평양랭면관에서 공연 중인 북한 봉사원들.

지난 12월 5일 저녁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평양아리랑관’. 캄보디아 국방부 인근 대로변에 위치한 이 북한 식당은 초저녁인 6시 무렵인데도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약 80석 규모의 1층 홀 절반 가까이가 찼다. 오후 7시가 되자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 빈 좌석이 없을 정도였다.

손님들은 한국인, 중국인, 캄보디아인 등 다양했다. 캄보디아 여성들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서양 사람들도 보였다. 식당 안에서는 하얀색 윗도리와 하늘색 물결 치마를 입은 북한 여성 ‘봉사원’들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봉사원들은 하나같이 늘씬한 키에 빼어난 외모였다. 일부 봉사원들은 높은 콧날, 짙은 쌍꺼풀 등 성형수술 흔적이 뚜렷했다. 가슴에 달린 한글 이름 명찰은 가로로 붉은색과 파랑색 선이 그어져 북한 인공기와 흡사했다. 일부 봉사원들은 특유의 북한식 억양으로 식사하는 손님들 옆에 붙어서서 말 상대를 해줬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손님이 ‘취기’에 봉사원의 몸을 만졌는지 “이러지 마시라요”라며 면박을 주는 목소리도 들렸다.

메뉴는 한식 일색이었다. 볶음, 구이, 탕, 조림 등 서울의 식당에서 접할 수 있는 웬만한 요리는 다 갖춰져 있었다. ‘단고기(개고기의 북한식 표현) 수육’ 등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메뉴도 있었다. 대체로 회 종류가 가격이 비쌌다. 다금바리회 한 접시 가격이 40달러. 1인당 GDP가 1000달러 남짓한 나라에서 요리 한 접시로는 엄청난 가격이다. 한 봉사원은 “2층에 VIP룸이 4개 있는데 사전 예약이 필수”라며 “룸에는 가라오케 시설도 갖춰져 있다”고 했다. 룸에 들어가려면 술과 음식 비용으로 100달러 이상은 지불해야 하는데 이와는 별도로 룸값 3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저녁 8시, 음식을 나르던 봉사원들 중 일부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홀 한편에 마련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대에는 전자 오르간과 장구, 기타 등의 악기가 놓여 있었다. 봉사원들은 “환영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빠른 템포의 전자오르간 반주와 춤사위가 곁들여진 북한식 아리랑이었다. 30분간 이어지는 무료 공연의 막이 오르자 일부 한국인 손님들이 흥에 겨워 “언니”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프놈펜에는 ‘평양아리랑관’ 같은 북한 식당이 현재 모두 5개나 영업 중이다. 2003년 12월 문을 연 ‘평양랭면관’을 시작으로 ‘대동강식당’(2008년), ‘평양고려식당’(2011년), ‘평양릉라도식당’(2013년)이 차례로 문을 열었고, 작년에는 1월과 11월에 ‘평양아리랑관’과 ‘모란봉식당’이 각각 영업을 시작했다. 이 중 대동강식당은 지난 4월 문을 닫았지만 최근 재개관을 위해 공사 중에 있다.

가장 오래된 평양랭면관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에도 2005년 같은 이름의 식당을 냈다. 시엠레아프에는 2004년 프놈펜 인근 해변 휴양지인 시아누크빌에 처음 문을 열었던 ‘평양친선관’이 옮겨와 영업 중이기도 하다. 시엠레아프까지 포함하면 인구 1500만명 정도의 동남아 후진국인 캄보디아에 무려 7개의 북한 식당이 몰려 있는 것이다. 현지 한국 교민이라야 프놈펜 3000명을 비롯해 5000명 정도, 북한 사람들도 캄보디아 전체에 수백 명 불과한 점에 비춰 보면 이례적인 북한 식당 러시다.

캄보디아에 몰려든 북한 식당은 김정은 정권에서 새로운 돈줄로 부상하고 있는 북한의 해외 식당 사업의 전형이다.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에서 해외 북한 식당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만 해도 100여개에 불과했던 해외 북한 식당은 현재 129개에 이른다. “함경남도 도당위원회만 해외에 북한 식당을 두지 않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각 기관마다 해외에 차리는 식당을 주요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이 95개로 가장 많이 진출해 있고 러시아 9개, 캄보디아 7개 순이다. 캄보디아가 숫자로는 세 번째로 북한 식당이 많은 나라다. 이밖에 베트남 4개, 아랍에미리트 4개, 몽골 3개, 태국 2개 등이 있고 인도네시아, 네팔, 말레이시아, 미얀마, 라오스 등에 각각 1개씩 진출해 있다. 해외 북한 식당의 국가별 숫자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캄보디아에 북한 식당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캄보디아가 북한의 전통적인 우호국일 뿐더러 사업 환경이 좋아서라고 한다. 캄보디아는 2012년 사망한 시아누크 전 국왕과 김일성이 생전에 남다른 친분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 식당 사정에 밝은 프놈펜의 한 한국 교민은 “북한의 해외 식당은 현지 합작 파트너를 두고 운영하는데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은 5 대 5 방식으로 합작해 인건비와 식자재, 임대료를 빼고 남는 수익을 절반씩 나눠 갖는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캄보디아에 들어와 있는 대만과 중국 자본이 북한의 합작 파트너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프놈펜 북한 식당서 손님들 시중을 들고 있는 봉사원들. 손님들이 식사하는 도중 옆에 붙어서서 말 상대를 해준다.
프놈펜 북한 식당서 손님들 시중을 들고 있는 봉사원들. 손님들이 식사하는 도중 옆에 붙어서서 말 상대를 해준다.

캄보디아만 7곳… 세계에서 3번째

북한 식당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의 경우에는 요즘 자신들이 수익의 7을 갖고 가는 7 대 3 방식의 합작을 북한에 요구하기 때문에 캄보디아로 눈을 돌리는 북한 기관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북한 측에서 우선적으로 보장해주기를 원하는 봉사원들의 인건비가 중국인을 쓰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북한과의 식당 사업에 나설 중국 투자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 교민들은 “앞으로도 캄보디아에는 북한 식당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해외 북한 식당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적지 않은 규모로 알려져 있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가장 장사를 잘하는 프놈펜 평양랭면관에서 평양으로 보내는 이른바 ‘충성자금’이 한 해 최소 3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만달러로 계산할 경우 129개 해외 북한 식당에서 한 해 4000만달러 가까운 돈을 김정은에게 헌납하는 셈이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인 워싱턴프리비컨(WFB)은 2013년 해외 북한 식당이 “스파이의 소굴”이라며 “북한 정권에 1억달러 이상의 경화를 보내는 본거지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한푼의 달러가 아쉬운 북한 입장에서 4000만달러는 무시할 수 없는 큰 규모”라며 “정상적인 수출을 제외한 북한의 연간 외화벌이 40억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1% 정도의 비중”이라고 했다. 올해 초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외화벌이 기관들에 10월 10일 당 창건 70돌까지 조달하라고 지시한 충성자금 규모도 50만달러 정도였다. 유동열 원장은 “북한의 연간 외화벌이는 해외파견 노동자 인건비 수입 20억달러, 도박 등 사이버 수입 10억달러, 위조지폐·마약밀매·무기수출 5억달러, 개성공단 수입 1억달러, 관광수입 1억달러, 일본인·탈북자 송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해외 식당의 외화벌이는 해외파견 노동자 인건비 수입에 포함된다”고 했다.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들은 현지에서 번 돈을 환치기 수법으로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만달러 이상을 송금할 경우 캄보디아 당국에서 왜 돈을 보내는지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중국을 이용해 환치기를 한다는 것이 현지 교민 사업가들의 말이다. 북한 식당들은 프놈펜 북한대사관과 공조해 사실상 밀수도 한다. 식당에서 파는 북한산 술과 약 등을 외교행낭을 통해 들여오는 식이다. 북한대사관은 물품을 반입해주는 대가로 북한 식당들로부터 컨테이너당 얼마씩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놈펜 북한대사관의 궁핍함은 현지 교민 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대사관 건물은 시내 한복판 과거 시아누크 국왕의 생가(生家)를 무상으로 임대해 쓰고 있지만 그 번듯한 집에서 대사 이하 직원들이 숙식을 함께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민은 “2007년 북한 대사가 몰던 벤츠 차량이 앞차를 추월하려다 맞은편에서 오던 한국수자원공사 주재원의 승용차와 충돌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북한 측이 실수를 인정하고 수리비를 배상한다고 해놓고 끝내 돈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는 프놈펜에 머물면서 북한의 외화벌이 현장을 들여다보기 위해 영업 중인 5곳의 북한 식당 중 ‘평양릉라도식당’만 제외하고 네 군데의 식당을 가봤다. 북한 식당들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됐다. 20대 여성 봉사원들이 시중을 들면서 매일 밤 무료 공연을 선보이고, 식당 2층에는 가라오케 시설이 구비된 별도의 룸을 갖췄다.

돈벌이만 되면 뭐든…

룸값으로 30달러를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일부 식당들은 100달러 이상의 음식을 먹으면 무료로 룸을 사용하게 했다. 식당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은 한식 요리를 권하면서 북한에서 공수해온 100달러 안팎의 각종 ‘조국 술’을 판다. 현지 한국 식당과 달리 직접 담근 김치도 한 접시에 3달러씩 받는다. 일부 식당은 북한판 비아그라인 ‘양춘삼록’ 등 북한산 약들을 팔기도 한다. 프놈펜의 평양랭면관에서는 감기약 크기만 한 양춘삼록 한 갑에 45달러를 받았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계산을 할 때 달러화만 받는데, 평양고려식당만 50달러 이상 결제 조건으로 비자카드를 받았다. 모든 북한 식당들은 실내 촬영도 금지했다. 손님들끼리 찍는 건 눈감아줬지만 봉사원들 얼굴을 찍으려고 하면 제지하거나 얼굴을 돌렸고, 조명을 끄고 진행되는 공연 장면을 촬영해도 급하게 달려와 카메라를 가로막았다.

현지 북한 식당이 장사가 되는 이유는 봉사원들 덕분으로 보였다. 봉사원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외모의 20대 여성들이었고 친절했다. 식사를 하는 테이블 옆에 붙어서서 말 상대를 해주는 것은 기본 서비스였다. 단골이 되면 남자 손님들에게 ‘오빠’ ‘아빠’로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한다고 한다. 특히 남자 손님들은 이들 봉사원들의 ‘은밀한 접대’를 기대하고 가라오케룸을 이용한다는 것이 현지 교민들의 말이다.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아리랑관 아가씨들이 제일 화끈하게 논다” “모란봉 아가씨들은 순진하다” 등 식당별로 평가도 달랐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등 일부 해외 북한 식당에서는 업주가 봉사원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기자는 프놈펜에서 가장 최근에 문을 연 모란봉식당의 가라오케룸을 가봤다. 오후 3시가 다 된 시간에 가라오케룸을 예약하러 이 식당에 들렀다. 모란봉식당은 프놈펜 시내 한복판에 3층짜리 집을 빌려 운영하고 있었다. 다른 북한 식당들처럼 큼직한 한글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 봉사원이 “방 하나를 차지하고 낮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봉사원들이 주방에서 방으로 음식을 부지런히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 식당은 특이하게 식사시간 외에는 1층 홀에서 커피도 팔았다. 새로 생긴 식당이라 돈벌이라면 뭐든지 하는 것 같았다. 이 식당 봉사원들은 지난 9월 중순 한국에서 비행기가 오는 저녁 시간에 맞춰 프놈펜국제공항에 한복을 입고 나타나 홍보 전단을 나눠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 식당 봉사원들이 공공장소에 나타나 전단지를 나눠 주는 일이 이례적이라 당시 교민사회에서 화제가 됐었다. 모두 7명이 근무한다는 이 식당 봉사원들은 평양아리랑관 봉사원들보다 앳돼 보였다. 한 봉사원에게 나이를 묻자 “스무 살”이라며 “대학에 다니다가 왔다”고 했다. 이 봉사원은 “남조선 나이로 하면 스물한 살”이라면서 웃었다. “저녁에 와서 가라오케를 쓰려고 한다”면서 파는 술을 보여달라고 하자 “100달러 이상만 드시면 방값을 따로 받지 않는다”면서 술 진열장으로 데려갔다. 진열장에는 ‘들쭉술’ ‘황구렁이술’ ‘장뇌삼술’ ‘송이버섯술’ 등 북한산 술로 가득했다. 한국산 소주나 양주도 있지만 “조국 술을 팔아달라”는 게 봉사원들의 요청이었다. 한국산 소주는 5달러를 받는다고 했다.

가라오케룸의 여성 봉사원들

프놈펜 북한 식당 간판들. 북한 식당들은 건물을 통째로 빌려 봉사원들의 숙소로도 사용한다.
프놈펜 북한 식당 간판들. 북한 식당들은 건물을 통째로 빌려 봉사원들의 숙소로도 사용한다.

저녁 시간, 모란봉식당을 다시 찾자 봉사원들이 알은체를 하면서 2층 가라오케룸으로 안내했다. 이 식당에는 1층에 두 개, 2층에 하나의 VIP룸이 있다. VIP룸은 한국의 중식당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널찍한 방에 6~7명이 앉을 수 있는 둥근 테이블과 술 진열장이 있었다. 별도의 화장실을 갖춘 방도 있다고 한다. 벽에 붙어 있는 모니터와 가라오케 시설을 가리키며 “어느 나라 제품이냐”고 묻자 “금영”이라고 한다. 한국산 금영 가라오케를 중국에서 사왔다는 것이다. 한국과 북한, 중국 노래, 심지어 팝송까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식당의 술과 음식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80달러짜리 송이버섯술은 송이버섯향이 진했다. 직접 만들었다는 두부, 순대 요리는 감칠맛이 났다. 봉사원들은 “우리는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며 “4명의 주방일꾼들이 전부 평양 최고 호텔인 고려호텔 요리사들”이라고 했다.

봉사원들은 자리에 앉지도, 술을 같이 마시지도 않았지만 노래를 시키자 흔쾌히 응했다. 특유의 낭랑한 톤으로 북한 노래를 주로 불렀는데 두 명의 봉사원 중 나이가 어린 ‘동생’은 ‘울고 .넘는 박달재’ ‘굳세어라 금순아’와 같은 한국의 ‘계몽가요’(트로트의 북한식 표현)도 능숙하게 불렀다. 이들에게 “북한 노래를 부르는 한국 손님들도 있느냐”고 묻자 “‘심장에 남은 사람’과 ‘휘파람’이 인기”라고 했다. 1980년대 북한 영화 주제곡인 ‘심장에 남은 사람’은 얼마 전 재미동포 신은미와 황선 전 통진당 대변인이 이른바 ‘종북 콘서트’에서 불러 논란이 된 노래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찬양하는 영화의 주제곡이라 이 노래를 부른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특히 이 노래는 신은미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졌다.

술을 따라주면서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은 웃는 표정이어도 처음에는 한국 손님들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말을 붙여도 짧게 대답할 뿐 말을 길게 섞지 않으려 했다. 두 시간 가까이 서서 시중을 드는 봉사원들에게 “아무도 없는데 좀 앉으라”고 권해도 “규정”이라며 내내 서 있었다. 현지 교민들은 “북한 봉사원들이 중국인이나 현지인들에 비해 한국 손님들에게는 매우 조심스럽게 응대하는 편”이라고 했다. 두 명의 봉사원 중 ‘언니’에게 “한국 손님들을 싫어하느냐”고 묻자 “나쁜 손님들이 가끔 있다”고 했다. “우리를 헐뜯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어요. 식사하러 와서 자기네 제도를 강요할 필요는 없잖아요.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거지. 근데 왜 ‘깡지’를 놓는지 모르겠어요. 나쁘게 대하면 우리도 정을 주지 않아요. 그래서 중국 손님들이 더 편해요.” 이 봉사원에게 ‘깡지’가 뭐냐고 묻자 “속을 긁어 놓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성 봉사원들은 기자 일행 중 2003년 북한을 다녀온 사람이 평양을 화제로 삼자 훨씬 태도가 누그러졌다. ‘언니’ 봉사원은 “2003년이면 우리가 소학교 다닐 때인데 그때와 비교해 평양은 많이 바뀌었다”며 “일제시대 판잣집이 많아 더럽던 보통강도 지금은 많이 깨끗해졌고 건물들을 다 헐고 새로 지은 거리가 많다”고 했다. 두 명의 봉사원들은 모두 평양 출신이고, 집도 중구역 등 좋은 동네에 있었다. ‘언니’ 봉사원은 일행 중 한 명이 “남포에 가봤다”고 하자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청년들이 마대를 지고 건설한 청년영웅고속도인 걸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20대인 이들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아기들이었다”고 한다.

프놈펜 북한대사관. 시아누크 전 국왕 생가를 무상으로 임대했다. 홍종철 대사와 세 명의 직원이 숙소로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놈펜 북한대사관. 시아누크 전 국왕 생가를 무상으로 임대했다. 홍종철 대사와 세 명의 직원이 숙소로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장철구상업대학 출신이 대부분

이들 여성 봉사원들은 모두 평양 장철구상업대학 출신이었다. 대학 선후배 사이라는 것이다. 한 명은 이미 졸업을 했고, 한 명은 아직 대학생이라고 했다. 대학을 마치지 못한 ‘동생’은 캄보디아에서 3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면 대학을 다시 다닐 예정이라고 했고, ‘언니’는 “식당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장철구상업대학은 여성들이 다니는 3년제 대학으로 요리, 피복, 봉사, 관광 등의 전공을 두고 있다고 한다. 여성 봉사원들은 “북한 최고의 신붓감이 나오는 대학”이라고 자랑했다. 이들은 “장철구가 누구냐”는 질문에 “일제시대 수령님께서 항일투쟁을 하실 때 사령부 자취부를 책임지던 여성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엄동설한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수령님께 성의껏 음식을 만들어줬고, 수령님의 음식에 독이 든 것도 발견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여성 봉사원들은 “우리 식당의 봉사원들은 전부 장철구상업대학 출신”이라며 “캄보디아 봉사원 중 일부 봉사학원 출신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북한 식당들은 결국 이들 여성 봉사원들의 인건비를 착취하면서 돈을 버는 것 같았다. 여성 봉사원들은 한 달에 150~ 500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춤과 노래, 악기를 다루는 기량에 따라 월급 수준이 다르다. 캄보디아 주재 북한대사의 월급이 500달러 선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팁 수입도 있다. 단골들이 쥐여주는 팁을 모아 공동경비를 제하고 같이 나누는데, 평양랭면관처럼 장사가 잘되는 곳은 한 사람당 한 달에 많게는 200달러의 팁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수입이 온전히 봉사원들의 몫은 아니라고 한다. 각종 명목으로 업주들이 떼가기 때문이다. 한 교민은 “단골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봉사원들이 3년간 평균 1만달러 정도를 모아 귀국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정도면 한 달에 3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입이다. 더욱이 장철구상업대학에 들어가면 해외 봉사원 기회가 쉽게 주어지기 때문에 입학할 때부터 2000~3000달러의 뇌물을 바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런 비용까지 감안하면 3년간 일하고 7000~8000달러를 벌어가는 셈이다.

임금은 박하지만 이들 여성 봉사원들은 한눈에 보아도 고된 근무를 이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자가 들른 모란봉식당 종업원들도 음식을 나르고 술을 따르다가 손님이 부르면 홀로 달려가곤 했다. 여기저기서 요청하면 노래를 부르다가 공연시간이 되면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 올랐다. 한 교민은 “봉사원들이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한 번 쉰다고는 하는데 쉴 틈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교민들에 따르면, 북한 식당은 연중 문을 닫는 날도 없을 뿐더러 현지 인력도 절대로 쓰지 않는다. 식당에서 봉사원들이 같이 먹고 자면서 청소와 빨래까지 해야 한다. 식당마다 한 명씩 나와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의 감시 감독을 받으며 합숙을 한다. 외출도 함께 해야 하고 TV도 위성안테나를 통해 들어오는 북한중앙방송만 봐야 한다. 유일한 낙은 일 년에 한두 번 프놈펜 인근 해변 휴양지인 시아누크빌 등에 당일치기로 놀러가거나 외출할 때 2달러 남짓 주고 구해오는 CD 드라마 시청이라고 한다. 모란봉식당의 ‘동생’ 봉사원은 “캄보디아에 온 지 1년 됐는데 시아누크빌에 다들 같이 놀러가 피자를 사먹은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3년간 복무하고 1만달러 벌어가

현지 교민사회나 우리 대북 정보기관은 캄보디아 북한 식당들이 단순한 돈벌이용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북한의 공작 거점으로도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북 정보기관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사업 중 하나인 사이버 도박과 해킹의 거점이다. 캄보디아의 북한 해커들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 토토’나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물론 한국인들의 금융정보를 몰래 빼내 범죄에 사용하고 있다.

실제 작년 4월 캄보디아 당국은 프놈펜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던 북한 해커조직을 검거해 재판에 넘기기도 했다. 이러한 사이버 도박, 해킹 조직을 운영하는 주체는 정찰총국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한 교민은 “프놈펜에는 무역회사, 은행 직원 등으로 소개하는 북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실제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현지 북한 사람들은 식당 운영 책임자를 포함해 모두 일주일에 한 번씩 대사관에 모여 총화를 갖는데 군인들만은 열외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캄보디아 북한 식당들 역시 돈벌이 외의 다른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 봉사원들은 영업이 끝나고 열리는 총화 시간에 동료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한편 한국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들었던 내용을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교민은 “한국 손님들이 명함을 주면 100% 봉사원을 통해 북한 해커들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우리는 본다”고 했다. 이와 관련 2011년 9월 네팔 정부가 자국 내 북한 식당인 ‘옥류관’을 탈세 혐의로 압수수색할 때 식당 컴퓨터에서 한국 손님들의 대화 내용과 신상자료가 담긴 보고서가 발견된 적도 있다. 유동열 원장은 “해외 북한 식당은 외화벌이 외에 우리 해외 교민, 체류자 및 관광객 대상 심리전과 정보수집, 대남공작 등 다목적용으로 운영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의 ‘붉은 자본가’ 허대식·김일화 부부

현지서 식당 3개 운영

50만달러 재력가로 통해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들은 표면적으로 운영 주체들이 북한의 각 기관으로 돼 있다. 예컨대 프놈펜의 평양랭면관은 북한체육위원회, 평양아리랑관은 대성무역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문을 닫았다가 현재 재개관을 위해 공사 중인 대동강식당은 당초 운영 주체가 대동강맥주회사였지만 앞으로 재개관을 하게 되면 운영 주체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운영 주체들 외에 북한 식당을 운영하며 실제로 돈을 벌어가는 북한 사업가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평양에 한 해 30만달러의 충성자금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진 평양랭면관 운영자 허대식(54)이다.

현지 교민사회에서 ‘캄보디아의 붉은 자본가’로 통하는 그는 상당한 규모의 충성자금을 보내서인지 평양 정권에도 ‘말발이 먹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 현지 교민은 “몇 년 전만 해도 그의 가족 전부가 캄보디아에 나와 있었다. 부인 김일화(53)도 캄보디아에 와서 식당 운영에 관여하고 있고 아들 허세룡(30)도 프놈펜 평양아리랑관을 차려 운영하고 있다. 해외 사업을 할 경우 보통 ‘인질’ 격으로 가족 한 명은 평양에 두기 마련인데 가족이 전부 프놈펜에 나와 있어 다들 파워가 상당하다고 수군댔다”고 했다.

허대식 일가가 그동안 캄보디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번 돈은 평양으로 송금하는 충성자금을 제외하더라도 50만달러에 이를 것이란 추측이 나돈다. 평양에서 10만달러 이상만 갖고 있으면 부유층 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부를 쌓은 셈이다.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엠레아프에서도 평양랭면관을 운영 중인 허대식 부부는 한국인 가이드 생일을 챙겨주고 한국 단체 관광객들을 데리고 온 가이드에게 커미션을 주는 등 사실상 자본주의화됐다는 말을 듣고 있다. 한 교민은 “처음에는 허 부부가 커미션을 달라는 한국 여행사의 요구에 ‘손님들이 많이 오면 일이 더 많아지는데 왜 뒷돈을 줘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며 “2007년 말 시엠레아프 한국 여행사협회가 평양랭면관 음식 단가를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가 응하지 않자 한 달간 불매운동을 벌인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허대식은 1998년 북한의 국제태권도연맹(ITF) 동남아시아 위원장 자격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 현지에 왔다가 식당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캄보디아에 오기 전에는 리비아에서 고위층 경호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 김일화는 부모가 배우로, 아버지가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을 지냈다고 한다.

허대식 일가가 운영하는 평양랭면관과 평양아리랑관은 프놈펜 북한 식당 중에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봉사원들의 수도 다른 식당의 두 배가량이나 된다. 특히 평양랭면관은 가장 오래된 식당답게 “공연이 짜임새 있고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15명의 봉사원 중 최고 대우를 받는 강진아는 월북한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고 한다. 강진아는 3년의 복무를 마치고 곧 평양으로 돌아갈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랭면관은 지난 9월 일부 봉사원이 노동허가증 없이 일하다 발각되어 수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기자가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을 때 평양랭면관 안에는 ‘킬링 미 소프트 위드 히즈 송’ 등 익숙한 팝송이 내내 흘러나왔다. 동행한 교민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내나라 내조국 제일로 좋아’와 같은 북한 노래가 홀에 흘러나왔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몇 개월 단위로 공연 내용도 바뀌는데 지난번에는 탭댄스를 춰 놀란 적도 있다”고 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이 식당 봉사원들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일부 봉사원들은 단골 한국 손님들에게 “봉사 부문 일꾼들에게는 국가가 쌍꺼풀 수술을 해준다”며 성형수술을 시인한 적도 있다고 한다. 기자는 평양랭면관에서 허대식을 찾았으나 봉사원들로부터 “시엠레아프에 갔다”는 말을 들었다. 일행이었던 현지 교민은 “요즘은 허대식이 사업차 평양에 주로 머물고 캄보디아 식당은 부인 김일화가 돌본다”고 했다.


캄보디아와 북한 관계

앙코르와트 박물관 입장 수입 놓고 갈등 중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시아누크 폐하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장 숭고하고 고결한 의리관계를 맺었고 이는 조선과 캄보디아 두 나라 인민 사이의 친선과 연대성, 협조관계의 영원한 초석이 되고 있다.”

2012년 10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사망했을 때 북한이 보낸 조전 내용이다. 김일성과 시아누크는 1961년 말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처음 만났고 4년 후 시아누크가 평양으로 초대되면서 관계가 돈독해졌다. 시아누크가 1970년 3월 군사쿠데타로 실각하고 평양을 찾았을 때 김일성은 그를 국왕으로 예우했다. 김일성은 1974년 평양 중심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장수원 저수지 옆에 시아누크를 위한 영빈관을 지어줬다. 지난 6월 북한 호위사령부 출신 고위 탈북자가 월간지 ‘통일한국’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시아누크는 장수원 영빈관의 20대 관리원인 황수옥과 결혼했으며 아들을 뒀다고 한다. 김일성은 1991년 시아누크가 13년간의 해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캄보디아에 돌아갈 때 북한 경호원 40명을 딸려 보냈는데 시아누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1994년 프놈펜 외곽에 있는 도로를 ‘김일성대원수로(路)’로 명명하고 자신의 생가를 북한대사관에 영구 무상임대했다. 이 때문에 시아누크가 만든 훈신펙당이 제1당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에는 한국과 캄보디아의 수교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였다. 1997년 훈센 현 총리의 친위쿠데타로 훈신펙당의 영향력이 축소된 후에야 한국과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캄보디아와 북한의 관계는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북한은 1500만달러를 들여 2011년 8월부터 앙코르와트에 건설·운영·양도(BOT) 방식으로 ‘그랜드 파노라마 박물관(Grand Panorama Museum)’을 짓기 시작해 작년 초 이를 완공했지만 아직까지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북한 만수대창작사가 착공한 이 박물관은 북한이 해외에 투자한 가장 큰 규모의 건설 사업. 현재 북한은 앙코르와트 관광객들이 이 박물관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도록 기존 매표소 위치를 옮겨줄 것을 캄보디아 측에 요구하고 있다. 손쉽게 박물관 입장료 수입을 올리겠다는 속셈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미 20달러의 앙코르와트 입장료를 받는 캄보디아 정부가 이에 반대하면서 양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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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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