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부모님은 결혼을 한 적이 없다. 동거의 한 형태인 ‘팍스(PACS·시민연대협약)’를 통해 부부관계를 맺었고 지금은 헤어졌다. 이후 각자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살고 있는데, 역시 이번에도 두 분 모두 결혼이 아닌 동거를 선택했다. 시누이 또한 동거를 하고 있다.

한국 기준으로 보자면 ‘콩가루 집안이다’라는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다행히 나의 시댁은 프랑스다. 프랑스에서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다. 나의 시댁 식구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택하지 않았지만 자녀 양육에 책임을 다했다. 두 분 모두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지금도 자식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는 서슴없이 왕래하고 돕고 지낸다.

나는 결혼 4년 차이고 남편은 프랑스인이다. 30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인이자 보수적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고 자란 내가 ‘사랑, 관계, 가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은 결혼을 하면서 프랑스 사회와 문화를 경험하고서다. 사랑하면 깊은 관계를 맺고 싶고, 때가 되면 결혼이라는 제도를 택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당연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다르다. 그들은 사랑을 하더라도 결혼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친구들은 이런 프랑스인을 두고 ‘자유롭게 연애만 하고 싶어한다’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다’ 등 삐딱한 시선으로 본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관계를 선택하든 그들은 선택에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프랑스 유학 시절 나는 동거를 통해 부부 관계, 가족 관계를 맺고 지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의 결혼제도를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제도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기보다는 두 가족 간의 협상 및 거래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전통적 결혼제도를 통한 가족이 주를 이루지만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동성커플이 자녀를 입양한 가족 등 그 형태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프랑스는 남녀, 혹은 동성이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합법화한 제도로 시청에서 혼인서약을 맺는 ‘결혼’, 간단한 서류로 공인받으면 되는 비혼인제도인 ‘팍스’, 아무런 법적 절차가 필요 없는 ‘동거’가 그 주축을 이루고 있다.

‘팍스’는 예식을 거치지 않아도 되며 준비 서류도 결혼에 비해 간소하다. 서류가 준비되면 지방법원 혹은 공증인에게 제출하면 부부가 성립된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조건은 한 집에서 함께 살아야 하며, 부부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금전적 혹은 물질적인 부분은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과 다른 점은 세습 재산 및 부부간 공동 재산의 관리에 관한 어떠한 법적 의무 및 강제성도 없다는 것과 이혼의 절차가 간소하다는 것이다.

‘동거’는 자녀 양육이나 입양에 대한 공동의 의무가 없다. 다만 도덕적 책임에서까지 자유롭지는 않다는 점에서 양육에 대한 부담을 피할 수는 없다.

세 가지 모두 프랑스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당사자들도 거리낌 없이 그들의 관계를 밝히며 살고 있다. 세 가지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법의 보호와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이다. 제도의 장단점을 따져 관계를 맺는 것이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오히려 이성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사회가 다양한 제도를 제시하고 선택의 폭을 넓혀 주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거침없이, 더 순수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프랑스 사회에서 ‘연대의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혈연으로 과도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기보다 구성원 간의 상호 존중과 지지가 프랑스인들이 바라는 관계인 것 같다. 어떤 나라보다 이성적인 사회이면서 로맨틱한 사랑이 가능한 이유이다. 사실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희생보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우선하는 프랑스인들의 관계가 냉정하게 느껴지곤 했다.

2003년부터 시행된 ‘연대하는 거주 형태: 한 지붕 아래 두 세대(Logements Solidaires: un toit, deux générations)’라는 정책도 흥미롭다. 독거노인과 젊은이를 연결해서 동거를 지원하는 정책으로 젊은이들은 무료로 주거를 해결하고, 노인은 외로움을 덜고 생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적절한 두 사람을 맺어주고 인터뷰를 거쳐 공식적인 문서를 작성해준다. 문서에는 기본적인 규율이 적혀 있다. 예를 들면 ‘노인은 학생에게 독립된 방을 제공하고 부엌, 화장실, 거실은 공유한다’ ‘주거를 제공받는 젊은이는 가사를 돕고 소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노인이 필요로 할 때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외출을 한다’ 등 구체적인 내용이 적시돼 있다. 만일 규율을 어길 때는 동거를 지속할 수 없다.

프랑스 정부는 결손아동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는 노력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시행된 ‘위탁가정(La famille d’accueil)’ 정책이다. 어려움에 처한 아동 및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미성년자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보호를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보호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시민권 및 국적을 가진 자에 한하며,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충분한 거주 공간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금전적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직업 및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기간은 5년이 기본으로 경우에 따라 단축이나 연장할 수 있다. 모든 조건이 갖춰지면 공공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후 수료증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아이 한 명당 매월 1143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전액 양육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법적인 부모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에게 엄마 아빠로 부르도록 강요해서도 안 되고, 아이의 부모가 원할 경우 정기적으로 만나게 해줘야 한다.

나는 프랑스 가족제도의 예찬론자이긴 하지만 이상적이라고 고집하고 싶지는 않다. 사회적 책임과 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만남과 이별이 쉽고, 그에 따른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혼가정의 자녀들은 일찍부터 이별을 경험해야 하고 나름대로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자라기도 한다.

나의 가장 친한 프랑스인 친구는 동성애자이다. 친구의 부모님은 오래전에 이혼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새로운 파트너와 아프리카에서 동거를 하고 있다. 친구는 엄마의 동거남을 새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떤 관계 설정을 하지 않기 위해 그냥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어떤 물질적 도움도 받지 않고 가끔 만나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관계로 만족하는 것 같다.

그 친구는 동성 커플의 결혼이 합법화된 후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그의 부모님도 축하해주었다며 기뻐했다. 우리처럼 가족끼리 끈끈한 정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동성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을 것이라는 나의 염려와는 달리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로 들떠 있었다. 입양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 가족이라는 의미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이란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연대하며 아픔을 위로하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가는 관계 아닐까.”

김명희

홍보기획 프리랜서

김명희 홍보기획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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