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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 리포트] 도시재생, 네덜란드에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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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7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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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도시재생, 네덜란드에 배우다

황은순  기자 

▲ 암스테르담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진행된 ‘더 퀴블’. 조선소가 폐쇄되고 오염된 땅에 보트하우스와 데크 길을 만들어 창조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제공하고 정화식물로 땅을 살려냈다. photo space & matter
“1유로에 집 장만하세요!”
   
   네덜란드에서 2004년 이런 슬로건을 내건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서쪽 스판헨 지역은 낮에도 사람들이 가기 꺼려하는 곳이었다. 낡고 방치된 건물들이 널려 있고 범죄, 마약이 일상화돼 있었다. 로테르담시에서 개발이 필요한 곳으로 꼽은 낙후지역 9곳 중 하나였다. 로테르담시에서는 이곳의 부동산을 사들여 고친 후 파는 방식으로 환경 개선을 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해당 지역 주택 60%를 사들이느라 시 재정만 악화됐다. 그 와중에 한 방안으로 나온 것이 ‘169 클뤼스하우즌 발리스블록’ 프로젝트였다. 1유로만 내면 집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조건은 2년 내 직접 자신의 집과 공동공간을 직접 돈을 들여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것. 로테르담시가 내건 파격적인 제안에 건축가, 예술가 등 42가구가 참여했다.
   

   169 클뤼스하우즌 발리스블록
   01 로테르담시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꼽히던 스판헨 지역의 발리스블록. 1유로에 집을 주는 ‘169 클뤼스하우즌 발리스블록’ 프로젝트로 지역의 분위기를 확 바꿨다. 프로젝트 참가자 42명은 2년 내 자신의 집을 스스로 리모델링하고 공동공간을 함께 고치며 지역재생에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02 ‘169 클뤼스하우즌 발리스블록’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가꾼 공동 정원. photo jeroen musch
   
   2년 후 물 새고 낡아빠진 건물은 커뮤니티 정원과 옥상 테라스가 있는 개성 있는 건물로 변신했다. 클뤼스하우즌, 즉 ‘스스로 만든 DIY 집’이라는 뜻대로 각자 원하는 대로 꾸민 집은 디자인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무엇보다 머리를 맞대고 프로젝트를 완수한 참가자들은 지역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이 건물은 스판헨 지역의 분위기를 확 바꿨다. 스판헨 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로 다른 지역에까지 확산됐다. 지역의 주거환경 수준을 평가하는 사회성 지표 점수는 2012년 5.8을 기록했다. 이는 로테르담시 전체의 평균보다 높은 수치였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북부에 위치한 ‘더 퀴블(De Ceuvel)’은 20세기 초 조선소, 군용 비행기 생산공장 등이 있던 산업시설지구였다. 조선소가 폐쇄되고 공장들이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이 지역은 죽고 오염된 땅으로 방치돼 있었다. 시에서 땅을 매입하긴 했는데 활용 방안이 없었다. 시는 고민 끝에 공모전을 열었다. 창조 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오피스로 만드는 것이 미션이었다. 임대료 없이 10년간 4470㎡(1350평)의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2만5000 유로의 지원금이 주어졌다. 단 땅을 정화해서 사용하고 10년 후엔 모든 걸 원상복구한다는 조건이었다. 조건이 쉽지 않았던 만큼 공모전에 두 팀이 도전해 젊은 건축가 등이 포함된 컨소시엄팀이 선정됐다. 사실 경험 많은 도시개발 회사도 힘든 일이었다.
   

   더 퀴블
   01 폐조선소 부지를 시민공모를 통해 살려낸 ‘더 퀴블’ 프로젝트. 프로젝트의 성공 비결은 당선자에게 아이디어를 실행할 권한과 책임을 모두 준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조경업체, 생태회사 등은 ‘더 퀴블’의 성공과 함께 급성장했다.
   02 조선소 시절의 더 퀴블 모습. photo 이현준
   
   가장 큰 문제는 기름에 오염된 질퍽한 땅이었다. 건물을 짓는 것도 힘들고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무엇보다 땅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땅을 직접 밟지 않고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들의 눈에 암스테르담 운하 곳곳에 버려진 보트가 눈에 들어왔다. 폐기 비용이 비싸 방치한 보트들이었다. ‘1유로에 보트를 매입하겠다’는 소문이 나자 신청 전화가 쏟아졌다. 보트를 옮겨와 보트하우스를 만들고 집 사이사이에는 데크 길을 만들었다. 10년 후 원상복구하기도 쉽고 땅을 밟지 않아도 되니 절묘한 수였다. 보트하우스는 이용자를 모집해 스스로 리모델링하도록 했다. 곳곳에 땅을 정화할 수 있는 식물을 심었다. 한쪽에는 땅을 정화하는 과정을 보고 친환경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었다. 더 퀴블 프로젝트 성공 이후 낙후돼 있던 북쪽 지역으로 사람이 몰려들었다.
   
   “당신이 변화를 원하고 그것을 이룰 아이디어가 있다면 우선 이를 실행하고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많은 이니셔티브들이 작지만,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기 때문이죠.”
   - 이보 스히미츠

   
   
   네덜란드 도시재생으로의 여행
   
   네덜란드는 척박한 땅이다. 우리나라 3분의 1에 불과한 면적에다 습지가 대부분이다. 습지를 사용 가능한 땅으로 만들고,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했고 다양한 사고를 포용해야 했다. 무엇보다 새로 땅을 만들고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데 창의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앞서 소개한 ‘169 클뤼스하우즌 발리스블록’ ‘더 퀴블’ 프로젝트에는 협력과 포용, 창의성이라는 네덜란드인의 DNA가 그대로 녹아 있다.
   
   ‘도시재생’이 우리 사회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네덜란드의 도시재생 사례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보여주는 전시가 7월 17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김정빈(40) 교수와 김 교수가 이끄는 도시건축 스타트업 어반트랜스포머가 준비한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네덜란드 창의적 도시재생으로의 여행’이다.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이 공동주최한 전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아른헴 지역의 도시재생 사례 7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69 클뤼스하우즌 발리스블록’ ‘더 퀴블’도 7곳에 포함된다.
   
▲ 네덜란드의 도시재생 사례를 연구하고 전시를 마련한 김정빈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오른쪽 세 번째)와 도시건축 스타트업 어반트랜스포머팀. 어반트랜스포머는 서울시 노들섬 민간 운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시가 열린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은 시간과 기억을 보존한 채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도시재생’의 현장이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고,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도시재생’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창의적이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도시재생을 해온 네덜란드의 사례는 많은 메시지를 준다. 전시를 기획한 김정빈 교수를 만나 전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김 교수는 한예종 건축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에서 도시설계를 공부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에 있는 건축회사를 다니다 32세 때 서울시립대 교수 공고를 보고 기대 없이 지원했다 덜컥 임용이 됐다. 김 교수에게 네덜란드의 도시재생이 특별한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자유와 관용을 기반으로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건축 자체보다는 혁신적인 프로그램과 새로운 생활방식을 제안하는 건축이 많습니다. 그런 건축이 가능했던 것은 사람들이 혁신적이고 새로운 공간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할 때는 몰랐는데 런던에 가서야 네덜란드의 개방적인 문화가 보였어요. 영국은 도시 프로젝트를 하면 디테일한 것부터 시작하는데 네덜란드는 비전을 먼저 세우고 거기에 모든 것을 수용합니다. 미국은 널린 게 땅이고, 프랑스는 가만히 있어도 문화적 배경이 풍부하고, 스페인은 자연이 있습니다. 영국은 뭘 해도 사람들이 찾아오죠. 네덜란드는 우리처럼 작은 땅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도시재생이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활발하게 일어나는 나라인데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스트리트 매니저는 ‘사람들의 사이’예요. 상인들과 건물 소유주, 부동산 회사나 지역 정부의 사이, 단지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이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 넬 더 야허르

   
   
   네덜란드의 도시재생이 특별한 이유
   
   김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관용의 문화이다. 경기가 악화된 1970년대 사회혁신 붐이 일었다. 그중에 하나가 스쿼팅 운동, 즉 무단점유였다. 임대도 안 되고 팔리지도 않아 방치된 건물을 젊은 예술가들이 무단으로 점유하기 시작했다. 건물주들도 이들을 받아들였고 법적으로도 한시적으로 허용이 됐다. 예술가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들로 공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이후로도 도시 곳곳에 스며들었다.
   
   김 교수는 네덜란드가 도시를 만드는 또 하나의 축으로 ‘폴더모델(Dutch Polder Model)’ 전통을 꼽았다. 폴더란 습지를 좋은 땅으로 만드는 기법이다. 네덜란드 국토의 절반이 이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기술과 협력이 필수였다. 의사 결정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협력 개발이 도시를 만든 문화적 토대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네덜란드 도시재생 연구를 위해 2014년부터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문화프로그램의 하나로 도시재생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해 전시로 이어졌다. 그 후 네덜란드를 오가며 20여곳의 도시재생 모델들을 찾아다니고 그곳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중에서 한국에 안 알려진 곳을 중심으로 7곳을 추렸다. 연구 결과는 이번 전시에 이어 내년 책으로 묶어낼 계획이다. 4년여 네덜란드 도시재생을 연구하면서 김 교수가 내린 결론이 있다. “결국 도시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전시에서 소개한 7곳이 죽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데는 그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주민, 스트리트 매니저, 건축가, 프로세스 매니저, 예술가, 주택조합 디렉터 등 다양한 이름이었다.
   
   “도시재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조율자 또는 기획자가 필요합니다. 공공의 손도 아니고 민간의 손도 아닌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이죠. 적정 임대료를 정하고 거리에 맞는 특색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도시재생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의 교류가 일어나고 경제적 순환이 지속가능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김 교수의 말이다.
   
   “그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을 연결하는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죠.”
   - 안드레 판 스티흐트

   
   
   장소보다 사람이다
   
   이번 전시도 장소보다 장소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북서쪽에 위치한 하르레머 거리(Haarlemmerstraat). 890m에 이르는 거리는 폭 5m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250여개의 상점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2012년 ‘네덜란드에서 가장 좋은 쇼핑거리’로 선정된 곳이다.
   

   하르레머 거리
   01 암스테르담 북서쪽에 위치한 하르레머 거리. 마약, 범죄가 일상화되고 텅 비어 있던 건물들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좋은 쇼핑거리가 됐다. 거리를 바꾸기 위해 상점마다 쇼윈도를 만들었다.
   02 30년 가까이 하르레머 거리를 바꿔온 넬 더 야허르. 사람들은 넬을 ‘스트리트 매니저’라고 불렀다. 넬로 인해 새로운 직종이 생긴 셈이다.
   
   이곳은 30년 전만 해도 부랑자, 마약상, 무단점유자들이 넘쳤고 가게들은 하루가 다르게 텅텅 비어갔다. 오죽하면 “망한 사람은 하르레머에 가면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한 주민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중소기업연구소 컨설턴트였던 넬 더 야허르였다. 넬은 남은 상인들과 주민들을 설득해 거리 청소부터 나섰다. 1층 상점들은 모두 쇼윈도를 설치하도록 하고 예술가들과 함께 외벽을 꾸몄다. 암스테르담시는 이곳을 재건축해 주택회사에 매각할 계획이었다. 넬은 상인들과 함께 반대시위를 하고 한편으로는 낮은 임대료를 내세워 작은 회사와 상점들을 유치하러 다녔다. 독특한 상점들뿐만 아니라 슈퍼마켓, 약국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게도 끌어왔다. 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넬의 노력은 20년 넘게 이어졌다. 주민들은 넬을 스트리트 매니저라고 불렀다. 넬이 새로운 직종을 만든 셈이다.
   
   
   기적을 만든 그들은 누구
   
   아른헴 ‘패션 쿼터’는 건물주가 앞장서 도시재생을 이끈 경우이다. 패션 쿼터가 위치한 아른헴의 클라른달 지역은 7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노동자 거주지다. 중산층이 이탈하고 슬럼화되면서 우범지역으로 낙인찍힌 곳이었다. 이곳에는 유명 패션스쿨 ArtEZ(Institute of the Arts)가 있었지만 지역에 남는 졸업생은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던 피터 용허리는 패션특구를 제안하고 이곳을 졸업생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곳에서 만든 옷에 ‘100% mode’라는 상표를 달아 지역 고유 브랜드를 만들고 주민들을 끌어들여 거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가 성공한 데는 이 지역 주택의 65%를 소유한 주택협회가 있었다. 프로젝트 초기 주택협회는 건물들을 사들여 리모델링을 한 후 싸게 임대를 해주고 패션디자이너, 패션 사업자들이 지역에 정착하도록 도왔다. 주택협회는 단기적인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이익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임대인들이 살아야 자신들도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른헴 패션 쿼터
   01 아른헴의 클라른달 지역에 위치한 패션 쿼터. 지역에서 만든 옷들에 하나의 브랜드를 붙이고 낮은 임대료로 패션 종사자들을 불러들였다. 재단사들을 볼 수 있게 쇼윈도에 배치하는 등 다양한 노력이 슬럼가를 패션특구로 만들었다.
   02 아른헴 패션 쿼터로 통하는 입구마다 패션특구임을 알리는 상징물을 만들었다. 이 지역으로 통하는 3곳 중 한 곳이다. photo 이현준
   
   네덜란드에서는 예술가들도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지원에만 기대지 않고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애쓴다.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OT301’ 프로젝트이다. 예술가들로 구성된 EHBK협회 20~30명이 1999년 암스테르담 오버툼 거리 301에 위치한 오래된 필름아카데미 건물을 무단점거했다. ‘OT301’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1년 이상 비어 있는 건물에 대한 무단점거는 합법이었지만 필름아카데미는 두 달밖에 비어 있지 않은 건물이었다. 이들은 불법 무단점유로 시작했지만 2년 후 임대료를 내고 합법적인 임차인이 된 데 이어 5년 후에는 은행대출로 매입 비용을 마련, 공동 소유권을 가진 건물주가 되었다. EHBK는 이곳을 예술가들의 주거공간과 지역민이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낮에는 마켓, 강의, 리허설이 열리고 밤이면 다양한 콘서트, 공연, 파티가 열렸다. 끊임없이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예술을 생산해내는 이곳은 암스테르담의 문화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OT301
   01 암스테르담 오버툼 거리 301에 위치한 ‘OT301’.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술가 20~30명이 ‘예술을 위한 응급처치’라는 의미의 EHBK를 조직, 1999년 비어 있던 건물을 무단점유한 후 2001년 합법적인 임차인이 되었고, 2006년에는 공동건물주가 됐다. 이곳에서는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는다.
   02 EHBK를 조직하고 ‘OT301’ 프로젝트를 이끈 아트디렉터 이보 스히미츠. photo 이현준
   
   암스테르담 최초의 트램 차고지인 ‘더 할런(De Hallen)’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공간을 바꿨다. 차고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푸드코트, 도서관, 호텔 등이 들어선 이곳은 이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 됐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개발하려던 구의회에 맞서 주민들은 자신들이 의견을 적극 피력하고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공공시설로 이끌었다.
   

   더 할런
   01 암스테르담 최초의 트램 차고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더 할런’ 프로젝트.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영화관, 호텔, 스튜디오, 도서관 등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초기에는 주민 반대로 사업이 지체됐지만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오히려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02 1905년에 지어진 차고지 ‘더 할런’의 원래 모습.
   03 도시재생 프로젝트 전문가 안드레 판 스티흐트. 주민들과 함께 ‘트램 차고지 개발회사’를 조직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관철시켜 나갔다.
   
   로테르담의 ‘페닉스 푸드 팩토리(Fenix Food Factory)’는 도시재생에서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 사례이다. 대형 개발사와 시가 손잡고 개발하려던 창고 건물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개발이 힘들어졌다. 그러자 지역주민 7인이 의기투합해서 이 창고를 임대해 푸드 팩토리로 변신시켰다. 양조장을 운영하고 싶던 쇼머 제일스트라를 주축으로 발코니에서 커피 로스팅을 하다 항의를 받은 후 자신의 공간을 갖고 싶어했던 커피숍 주인,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가게 주인, 이스트를 쓰지 않은 건강 빵을 만드는 제과점 사장, 치즈 가문 7대 계승자가 그들이었다. 현재 ‘페닉스 푸드 팩토리’는 로테르담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푸드홀이자 이벤트 공간이 됐다. 푸드 팩토리가 있는 카덴드레흐트 지역은 매춘, 폭력으로 악명이 높았던 이미지를 벗고 건강한 식문화와 슬로푸드를 대표하는 곳이 됐다.
   

   페닉스 푸드 팩토리
   01 푸드 팩토리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쇼머 제일스트라. 양조장을 운영하고 싶었던 쇼머는 사람들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고 시로부터 창고를 임대했다. 재단은 가게 운영규칙을 만드는 등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02 페닉스 푸드 팩토리 입구.
   03 도시재생에서 민간의 참여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로테르담의 ‘페닉스 푸드 팩토리’ 프로젝트. 건강한 먹거리를 내걸고 7명의 주민이 푸드홀을 만들었다. 로테르담에서 가장 핫한 장소로 뜨면서 창고가 있는 카덴드레흐트 지역을 살려냈다. photo 이현준
   
   물론 7곳의 도시재생 사례에는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르레머 거리는 임대료가 치솟고 에어비앤비 등이 들어오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다. 하르레머 거리를 만든 넬은 그것 또한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7곳 모두 민간 주도로 진행됐고 공공은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해주었다. 공공이 나서 무조건 돈만 쏟아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공공과 민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중간자의 역할에 주목한다.
   
   “도시재생은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장소를 만들고 지켜갈 사람들이다. 네덜란드의 도시를 만든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도시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누구나 도시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김 교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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