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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14호]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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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넷플릭스 고속도로 타고 K콘텐츠 팬데믹

요즘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드라마에는 일본인이 나오지 않는다. 북한군과 한국 여성이 등장한다.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초 tvN에서 방영했던 한국 드라마다.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2월 처음 일본 시장에 소개되기 시작한 이래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보는 작품 순위 10위권에서 벗어나지 않더니 지난 5월 1일에는 요 몇 년 사이 가장 화제가 된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을 넘어서 1위 자리에 올랐다. 몇 주간 1위를 차지하더니 6월 중순이 지나서도 여전히 가장 많이 본 드라마 순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는 ‘사랑의 불시착’의 인기가 ‘겨울연가’를 능가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2003년 처음 일본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겨울연가’는 ‘한류’라는 말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제야 한류가 일본을 넘어서 아시아, 유럽과 미주까지 확산되었다고 하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가장 파급력이 큰 한류 콘텐츠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겨울연가’는 늘 포함된다. 그런데 올해 초 방영된 ‘사랑의 불시착’이 첫 번째 한류를 연상시킬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뿐 아니다. 올해 초 JT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역시 일본 넷플릭스 인기 순위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12일에 종영된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나 5월에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한국에서 방영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넷플릭스 인기 순위에 들어 6월 24일 현재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류가 잠시 주춤할 때야 있었다지만 일본 내에서 이제 한국 콘텐츠는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주류 트렌드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를 중심으로 한 K드라마 열풍에 특별히 더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칼럼니스트 이이다 이치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본의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에 기고한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인기가 획기적인 이유’에서 이렇게 밝혔다.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는 젊은이들이 즐겨 보는 것이 아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에서 1차 한류 붐은 ‘겨울연가’로 시작됐다. 한국 드라마는 중년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하여 전개돼 왔다.”
   
   
   중년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일본인이 즐긴다
   
   2020년의 K드라마 열풍은 조금 다르다. 청소년과 청년 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물론 정치인, 유명 방송인 등도 앞다투어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그간 한류가 일본의 일상생활에도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과 관련이 있다.
   
   지난 1월 일본의 지상파 채널 ‘니혼테레비’의 교양 프로그램 ‘ZIP!’에서 꼽은 ‘10대가 예상하는 올해의 유행어 대상’의 후보로 올라간 단어 중에 ‘チンチャそれな(친챠소레나)’가 있었다. ‘진짜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말에서 ‘친챠’는 한국말 ‘진짜’와 같은 말이다.
   
   지난 몇 년간 K팝 아이돌 그룹과 한국 화장품, 음식 등을 통해 한국 콘텐츠에 익숙해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말까지 위화감 없이 유행어처럼 쓰이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K드라마 열풍은 특정 집단에서 생겨나는 매니아적인 유행이 아니다. 칼럼니스트 하세가와 도모코는 일본의 주간지 ‘도요케이자이(東洋経済)’에 기고한 글 ‘비즈니스 복수극 ‘이태원 클라쓰’가 히트 독주 중’에서 “한국 드라마 팬이라는 의식 없이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한국 드라마를 시도하는 것”이 요즘 일본 시청자들의 특징이라는 점을 짚었다.
   
   
   동남아 1위 다투는 한국 드라마
   
   그런데 이 새로운 한류는 일본에서만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시아 전역에서 K드라마는 이전 한류의 인기를 뛰어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당장 한국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쌍갑포차’와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아시아 각국 넷플릭스에서 차지하는 순위를 살펴보자. JTBC 드라마 ‘쌍갑포차’는 지난 5월 20일 첫 회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는 2~3%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이 드라마가 6월 20일을 기준으로 대만과 태국, 홍콩과 싱가포르 넷플릭스에서 인기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20일 첫 방영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역시 6월 22일 아시아 각국의 넷플릭스에서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는 공개되자마자 1위를 차지했고 홍콩과 대만, 태국에서는 ‘쌍갑포차’를 순위에서 밀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5월과 6월 내내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더 킹: 영원의 군주’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한국 드라마가 1위를 휩쓸었다.
   
   넷플릭스같이 새로운 공급망이 콘텐츠의 영역을 넓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원래 한국 드라마는 관심이 있는 사람만 접할 수 있는 매니아적 콘텐츠였다. 칼럼니스트 이이다 이치시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를 빠르게 보고 싶은 열성 팬은 유료 CS(케이블) 채널을 계약하고,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2~3년 늦게 일본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것을 보는 식”이었다.
   
   그나마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정식 유통 채널이 적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자막을 통해 보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접근성을 전에 없는 수준으로 높여 놓았다. 꼭 K콘텐츠에 관심이 있지 않아도 드라마 자체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시청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에 K콘텐츠 자체의 매력이 빠질 수 없다. 세계한류학회 이사장인 장원호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K콘텐츠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혼종성(hybridity)’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이질적인 문화가 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는 ‘혼종성’은 K콘텐츠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급속한 경제성장 속도와 격렬했던 민주화 과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채로움을 K콘텐츠에 녹여낼 수 있게 만들었다.
   
   여느 선진국에 못지않은 IT 기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통적인 가치관에 얽매여 있는 모순적인 장면 같은 것이 K콘텐츠만의 매력으로 꼽힌다.
   
   
   이질적 문화가 섞인 혼종성이 강점
   
   여기에 장원호 교수는 ‘레드퀸 레이스(Red queen’s race)’와 ‘코스모폴리탄 스트라이빙(Cosmopolitan Striving)’이라는 용어를 들었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비롯된 단어 ‘레드퀸 레이스’는 제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대중문화 시장은 제한적 규모 때문에 과도한 경쟁을 벌이는 ‘레드퀸 레이스’에 돌입해 있다.
   
   “한류 팬들이 최고로 꼽는 K팝 아이돌의 ‘칼군무’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입니다. 앞서가려면 평범한 수준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K콘텐츠는 매순간 상한선이 없는 창의적인 발전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내수시장 규모가 작아 해외로 진출하려는 ‘코스모폴리탄 스트라이빙’ 성향은 K콘텐츠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당장 K팝만 하더라도 이미 20여년 전부터 수익을 얻기 위해서 일본과 중국으로 적극 진출했다.
   
   요즘의 K드라마 역시 국내 시장에서는 충당하기 힘든 제작비를 보충하기 위해 처음부터 넷플릭스와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의 K콘텐츠 인기는 어느 한두 콘텐츠의 매력만으로 축소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방향으로 창의적이고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가 만들어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 새로운 단계의 한류는 계속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K드라마 인기를 ‘K콘텐츠 팬데믹(pandemic·전 세계적 유행병)’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몇몇 드라마에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 K콘텐츠의 전반적 인기가 올라갔다는 분석에서다. 넷플릭스와 새로운 유통망을 타고 K콘텐츠 팬데믹이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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