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5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마주 보며 웃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25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마주 보며 웃고 있다. ⓒphoto 뉴시스

영국 출신 미국프로골프대회(PGA) 골퍼인 로리 맥길로이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다. 완벽에 가까운 스윙 시퀀스를 갖고 있어서 많은 주말 골퍼들이 그의 스윙폼을 따라 하며 연구한다. 그런 그가 2019년 말 “202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유로피안투어 골프대회에 불참하겠다”는 선언을 했던 일이 있었다. 오일머니의 막대한 초청료까지 거절하며 참가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맥길로이는 ‘도덕성’을 거론했다. “100%, 도덕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사우디는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으로 국제적 비난에 직면해 있었다. 2018년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을 방문한 이 유력 언론인은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사우디 정부에서 파견한 요원들에 의해 살해돼 증발했다는 설이 강하게 제기돼 왔다. 맥길로이의 불참 결정이 있기 얼마 전 아그네스 캘러마드 유엔 특별보고관의 사건 보고서가 공개됐다. 이 보고서는 사우디 고위 관료들이 카슈끄지 살해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이 사건을 숨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세밀하게 계획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맥길로이가 말한 도덕성 문제와 불참 선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스포츠워싱의 원인 제공자 IOC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고 있던 사우디는 때마침 스포츠에 열을 올렸다. 골프대회만 준비한 게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WBA·IBF·WBO·IBO 복싱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이라는, 금세기 최고 복싱 매치가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벌어졌다. 포뮬러원(F1)과도 10년짜리 후원 계약을 체결했는데 여기에 들인 비용만 6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아담 쿠글 휴먼라이츠워치 중동연구원은 “불행히도 스포츠 행사들 중 대다수는 이런 국가들의 지속적인 인권 침해와 같은 평판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열린다”고 말했다.

‘스포츠(sports)’로 이미지를 ‘세탁(washing)’하는 방법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다. 2018년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런 이미지 세탁을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이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그리고 2022년 들어서 이 단어는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스포츠워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올해는 대형 이슈가 도사린 시기라서다.

이런 스포츠워싱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다. 올림픽은 ‘인류 전체’를 끌어안겠다는 웅대한 목표를 내건 행사다. 내건 목표 자체가 보편적인 도덕성을 강조하다 보니 정부의 비민주적 처사와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개최할 수 있고 참여할 수도 있다는 신화를 갖고 있다. IOC는 종종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VIP석에 앉을 수 있도록 개최권을 제공해오며 논란을 빚어 왔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역시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IOC는 이미 2008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최를 결정하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IOC가 베이징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한 건 2001년이었다. 당시 결정을 내리면서 중국의 인권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걸 알았지만 “베이징에서 열릴 하계올림픽이 중국의 정치적 개방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거짓이 됐다.

2008년 3월, 중국 정부는 티베트 자치구의 라싸에 군대를 파견했고 그곳에서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시위를 벌이던 주민들에게 중국군이 발포했다는 증언들이 나왔고 피를 흘리는 스님들의 모습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벌어진 이런 참극에도 당시 IOC는 중국 지도자들을 향해 전향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은 “그래도 폭력은 안 된다”며 폭력 그 자체만 비판하고 끝내려 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인권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중국 신장 지구의 위구르 소수민족 탄압, 홍콩의 인권 탄압 등이 문제가 됐다. 올림픽 참가 자체에 대한 보이콧을 제기하는 국가도 있었고 외교적 보이콧에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 국가들이 동참하면서 개·폐회식 등 행사 때 정부 사절단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푸틴 정부는 2014년 개최한 소치 올림픽을 통해 ‘강한 러시아’를 선전하려 했지만 여기에는 6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이 사용됐다. ⓒphoto 뉴시스
푸틴 정부는 2014년 개최한 소치 올림픽을 통해 ‘강한 러시아’를 선전하려 했지만 여기에는 6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이 사용됐다. ⓒphoto 뉴시스

유럽은 철수, 아시아만 올인한 동계올림픽

단어로 정의되지 않았을 뿐 올림픽을 둘러싼 ‘스포츠워싱’은 과거에도 있었고 열띤 논란을 제공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은 행사였다.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올림픽’이라고 불린다. 독일과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열린 이 대회에 미국이 참가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미국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종목별 스포츠단체의 반(反)나치주의자들과 노조, 가톨릭 등의 종교계, 유대인 기구 등은 미국 스포츠인들이 베를린에 가는 걸 막기 위해 투쟁했지만 실패했다.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련 내 정치적 자유 제한이 문제가 됐다. 19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진격하자 미국의 지미 카터 정부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한국을 비롯해 일본, 서독, 캐나다, 터키 등 서방 세계 상당수가 여기에 동참했다. 2022 베이징 올림픽을 둘러싼 대치는 모스크바 올림픽 쪽과 좀 더 닮았다. 중국이 과거 소련이 했던 것처럼 올림픽을 지정학적 경쟁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IOC는 스포츠워싱 논란이 일 때마다 공범으로 지목된다. 2022년 동계올림픽을 베이징이 가져가는 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2013년 11월 마감 시한까지 2022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신청한 후보지는 총 6곳(유럽 4곳, 아시아 2곳)이었다. IOC는 이들 중 몇 곳을 추려 최종 입후보지를 선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최종 후보지를 선정하기도 전에 유럽의 3곳(우크라이나 리비우, 스웨덴 스톡홀름, 폴란드 크라쿠프)이 신청을 철회했다. 결국 3개 도시만 남게 된 상황. 남은 3곳은 모두 최종 입후보지가 됐고 2015년 7월 유치전을 통해 개최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2014년 10월 노르웨이 오슬로가 유치신청을 철회하면서 최종 입후보 도시는 중국 베이징과 카자흐스탄 알마티, 아시아 권위주의 국가의 두 도시만 남게 됐다.

오슬로가 유치신청을 철회한 배경에는 여론의 반대가 있었다. 여론조사에서 동계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응답이 60%를 넘었다. 애초 철회했던 다른 후보지들도 마찬가지. 크라쿠프나 스톡홀름은 70% 이상이 유치를 반대했다. 올림픽 유치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이른바 ‘소치 효과’였다. AP통신은 “2014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 퍼부은 510억달러(61조7000억원)라는 가격표가 정치인들과 납세자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고 분석하면서 “아무도 개최하고 싶어 하지 않는 동계올림픽을 베이징과 알마티만 개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 알마티를 손쉽게 제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올림픽 유치 비용은 최근 수십 년 동안 급격하게 치솟았고 그 결과로 개최를 희망하는 도시의 주민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유치신청에 저항하는 일이 빈번하다. 두 명의 경제학자 토마스 쾨네케와 미치엘 드 누이즈는 스포츠 과학 학술지인 ‘스포츠 과학의 현재 가능성(Current Possue in Sports 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렇게 결론 냈다. “논문의 결과는 도시 주민들이 과도한 비용과 그 밖의 부담 때문에 올림픽 유치에 반대한다는 걸 보여준다.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민주국가의 잠재적 개최도시 모두는 IOC의 최종 선정 전에 유치 노력을 접었다. 그렇게 권위주의 국가의 2개 도시만이 잠재적 개최국으로 남게 됐다. 결국 독재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IOC가 주요 수입원인 올림픽 경기의 미래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국민 허락 안 받는 독재국가가 더 쉽다”

여론의 반대가 올림픽 개최의 걸림돌이라면 여론의 영향을 덜 받는 곳에서 개최하는 게 대안일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위험하지만 IOC 관계자가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2019년 지안 프랑코 카스퍼 IOC 위원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이 독재국가에서 더 쉽다. 독재자들은 국민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이런 행사를 조직할 수 있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고 이후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지만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국제적 인정을 강하게 바라는 권위주의 국가들은 국내의 개최 반대를 무시할 수 있기에 올림픽 개최는 점점 독재 정부를 위한 터전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용 때문에 인기가 예전만 못한 올림픽을 지금과 같은 규모로 고집하는 IOC, 권위와 정당성을 얻기 위해 웅장한 축제를 벌이려는 권위주의 정부의 이해가 서로 맞물리면서 ‘스포츠워싱’은 힘을 얻는다.

2022년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2월에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에도 12월 열릴 카타르 월드컵이 ‘스포츠워싱’ 논란의 큰 축이라서다. 이 나라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약 200만명의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통제와 학대 논란은 카타르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카타르는 카팔라(Kafala)라고 부르는 고유의 노동 계약 시스템을 사용하는데 현지인 스폰서의 동의가 없으면 외국인 노동자는 이직도, 출국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의 90% 정도는 여권을 압수당했고 임금을 받지 못해도,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아도 항의할 수 없다. 가디언은 “2010년 이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6500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카타르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미 선수들이 뛰어야 할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과정에서 사망한 노동자 숫자만 수십 명이 넘었다.

이 나라에 있는 남성 후견제도도 반인권적인 제도라고 비판받는다. 여성의 기본권을 압살하는 주범이다. 표현의 자유도 열악하긴 마찬가지. 이주노동자의 실태에 대해 카타르 언론은 침묵한다. 심지어 해외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11월 외국인 노동자 숙소를 취재하던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의 기자 두 명이 카타르 보안경찰에 억류됐다 풀려난 사건은 양국의 외교 문제로 비화됐다. 이런 처사에 대응하듯 지난해 12월 노르웨이 언어위원회는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로 ‘스포츠워싱’을 선정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카타르 월드컵을 ‘축구와 사회적 포용의 기념비적인 행사’라고 선언한 상태다. 베이징 올림픽을 감싸는 IOC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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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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