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주 빅아일랜드에 있는 해발 4205m의 마우나케아산 정상. 천문대가 세워져 있는 붉은 마우나케아는 화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미국 하와이주 빅아일랜드에 있는 해발 4205m의 마우나케아산 정상. 천문대가 세워져 있는 붉은 마우나케아는 화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천 년 동안 바다 밑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층층이 쌓인 섬, 미국 하와이주의 하와이섬(빅아일랜드)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부터 다릅니다. 특히 빅아일랜드 서쪽에 있는 코나공항에 내릴 때는 용암을 만든 주름을 따라 검은 땅이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 출장 또는 여행으로 하와이를 여러 번 갔지만 빅아일랜드를 제대로 볼 기회가 없던 참에 마음먹고 갔던 적이 있습니다. 하와이주에서 가장 큰 섬인 빅아일랜드는 하와이 호놀룰루공항에서 내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40분 정도를 날아가야 합니다. 긴 여정이었고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었지만 빅아일랜드에 오면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최남단 사우스포인트(south point)였습니다. 그곳은 절벽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과거에는 하와이언들이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현재도 관광객들이 젊음을 증명하기 위해 앞다퉈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듭니다. 저의 이유는 달랐습니다. 사우스포인트로 가는 길, 나무 전봇대들 사이로 이어진 도로의 끝으로 해가 지는 풍경을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마우나케아의 일몰을 보고 있는 사람들.
마우나케아의 일몰을 보고 있는 사람들.

 

호텔에서 1시간30분 거리였고 일몰 시간까지는 여유가 없었지만 무작정 달렸습니다. 도착하니 이미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마지막 관광객이 떠나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카메라를 세팅하고 그 넓은 곳을 독차지하고 앉아 어둠이 빛을 덮을 때까지 매초 달라지는 일몰을 보면서 너무 아름다운 것은 쓸쓸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 칠흑 같은 어둠이 함께 달렸습니다.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반사된 도로 중앙선의 흰색 점선뿐이었습니다. 작은 점들에 의지해 달리다 보니 눈앞에서 길을 알려주는 작은 것들은 못 보고 보이지 않는 어둠만 좇아 살아온 것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최남단 하와이 빅아일랜드 ‘사우스포인트’의 일몰.
미국 최남단 하와이 빅아일랜드 ‘사우스포인트’의 일몰.

 

빅아일랜드에 오면 꼭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고대 하와이언들이 ‘신령의 땅’으로 여겼던 마우나케아(mauna kea)입니다. 해발 4205m, 해저까지 포함하면 높이가 1만203m에 달하는 휴화산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정상까지 갈 수 있으니, 지구상에서 차를 타고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곳입니다. 다음날 아침 투어버스를 탔는데 운 좋게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계속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 포토존마다 차가 멈췄습니다. 차에는 친구로 보이는 백발의 두 노부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너 사진 찍고 싶으면 말해, 내가 찍어줄게.” 괜찮다고 하는데도 어찌나 권하는지 휴대폰을 건네드렸더니 앉아서 찍고 서서 찍고 열정을 다해 카메라에 저를 담아주었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과 그 시간이 남았습니다.

마우나케아의 백미는 해가 지는 풍경과, 쏟아질 듯 밤하늘을 채우는 별입니다. 나무 한 그루 없고, 천문대만 덜렁 서 있는 붉은 사막 같은 마우나케아의 정상에 서니 마치 우주의 어느 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을 보니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니 직원들이 “웰컴 홈!” 인사를 건넵니다. 그 한마디에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빅아일랜드가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것은 자연과 함께 그곳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 덕분일 겁니다.

유운상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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