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책 제목이 심히 함축적이다. ‘바라지 않음’이 ‘무관심’이 아니라 ‘차원 높은 바람’이라는 것도 책 제목에서 웅변했다. 하지만 자식 키워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자식에게 바라지 않는다는 건 도인에 가까운 인내심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자녀교육서 중에는 뻔한 일반론으로 무장한 책이 많다.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복잡했다. 제목을 곱씹어보게 했고, 책장을 넘겨보게 했다. 저자는 서울 경성고등학교에서 15년간 4000여회의 상담 경력이 있는 ‘상담왕 교사’ 신규진. 2012년 ‘올해의 과
2000년 겨울, 포항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은 남자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막내아들의 입학식에 가는 길이었다. 그는 27년 전 기억을 떠올리면서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삶의 장면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1973년 그는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있었다.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신축공사장 막일꾼으로서였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알음알음으로 막일을 찾아 서울까지 왔다. 뙤약볕에서의 막일은 힘겨웠지만 그는 이렇게 다짐하며 버텼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이 건물은 나중에
이석록(56·한국외대 입학사정관실장)은 사교육계의 대가였다. 이만기씨와 함께 나란히 EBS 언어영역 스타강사로 명성을 날렸고, 메가스터디 입시평가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다. 입시 전문가답게 두 자녀를 엄친아 스펙으로 길러냈다. 첫째 이형철(27)군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둘째 이지형(25)양은 중앙대학교 약대 재학 중이다.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는 학벌. 학원계 거물이자 최고급 입시정보를 틀어쥐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 아닐까 싶지만 아니다. 반전도 이만 한 반전이 드물다. 두 자녀 모두 사교육과 거의 담을 쌓았
아버지 이광구씨는 서울대 법학과 82학번이다. ‘서울대 법대 82’는 정치인 나경원·원희룡·조해진 의원, 김난도·조국 서울대 교수, 김상헌 NHN 대표 등을 배출해낸 전설의 학번이다. 입신양명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이 아버지가 택한 길은 남다르다. 대학교 2학년 때 학비 등의 문제로 학교를 그만둔 그는 치열한 경쟁무대에서 한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의 세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이상적인 교육환경을 찾아 이사하고 또 이사했다. 최종 안착한 곳이 강화도다. 바다 냄새 가득한 갯벌과 풀 냄새 가득한 흙에서 맘껏
부모는 등에 20㎏짜리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고3 아들이 내린 형벌이었다. 엄마는 가방을 메고 요리를 했고, 아빠는 거실에서 가방을 메고 아들 앞에서 벌을 섰다. 아들은 가방 멘 아빠 앞에서 대성통곡하면서 울었다.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요. 엄마 아빠만 믿고 따르면 된댔잖아요. 하지만 틀렸어요. 그건 엄마 아빠의 방식이지,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다고요. 엄마 아빠는 끊임없이 나를 잠수시키는 것 같았어요. 물속에 집어넣고 숨을 못 쉬게 하는 것 같았어요. 발버둥쳐 겨우 나오면 또 집어넣었어요. 속이 너무 답답했어요
이 아들, 부모 속깨나 끓인 이력이다. 우선 성적이 롤러코스터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100등이 소원이던 아이는 과학고를 가겠다고 공부에 매진해 과학고는 낙방했지만 일반 고등학교(단대부고)를 반에서 1등으로 입학했다. 고2 때에는 가수가 되겠다고 팽팽 놀아 반에서 30등까지 떨어졌다. 담배도 많이 피우고 소위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어머니가 속상해 하는 모습에 정신 차리고 공부에 다시 매진해 재수 끝에 연세대 공대에 입학했다.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반 학기 만에 그만두고 반수(半修), 수능을 다시 치러 서울대 수학과에 입
박소영(21·이화여대 2년), 박상은(16·예원학교 3년) 자매는 둘 다 한국 무용 기대주다. 박소영씨는 이화여대 무용과를 수석 입학했고, 박상은양은 서경대학교 전국무용경연대회 중등부 금상, 월간 ‘춤과 사람들’ 주최 콩쿠르 중등부 금상을 수상했다. 다섯 살 아래 동생 상은양은 언니가 밟은 길 그대로 리라초등학교,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이화여대 무용과를 가고 싶어한다. 가는 길도, 바라보는 목적지도 같지만 자매의 성격과 외모는 영 딴판이다. 순정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여리여리한 외모의 언니가 선이 고운 동작을 구현한다면,
일하는 엄마와 외아들이 있었다. 출판사 대표인 엄마는 늘 바빴고, 아들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 역할에 한계를 느낀 엄마는 특별한 생일선물을 마련했다. CEO, 의사, 약사, 예술가 등 다양한 직군으로 구성된 명사들을 아들의 멘토 자격으로 초청해 식사 대접을 했다. 초청한 이들에게 엄마는 다만 “아들을 데리고 가니 좋은 말씀 한마디씩 부탁드린다”고만 했다. 자신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쟁쟁한 멘토 군단에 아들이 부담을 느낄 것을 우려해서다. 멘토 군단은 경륜과 지혜가 담긴 덕담을 건넸고, 이 덕담
세상의 성공 잣대로 세 아이를 키우던 부부 교사가 있었다. ‘부모의 역할은 최고의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알던 엄마는 시험 한 달 전부터 시간표를 짜 줘 가며 성적 관리를 했다. 그런데 부부는 자녀 교육 가치관이 달랐다. 때문에 사사건건 언쟁을 벌였다. 성적을 우선시하는 엄마와 기본 생활습관을 우선시하는 아빠 밑에서 아이들은 양쪽으로 압박을 받았다. 세 아이는 어릴 적 밝은 모습을 잃었고, 부모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한 식탁에서 밥 먹고 한 지붕 아래에서 잤지만 집은 하숙집처럼 변해갔다. 집에 오면 각자 자신의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는 언젠간 돌아온다.”김명신 서울시의회 시의원(57·민주당 비례대표·전 교육위원회)은 30년간 우여곡절 많은 두 남매를 키운 교육철학을 이렇게 정리했다. 김명신 의원은 20여년 전부터 교육운동을 해 왔다. 선행학습과 사교육이 판치는 한국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기를 들고 학생이 행복한 교육 만들기에 앞장서 왔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자녀교육 전문가 중에는 자녀교육에 성공한 케이스가 드물다. 대개의 자녀교육 전문가는 유형별 정답지를 갖고 있는데, ‘내 아이 키우기’는 각본 없는 시나리
최푸름(24)은 국가영재 1호다. 1999년 영재교육진흥법이 통과되면서 교과부에 최초의 영재로 등록됐다. 학습지나 유치원 등의 힘을 빌리지 않고 29개월 만에 한글을 뗐고, 8세 때 아이큐가 159였다. 그가 타고난 영재가 아니라 부모의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영재라는 게 알려지면서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영재교육 붐을 일으켰고, 독서교육에 불씨를 댕겼다. ‘모든 아이는 자연과 독서를 넘나드는 통합 교육을 통해 영재가 될 수 있다’는 ‘푸름이 교육법’은 일반명사가 됐다.그 ‘푸름이’가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됐다. 일본 국비 장학금으로
몇 년 전부터 눈독을 들였다. 뮤지컬배우 김소현(37)과 그의 어머니 소프라노 장경애씨. 김소현은 인터뷰 때마다 어머니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자신은 마마걸이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주역이 어머니라고 했다.김소현으로부터 들은 어머니는 완벽한 어머니상에 가까웠다. 장경애씨는 삼 남매를 전부 서울대생으로 길러냈다. 부모까지 서울대를 나왔으니 그의 가족은 전부 서울대 출신이다. 구도도 누가 짜놓은 것 같다. 집안의 남자들(아버지와 막내아들)은 서울대 의과대학 내과 전공이고, 여자 셋(어머니와 두 딸)은 전부 서울대 성악과를 나왔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세기테일러’는 ‘대통령의 양복점’으로 불린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양복을 제작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정재계 숱한 명사들의 맞춤 양복을 제작했다. 세기테일러는 반세기의 역사를 안고 있다. 윤인중(70) 원장이 ‘세기양복점’ 간판을 내걸고 시작한 것만 헤아려도 44년째다. 이곳에는 한국 맞춤양복 흥망성쇠의 역사가 흐른다. 명동과 청계천 인근에 즐비했던 맞춤양복점의 부흥기와 테일러숍의 97%가 문을 닫을 정도의 위기, 그리고 최근 다시 명품으로 부활하는 조짐을 고스란히
아버지와 아들은 둘다 배우다. 아버지는 실험연극인이자 행위예술가 강만홍 교수(63·서울예대 연기과), 아들은 뮤지컬 배우 강태을(33). 강만홍은 ‘틀 없는 연기’로 광팬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의 영화배우 알 파치노를 배출한 뉴욕의 실험극단 ‘라마마’의 수석무용수를 지냈다. 이병헌, 손현주, 전도연, 황정민, 정재영, 유해진 등 연기파 배우들이 그의 제자다. 10년차 배우 강태을은 뮤지컬 ‘그날들’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날들’은 김광석의 노래만으로 만든 창작 뮤지컬. 현재 전국 투어 공연 중이다. ‘헤드윅’ ‘돈주앙
손빈희.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부의 신’이다. 14세에 부산외대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 3년 만에 조기 졸업 후 19세에 로스쿨 입학, 22세에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국내 최연소다. 케이블채널 tvN 프로그램 ‘화성인 바이러스’에 ‘공부의 신’으로 출연했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부가 쉬워지는 동화’도 냈다. 곧 그의 공부법을 담은 ‘오기와 끈기 두 날개로 최고가 되다’도 출간될 예정이다.손빈희뿐 아니다. 그를 포함해 네 남매가 모두 14세에 대학생이 됐다. 넷 다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건너뛰고 홈스쿨링을 통해
팝피아니스트 윤한(본명 전윤한·30). 둘째가라면 서러운 ‘엄친아’다. 노래면 노래, 작곡이면 작곡, 피아노 연주면 연주, 못하는 게 없다. 두 장의 정규 앨범에 수록된 곡은 윤한 혼자서 작곡하고 연주하고 불렀다. 지난해에는 뮤지컬에도 뛰어들어 ‘모비딕’ 주연을 맡았다. 미국 버클리음대 출신에다 패션모델을 해도 손색없을 몸매, 훈훈한 외모까지. 아닌 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 소위 길거리 캐스팅을 꽤 여러 번 받았다.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듣는 지점도 같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하는. 피아니스트, 작곡가, 가수,
이 정도면 아빠들의 ‘공공의 적’이다. 신문지 하나로 1000가지의 놀이를 개발하고, 아무런 도구 없이도 지옥탈출(양팔로 아이를 놓아주지 않기), 밀당놀이(용쓰며 밀기 놀이) 등 수백 가지의 놀이를 척척 만들어낸다. 권오진(54) 아빠놀이학교 교장은 “일상의 모든 것이 놀잇감이고, 삶은 놀이다”라고 말한다. 제각각 분주한 아빠들에게는 “하루 1분 아빠의 놀이가 아이를 바꾼다”는 그의 주장이 야속하게 들릴 수 있다.그는 12년 전부터 ‘아빠표 놀이 전도사’를 해왔다. 1남1녀가 있다. 두 아이는 어느새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가 무색한
이 순간을 위해 3개월을 기다렸다. 이 시대 가장 잘나가는 광고인 박웅현(52·TBWA 코리아 전문임원)과 미국 컬럼비아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딸 박연(22) 부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각이 에너지다’ ‘생각대로 T’ 등 촌철살인의 카피를 탄생시킨 박웅현은 ‘가장 영향력 있는 광고인 1위’로 꼽힌다. 그는 파워라이터이자 스타 강사이기도 하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 내는 책마다 줄줄이 베스트셀러가 됐다.新인재시교 연재를 시작하면서 박웅현 부녀는 섭외대상 1순위였다. 그의 딸 박연 역시 아
이무석(68) 정신과 전문의의 자녀교육 철학은 ‘저마다의 소질과 적성을 잘 살려 교육한다’는 인재시교의 전형이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따라 의사가 되겠다는 막내아들에게 화가가 될 것을 권유했다. 그것도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예술가가 되겠다는 아들을 뜯어말리는 경우는 많아도 그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다. 아버지는 “아들아, 넌 아무리 봐도 의사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창의적이고 예술적이니 어릴 적 소질을 살려 화가가 되는 게 어떠냐?”라며 설득했다. 아들은 세 시간 동안 고민 끝에 부모의 뜻을 받아들였다. 자연계 고등
진홍빛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학교 교정. 교복 입은 한 여고생의 등장에 캠퍼스가 들썩였다. 177㎝의 키, 길쭉한 팔다리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면서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여학생. 마론인형 같은 여학생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움직였다. 여학생은 먼발치에 있는 한 남자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남기춘(51) 교수. 그의 아빠다. 여학생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모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남지현양. 남기춘 교수는 fMRI(기능성MRI)를 이용, 국내 최초로 심리학에 뇌과학을 접목한 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