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은 부활절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한 날로 기독교가 가장 중시 여기는 날이다. 서방의 전통 세계관은 태어난 날보다 죽음과 관련된 시간을 한층 더 중요하게 여긴다. 출생지는 결정할 수 없지만 최후의 땅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가문, 배경, 피(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하다 저세상으로 갔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서방식 사고다. 동양에서는 개신교가 만든 성탄절에 주목하지만 기독교 원조인 유럽과 메소포타미아 지방, 지중해 연안 등에서는 예수가 죽고 다시 재림한 부활절에 한층 더 주목한다. 예
10여년 전 터키의 고대 그리스 도시 테르메소스(Termessos)에서 ‘헤론(Heroon)’을 처음 접했다. 해발 1000m 철옹성 도시 한가운데 들어선 높이 10m 정도의 암반 사원. 그리스 고대 도시의 중심에 있는 건물이라 제우스나 아폴로 신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빗나갔다. 작고 빛바랜 안내판에서 ‘헤론’이란 글자를 발견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볼 수 있는 지역 영웅을 모신 사원이라는 설명이다. 영웅이란 도시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자를 의미한다. 21세기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헤론은 우리의 ‘현충사’ 같은 공간이다.
골리앗에 맞선 다윗이라고 할까? 2018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사르 사보이 리포트(Sarr-Savoy Report)’가 딱 그랬다. 식민지 시절 약탈된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 문제를 다룬 제안서였는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교감하에 곧바로 아프리카 문화재 반환 프로젝트의 ‘바이블’로 자리 잡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뒀던 유럽 다른 나라의 교과서가 된 것은 물론이다.이 제안서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유럽 뮤지엄을 장식하고 있던 아프리카, 나아가 아시아 문화재의 상당수가 자국으로 반환될 수 있다는 이유에
2021년 늦가을,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키워드는 대만이다. 이른바 ‘재통일’이란 명분하에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대만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선 느낌이다. 전투기 전함을 통한 중국의 무력 시위와 협박이 연일 가속화하고 있다. 힘자랑 중국에 맞선 대만과 미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10월 말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대만 내 미군 병력 주둔 사실을 공식 인정하면서 미국의 전쟁 개입도 기정사실화된 듯하다. 영국·프랑스·호주·일본과 같은 서방 자유민주주의 진영도 대만 유사시 미국에 가담할 전망이다.대만은 남중국 해상보급선(Sea Lane)의 중심
1년9개월간 맹위를 떨친 코로나19 팬데믹이 주춤해지고 있다. 긴 동면에서 깨어나 세계 곳곳이 희망의 내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다. ‘바이러스 극복기념 축하행사’라고나 할까? 만약 폭죽을 터트리는 코로나19 퇴치 기념 글로벌 이벤트가 열린다면 출발점이 될 도시는 어디가 될까? 팬데믹 진원지 중국이 유력하지만 공산당 정부의 오리발 변명을 보면 폭죽은커녕 촛불 축하도 어려울 듯하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중국을 논외로 할 경우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최적의 공간이 될 듯하다. 스스로 앞장서서 바이러스 극복 이벤트에 열심일 뿐 아니라 21세기는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이 마침내 종결됐다. 34권 최종호를 발간하면서 2009년 이래 무려 11년간 지속돼왔던 139개 에피소드가 지난 6월 종결됐다. 곧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지만, 종결 이후에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진격의 거인’에 대한 분석과 기억이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반일 토착왜구 죽창가’를 외치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진격의 거인’은 21세기 한국 젊은이들의 필독 목록 중 하나다. 구글에 들어가 한글로 ‘진격의 거인’이란 키워드를 쳐보자. 무려
‘덴마크’를 상징하는 국가적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이킹에서부터 블록 놀이도구인 레고(Lego)와 칼스버그맥주 같은 것들이 떠오를 듯하다. 필자의 경우 덴마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젖소가 노니는 풍경이 떠오른다. 선진국 배우기에 열심이었던 시대의 기억이지만, ‘덴마크=우유와 소고기가 풍부한 낙농 선진국’으로 통하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 한국은 덴마크처럼 젖소를 키워 우유와 소고기를 통해 튼튼하고 잘사는 길로 나아가자는 결의가 나라 전체에 넘실댔다. 하얀 피부의 잘생긴 젖소와 곱게 단장된 농장을 보면서 ‘한국의 낙농 모델
스웨덴은 자타가 인정하는 젠더 평등(Gender Equality) 나라다. 국회의원 남녀 비율이 각각 절반으로, 젠더평등지수에 관한 한 최선진국으로 꼽힌다. 스톡홀름에 본부를 둔 ‘키비나 틸 키비나(KvinnatillKvinna.org·이하 키비나)’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여성인권단체다. 각종 프로그램 개발과 함께 풀뿌리 정치활동에도 적극 나서면서 스웨덴 젠더평등지수 향상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웨덴 국내만이 아니라 동부유럽이나 아프리카 현지 여성인권단체와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로까지 활동영역을 확산해 나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사람과의 직접 대면에서 얻은 1초의 영감이 한층 더 중요하다고 한다. 머리가 아니라 오감을 동원한 현장 경험이 오래가고 깊게 새겨진다는 의미다. 사람과 만나고 부딪치는 과정에서 혜안이 움트게 된다. 재택 근무로 효율성은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개척할 눈과 머리는 인간, 자연, 그리고 신(神)과의 접촉을 전제로 한다. 코로나19 탓에 이미 1년 이상 타인과의 만남 자체가 어려워진 상태다. 오감이 퇴화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현실감각도 둔해지고 있다.그러던 중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 해변가에서 벌어진 ‘
최초의 요리책은 4세기 때 로마의 아피시우스(Apicius)가 쓴 ‘요리에 대해서(De Re Coquinaria)’로 알려져 있다. 아피시우스가 직접 창작한 미식가를 위한 500가지 요리법을 담고 있다. 아피시우스는 전 재산을 ‘우아하고도 품격 있는’ 음식에 투자한 인물로 통한다. 그는 마지막 남은 돈을 친구들과의 파티에 전부 쏟아부은 뒤,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자살했다고 한다.‘4세기 로마’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제국의 하강기였다. 황제의 목숨도 하루살이에 그쳤고, 이민족의 침략으로 사회·경제 모두 불안했을 때다. 인류 최초
언제부턴가 10대 뉴스를 넘어 100대 뉴스가 기본 상식으로 정착돼 가는 느낌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4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타임 100’에서 보듯, 매년 연말 쏟아지는 뉴스의 주인공들이 100명에 달한다. 넓고도 깊은 글로벌 시대에 맞는 숫자지만, 100명이나 되는 올해의 인물을 전부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10대 뉴스도 떠올리기 어려운데 50대, 100대 뉴스는 도저히 무리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에게는 예외적인 영역도 있다. 100이란 숫자와 함께 등장하지만, 꼼꼼히 챙기면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비
미·중 관계는 조 바이든 신임 미국 대통령 앞에 놓인 최대 현안 중 하나다. 양국 간의 관계라지만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모든 문제가 미·중 관계 속에 포함돼 있다.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서부터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환경문제, 나아가 국제무역의 새로운 룰과 우주개발 경쟁에 이르는 모든 난제가 미·중이 함께 풀어가야 할 사안들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미·중 관계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팽창정책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중(反中) 정책이 노골적으로 맞부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