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센카쿠가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대상임을 천명하였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방문 시 독도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대상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만일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기 위하여 군사력을 동원할 경우 미국이 우리와 공동 대응할 것인지 물어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4월 25일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장에서는 이러한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기자회견장에서 이에 관한 질문이 없었던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배상금 문제에 비해 독도 문제는 상대적으로 쉽다. 전자는 식민지배의 역사적 정당성과 관련되어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반면, 후자는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 논리를 통해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독도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이 있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승소할 수 있는 것처럼 공세적 모습을 취하는 데 반해 대한민국 정부는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독도영유권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독도밀약’이다. 독도밀약이란 1965년 한·일수교조약 체결에 앞서 체결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는 비밀조약으로 2007년 모 월간지에 이에 관한 기사가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기사에 의하면 독도밀약이 체결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 수교를 성사시키기 위해 외무장관에 이동원, 주일대사에 김동조를 새로이 임명하고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문제는 독도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한일은행 상무로 있던 김종필의 친형 김종락을 밀사로 파
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고유영토론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독도의 존재를 몰랐고 설사 알았더라도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이 일찍부터 독도를 발견하고 이용해 왔으므로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로 보아야 한다. 무주지 영토편입조치를 취한 것은 영유권을 분명히 해 두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일본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선 태종 때 시작된 ‘울릉도 공도정책’ 때문이다. 울릉도 공도정책이란 울릉도에 거주하는 백성을 모두 육지로 쇄환하고 울릉도를 비워두는 정책을 말한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릉도와 죽도, 석도를 울도의 관할로 선언하였다. 대한민국은 칙령상의 석도가 바로 독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제1조 울릉도를 울도라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시키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관제 중에 편입하고 군등은 5등으로 한다.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도 전체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한다.반면 일본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상의 석도는 울릉도에 붙어 있는 관음도 내지 울릉도 주변의 바위섬들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이 칙령은 결코 독도영유권의 근거가 될 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핵심 근거 중 하나가 바로 1905년 2월 22일자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이다.‘오키섬에서 서북쪽으로 85해리 떨어져 있는 섬을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이제부터 본현 소속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한다.’시마네현 고시 발령 전인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 각료 회의에서 독도 영토편입 결정이 이루어진다.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도에서 서북쪽으로 85해리에 있는 이 무인도는 타국에서 이를 점령했다고 인정할 만한 형적이 없고, 메이지 36년(1903년) 나카이 요자부로가 어사를 만들고
일본은 마치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승소할 수 있는 것처럼 강력한 공세를 취하고 있다. 일본이 자신 있게 제시하는 근거들이 대한민국에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약한 고리를 강한 고리로 바꾸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약한 고리로 보이는 것들을 찾아보고, 그를 분석해 보자.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첫 번째 근거는 뭐니 뭐니 해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다. 1951년 9월 8일 연합국 측 48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