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동부 라이프치히에서 남부의 뮌헨까지는 3시간 남짓 걸린다. 나는 뮌헨 조금 더 아래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까지 내려간다.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가 있는 알프스 지방이다. 엄청나게 긴 이곳 지명은 히틀러가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두 마을을 하나로 합친 데서 비롯되었다.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은 겨울에는 스키를, 여름에는 하이킹을 즐기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처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만나러 오는 사람은 훨씬 적다. 슈트라우스는 말러와 같은 연배이다. 그러나 말러가 제1차 세
함부르크를 떠나 1시간 반 남짓 남동쪽으로 내려가 독일 수도 베를린에 도착했다. 10월 3일은 우리에겐 개천절이지만 독일은 통일을 이룬 날로 기린다. 그러나 베를린 중앙역 안팎의 인파는 심상치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친난민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모여 있다.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관용’이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대치 중이다. 이들 사이사이 무장경찰 몇 개 중대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베를린은 독일에서도 특히 이민자에 대한 관용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17세기 말 브란덴부르크 선
독일이 경쟁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비해 높은 음악 수준에 도달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17세기 30년전쟁 이래 나라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잘게 쪼개졌던 덕이다. 300개가 넘는 공국이 저마다 궁정악단을 꾸리면서 음악가들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고 서로 경쟁했기 때문이다. 도제와 일꾼, 장인(마이스터)의 수직적인 시스템이 가장 잘 돌아갔던 나라가 독일이었고, 음악가도 그런 틀을 따랐다.이런 틀 속에 있던 음악가들의 복잡한 계보를 한번 훑어보자. 1721년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이라는 작곡가가 함부르크에 음
기승전, 다음은 ‘여행’이라는 시대이다. 대형서점 여행 코너는 늘 사람이 북적인다. TV채널마다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줄을 잇고, 명절이면 공항이 북새통이다. 이쯤되면 여권에 아시아 여러 나라 도장이 찍혀 있고, 더 이상 패키지 여행은 성에 차지 않는다. 그저 좋은 경치 보고, 맛있는 음식 먹는 것 말고, 뭔가 마음을 채워줄, 그리고 돌아와도 허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삶에 최선을 다하게 해줄 여행이 필요하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번 독일행도 많은 물음표를 안고 떠났다. 20일 남짓한 나의 여정도 물음표꼴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