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임무수행 중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매도하는 것을 보면서 슬픔과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지난 6월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 서울현충원 54묘역. 박철균(朴哲均) 예비역 준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주관으로 열린 ‘박진경 대령 추모식’ 자리였다. 박 준장은 1948년 4·3사건 당시 제주 주둔 9연대장이던 박진경 대령의 양손자다. 박 대령은 연대장 부임 40여일 만인 6월 18일 새벽, 남로당 지령을 받은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했다.박 준장이 말한 ‘최근’ 사건은 K
낡은 생각일지 몰라도 ‘역사의 의미=교훈’이라 믿고 있다. 역사 속의 사건이나 인물, 배경에서 교훈을 얻어 현재나 곧 닥칠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나침반으로 삼자는 것이 역사에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을 보면 ‘역사=절대권위’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를 코너로 몰아세우기 위한 칼과 명분으로 역사를 활용한다. 반성하고 보충하고 배우자는 자세가 아니다. 상대방을 무릎 꿇리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활용한다. 모두의 역사가 아니라 나만의 역사, 우리 편만의 역사다.주관적 판단이지만, ‘30%론’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거의 자존심을 건 치킨게임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마저 피해를 입지 않을지 우려될 정도다.미·중의 대두(메주콩)를 비롯한 곡물 관련 분쟁을 보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곡물 대탈취 사건’(Great Grain Robbery, 혹은 소련발 곡물파동)이 떠올랐다. 1972년 벌어졌던 이 사건은 1855년 영국에서 일어난 금괴 탈취 사건인 ‘그레이트 트레인 로버리(Great Train Robbery)’에서 이름을 따온 사건이다. 사건 전개는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과는 분명 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경북 영주시. 최근 인구 10만명의 소도시에 국내외 유명 천문학자들이 운집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멀리는 우즈베키스탄까지 13개국에서 온 18명의 외국 천문학자들도 있었다. 이들이 영주에 모인 것은 영주 출신의 조선 초 천문학자 김담(金淡·1416~1464) 선생의 탄신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11월 29일, 김담 탄신 6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영주의 그랜드컨벤션에는 이들 외국 학자들을 비롯해 한복 두루마기를 걸친 예안(선성) 김씨 종친회원과 영주 일대 유림(儒林)
[image1]천만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 ‘명량’에서 그는 살짝 스쳐 지나간다. ‘명량’은 정유재란 당시 해전이 배경이다 보니 이순신에 초점이 맞춰졌다. 조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는 조명받지 못했다. 그는 서애(西厓) 류성룡(1542~1607)이다. 지난 2월 14일 KBS가 대하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을 방영하면서 류성룡에 대한 관심이 높다. 텔레비전에서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여러 번 제작되었지만 그때마다 류성룡은 이순신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다. 드라마 ‘징비록’은 류성룡
기원후 1세기경 고구려 유리왕의 군대가 중앙아시아 차사국(車師國·지금의 키르기스스탄 인근)에 진출했으며 병사들은 결국 귀환하지 못한 채 그 지역에 정착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지배선 연세대 명예교수(65·사학)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책부원구(冊府元龜), 자치통감(資治通鑑) 사료를 통해 이같은 사실(史實)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지 교수의 주장이 담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민사’ 논문은 1월 말 발간되는 ‘한민족 연구(韓民族 硏究) 12집’에 게재될 예정이다. 고구려계
올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7주갑(周甲·1주갑은 60년)이 된다. 돌이켜보면 ‘壬(임)’년에는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고려가 멸망한 임신년(1392), 임진왜란이 일어난 임진년(1592),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년(1762), 임오군란이 일어난 임오년(1882)이 그러하다.1. 임진왜란의 경험1592년(선조 25년) 4월 14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만군을 보내 조선을 침략했다. “명나라를 칠 테니 길을 빌려 달라는 것(征明假道)”이 명분이었다. 조선이 용인할 리 없다. 조선은 이 사실을 명에 보고
“바보로 유명한 고구려 온달(溫達·?~590) 장군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건너온 왕족의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연세대학교 지배선(64·역사문화학) 교수는 자신의 최근 논문 ‘사마르칸트와 고구려 관계에 대하여’에서 “온달 장군은 서역인과 고구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의 자녀로, 고구려 장군의 지위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라며 “그를 국제적 인물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달에 대한 새 해석이 담긴 이 논문은 5월 둘째 주 발간되는 백산학보 제89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사
정조, 외규장각을 설치하다1782년(정조 6년) 2월 당시 국왕의 비상한 관심 아래 추진되었던 ‘강화도 외규장각 공사의 완공’을 알리는 강화유수의 보고가 올라왔다. 1781년 3월 정조가 강화도에 외규장각의 기공을 명령한 지 11개월이 지난 즈음이었다. 이를 계기로 강화도 외규장각에는 왕실의 자료들을 비롯하여 주요한 서적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보관되었으며, 이후 100여년간 외규장각은 조선 후기 왕실문화의 보고(寶庫)로 자리잡게 되었다. 1784년에 편찬된 ‘규장각지(奎章閣志)’에 따르면, 외규장각은 6칸 크기의 규모로 행궁(行宮·임
‘흐느끼며 바라보매/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모래 가른 물가에/ 기랑(耆郞)의 모습이올시 수풀이여/ 일오내 자갈벌에서/ 랑(郞)이 지니시던 마음의 갓을 좇고 있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곳가리여.’삼국유사(三國遺事)에 등장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다. 찬기파랑가는 기파랑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뜻이며, 기파랑은 신라 화랑으로 알려져 있다. 찬기파랑가는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충담사가 지었으며 신라가 탄생시킨 민족문학인 향가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다. 그런데 이 기파랑은 화랑이 아니라 ‘
‘아시아판 투탕카멘’ 신라고분 황남대총이 서울로 옮겨 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용산 이전 개관(2005년 10월 28일) 5주년을 기념하여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 황남대총’ 특별전을 열고 있다. 신라 왕릉 하나만을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1973년 발굴됐을 당시 학계를 흥분시킨 황남대총(皇南大塚)은 경주에 있는 신라 고분군(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서기 4~5세기경 신라 왕을 부르는 마립간(麻立干) 시기의 왕릉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주인공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봉분이 두 개인 쌍릉으로 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