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떠돌다 숨어든 바다를 기꺼이 품고, 땅의 기운이 흘러 닿은 곳. 민물과 짠물이 몸을 섞어 끊임없이 생명을 잉태하고, 질펀한 삶이 속살을 드러내는 남도의 자궁 같은 곳, 장흥반도에서 득량만에 이르는 바다가 바로 그런 곳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천관산, 제암산, 사자산, 억불산 등 명산들이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소설가 한승원(73)은 그 바다에 탯줄을 묻었다. 1968년 ‘대한일보’에 소설 ‘목선’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40여년, 고향의 바다와 갯벌은 한승원 문학의 텃밭이었다.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
“이 집 설계를 맡긴 사람들요? 제 평생에 최악의 클라이언트였죠.”건축사 강병국(50·동우건축) 소장이 말한 문제의 건축주는 부인과 두 딸이다. 강 소장이 설계한 ‘이 집’에는 강 소장과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고객인 ‘세 여자’가 살고 있다. 강 소장이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에 집을 지은 것은 2006년이다. 그전까지 아파트가 아닌, 더구나 서울 밖에서의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계기는 돈 때문이었다. 부인이 운영하던 간호학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서울 목동의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남은 돈으로는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
9남매의 장남과 5남매의 장녀가 만났다. 전북 정읍이 고향인 남자가 가진 것은 건강한 몸과 성실함뿐이었다. 대전이 고향인 여자는 내로라하는 집안의 기대주였다. 두 사람은 홍익대 미대 선후배 사이였다.“아내가 나를 좋다고 졸졸 따라다녔어요.”“날 좋아하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어요.”누구의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와 여자는 손을 잡고 여자의 부모를 찾았다. 한창 공부하는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에다 밥 굶기 십상인 화가, 씨암탉은 고사하고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맞기를 각오한 남자에게 여자의 아버지가 대뜸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이 쪽에서 나왔는데 쪽빛보다 더 푸르다. 이 한 단어를 끌어안고 30년을 보냈다.천년이 지나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은 색. 시간이 묵을수록 더 진한 빛으로 푸른색을 토해내는 ‘쪽빛의 진실’을 찾아 나선 것이 30대, 이제 60대가 된 그에게 세월은 명장이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대한민국 명장 512호 최옥자(66). 천연염색 분야에서는 유일한 명장이다. 그는 천연염색뿐만 아니라 쪽 염색을 이용해 천년을 견딘다는 신비의 종이 감지(紺紙) 제작을 재현해냈다.‘쪽빛’은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이다. 공기, 물, 햇빛
“그럼 용두리 짬뽕집에서 만날까요?”“우리 동네 오면 꼭 먹어보라”는 그의 말을 듣고 아예 중국집에서 약속을 잡았다.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용두리. 면 중심지에 들어서자 가게마다 비슷한 새 간판들이 시선을 끈다. 얼마 전 일제 정비사업을 한 모양이다. ‘용다방’ ‘아빠이발’ ‘장미스튜디오’…. 출입문이며 실내는 20세기 영화 세트장 모습인데 간판만 ‘번쩍번쩍’하다. 세상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과거의 추억을 간직하길 바라는 것은 도시인의 욕심일지 모른다. 그래도 양복 윗도리에 한복 바지를 입은 것처럼 어색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연요리 연구가 임지호(55). 그의 이름 앞에는 ‘방랑식객’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그가 만드는 요리의 재료는 자연이다. 우리 땅, 우리 바다에서 바람과 햇볕이 키워준 모든 생명이 그의 손에 가면 식재료가 된다. 잡초를 뽑아 짜장면을 만들고, 갯벌을 우려낸 물로 나물 소스를 만든다. 들판에 핀 버들강아지는 찹쌀 반죽·곶감과 만나 감떡으로 변신한다. 나물요리로 먹을 줄만 알았던 두릅·고사리로 양갱을 만들기도 한다. 아파트 뒷산의 이름모를 풀들은 인공 감미료와 인스턴트 식품으로 병든 몸에 치유의 음식이 된다. 화살나무 잎, 어름덩굴,
“예술의 본령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림을 파는 것입니까? 미술이 정신의 산물일까요, 시각적 산물일까요? 시각적 산물이라면 장식미술가와 다른 것이 뭡니까?”“학연의 폐해가 가장 심한 곳이 미술계입니다. 한국 미술계는 특정대학 출신이 아니면 발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일류를 따지면서 사실은 삼류인 거죠. 진짜 일류는 여유 있고 너그러워요. 컬렉터들도 작가들 학벌 따져서 그림을 삽니다. 웃기는 거죠.”“우리 미술계는 비평이 죽었어요.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행복하게 살아라’. 이런 주례사만 읊어대지 제대로 된 비평이 없어요. 비평이 존재
“남편이 저보다 더 한국을 사랑해요. 한국 역사도 더 많이 알걸요.”이순주 작가가 독일인 남편 알프레드 하르트(Alfred Harth)를 소개하고는 “남편이 오늘 인터뷰 기념으로 염색을 했는데 붉은 머리가 됐다”면서 유쾌하게 웃었다. 작은 키에 단발머리를 한 이순주는 귀여워 보이는 외모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내 나이는 미술계에서도 비밀이에요. 성·국적·학력…, 이런 것들이 사람을 구분 짓게 하잖아요. 나이도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는 것 같아 절대 안 밝혀요. 마음은 늘 10대니까 ‘직업 청소년’으로 살아요.”일반적 카테고리에
제주 공항에 내려 자동차로 40여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2리가 나왔다. 사람 구경하기 힘들 만큼 한적한 마을을 비껴 비포장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만난 집. 무릎 높이의 낮은 돌담만이 겸손하게 경계를 알리고 있을 뿐 대문도 따로 없고 시선을 막아서는 것도 없다. 이 집의 번지수는 ‘외딴집’. 우편배달부·택배기사들에게 이 집의 주소는 번지수 필요 없이 ‘성읍2리 외딴집’으로 통한다.이곳에 사진작가 강태길(60)과 토우를 빚는 조각가 김숙자(60) 부부가 살고 있다. 제법 높은 삼각형의 개오름을 배경으로 1만㎡(3030평)의 넓은
3남3녀, 6남매 중 막내.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오글거리고 살던 사춘기 소년은 ‘내 방’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집 근처에 가구 거리가 있었다. 등하굣길 가구점 쇼윈도 속에는 소년이 꿈꾸는 세상이 있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책상, 침대, 옷장…. 소년은 매일 가구들을 비교해가며 ‘나의 가구’를 점찍어뒀다. 소년의 마음속엔 이미 그 가구들로 꾸며놓은 ‘그만의 방’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져놓기 무섭게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가구들을 스케치하곤 했다. 쇼윈도 속에 있던 책상을 집으로 가져오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몇 년간 학교에
‘땅콩집’ 바람이 뜨겁다. 땅콩집은 한 필지에 두 가구가 똑같은 집을 지어 비용도 절감하고 공간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새 주거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도 땅콩집을 지어주는 ‘집드림’ 프로젝트가 진행될 만큼 최근 트렌드로 등장했지만 벌써 몇 년 전 땅콩집을 지어 살고 있는 세 자매가 있다.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예술가들의 마을인 헤이리 9문으로 들어가 골목으로 살짝 접어들면 똑같은 집 세 채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헤이리 사람들은 이곳을 ‘세 자매 하우스’라고 부른다. 어디서
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 재료공학 박사, 삽살개보존회 회원, 삼성전자 개발팀, 밴드 ‘시나브로’ 멤버….작곡가 안지홍(52)의 인물 검색 정보이다. 공학박사·삽살개·밴드 멤버·작곡가, 잘 어울리지 않는 이력의 조합에서 간단치 않은 삶이 읽혀졌다. 알고 보니 안씨는 수백 편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혹시 ‘Homini Hominis Possunt Historiam Condonare~(사람은 역사를 용서할 수 있을지라도)’로 시작되는 드라마 ‘제5공화국’(MBC·2005년)의 장중한 시그널 음악을 기억하는지. 바로 안씨의 곡이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길은 막다른 길처럼 보였다. 4차선 도로 바로 옆 ‘목표 지점’이라고 표시된 곳은 온통 숲이었다. 이런 곳에 무슨 집이 있다는 거지? 내비게이션에 애꿎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끊어진 것처럼 보인 길이 오른쪽으로 이어졌다. 숲길 양편으로 심상치 않아 보이는 돌 조각 기둥이 죽 늘어서 있었다. 제대로 집을 찾은 듯싶었다. 길을 따라 100m쯤 들어가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흙의 예술가’ 신상호(65·전 홍익대 미대 학장·산업미술대학원장)씨가 35년 동안 일군
나이 서른. 보통의 남자라면 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빛나는 인생 설계를 할 때이다. 남들이 출발의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이 남자의 인생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사업이 쫄딱 망하면서 남자의 인생은 산산조각이 났다. 청주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남자는 안정된 교직 대신 시청각 교재 공급 사업을 시작했다. 혈기왕성했고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직원이 20명에 이를 정도로 사업은 잘 굴러갔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3년 만에 어음이 부도가 나면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 남자의 집은 물론 농
‘사랑한다는 것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남긴 말이다. 같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이 사랑이라면 부부조각가 권치규(45)와 김경민(40), 이들은 행복한 부부이다. 미술계에서 소문난 잉꼬 부부인 이들은 젊은 작가와 중진작가를 잇는 40대 대표작가로 꼽힌다. 권치규는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폭넓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고, 김경민은 일상에서 건져낸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작품들로 아트페어·상업화랑에 단골 초대되는 인기작가이다. 혹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한눈에 도예가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길에서 보이는 3층 건물 벽면 전체에 항아리며 도자기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색색의 도자기 파편에 부딪힌 빛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건물 옆으로는 봉분 크기의 장작 가마 6기가 계단식으로 줄줄이 늘어서 있고, 가마 옆엔 소나무 장작이 잔뜩 쌓여 있었다. 웃음기 없이 무뚝뚝한 남자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손은 두껍고 투박했다. 33년 전 이곳 남양주로 들어와 터를 잡고 분청사기의 맥을 잇고 있는 도예가 김용윤(61)이었다. 그가 2층 전시장으로 안
깡마른 체구에 책 읽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독서열은 왕성했지만 집안 형편은 책 한 권 사줄 여유가 없었다. 소년은 틈만 나면 책이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세계문학전집이니 위인전집이니 그 집에 있는 책을 먼저 읽은 것은 친구보다 소년이었다. 소년이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쓴 시 ‘겨울’이 청소년들의 필독서였던 잡지 ‘학원(學園)’에 실렸다. ‘학원’지는 당시 쟁쟁한 학생 문인들을 배출해냈다. 소년의 시를 선택한 사람은 고은 시인이었다. 고등학생 때 쓴 단편소설도 ‘학원’지에 실렸다.집안 형편 때문에 자신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비탈길 끝자락, 해발 220m에 위치한 그 집은 넓은 창마다 풍경화가 걸려 있다. 한쪽 창으론 북한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다른 쪽 창으로는 건너편 북악산의 봉우리가 마주하고 있다. 그 창밖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새가 놀다 가고, 산 벚꽃이 피고 지면서 계절이 흐른다. 풍경은 어느 순간 형태가 있는 듯 없는 듯,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사람들은 그 그림에서 기암괴석을 보기도 하고 겸재의 산수를 보기도 한다. 국내 대표 추상화가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윤명로(75·전 서울대 미대 학장)
변산에 오면변산의 별들이왜 아름다운지를 안다쏟아지는 운석을 쪼아서별밭을 만들어 놓은 금구원 조각공원 변산에 오면하늘의 별자리를 옮겨 놓으려고자기 몸을 깎아서 별을 만드는김오성을 만난다.-정군수의 ‘별’ 전북 부안 변산반도 서쪽 끝, 호랑가시나무 숲을 배경으로 알몸의 여인들이 봄볕을 즐기고 있다. 나무 그늘에 누워 책을 읽는가 하면, 두 손을 모으고 요가를 하고 있기도 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도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들은 자연의 일부처럼 자유스럽다. 누드의 여인들은 조각가 김오성(66)의 작품이다
농부가 바닥에 철퍼덕 앉아 헤벌쭉 웃고 있다. 벌렁 누워 있는 농부도, 삽 들고 논일 나가는 농부도 뭐가 그리 좋은지 함지박만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 흙투성이 주름진 얼굴들이 말한다. “인생, 어떻게 사느냐고? 그냥 저냥 웃고 살지.”전남 담양군 금산리 무월(撫月)마을. 서울에서는 290㎞, 광주광역시에서는 25㎞. 달이 어루만져주는 곳이라는 이 마을에는 농부들의 ‘욕심 없는 웃음’을 흙으로 빚어내는 도예가 송일근(54)씨가 살고 있다. 그 또한 농사꾼으로 살면서, 그가 딛고 선 마을의 흙으로 쓱쓱 빚어낸 ‘농부들’은 하나같이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