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새 정부의 정책이 한창 물밑 작업 중이다. 다만 그 방향을 미리 가늠해 볼 만한 단초가 있다. 바로 책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내 인생의 책’을 세 권 꼽은 바 있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다.‘자유론’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이미 본란에 소개된 바 있다. ‘자유론’은 사람은 고유한 존재로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각자 고유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고 전제한
최근에 대통령 부인의 의상·장신구 논란이 뜨겁다. 평소에 김정숙 여사는 다양한 의상과 장신구로 눈길을 끌었다. 핵심은 그것들을 구입하는 데 청와대 특활비가 쓰이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청와대가 “사비 구입”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여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이런 민망한 논란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대통령 부인은 왜 그렇게 많은 의상과 장신구가 필요했을까. 답은 어렵지 않다. 아마 빈번한 해외 방문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부부 동반으로 자주 순방 외교에 나섰다. 틈틈이 유명 관광지도 들렀다. 더구
비록 승패는 갈렸어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는 반반으로 쪼개졌다. 천박한 정치 풍토에 비추어 충분히 우려된 신·구 권력의 충돌이 여지없이 현실화되고 있다. 앞으로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새 대통령은 강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능력은 결국 국정 전반에 미치는 대통령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그런 개인적 영향력이 곧 권력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고전적 저작이 있다. 바로 리처드 뉴스타트의 ‘대통령의 권력’(Presidential Power·1960)이다
마침내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흔히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이 가장 행복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제로 이때처럼 책임은 없고 기쁨·희망·의욕만 가득한 시간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대통령 역사를 되돌아보면, 당선자는 승리의 기쁨은커녕 서늘한 두려움을 가져야 마땅하다.우리 현대사는 성공한 역사이지만, 정작 그 성공을 선두에서 이끈 대통령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더구나 말로는 참혹 그 자체다. 추방되거나 살해되거나 자진하거나 감옥에 갔다. 간혹 본인이 아니면 자식이라도 감옥에 갔다. 이런 반복적인 교훈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불행은 그치지 않
대선판에 난데없이 ‘복합쇼핑몰’이 뜨거운 감자다. 야당 후보가 “광주에는 복합쇼핑몰 하나 없다”며 유치를 약속하자, 여당은 “이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상생과 연대의 광주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대관절 복합쇼핑몰과 광주정신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이처럼 자칭 개혁세력은 걸핏하면 광주정신을 들먹이며 핏대를 세운다.이런 행태의 이면을 파헤쳐 그 실체를 폭로하는 통렬한 비판이 있다. 바로 김욱의 ‘아주 낯선 상식’(2015)이다. 이 책은 개혁세력이 광주정신을 앞세워 호남에 ‘신성한’ 몰표를 강요하고,
산업화와 더불어 민주화는 우리의 자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86 민주화세력에 국가 경영까지 맡겼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는커녕 진영 논리와 내로남불이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 민주적 덕성은 도리어 후퇴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고비마다 86 후퇴론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왜 우리는 민주화에 성공하고도 민주주의에는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고 있을까.이런 어두운 부분에 사회심리학적 불빛을 비춰주는 현대의 고전이 있다. 바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1941)이다. 1941년은 나치즘이 기승을
대선판에서 2030 표심을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와중에 여성가족부 존폐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오늘날 여성가족부가 여성만을 위한 부서는 아니라지만, “약자인 여성을 우대해야 한다”는 명분이 그 존립 근거인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그런 명분에 토를 달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에 그런 명분도 공공연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이런 세태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참고해 볼 만한 안내서가 있다. 바로 조던 피터슨 등의 ‘정치적 올바름이 미쳤다고?’(Political Correctness Gone Mad
돈, 건강, 행복…. 새해 덕담에 빠지지 않는 말들이다. 돈과 건강도 결국은 행복을 위해서다. 건강은 일상생활을 원활하게 할 정도면 대부분 족할 것이다. 반면 “얼마나 (돈이)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물음에는 누구나 즉답을 하지 못한다. 설사 답을 내놓더라도 중구난방이다.이를 화두로 삼아 우리 시대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문제작이 있다. 바로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에드워드 스키델스키의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Much Is Enough·2012)이다. 저자들은 경제학자인 아버지와 철학자인 아들이다. 오늘날 선진 사회는 소득
선거판이 연일 이런저런 추문으로 얼룩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선거가 역사상 가장 ‘더러운’ 선거라는 냉소도 적지 않다. 이처럼 세태가 혼탁할수록 더욱 간절히 그리운 선인이 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마침 엊그제(음력 11월 19일)가 장군의 423번째 기일이었다.우리는 장군이 위대하다고 칭송하면서도 정작 그 이유를 진지하게 궁리하지 않는다. 그저 사악한 왜군을 통쾌하게 물리친 민족영웅이라는 점에 열광한다. 하지만 후대의 항일(抗日)이나 반일(反日)이라는 역사적 명분이 오히려 그의 인물됨을 축소시키고 있다. 사실 그의 인간적
지방자치단체장의 비리 의혹이 유난히 잦은 지역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도 성남시다. 이번에 은수미 시장이 또다시 기소되었다.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는 경찰에게서 수사 정보를 얻고, 그 대가로 이권과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다.아직 법원 판단이 남아 있긴 하지만, 여기에 연루된 혐의로 이미 6명이나 구속되었다. 그러니 혐의 내용만으로도 불길한 상상을 막기 어렵다. 권력은 권력자의 의지를 실현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권력자는 자신의 흠을 덮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더구나 발각만 되지 않으
요즘 주요 대통령후보 부인들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후보 부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선거 국면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머지않아 대통령 부인이 되어 국정에도 음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즉 ‘하기 나름’이다. 의례적 역할에 머무를 수도 있고, 국정에 관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 속 대통령 부인들의 역할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그
다음 대통령 임기 5년이 대한민국의 향후 50년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다소 실망스럽다. 비전은 없고 온통 의혹과 네거티브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이런 답답함에 환한 빛을 비춰주는 인상적인 안내서가 있다. 바로 로버트 윌슨이 엮은 ‘결국에는 품성’(Character Above All·1996)이다. 캐릭터(character)란 품성, 인격, 개성 등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전문가 10명이 각각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조지 부시까지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연일 화제다. 이 드라마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오징어놀이 등의 전통놀이를 차용해 현실 속의 극한적 생존경쟁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관객은 놀이의 재미와 현실의 충격을 동시에 만끽하며,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 것 같은 비장함에 사로잡힌다. 이런 재미·충격·공감이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이다.우리는 놀이에서 진 사람에게 흔히 ‘죽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상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에서는 놀이에서 지는 사람이 ‘실제로’ 죽임을 당한다. 처음에는 그저
모든 매체가 대장동 비리 의혹 블랙홀에 빠져 있다. 그 양상만 보면 가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시즌 2라고 할 만하다. 사실 두 사건은 최고 권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한쪽은 현직 대통령이고, 다른 한쪽은 잠재적 미래 권력인 여당 대통령 후보다.이처럼 최고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된 의혹이 공론화되어 내막이 밝혀지기는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국정농단은 비교적 소상하게 실체가 규명되어 결국에는 탄핵에까지 이르렀다. 그 험난한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과연 대장동 비
온 나라가 대통령 선거라는 뜨거운 용광로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난 몇 년을 차분히 되돌아보며, 거기로부터 교훈을 찾아보려는 여유가 절실하다. 사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당시 여당(현 야당)은 선거에서 연전연승했고, 야당(현 여당)은 지리멸렬했다. 이러다가는 진보정치가 아예 씨가 마르지 않겠느냐는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당시에 그런 진보정치에 대해 다양한 비판과 처방이 쏟아졌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강준만의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2016)이다. 이 제목은 ‘나만 옳다’는 극단적 선악관에 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미처 철수를 마치기도 전에 탈레반이 카불로 들이닥쳤다. 그럼에도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치던 바이든 대통령은 돌연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은 하지 않겠다”며 볼썽사나운 철군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이번 사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 우선주의’가 점차 미국의 세계 전략의 기조가 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었다.이 와중에 미국에서 “한국도 미군이 철수하면 붕괴한다” “아니다”라는 어이없는 논란이 벌어졌다. 급기야 바이든 대통령까지 “한국은 다르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런 어수선한 국면에서 한국이 소환
8월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잃은 날(29일)도 있고 되찾은 날(15일)도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이야말로 우리에게 숙명적인 존재다. 숙명이란 싫다고 해서 맘대로 떼어버릴 수도 없다. 더구나 일본에는 우리 국적을 고수하든 아니든 간에 여전히 수많은 동포가 살고 있다.그들은 우리 현대사를 온몸으로 짊어진 우리의 핏줄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뜨거운 유대를 이어가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포의 존재를 차츰 잊어가고 있다. 반면 많은 동포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를 이어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다. 지난 올림픽에서
‘21세기 원년은 2019년’이라고 할 만큼 코로나19는 세상을 크게 바꿔 놓았다. 특히 우리는 거의 상시적인 방역 규제로 인해 파탄 난 일상을 감내하고 있다. 심지어 영장 없이 곧바로 폰이나 카드의 내역을 검색당해도 그것을 탓하기보다 되레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안전과 행복만 보장된다면 프라이버시나 자유는 제약받아도 좋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그런데 중국은 일찍이 그런 풍조를 아예 기본적인 국가 운용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가지타니 가이·다카구치 고타의 ‘행복한 감시국가, 중국’(幸福な監視國家 中國·20
요즘은 개가 없는 집보다 있는 집이 더 많다. 심지어 중장년 남성들이 모여서도 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낸다. 정치인들이 이런 세태를 놓칠 리 없다. 최근에 주요 대선주자들은 앞다퉈 반려견 시설을 찾아가거나, 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고 있다. 이미 ‘애완견’은 ‘개념 없는’ 말이 된 지 오래다. 겉만 보면 영락없이 반려견 전성시대다.그러나 속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여전히 개를 사람 중심으로 대한다. 심지어 ‘내 마음에 안 들면’ 버리기까지 한다. 특히 휴가철에 그런 일이 많다. 반대로, 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이런 다짐을 하고도 문재인 정권은 곳곳에서 과정의 공정을 훼손했다. 사회적 분노가 들끓었고, 공정이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다. 그래서 차기 대선 후보들도 앞다퉈 공정을 외치고 있다.이런 와중에 정작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파격적 실험이다. 그는 일방적 지명이 아니라, 토론 배틀을 통한 당 대변인단(4명) 선발 방침을 밀어붙였다. 이에 호응하여 무려 5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처럼 오로지 능력만 보고 사람을 뽑아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