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언론은 원래 좋은 소식은 그냥 마지못해 전하고 나쁜 소식을 다룰 때만 신이 난다는데, 요즘 영국 언론이 딱 그 짝이다. 정치·경제·사회면 어딜 둘러 봐도 어둡고 우울하고 암담한 뉴스만 보인다. 지구촌 전체가 너 나 할 것 없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지금, 이런 일들이 영국에만 국한된 건 아니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몇 개만 살펴 보자.영국 실업자 규모가 최근 17년 중 최고여서 16~64세 인구의 8%가 실업자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의 긴축재정이 시행
“위기는 끊임없이 피어나는 다년생 꽃”이라고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4~5년에 한 번씩 위기를 겪고 있다. 2002~2003년 카드사태 등 신용위기를 경험한 데 이어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현재는 유럽 재정위기발 글로벌 위기가 진행 중이다.그렇다면 향후 경제와 금융시장의 메가 트렌드는 ‘위기의 반복’과 ‘불확실성의 지속’이 아닐까? 위기가 끝나는가 하면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오면서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성공적으로 재테크를 하려면 어떻게
전문가들은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의 원인을 1차대전 때부터 살펴본다. 1차대전(1914년 7월~1918년 11월) 이후 새로 생긴 무역장벽이 국가 간 경제 교류를 어렵게 했다. 독일 점령지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오스만제국의 영토가 분할되면서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같은 신생국이 생겨났다. 새로운 국경은 유럽의 오랜 전통이던 경제적 유대관계를 단절시켰다.이런 상황에서 1차대전이 발발하자 공급 부족으로 물가상승이 일어났다. 인플레이션은 전쟁이 끝난 1920년대 초반까지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에 다시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과 유로존 재정위기의 재부각은 글로벌 경기의 더블딥 우려까지 자아내며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9월, 올해와 내년의 세계경제 전망치를 각각 4.0%로 하향 수정하였다. 특히 미국과 유로존 등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 1.6%와 1.9%의 저조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 전망하며 선진국 경제의 부진 가능성을 경고하였다.그러
탐욕스러운 월가 금융자본의 행태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지고 있다. 가진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갖지 못한 자는 빈곤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고착화되면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과연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할 때가 된 것인가.‘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원제 ‘The End of the Free Market’·다산북스)의 저자 이안 브레머(Ian Bremmer)는 이
지금 자본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자본주의는 악(Capitalism is Evil)”이라는 말이 터져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촉발한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은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까지 거론하는 양상으로 진행 중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소유욕, 탐욕을 추진력으로 삼기 때문에 사회적 총량이 한정돼 있는 부(富)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91년 7월 소련 공산당이 마르크스 레닌주의 및 계급투쟁 포기를 골자로 하는 새 강령을 채택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극성기가 열렸듯
“10월 4일 아이폰4S 출시, 10월 5일 스티브 잡스 사망.”2011년 가을은 전 세계가 애플 신화와 잡스 전설로 날밤을 샌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애플 신자뿐만 아니라 테크놀러지와 무관한 사람들까지도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시작된 21세기의 변화에 대해 한마디씩 거든다. 워낙 엄청난 변화가 계속해서 터진 탓이기는 하겠지만, 아이폰4S 출시와 잡스의 죽음 외에 나타난 또 하나의 애플의 큰 변화가 별로 논의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변화의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 사망 하루 전 애플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공짜’ 아이폰이다. 2009년 7
아마존닷컴이 내놓은 킨들 파이어의 등장은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수년간에 걸친 끈질긴 집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이패드가 등장했을 때 누가 봐도 흑백의 킨들 태블릿PC는 사양 사업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베조스는 회사의 힘을 킨들 개발에 모았다. 책에서 출발한 아마존만의 콘텐츠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킨들은 아마존닷컴의 전자책을 읽는 하드웨어 혹은 소트프웨어다.아마존은 1994년에 세워진 IT 1세대 회사다. 17년 전에 아마존이 탄생했을 때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10살로 초등학교에 다
스티브 잡스 사후 가장 고민이 많은 사람을 들라면, 아마도 애플의 CEO(최고경영자) 팀 쿡(Tim Cook)이 아닐까 싶다. 뭘 하나 시작하려 해도 “잡스라면, 잡스는, 잡스에 따르면…”과 같은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싫든 좋든, 쿡은 아무리 잘해도 잡스에게 비교될 수밖에 없다. ‘잡스의 신화’ 속에서 갇혀 살 운명이다.쿡은 1960년생으로 미국 앨라배마주 출신이다. 미국에서 앨라배마는 가난과 차별의 대명사다. 쿡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입지전적 인물이라 평가될 수 있다. 그는 1998년 애플 입사 즉시 두각을 나타냈다. 쿡은 애
‘애플과 할리우드’.서로의 이익을 위해 적과 동지 사이를 오가는 관계이다. 둘은 먼저 적대적 관계에서 출발한다. 아이폰·아이패드 등장 이후 나타난 특징 중 하나로 영화 관객과 TV 시청자 수의 격감을 빼놓을 수 없다.아무리 최고 인기배우를 동원해 영화를 만들어도 관람장소는 영화관이 아닌 애플 제품을 통해서이다. TV 드라마나 쇼도 마찬가지이다. 한 달 10달러 정도의 가입비를 내면 TV 프로그램 배급업체인 후루(Hulu)를 통해 어젯밤 가장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을 광고 없이 즐길 수 있다. 3D로 이어진 최첨단 텔레비전이 나와도 텔
지난 8월 31일 애플의 ‘횡포’를 상징하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가 애플에서 떠밀려 나갔다. 애플의 플랫폼에 맞게 내놓은 앱이 따라야 하는 ‘애플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FT는 애플 앱스토어 내부결제를 통해 얻는 이익의 30% 지불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것.FT는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독료를 받고 앱과 웹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모바일용 인터넷 앱을 개발해 애플 사파리에 공급했다. 사실상 애플 플랫폼을 이용하는 셈이다. 애플이 클레임을 걸면서 ‘내부결제와 30% 지불’이라는 최후통
2011년 10월 12일 오전 8시10분, 워싱턴 근교 수도권 지하철 코트하우스(Court House)역. 불경기로 메트로 이용객이 폭발적으로 늘고는 있지만, 지하철 안은 의외로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 워싱턴 메트로의 오렌지 라인은 초고층 아파트를 끼고 달린다. 당연히 아파트 생활을 즐기는 20대 말~30대 초반의 젊은층이 많다. 이들 대부분은 메트로 출근길을 공부시간으로 이용한다. 공부를 위한 최대의 도우미는 아마존의 킨들이다.코트하우스에서 메트로를 타자마자 킨들을 사용하는 출근자를 세어봤다. 대략 30명이 넘었다. 100여명쯤
중앙대 전산학과 졸업, 호주로 유학가 컴퓨터 엔니지어링 석사, 시민권 얻어 박사과정 밟으면서 IT회사 취업, 억대 연봉 받으며 호주에서 12년 근무, 2000년에 귀국해 다국적기업인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부장으로 IT컨설팅.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며 고액연봉을 받던 시절, 김문정(50)씨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경제적 여유가 마음의 여유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까칠한 성격에다 매사에 비판적이었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인색했다. 사소한 일에도 걸핏하면 화를 냈다. 남을 용서하는 일은 그의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중앙고속도로 신림 톨게이트로 빠져나오자 단풍이 든 치악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서울 광화문 뒤의 북한산과는 달리 울긋불긋하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의 카페 ‘들꽃이야기’로 가는 길이다. 애니메이션용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터 출신 김명진(48)씨가 운영하는 카페다. 치악산국립공원 방면으로 접어들어 차로 5분 정도 달리다 보니 ‘성황림’이 나왔다.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낙엽활엽수림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천연기념물 93호로 지정돼 있다. 숲으로 들어가는 흙길에는 노르스름한 낙엽이 깔려 있고, 그 뒤의 숲에서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마을은 단양 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 마을에는 45가구가 산다. 10년 전엔 33가구가 살았던 이 마을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변변한 농지도 없고 산자락에 붙은 밭 몇 뙈기로 연명하던 노인들만 살았다. 주간조선이 찾은 2011년 10월 2월 현재 한드미마을은 골목골목이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마을을 관통하는 계곡을 따라 숙박시설이며 커다란 한옥 건물이 여러 채 들어섰다.한드미마을은 일명 ‘스타 마을’이다. ‘농촌 체험 1번지’로 꼽히며 이곳을 찾
“영수증을 가져오셔야죠.”“난 몰라, 없어. 그냥 썼다고 해~, 분명히 썼다니깐.”“그러니까요. 분명히 썼어도 영수증이 없으면 안된다니까요.”김명웅(42)씨를 만나러 간 날 횡성군 공근면 영농조합법인 사무실 뒤편은 시끌벅적했다. 마을 노인 몇 명과 김명웅씨가 옥신각신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회계는 10원 한 장을 써도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셈이 흐리다 보니 만날 ‘영수증 챙겨 와라, 없다’ 하면서 싸우는 게 일이다”고 말했다.김씨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리의 마을사무장으로 일하면서 영농조합의 사업체인 ‘금나루 무지개
서윤석(54)씨는 기계설비 회사의 CEO(최고경영자)였다. 회사는 잘됐다. 일이 늘어나면서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일이 예사였다. 숨가쁘게 삶을 채찍질한 대가로 회사 규모는 갈수록 커졌지만 스트레스도 그만큼 늘었다. 가족들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서씨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귀농을 결심하고 과감하게 사업체를 접었다. “이 생활에 익숙해지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15년 전의 일이다. 서씨는 배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사업으로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 18만㎡(5만여
주간조선이 10월 20일 생일을 맞는다. 올해로 43번째다. 1968년 10월 20일에 창간된 주간조선은 대한민국 격변의 시대를 함께한 국내 최고령 시사주간지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동안 주간조선은 내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창간 43주년을 맞아 그간 있었던 주간조선 변화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가격은 15원에서 3000원으로[image1]1968년 10월 20일 발간된 주간조선 창간호의 가격은 15원이었다. 당시 지면은 세로줄 쓰기 형식이었으며 지면을 넘기는 방식은 좌→우 방향으로 지금(우→좌)과 반대 방향이었다. 지면 구성
“그날 이후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과연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까?’ 며칠 연속 ‘아니야’라는 답을 할 때마다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의 어록에 있는 이 말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매일 아침 이렇게 ‘무서운’ 질문을 던지며 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한번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적어도 제가 하는 일이 한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저는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