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새벽 3시. 시끄러운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 단잠에서 깼다. 반쯤 감긴 눈으로 휴대폰을 보니 국민의힘을 열렬하게 지지하시는 어느 도봉구민의 이름이 떠있었다. 기왕에 깬 김에 전화를 받았다. 새벽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그 지지자분의 목소리는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고, 실망에 차 있었다. 분노의 이유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까닭이었다. 전화를 끊고 밀린 카카오톡 등 메신저들을 확인해보니, 저마다 비슷한 분노를 표출하는 메시지들이 쇄도하고 있었다.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이재명 대표의 구속을 점쳐온 상황에서 결
한 정치인 선배로부터 ‘목욕당’의 존재를 전해들었다. 국회의원회관 지하에 있는 의원 전용 목욕탕에서 이루어지는 초당적 의원 모임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쾌한 기획이었다.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원회에서는 여야가 치열하게 싸우되, 목욕탕에서만큼은 싸우지 말고 물밑협상과 의기투합을 하자는 의도였다.탕 안에서 국회의원 모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날것의 상태로 나누는 대화에는 아무래도 여유와 양보가 묻어났을 것이다. ‘냉온탕 온도유지 위원장’ ‘수면실장’ ‘사우나 환경조성 추진위원장’ 등 ‘목욕당’답게 재미있는 직책들도 함께 만들
정치는 한정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을 일컫는다.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이라고 정의했다.그러나 현시점 우리 정치를 요약하면, 제한 없는 권력의 권위적 행사다. 정치가 자원을 알차게 사용하려면, 책임감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책임과 반성 없는 정치가 이어지면 국민의 현재와 미래는 혼잡해진다. 윤석열 정부 임기 1년 반 동안 한국 사회가 점점 불행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단지 기분 탓일까?
일본이 지난 8월 24일 오후 1시를 기점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방류가 시작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일제히 총공세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일본 핵 오염수 방류는 제2의 태평양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과거 제국주의 침략 전쟁으로 주변국의 생존권을 위협했던 일본이 핵 오염수 방류로 대한민국과 태평양 연안국에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오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염수 방류를 전쟁에 빗댄 것이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소셜미디어(SNS)에 “일본국의 한국 해양 침탈 반드시 막아내자. 후쿠시마 핵폐수 방류를 방관하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는 시작부터 실패가 예고되었다. 당을 혁신하라고 뽑아놓은 당대표가 멀쩡하게 있는데, 굳이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혁신위원회라는 옥상옥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재명 의원은 77.7%라고 하는 민주당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대표에 당선됐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지지세였기 때문에, 대표로 선출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혁신이든 해낼 동력이 있었다.하지만 이 대표는 취임 직후 혁신은커녕 본인의 사법 리스크 대응하기에 급급했다. 이 대표를 향한 체포동의안은 부결됐고, 민주당은 ‘방탄 정당’이라는 오명을 썼다. 노웅래 의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활동을 마감했다. 혁신안을 냈지만 발표 형식도, 발표문안도 자문과 권고의 성격이 강했다. ‘전권’이 부여된 혁신위였던 만큼 기대감도 컸고 당내 구성원들 역시 이렇다 할 반대나 흔들기를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 반발할 거리가 별로 없었던 탓이다. 매서운 주먹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허탈할 것 같다. 솜주먹이 되어 휘두른 마지막 주먹에 그 누구도 아파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변하지 않으면 또 패배한다는 사실이다.민주당은 시대적 소명을 받들어야 한다. 지역 축소의 흐름이 거세지고,
교육현장에 학부모가 서비스의 고객으로 왕성하게 등장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란 옛말도 학교현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학생들을 매로 다스리던 시대가 있었다니, 지금으로선 상상이 잘 안 된다. 아마도 당시의 학부모들은 교육받지 못했고 먹고사느라, 내 집 마련하느라, 교육비 벌어대느라 바빴다. 그렇게 학부모들은 뿔뿔이 존재했다. 반면 선생님은 높은 교육을 받았고, 실수나 잘못이 있을 수 없는 존재였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대학진학률이 오르고 과거와 달리 지금 학부모의 상당수는 고등교육을
서울~양평고속도로는 하루라도 빨리 개통되어야 한다. 서울~양평고속도로는 2008년에 민간에서 그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부터 따지면, 벌써 15년도 훌쩍 지난 양평군의 숙원사업이다. 실제로 서울~양평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서울에서 양평까지 가는 시간이 15분대로 줄어든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서 양평까지 가는 시간은 통상 90분 이상이 소요된다.이처럼 획기적으로 통행시간이 단축되면 양평의 지역경제도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양평군민들은 서울~양평고속도로가 최대한 빠르게 개통되길 바란다. 양평이 주말 나들이 1순위 코스로 꼽히는 만큼
지난 7월 6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서울~양평 구간 고속도로 추진 백지화를 선언하자 주변에서는 “사람 참 좋게 봤는데 별수 없네”라는 말이 들렸다. 그간 보수 쪽에서 그나마 국민의 시각에 맞추려 노력하는 정치인으로 읽혔던 원 장관이었다. 십수년도 더 전에 보수 한나라당의 개혁을 외쳤던 소장파 남·원·정 중에 1인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김건희 여사의 눈치를 살피거나 대통령의 심기 보좌로 주파수를 맞추는 듯한 모습에 실망한 기류들이 생겨난 것이다. 국토부 사무실 앞으로 ‘고생 많다’라는 화환이 줄을 이었고 지지층 결집에는 성공한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법조인이 되는 시험에서 여러 차례 낙방했던 것을 회상하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는 했다. 한 번 시험으로 인생이 바뀌는 것이 한국적인 상황에서, 호탕하게 들렸던 그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당장 내 주위에서 여러 종류의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 1년 동안의 수험 준비 비용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돌리는 청년들과 사뭇 달라 보이는 그의 호쾌함. 아마 수험생 윤석열은, 적어도 돈 걱정은 없이 그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대학 입시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랫
교육에서만큼은 논란 자체가 논란이 된다. 논란이 발생한 이유나 맥락도 중요하지만, 논란이 생겼다는 그 자체도 중요하다. 교육과 관련된 모든 논란은 곧 교육 현장에서의 혼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민하고 가장 불안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이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고3 학생들은 교육 정책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정부 발표가 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능 논란은, 그 구체적인 내용과는 별개로 논란 자체로 수험생에게 혼란이 됐다. 발단은 이
법과대학이나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법이 헌법이다. 헌법의 편제에 따라 그 ‘유명한’ 헌법 전문(前文)을 먼저 배우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더 유명한’ 헌법 제1조가 포함된 총강을 배운다. 그리고서 본격적으로 기본권을 다루게 된다.법대에서 배우는 법학 교과목의 순서는 대충 그 법이 법체계에서 가지는 위상에 비례한다. 가장 먼저 헌법을 배우고, 그중에도 기본권을 초반에 다룬다는 것은 법률가로서 또는 예비 법률가로서 헌법상 기본권은
사람을 때려본 적이 있는가? 나는 어렸을 적 친구들과 싸웠을 때 말고는 없다. 눈앞에 마주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폭력을 사용할 준비를 하는 경찰의 심리적 상황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심지어 그것이 도둑이나 강도와 범죄자를 향한 것일지라도,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지난 5월 31일 전남 광양제철소 앞에서 경찰과 노동자가 서로에게 폭력을 쓴 일이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쌓은 구조물 위에서 농성을 벌인 노동자와, 그 농성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경찰들이 서로를 향해 쇠파이
어떤 정치인을 좋아하고, 지지하며, 그의 말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이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시민은 분명 민주주의 사회에서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이런 시민들의 움직임을 두고 어떤 때는 ‘깨어 있는 시민의 정치’라고 부르고, 어떤 때는 ‘팬덤 정치’라고 부른다. 과연 어떤 표현이 적당할까? 정치적 열정은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뿌리이면서 기둥인, 핵심적인 자유다. 그런데 ‘팬덤 정치’가 입방아에 오르고 심지어 패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맞고 틀리는 것
더불어민주당에도 제법 나쁘지 않던 팬덤이 있던 시절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 얘기다. 노사모는 최초의 정치인 팬덤임과 동시에 민주당에서 가장 괜찮은 팬덤이기도 하다. 새천년민주당 내에서조차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때, 노사모는 이른바 ‘노풍’을 일으키며 노무현을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만들었다. 그 여세를 몰아 노무현 후보는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이겨 마침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이 된다. 이처럼 민주당의 최약체 후보 중 하나였던 노무현이 이회창 대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간호법 제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시 말해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강행처리했던 간호법 제정안은 법안 주요 당사자들의 상이한 이해관계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사의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을 위한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인력 및 간호에 관한 사항을 따로 분리한 법이다. 이는 의료 현장 간호사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간호법 제정은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기도 하고,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의 공약 사안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모든 법안과 모든 공약이 이행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공약을 스스로 거부하는 모습은 황당하다. 정작 당황스러운 것은 그다음이다
축구를 몰라도 FIFA 월드컵 경기에 몰두하고, 야구를 몰라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과에 마음을 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게 돌아오는 구체적인 이익이 없을지언정, 국가라는 공동체의 이름이 걸려 있는 이벤트에 마음이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기에서 승리할 수도 없기에 국민은 패배했을 때도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단, 조건이 있다. 믿음직한 대표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때 이야기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는 외교라는, 구체적인 국가 공동체의 이익이 걸려 있는, 그것도 초강대국 미국과 벌어진 이벤트를 지켜보았다.
미국은 까다로운 친구다.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우리와 둘도 없이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우리를 돕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매정하게 내칠 기색도 서슴없이 보인다. 중국이라는 친구도 어렵다. 여기도 세계 2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와 사이가 좋진 않은데 우리와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데 위치하고 있어서 마냥 무시하고 갈 수도 없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의 가장 든든한 친구인 미국과 오랜 시간 앙숙이었다. 대한민국은 이 두 친구 사이에서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그러나 상황이 좀 달라졌다. 미국과 중국
며칠 전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3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도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평소 새벽에 일을 나가 밤늦게 퇴근하는 등 어렵게 생활하는 중에도 피해 구제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노력했던 그녀는 숨지기 전날까지도 직장에 출근했다고 한다.그 이전에도 인천 미추홀구에서 2명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각각 20대와 30대였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규정된 소액임차인 기준액을 넘은 두 피해자는 그들의 전세보증금이 기준을 상회한 까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