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은 비영리단체 '뉴웨이즈(NEWWAYS)'와 함께 6·1 지방선거 전까지 '청년 정치인을 찾습니다'는 연재를 싣고 있다. 이번은 2번째 주인공이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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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34)씨는 연극영화과 졸업 후 대학로에서만 1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해왔다. 그가 지금까지 참여한 대표 작품만 18개. 이 중엔 ‘작업의 정석’ ‘아이다’ ‘프리즌’ ‘사랑을 이루어 드립니다’ ‘택시 안에서’ 등 인기 오픈런 상업극이나 뮤지컬, 오페라도 적지 않다. 그는 무대 위에 서는 일이 지금도 설레고 즐겁지만, 무대 밖에선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후배들이 겪는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문제와 처우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김씨는 “능력은 있는데 기회 부재나 재정적 어려움 등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대를 떠나는 이들이 상당수다. 당장 대학로만 해도 10년 차 이상의 배우가 손에 꼽힌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던 건 선배, 동료들의 응원과 도움 덕이다. 이제는 내가 후배들을 돕고 지원해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제도적 뒷받침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그는 자신이 사는 서울 노원구에서부터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정책 제안과 관련 토론회 등에 다수 참여했다. 현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언론 인터뷰, 에세이집 출간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는 보이지 않았고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여전히 저조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에 김씨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노원구의회의 국민의힘 의원(노원병) 후보로 나가 직접 정책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무대 밖에선 ‘청년 활동가’

김윤후씨가 말하는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문제는 다음과 같다. “‘활동 기회의 부재’와 ‘법제화되지 않은 처우’가 큰 문제다. 능력 있는 배우들은 많은데 작품은 한정돼 있다 보니 무대에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렵게 무대에 서도 한 회당 출연료는 10만원도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극단마다 지급 기준도 제각각이다. 뚜렷한 고용계약서가 없다 보니 한 달 넘게 연습하다가도 극단 대표가 공연보다 무대 대관 수익이 크겠다 싶으면 그날로 모든 것이 취소되기도 한다. 10년이 지나도 이런 모습은 변치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은 그나마 있던 기존 무대까지 없애는 등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예술계 대부분 직군의 공통된 어려움이라 생각한다.”

김씨는 2019년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곤 이를 문화예술계 외부에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터넷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통해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어려움을 기록한 것이 그 일례다. 김씨의 저서 ‘나는 대학로 배우입니다’는 그의 글을 접한 한 출판사 제의로 지난해 3월 출간한 것이다. 여기엔 문화예술인들의 좌절과 고뇌 등이 상세히 담겼다.

그는 무대에 오르지 않는 날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노원구 내 각종 지역 행사나 토론회에 참여했다.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입안 과정을 익혔고 이를 뒷받침할 법 근거를 공부했다. ‘노원 청년 정책 네트워크’ ‘노원 청년 정책 아카데미’, 구에서 시행하는 ‘일 경험 사업’ 등은 지역에서 그가 참여한 대표적인 단체 및 사업명이다. 무대 밖에선 ‘청년 활동가’를 자처한 셈이다. 노원구의회 의원들은 이런 그를 알아보곤 청년 일자리 특별위원회에 초대해 문화예술 지원책을 함께 모색하기도 했다. 지난해 구의회를 통과한 ‘서울특별시 노원구 청년 문화예술 활성화 지원 조례안’은 그가 만든 성과다.

하지만 실질적 변화나 효과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실제 논의되는 내용보다 논의되지 못하는 내용이 더 많았고, 논의 끝에 의회를 통과한다 해도 그것이 행정에 이렇다 할 변화를 가져오는 건 아니었다. 노원구 산하 각 분과에선 시민 정책 수렴을 위해 정책 투표를 실시하기도 하는데, 규모가 있는 정당이나 지역 조직들의 보여주기식 정책 입안의 장으로만 변질될 뿐이었다.”

이에 그는 지난해 직접 노원구의회 의원이 되어 관련 제도를 다듬어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당장 대학로까지 아우를 수 있는 지역 정치를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구에서부터 그 변화를 꾀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예술과 밀접한 민주당 실상은 ‘고인 물’

김씨는 우선 노원구만이 갖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노원구의 가장 큰 문제는 ‘재정자립도’가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낮다는 점이다. 구에서는 ‘노원이 기획 도시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은 퍼주기식, 선심성 정책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청년 스타트업 지원 활성화 정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구에선 재정자립도 향상을 위해 기업 유치 필요성을 거론하는데 유수 기업들이 노원구로 올 리 만무하다. 차라리 청년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해 그 비즈니스 대상 지역을 노원구로 하게끔 유도하는 게 실효성이 더 높다. 구민 입장에선 질 좋은 서비스와 재화를 누릴 수 있고 지역 차원에선 스타트업 유치로 일자리 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지역 내 소비를 증대해 경제 선순환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노원구엔 6개의 대학이 있다. 여건과 자원은 충분하다고 본다.”

구 차원에서 공연을 정기적으로 유치·진행하는 안도 그가 검토하는 정책 중 하나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여가생활을 누릴 기회를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구는 분기마다 연극·뮤지컬 등의 공연을 기획, 진행하여 구민들 여가생활의 폭을 확대해볼 수도 있다고 본다. 예술인들에겐 기회와 일자리를 부여해 지금의 구조적 문제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 정책이 잘 자리 잡으면, 서울시 여타 24개 자치구에서도 이에 대한 도입 검토가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

현재 김씨는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 출마를 계획하고 있지만, 김씨가 그간 몸담아온 문화예술계는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과 상당 부분 얽혀 있다. 문화예술 작품 중엔 진보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 적지 않으며 예술인 지원 정책 대부분은 민주당이 점유하고 있어서다. 종사자들 의견 수렴이나 협업 등도 민주당 차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노원구의회 또한 민주당 의원들이 절반 이상이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역적’이란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국민의힘을 택한 건, 기존 문화예술계에 대한 변화 요구나 새로운 의제 거론이 이해관계가 많은 민주당보다 용이할 거란 판단에서다. 여기에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모든 조직이 바닥에서부터 잘 체계화돼 있지만 이는 서로 간 비판을 막고 청년들의 기회를 박탈하곤 했다. 민주당 소속 인사들과 활동하며 가장 많이 들은 건 ‘나 다음에 너’라는 이야기다. 공정성, 객관성이 부재한 말들이었다.”

지난해 12월 국민의힘에선 김씨를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의 ‘국민후원회장’으로 임명했다. 김씨는 선대위 안팎에서 문화예술계 관련 공약 제안과 함께 국민 후원을 도모하고 있다.

당장 그의 목표는 대선 승리에 일조하는 것이다. “대선 결과는 지방선거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윤석열 후보 당선에 일조하려 한다. 이후 지방선거에선 노원병 당협위원장인 이준석 당대표처럼 기존 여의도 문법에서 벗어나 개인 역량만으로도 정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는 “이번 정치 입문이 향후 무대 복귀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면서도 “그럼에도 이 길을 택하는 건 누군가는 정치권에서 문화예술계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에서다”라고 강조했다. “성과를 낸다면 그거대로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거라 생각한다. 한번 배우는 영원한 배우라고 하지 않나.”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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