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부산선거대책위원회 출범 및 필승결의대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 후보 등이 함께 필승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17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부산선거대책위원회 출범 및 필승결의대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 후보 등이 함께 필승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17일 오전 10시30분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 5층에서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시당 선거대책회의’.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를 비롯해 부산 내 구청장, 시·군·구의원 후보들이 모두 모여 선대위 출범을 알리는 자리였다. 당명과 이름이 새겨진 붉은색 점퍼를 입은 후보들은 행사 시작 30여분 전부터 행사장 앞에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회의 시작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후보자들이 자리에 착석하지 않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사회자는 “앉아달라”고 연신 요청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부산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를 두고 지난 1년 동안 이런 시장을 본 적이 없다는 평가를 한다”며 “1년 동안 맛보기로 이 정도 보여드렸으면 앞으로 4년은 이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 부산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부산 시민들의 호응이 뜨겁다는 것을 여러 자료로 분석해서 저는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 지역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율 70%, 득표율 70%를 목표로 일심단결하자”면서 “부산 모든 지역의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할 것이며 부산 곳곳에 국민의힘 깃발이 휘날릴 것”이라고 했다. 

행사 말미에는 후보들이 각 선거구별로 조를 이뤄 연단 위에 올라가 준비한 구호를 외치며 기념촬영을 했다. 지방선거를 10여일 앞둔 시점이었지만 국민의힘 부산 선대위 출범식은 들뜬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날 출범식은 지방선거를 앞둔 부산 지역의 국민의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진 현장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부산·울산의 시장직과 경남지사 모두 더불어민주당에 자리를 내줬다.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했던 ‘부울경’의 지자체장 자리를 민주당이 싹쓸이한 전례 없는 선거였다. 당시 부산시장은 오거돈, 울산시장은 송철호, 경남도지사는 김경수가 차지했다. 오 전 시장과 송 전 시장은 시장 선거에서 여러 차례 낙선한 끝에 처음으로 당선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김 전 지사는 초선 의원이었음에도 첫 지사직 출마에서 승리를 거뒀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photo 뉴시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photo 뉴시스

부산 국민의힘은 벌써 ‘축제’ 분위기 

4년 만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공교롭게도 오거돈, 송철호, 김경수 세 사람이 모두 사법 처리돼 불명예 퇴진했거나 사법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는 점이 민주당으로선 부담이다.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오 전 시장은 지난 2월 2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지사는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송철호 후보는 재선에 도전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전·현직 지자체장들의 범죄 의혹은 현재 민주당에도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입장에서 부울경의 또 하나의 ‘리스크’로는 원내 강경파 의원들의 행보가 꼽힌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산 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는 이렇게 토로했다.

“뉴스 보기 겁날 때도 있다. 대선 이후에도 ‘검수완박’ 정국이 펼쳐지며 당내 강경파 의원들의 행보가 연일 집중되지 않았나. 보수 성향, 중도 성향 유권자가 많은 부산에서 ‘중앙(원내)’의 그런 모습을 좋게 볼 리가 없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 중엔 그 강경파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들부터 정리하지 않는 이상 이제 민주당에 표 줄 일은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 의원들 상당수는 수도권에서 민주당세가 강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처럼 경상도에서 선거 뛰는 정치인들은…. 답답할 때가 많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부울경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를 ‘밀어주자’는 여론이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이 부산 출신인 점도 지역에선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분열하며 당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쪼개진 야당 상황도 당시 민주당엔 유리한 요소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 윤석열 정부를 ‘밀어주자’는 여론과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부울경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출마한 경험이 있는 정치인의 평가다. 

“과거엔 보수 정당이 경상도에서 방심하는 측면이 있었다. 당연히 뽑아줄 거란 기대였다. 그래서 함량미달의 정치인들을 후보로 내기도 했다. 특히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동네 사람들’이 출마하는 경향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러다 보니 선거 때마다 조금씩 민주당에 자리를 내줬고, 지난 지방선거에선 그야말로 참패한 것이다. 이런 점에선 이준석 대표가 추진한 ‘PPAT(공천후보자 기초자격평가)’에 대한 지역 내 평가가 좋다. 반대로 민주당은 대선 이후 부산을 끌어당길 이슈 자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기억에 남는 건 이재명의 인천 출마, 박완주의 성비위 제명뿐이다.” 

이는 여론조사 수치로도 나타난다. 리얼미터의 5월 2주 차 주간 집계에서 부울경 지역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58.2%, 민주당은 30.1%였다. 전체 지지율은 국민의힘 48.1%, 민주당 37.8%였다. 부울경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전국 평균보다 10%포인트 높은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정당 지지율은 지방선거 결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 특히 시·구의원 등 기초의원직에 대한 투표는 소속 정당만 보고 뽑는 ‘묻지마 투표’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변성완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photo 뉴시스
변성완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photo 뉴시스

민주당 강경파가 일으킨 부작용 

유리한 배경을 등에 업은 국민의힘은 부울경 석권을 다시 노리고 있다. 앞서 부산 총괄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백종헌 의원이 공언했듯, 부산에선 ‘득표율 70%’라는 목표까지 세운 상황이다. 현재 부산 내 국민의힘 관계자들 사이에선 득표율 70%가 허언에 불과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지지율이 압도적이다. 박 후보는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에선 62.67%를 득표해 34.42%를 얻은 김영춘 후보를 30%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이겼다. 이때의 판세가 1년 사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박형준 후보는 오거돈 시장 시절 부산시 행정부시장과 시장 권한대행을 지낸 민주당 변성완 후보와 맞붙는다. 변 후보는 행정안전부 공무원 출신으로, 선거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변 후보는 오거돈 시장의 자진사퇴 이후 시정 공백을 최소화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박 후보에 비해 낮은 인지도가 약점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MBN 의뢰로 지난 5월 9〜10일 부산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8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박 후보 지지율은 57.6%, 변 후보 지지율은 29.4%를 각각 기록했다. 이번 지방선거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는 ‘새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민의힘이 승리해야 한다’는 답변이 57.5%로, ‘새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는 의견(32.0%)보다 많았다.

여전히 과반이 넘는 박 후보의 지지율은 △그가 시장직을 수행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 △윤석열 정부 임기 초반 여당 소속 지자체장이 지역 발전에 보탬이 될 거라는 여론 △경력과 인지도 면에서 상대 후보(변성완)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부산의 국민의힘 관계자는 “서울의 오세훈 시장과 마찬가지로, 박 후보 역시 1년밖에 일하지 못했으니 시간을 더 줘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면서 “박 후보의 승리 여부가 아니라 그의 득표율이 얼마나 압도적일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부산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박 시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박 후보의 ‘책무’는 단지 선거 승리 이상에 달려 있다. 지난해 재보궐선거에서 김영춘 후보를 상대로 얻은 ‘60% 이상 득표율’을 또 한 번 기록하는 것이 목표다. 또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부분 민주당에 내줬던 구청장·시의원 자리를 과반 이상 되찾겠다는 것이다. 2018년 지방선거 결과 부산 지역 구청장 11석 중 9석이 민주당 차지였다. 시의원의 경우 현재 전체 의원 47명 중 32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이런 민주당의 ‘성과’는 지난 지방선거가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에 치러졌을뿐더러, 선거 하루 전(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지방선거 분위기는 정반대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PK지역 여론은 호의적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에서 부산 58.25%, 울산 54.41%, 경남 58.24%를 각각 득표했다. 세 지역 모두 과반 이상의 득표율을 얻은 것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와의 전체 득표율 0.73%포인트 격차를 강조하며 윤 대통령이 간신히 이겼다는 사실을 앞세우지만, 적어도 PK지역에서만큼은 ‘신승(辛勝)론’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부울경 지역을 국민의힘에 다시 내주는 상황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단순히 새 정부를 응원하는 여론이 크다는 것 이상이다. 민주당의 집권 플랜에는 PK가 필수적인 지역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진 ‘PK 출신 민주당 대통령’의 기반은 민주당에 소중한 자산이다. 노 전 대통령의 등장부터 시작된 PK 출신 진보정치인들의 세력화로, 부산은 한국 정치의 ‘백마고지’ 같은 곳이 됐다. 그 세력화의 최대 정점이 2018년 지방선거였던 셈이다.(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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